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에서 보내온 특별한 선물 '치우리 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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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에서 보내온 특별한 선물 '치우리 버터'
[페어핸즈①] 정성 깃든 '치우리버터'가 피부고민 해결하는 화장품이 되기까지
  • 2019.04.23 11:41
  • by 전지윤 (페어트레이드코리아 그루 무역팀)

2016년 여름, 모든 것이 낯설었던 네팔. '마하구띠'와 저녁식사 중 조금 더 낯선 제안을 마주하게 됐다. 

"치우리 버터로 만든 립밤이에요. 한 번 사용해 보시겠어요?"

참고로 '마하구띠'는 '페어트레이드코리아'와 11년 동안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는 네팔의 공정무역 수공예 생산자 단체다. 간디의 제자이자 네팔의 사상가인 툴시메할(Tulsi Mehar)의 물레운동으로 시작된 직조공동체로 1984년에 설립된 이후 여성생산자의 경제적 자립과 역량강화를 위한 지원을 해오고 있으며 1,000여개가 넘는 공정무역 상품을 개발·판매하고 있다.

'베틀직조 수공예품과 양털로 만든 펠트제품만 있는 줄 알았던 네팔에서 립밤이라니... 더군다나 치..치우리 버터는 뭐지?'

처음 '마하구띠'로부터 치우리 버터로 만든 제품을 소개받았을 때, 답을 알 수 없는 궁금증으로 온통 머릿속이 가득 차 있었다. 2년 후 울퉁불퉁한 네팔의 비포장도로를 하루 반나절 동안 쉬지 않고 달려 도착한 퓨탄(Pyuthan)이란 지역에서 치우리 버터를 만드는 여성 농부들을 직접 마주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채 말이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다양한 문헌을 통해 '치우리 버터(chiuri butter)'에 대해 알게 됐다. '치우리 버터'는 네팔 서남부 지역 산지에 서식하는 치우리 나무 열매의 씨앗에서 채취한 식물성 버터다. 네팔 사람들은 옛부터 식용, 염증치료제, 천연바디로션, 램프연료 등 다양하게 사용해 왔다. 현지에서는 이미 비누, 립밤 등의 제품이 유통되고 있었다. 

치우리 버터를 연구한 논문에서는 리놀리산과 비타민 E가 풍부해 피부 보습과 탄력유지에 뛰어난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다. 해외에서는 시어(shea)버터를 대체할 만한 신소재로 인기를 얻고 있어 치우리 버터의 장점을 활용한 공정무역 화장품 개발 프로젝트가 추진됐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치우리 버터와 생산지의 모습은 마치 큰 그림을 맞추기 전 흩어져 있는 모자이크 조각들 같았다. 오랜 기간 동안 계속된 정보조사와 상상을 마무리 짓고 작년 7월 네팔 치우리 버터 산지로 직접 발걸음을 옮겼다. 카트만두에서 퓨탄으로 가는 길은 말 그대로 영혼의 밑바닥을 느낄 수 있는 길이었다. 네팔의 고속도로가 좁고 험하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가파른 산 위 울퉁불퉁한 길을 곡예를 부리듯이 앞 차를 추월하며 달리는 벤 안에서 네팔에 왜 신이 많은 지를 몸소 깨닫게 되었다. 

 

네팔고속도로

마음속으로는 '신의 가호와 함께하기를' 이라고 외쳤지만, 사실 퓨탄으로 향하는 길이 고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차창 밖으로 물안개를 머금고 있는 네팔의 웅장한 산들을 바라보면 다시 한 번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와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또한 네팔의 서남쪽으로 향할수록 달라지는 기후와 풍경, 그 속을 느릿하게 걸어가는 사람들의 생김새와 의복스타일, 장신구를 보면서 세상의 조그만 신비를 발견한 인류학자처럼 마음이 반짝이는 호기심으로 가득 차기도 했다. 

 

네팔 고속도로

하지만 무엇보다 길 위의 시간을 환하게 밝혀준 건 언제나 따뜻한 미소로 인사를 건네는 현지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다. 시골마을 어귀에서 넓적한 바나나 잎에 파인애플을 얹어 주는 소녀부터 조그만 식당에서 김이 모락 나는 카레를 전해주는 아주머니까지 모두 낯선 이방인에게 환대를 해주었다. 한 편의 모험기를 쓰듯 430km의 산길을 달려 도착한 퓨탄은 탄성이 나오는 풍경이 아름답게 맞아주었다.

 

퓨탄 전경

멀리 한국에서 손님이 방문했다는 소식을 듣고 치우리 버터를 만드는 여성 농부들이 마을의 부녀회장격인 두르가(Durga)의 집에 모였다. 30명 남짓의 여성농부들이 두르가의 비누 공방에 모여 빛나는 눈으로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모두들 바쁜 농사일을 잠시 놓고 온 것처럼 한 손에는 쟁기가 다른 한 손에는 소쿠리가 들려있었다.

두루가가 비누 공예기술을 배우기 전까지는 안정적인 수입원이 없었다. 남편의 건강도 좋지 않아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생활을 했다. 1992년에 UN의 농촌지원 프로그램에서 치우리버터를 이용해 비누를 만드는 기술을 배워 현재까지 '마하구띠'와 함께 일하는 공정무역 생산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가 만드는 치우리 비누는 네팔뿐만 아니라 일본의 '사프란'이라는 사회적 기업에도 수출되고 있다.

 

치우리버터 여성 생산자들과 함께

드디어 그녀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에서만 그려왔던 치우리 버터의 비밀을 들을 수 있는 순간이 왔다. 퓨탄의 여성들은 어렸을 때부터 치우리 나무에 둘러싸여 산다. 앞마당에는 4~5그루의 치우리 나무가 자연서식하고 있으며, 커뮤니티 포레스트라고 불리는 마을의 공유지에서도 치우리 나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치우리 나무는 10~11월에 하얀 꽃을 피우고 12월부터 6월까지 열매를 맺는다. 열매가 완연해 지는 6~7월경에는 본격적인 치우리 버터 생산의 시간이 찾아온다.

약 4kg의 버터를 만들기 위해서 여성 소농들은 하루 종일 고된 노동을 수행 한다. 2m가 훌쩍 넘는 치우리 나무에서 혼자 열매를 따기는 힘들기 때문에 여성들은 삼삼오오 모여 품앗이를 한다. 여성들은 채집한 열매에서 씨를 발라 깨끗이 세척한 후 네팔 서남부 지역의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 씨앗을 바짝 말린다. 

 

치우리열매, 절구, 전통찜기

그 후 발을 굴러서 찧는 전통절구에 씨앗을 넣고 잘게 부순다. 잘게 부서진 씨앗은 전통 찜기에 넣고 부드러워질 때까지 기다린다. 그 뒤 마을에 단 2개만 있는 곳(Got)이라는 전통 버터 채유기로 씨앗을 옮긴다. 가파른 산길을 30분 정도 올라가니 채유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채유기에 찐 씨앗을 넣고 기다란 나무 지렛대를 돌리면 드디어 치우리 버터를 만날 수 있게 된다. 

 

(왼쪽) 전통 버터 채유기, (오른쪽)치우리 버터

최근 치우리 버터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전통적인 생산방식과 신제품개발의 부재로 여성 소농들이 얻는 직접적인 혜택은 그리 크지 않다. 주변 마을에 유일하게 현대식 치우리 버터 기계를 갖고 있는 공장주가 있다. 치우리 여성 생산자들은 그에게 수수료뿐만 아니라 비료로 사용할 수 있는 치우리씨앗 껍질도 함께 제공해야만 했다.

대부분의 여성 소농들은 조혼과 사회적 차별로 인한 학업의 포기로 기초 문해(文解,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율이 낮다. 생산한 버터에 대한 정당한 가치를 판단하는 데 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소득창출은 네팔 농촌의 성차별적인 사회구조와 문화의 개선 역시 치우리 버터 여성 생산자들의 자립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부분이다. 퓨탄 여성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고민은 2년간의 연구로 이어져 2019년 4월 치우리 버터 화장품이 만들어 질 수 있었다. 그 동안 치우리 버터의 2차 가공품은 비누, 립밤에만 한정되어 있어 부가가치가 높은 화장품을 통해 치우리 버터 수입량을 늘려 판로를 확대하고자 한다.

 

또한, '마하구띠'와 함께 젠더 관점에서 치우리 버터 여성 생산자들의 경제적 자립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역량을 강화할 계획이다. 여성들이 개별적·전통적으로 버터를 생산하는 방식의 한계점을 파악하고 조직화를 위한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퓨탄 여성 소농들이 희망하는 조직의 형태와 운영방식, 조직을 만드는 데 필요한 소요시간, 비용, 행정적 절차 등에 관해 긴 호흡으로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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