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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가치'로 지속가능한 사회를 말하다[인터뷰] 사회적 가치 TF 위원장 장덕진 교수...공존의 가치, 사회적 합의의 틀 빨리 만들어야

4월 16일이 다가온다. 세월호 5주기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안전과 관련된 사고는 일터에서, 생활 곳곳에서 여전하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5년이 흘렀는데 무엇이 변했냐고 물으면, 중요한 것들이 변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근본적으로 무엇이 변해야 할까?

지난해부터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사회적 가치가 추가됐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청년 김용균이 처참하게 죽었다. 태안화력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서부발전은 민간기업이 아니라 공기업이다. 청년 김용균의 죽음으로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한국서부발전의 총체적 적폐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제대로 된 진상조사로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진상조사위원회도 꾸려졌다.

3월 말 청와대는 사회적 가치 TF를 구성했다. 사회적 가치를 통해 우리 사회에 변화를 불러오기 위해 구성된 조직이다. 이제 한 번의 회의를 진행해서 어디까지 활동할지 구체적으로 논의하지는 못했지만, 참여한 위원들은 실질적으로 의미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한 의지를 표했다.

사회적 가치 TF 위원장인 장덕진 교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사회학과)를 만나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와 사회적 가치가 어떤 관점에서 중요한지 들었다.

지난 2일 사회가치연대기금 사무실에서 장덕진 교수와 사회가치연대기금 송경용 이사장이 사회적 가치에 대해 대담을 나눴다.

 
- 사회적 가치 TF 위원장을 맡은 이유는 무엇인가?

세월호 참사는 과거형 재난이다. 30년 전의 재난과 똑같은 재난이고 그런 재난이 수천 번 반복되고 있다. 왜 세월호 같은 대규모 참사가 일어났는지, 왜 똑같은 재난이 반복되고 있는지 설명하지 못하면 이 나라에서 학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게 너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해 하던 연구를 중단하고 재난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자로서 세월호 참사를 불러온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객관적 분석을 내놓는 것이 마땅히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했다.

공공성 위기 심각...OECD 30개 국가 중 꼴찌

세월호 참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건의 바깥으로 나와 더 큰 틀에서 봐라봐야 진짜 원인이 보인다'가 연구진들과의 결론이었다. 연구 결론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재난은 결국 공공성의 문제다. OECD 30개 국가에 대해 공공성 지표를 구축하고 국가별 공공성 순위와 유형을 분석해보니 한국 사회는 심각한 공공성 위기에 빠져 있음이 확인됐다. 공공성 순위 면에서 한국은 30개 국가 중 꼴찌였다.

정책을 비롯해 사회 모든 측면에서 공공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반복되고, 공공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구체적으로는 안전을 비용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당연히 해야 할 안전조치를 비용이 들어간다고 생각하니까 하나씩 둘씩 생략하게 되고, 참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시스템을 변화시켜야 한다... 이런 말을 해놨기 때문에 사회적 가치 관련된 일을 맡으라고 하니까 도망갈 수 없었다. (웃음)

- 사건 바깥으로 나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세월호라는 비극이 벌어지기까지 수많은 연결 고리들이 있었다. 이 수많은 연결 고리 중 한두 가지만 제대로 작동했다면 세월호 참사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사건 안으로 들어가면 대개는 현재의 시스템하에서 누가 잘못했는지를 찾아서 그를 처벌하고 끝나게 된다. 시스템의 근본 문제를 검토할 기회가 사라져버린다. 그동안 여러 재난이 있었고 그때마다 관련 장관이 사퇴했는데, 개인이 사퇴했을 뿐 관련된 제도나 관행, 규정은 달라지지는 않았다. 이 사람 사퇴하고 또 재난이 일어나고 저 사람 사퇴하고 또 재난이 일어나고... 사태를 책임진 개인은 있지만 시스템은 별로 달라지지 않고, 따라서 비슷한 재난은 반복된다.

시스템 건드려야 재난 반복 막을 수 있어 

세월호 참사 당시 TV를 켜면 거의 하루 종일 유병언과 그 일가의 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오죽하면 YBS(유병언 브로드캐스팅 시스템)이라고 했겠나. 세월호라는 엄청난 참사의 유일한 책임자인 것처럼, 그 한 사람만 잡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여겨졌던 유병언은 허무하게도 시신으로 돌아왔다. 그의 아들 유대균에 대한 대법 판결도 세월호 배상책임 없다고 나왔다. 사건 안으로 들어가면 답이 별로 없는 듯하다. 그래서 사건 바깥으로 나와야 한다. 사건 바깥으로 나온다는 것은 결국 시스템을 건드린다는 의미다.

책임자 처벌과 더불어 우리 사회의 잘못된 시스템을 어떻게 바로잡을지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공론화장이 필요하다. 시스템 자체가 잘못됐을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검토하고 문제를 과감하게 드러낼 용기가 필요하다. 시스템의 문제를 과감하게 드러내는 용기는 현재의 시스템에 안주하는 사람들의 반발을 마주할 용기를 의미한다. 어떤 시스템이나 기존의 시스템에서 이득을 보는 조직이 있고 사람이 있다. 그 조직과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원도 있다. 그들은 가지고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저항한다. 그래서 움직이게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저항하는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 그렇게 행동하게 만드는 인센티브 구조가 있다. 인센티브 왜곡을 바로 잡아야 하는 문제가 있다. 사회적 가치를 고려하고 사회적 가치에 봉사하는 것이 본인들의 인센티브에도 도움이 되는 구조를 만들어줘야 한다.

 

차선의 정책일지라도 일관되게 지속해야

다른 한편으로는 최선의 정책을 찾는 것 못지않게 차선의 정책을 오랫동안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참여정부 때 부동산 정책 논란이 이루 말할 수 없었는데, 당시 어떤 분이 제안된 정책 4~5가지를 장기 시뮬레이션 해봤다. 결과가 재밌는데 그 중 아무 정책을 택해도 10년만 지속하면 결과가 똑같아지더라. 차선의 정책일지라도 일관되게 지속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려면 어떤 종류의 합의가 될지 모르지만, 정권이 바뀌더라도 뒤집히지 않게 모종의 합의에 기반해야 한다.

-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평가는 근본적으로 무엇을 바꾸기 위해서 필요한가?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우리가 한국 사회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의 대부분이 공공성과 관련돼있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OECD 30개 국가 중 한국은 공공성 순위 면에서 꼴찌다. 공공성이 낮다는 것을 정책의 영역으로 가져오면, 정책의 대부분이 국민을 위해서 봉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책 자체가 일종의 지대추구 행위 비슷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정책의 원래 의도와 실제 결과가 커다랗게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정책이 현장의 문제에 반응하지 않는, 즉 현장 반응성이 떨어지게 된다. 이런 정책은 당연히 비판을 받고 견제를 당한다.

모든 정권은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기에 처음에는 조금 협의하는 것처럼 모양새를 잡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그냥 달려가려는 성향이 강해진다. 4대강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정책에 사회적 가치를 담거나 공공성을 높이는 것들을 담으면 정권의 독단적 질주를 막을 수 있고 정책의 현장 반응성도 높아진다.

정책 왜곡의 원인은 중간 관련자들의 사익추구...공화주의에 대해 생각해야 할 시점 

지표나 평가와 관련해서는 굉장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칫하면 잘못된 시그널을 보내게 돼 엉뚱한 결과를 낳아 오히려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구청 업무 평가 중 탈수급자 현황 지표가 있다. 몇 년에 한번 탈수급자 현황 평가를 하는데, 평가가 시행될 때 그 숫자를 맞추기 위해 서둘러 탈수급을 시켜버린다. 그 결과, 어려운 사람이 더 어렵게 된다. 현장을 왜곡시키는 대표적 사례다.

아주 원칙적으로 생각해보면, 정책이 원래의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된다. 원래 목적대로 결과를 낳으면 된다. 목적과 동떨어진 결과를 낳게 되는 이유는 많은 경우 중간에 관련된 사람들의 지대추구, 사익추구로 왜곡되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정책이 공공성을 띄어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당장 헌법만 생각해봐도 된다. 헌법 1조 1항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다. 이 뜻을 풀어보면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와 공화국, 이 두 개의 축 위에 서있다는 뜻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 편협한 측면이 있긴 하지만, 그나마 '민주주의=선거제도'라는 수준은 된다. 하지만 공화주의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공화주의를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면 '함께 잘 살자'다. 그 맥락에서 정책이 공공성을 띈다는 것은 헌법 1조 1항의 정신에 충실하다는 뜻이다.

정책 수용자 반응 실질적으로 조사해야

공공기관 평가지표를 만들 때 현장의 반응, 즉 실제로 정책의 수용자들이 느끼는 반응을 조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이나 소득주도성장을 언론에서 어마어마하게 비판했다. 편의점이 대표적으로 나오는데, 정부가 실제로 편의점 업주들의 가계부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잘 모른다. 그런 조사 자료가 없으니 언론에서 편의점 한두 군데 가서 기사를 쓰면 할 말이 없어지는 거다.

- 우리나라 정책 반응은 기자들이 결정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잖나. (웃음) 그래서 광범위한 조사, 실증적 자료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현 정부에서 하는 사회적 가치와 기존의 공공성은 어떻게 다른가?

사회적 가치와 공공성을 엄밀히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원을 쓸 수 있는 기준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들어 효율성이라는 기준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효율성을 어디까지 추구할 것인가? 효율성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면 결국 현실에서는 살아있는 사람이 퇴출된다는 의미이고, 시장에서 퇴출된다는 것은 결국 죽는다는 뜻이다.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합의된 틀 안에서 효율성이라는 메커니즘을 관리해야 하는데 무엇이 우리의 틀이 될 것인가? 

근본적으로 이런 것을 결정하는 게 사회적 가치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시장의 효용성도 합의된 틀 안에 있어야... 사회적 가치, 성장에도 큰 도움   

프랑스는 30년 넘게 재정적자를 보고 있다. 그런데 공적사회지출이 GDP의 30%를 넘어 OECD 1~2위를 다투고, 우리에 비하면 3배 가까이 된다. 재정적자를 계속 보고 있는데 복지예산을 그렇게 많이 써도 되냐고 보건연대부(Ministry of Health and Solidarity) 고위 관료에게 물었다.

"프랑스에는 사회적 최저선이라는 개념이 있다. 우리의 동지들이 사회적 최저선 미만으로 살 게 내버려 둘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공화국을 같이 만든 동지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위한 지출을 줄이는 건 처음부터 고려사항이 될 수 없다. 재정적자는 다른 방법으로 풀어야 한다."

1789년 프랑스혁명은 절대왕정을 무너뜨렸다. 귀족과 성직자만 인간으로 대접받던 세상에서 모든 시민이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시민이 그냥 시민이 아니라 동지이고 형제다.

우리로 치면 복지부에 해당하는 보건연대부(Ministry of Health and Solidarity)라는 이름도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는 '복지'가 아니라 '동지들의 연대'를 유지하는 수단이라는 관점을 보여준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 즉 시장의 효용성도 합의된 틀 안에 있어야 하고 이것이 사회적 가치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렇게 하는 게 비용도 훨씬 줄여주고 시장에도 큰 도움이 된다. 그런 측면에서 사회적 가치 담론을 성장 담론과 함께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사회적 가치가 어떤 방식으로 성장에 도움이 되는지.

- 민주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성장담론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나라처럼 외부환경에 의존하는 경제구조에서 성장담론을 무시하는 건 비현실적이다. 성장담론이 부족한 현실에서 사회적 가치 담론을 성장담론과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언급이다. 사회적 가치와 성장이 어떻게 조화롭게 연계될 수 있는지 보여줄 필요가 있다.
 

 
- 정책을 만들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가?

좋은 정책을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정책 수용자(국민)의 특성을 같이 생각해야 한다. 어렸을 때 과학시간 용해실험에서 봤듯이, 같은 물질이라도 맹물에 녹일 때와 용액에 녹일 때 반응이 각각 다르다. 물질이 정책이라면 맹물과 용액은 정책 수용자의 특성이다. 한국 사람들의 가치관 특성을 연구해봐야 하는데, 세계 60개 국가들과 비교해보면 한국인의 가치관에 아주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바로 물질주의다. 아주 예외적이고 아주 압도적이다. 60개 국가 중에서 한국이 유일한 예외 사례다.

물질주의 가치관 85%, 탈물질주의 가치관 15%...정책 수용자 특성 먼저 고려해야 

사람들의 가치관은 소득과 연동해서 체계적으로 예측 가능하게 변해간다. 몹시 가난한 상태에서 어느 정도 밥을 먹을 수 있는 상태가 되면 전통적인 가치관에서 세속적인 가치관으로 빠르게 변한다. 그다음, 어느 정도 밥 먹는 상태에서 꽤 먹고살만한 방향으로 가면 물질주의에서 탈물질주의로 아주 빠르게 변해간다. 보통 GDP 5천 달러가 넘어가면 탈물질주의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런데 한국은 3만 달러가 됐는데도 물질주의에서 탈물질주의로 움직이지 않는다. OECD 정도 국가가 되면 탈물질주의 비중이 45~48%다. 물질주의와 탈물질주의의 비중이 반반 정도다. 그런데 한국은 탈물질주의 비중이 15% 정도다.

물질주의 가치관은 굉장히 여러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진보정당의 주요 지지기반은 탈물질주의다. 탈물질주의의 핵심내용은 인권, 자유, 참여, 환경 등이다.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가치들인데 물질주주의 성향이 강한 사회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진보라고 낙인찍힌다. 자신이 진보라서 진보가 되는 게 아니라 당연한 상식을 이야기하다보면 어느 날 진보라고 알려져 있는 경우가 많다.

물질주의 가치관의 핵심 내용은 사회질서 유지와 경제성장이다. 예전에 북한과 관련된 강연을 했다. 장기적으로 통일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하면, 물질주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 귀에는 '저 사람 진보구나', 심하면 '저 사람 종북이구나' 라고 들린다. 같은 내용을 물질주의 맥락에 맞게 "통일비용 줄이기 운동을 해야 한다. 통일비용이 적게는 3000조, 많게는 5000조라고 하는데 10~12년 치 국가재정이다. 이 비용을 누가 내겠나.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이 낼 거다. 그런데 지금 최소한 이러이러한 일만 해도 통일비용을 엄청나게 줄일 수 있다"고 얘기하면 솔깃하게 듣고 필요하다고 인정한다. 사회적 가치도 수용자의 특성을 먼저 이해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큰데,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할까?

사회적 가치와 4차 산업혁명의 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즘 4차 산업혁명으로 다들 일자리가 없어질 거라고 걱정한다. 다양한 예측들이 있는데 적게는 7%, 많게는 49%의 일자리가 없어질 거라고 본다. 이런 예측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진짜 중요한 것은 선제적으로 이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사회적으로 합의하고 이 합의의 틀 안에서 이 기술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어떻게 발전시킬 것이냐이다.

200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그때도 산업혁명으로 기계가 일자리를 빼앗아간다고 러다이트 운동(기계 파괴 운동)을 했다. 지금 산업혁명 결과를 돌이켜보면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중산층을 낳았다. 그때의 걱정과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이 정반대의 결과가 저절로 얻어진 건 아니다.

기술은 놔두면 야만...사회적으로 합의된 틀 안에 두고 사회가 원하는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당시 기록을 보면 5살짜리 어린아이를 좁은 탄광으로 들여보내 석탄을 나르게 했다. 기술이 야만을 향해서 달려갔다. 야만으로 달려가는 기술을 사회적 합의의 틀 안에 가두기 위해 혁명, 내전, 전쟁 등 온갖 일을 인류가 겪었다. 그런 수많은 사건과 희생, 그 바탕 위에서 산업혁명이라는 기술을 사회적으로 합의된 틀 안에 가뒀고, 그 결과 제조업이 번성하고 제조업이 중산층을 낳았다.

이게 지난 200년 동안의 경험이다. 우리는 이제 산업혁명보다 더 거대한 새로운 기술혁명의 변곡점에 서 있다. 지난 200년 동안 해 온 시행착오를 또 다시 할 것인가? 아니면 빨리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그 합의의 틀 안에서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기술을 발전시킬 것인가? 모든 사람의 일자리를 업그레이드하는데 어떻게 이 기술을 사용할 것인가? 이런 게 사회적 가치와 4차 산업혁명의 관계라고 생각한다.

4차 산업혁명에 제일 잘 대처하고 있는 나라가 독일이라고 하는데, 독일 사람들은 인더스트리 4.0을 사회혁신 프로그램이라고 말한다. 모든 사람들의 일자리를 업그레이드하기 때문이다.

최근 택시와 카카오 카풀이 큰 갈등을 겪었다. 사회적 합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택시라는 특정산업과 카카오라는 특정업체가 특정된 상황에서는 합의가 불가능하다. 사실 기술 개발을 막거나 활용하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특정 산업이나 특정 업체가 특정되기 이전에, 관련된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지 않으면서 어떤 방식으로 이 기술을 활용해야 하는지 선제적으로 합의가 필요하다.

그래야 시장이 예측 가능해진다. 예측 가능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을 줄이면서 진입할 수 있고 관련 산업의 종사자는 퇴출당하기보다 새로운 기술에 일정부분 지분 참여를 할 수 있게 된다.

- 플랫폼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불안정한 플랫폼 노동자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고, 노동환경 또한 더 열악해지고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정규직이 없어지는 방향으로 가는 트렌드는 아무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지금은 어떤 사람들의 문제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모두가 다 비정규직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

네덜란드는 10년 전 세계 최초의 '파트타임 경제'라고 선언했다. 모든 사람이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세상이 어떤 나라에서는 이미 현실이 됐고 한국에서도 조만간 현실이 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것과 관련된 사회적 합의, 사회적 가치가 빨리 확립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야만으로 몰리는 세상이 될 수 있다.

사람 대체하는 로봇은 옛날 기술, 지금은 사람과 함께 일하는 로봇...적정규제 필요

그런데 기술의 문제를 면밀히 봐야 할 필요가 있다. 보통 로봇 하면 떠오르는 게 생산라인에서 조립하는 로봇 그래서 사람을 대체하는 로봇인데, 이런 로봇은 옛날 기술이다. 인간을 대체하기 시작한 건 10년도 넘었고 이미 상당 부분 대체할 만큼 대체했다고 본다. 지금 로봇기술의 최첨단은 사람과 함께 일하는 로봇이다.

예를 들어 로봇을 다리에 끼우면 다리 힘이 5배, 10배 강화돼 고층 계단을 올라도 힘이 하나도 안 들고, 손가락에 장착하면 손가락 하나로 무거운 책상을 쉽게 밀 수 있다. 이런 로봇은 근력을 향상해준다. 그동안 힘이 없어서 일할 수 없었던 노인이나 장애인이 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런 기술의 가능성을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킬지 미리 합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기술이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

- 세월호가 운항할 수 있었던 것은 규제 완화 덕분이었다. 원래 20년이었던 여객선 선령은 1991년 특정한 조건을 충족시킬 경우에 한해 25년으로 연장할 수 있게 규제 완화됐고, 2008년에는 30년으로 규제 완화됐다. 지금까지 안전에 관련된 규제가 지나치게 완화돼서 일터뿐 아니라 곳곳에서 사망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또한 한번 완화된 규제는 다시 강화시키기도 어렵다.

적정규제가 답이다.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히 없애야 하지만 있어야 할 규제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적정 규제란 곧 공공성의 영역을 지키는 것이나 다름없다. 반면 현실적으로 지키기 어려운 규제는 남용을 막아야 한다. 지킬 수 없는 규제들을 잔뜩 만들어 놓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재적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고, 규제의 권한을 가진 쪽에서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누구는 처벌하고 누구는 처벌하지 않는 사적 권력을 행사하게 된다. 한국에서 가장 용서할 수 없는 죄가 걸린 죄라는 농담도 있잖나. (웃음)

규제를 당하는 쪽에서는 본인이 규제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권한을 가진 쪽으로 어떻게든 접근하게 마련이고, 이것은 필연적으로 부패와 연결된다. 이처럼 사적 권력의 행사로 연결되는 규제들이 많기 때문에 사람들은 규제 완화가 좋은 것이라는 착시 현상에 빠지게 된다. 비현실적인 규제는 없애고 있어야 할 규제는 엄정하게 집행하는 적정규제가 필요하다.

 

공정경 기자  jjkong9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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