[소소한 제주 이야기] 제주 청춘들에게 제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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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제주 이야기] 제주 청춘들에게 제주는
  • 2019.05.08 17:09
  • by 최윤정

사람들은 대체로 제주가 좋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2018년 관광객이 1400만 명이나 찾아왔을 것이다. 유입 추세가 꺾이긴 했어도 2018년에 8853명이 제주로 이주했고 인구증가율은 2%로 다른 지역들이 겨우 유지되거나 감소하는 와중에 꾸준히 늘고 있다. 그러나, 오고 싶은 제주만큼이나 떠나고 싶은 제주도 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10대들에게 제주는, 시대에 따라 강도는 다를지언정 한 번은 꼭 떠나야 할 곳이다.

 

1941년생 현기영 작가의 소설을 보면 4.3 직후 제주 사람들이 인식한 제주의 모습을 잘 느낄 수 있다. 특히, 『해룡이야기』란 소설을 보면 4.3으로 인해 고향 제주가 더 이상 고향이 아니게 된 비극적 인식이 잘 드러난다. ‘그 악몽의 현장, 그 가위눌림의 세월, 그게 그의 고향이었다. 그러니 고향은 한마디로 잊고 싶고 버리고 싶은 것의 전부였고, 행복이나 출세와는 정반대의 개념으로 이해되었다’고 표현한다. 당시 젊은이들에겐 제주의 비극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고 ‘그 불행으로 가슴 속에 못 파놓은 깊은 우울증’을 앓았다. 그들은 모두 서울로, 중심으로 가야 했다. 서울에서 학업은 물론, 거기서 기어이 출세도 해야 했다.

 

1957년생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도, 1964년생 원희룡 제주도지사도 모두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며 제주를 떠났다. 대학 입학은 집을 떠나고 제주를 떠날 수 있는 인생의 첫 관문이다. 서울 중심주의, 학벌 지상주의인 나라에서 도출된 당연한 경향이지만 제주의 경우, 섬이라는 물리적 제한성이 삶 또한 제한한다고 생각했다. 내 삶을 어디까지 뻗칠 수 있는지가 궁금한 10대들은 일단은 나가고자 한다. 섬은 작고 답답하며 다양한 기회가 없으니 더 큰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공부를 하고 떠나야 한다는 서사는 지금도 유효하다. 하여, 제주의 교육열은 놀라우리만치 높다.

 

더 최근의 이야기도 해보자. 서귀포에서 나고 자란 1985년생 L씨는 제주를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너무 답답했다고 한다. 서귀포 시내 좀 활보할라 치면 하루에 아는 사람 3명은 꼭 만났다고 한다. 초등학교 선생님의 “공부는 잘 하고 있니?”라는 질문을 받아야 하고, 이웃집 아줌마의 “집에 늦게 들어가지 마라”는 당부도 들어야 하고, 중학교 동창과는 친구들의 근황도 주고 받아야 했다. 서울보다 3배가 큰 섬이지만 택시를 탔더니 기사님이 이웃집 아저씨였다는 에피소드는 제주에선 꽤 흔한 이야기다. 어디서 누군가를 맞닥뜨릴 것 같은 느낌, 제주의 공간감은 이렇다.

 

마지막 배가 떠난 제주 추자도의 늦은 오후. 함민복 시인의 말처럼 ‘섬’에선 바다가 때론 ‘울타리’ 같았을 것이다.

 

제주의 밤은 빨리 온다. 시내와 관광지를 제외하면 8, 9시 정도면 식당도 문을 닫고, 사람들은 사라지고, 도로는 컴컴하기 이를 데 없다. 불 꺼지지 않는 도시의 유흥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요즘도 이런 세상이 있나 싶어하며 호들갑에 빠지기도 하고, 이래서 제주가 좋다며 아주 잠깐 그 고즈넉함을 원하기도 한다. 겨울의 (시내가 아닌) 제주는 저녁 8시만 되도 자정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밤 10시 언저리만 되어도 대중교통으로 귀가할 생각은 접어야 한다. 서울-제주 항공노선은 전세계에서 가장 분주한 구간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제주는 고즈넉하고 느린 시간의 흐름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젊은이들은 갑갑하다. 섬 밖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다. 요즘이야 저가항공사가 많아져 육지 가는 것이 수월하고 빈번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섬 바깥의 세상으로 한번쯤은 나서야 할 것 같다. 대학 진학을 계기로 육지로 나선다. 요즘은 해외로도 종종 떠난다. 스스로를 익명과 자유의 세상으로 내던지고 싶다. 부모나 이웃에게 들키지 않을 연애도 하고, 색다른 유흥도 경험하고 싶다. 섬 너머에는 다른 세상이 있을 것 같고 그 세상을 알아내는 것이 지금 내 청춘이 해야 할 일인 것 같다고 여긴다.

 

밤 10시 40분인데 서귀포 시내 한 중심이 이러했다. 불 꺼지지 않는 화려한 밤과 일찍 불 꺼지는 소박한 밤은 모두 우리에게 기회를 준다. 어느 기회를 선택할 지는 자신의 몫이다.

 

떠나는 사람들이 있으면 돌아오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예전에는 은퇴 후 고향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점점 귀환하는 이들의 나이대가 젊어지는 것을 체감한다.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도보여행 길을 만들기 위해 50대에 돌아왔다. 제주에서 소셜벤처를 운영하는 돌아온 40대들도 심심치 않다. 그리고 요즘은 청춘의 공부를 어느 정도 마친 30대들의 귀환도 적지 않다. 그들은 작은 회사에서 일하기도 하고, 미용실 디자이너기도 하고, 제주 청년활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왜 돌아왔냐고 물으니,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보다 더 아름답고 평화로운 길이 고향 제주에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 했다. 아이디어를 빠르게 시도하고 사업을 일으키기엔 제주만한 곳이 없다고 40대 사업가는 말했다. 제주가 답답했던 청년들은 이제 제주가 ‘적정한’ 사이즈로 느껴진다고도 한다. 두 세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람일 수 있는 지역 사회에서 오히려 서울보다 더 양질의 기회를 얻거나 빠른 주목을 받게 된다고 했다. 이렇게 사람들은 제주를 떠나거나 제주로 온다.

 

 

 

최윤정
제주에서 1년간 집중적으로 올레길과 오름으로 소일을 했다. 많이 걷고 많이 오르면 몸과 마음의 군살과 기름기가 쏙 빠져 가뿐하고 담백한 삶을 영위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럴 줄 알았다. 지금은 아예 제주로 입도하여 일하며 놀며 제멋대로 산지 3년 차에 접어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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