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제주 이야기] 봄, 꽃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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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제주 이야기] 봄, 꽃 예찬
  • 2019.03.15 17:14
  • by 최윤정

제주에 살면서부터 봄만 되면 즐거운 노심초사가 생겼다. 3월 중순을 전후로 꽃나무를 유심히 살피게 된 것이다. 꽃들이 한 순간에 만개하여 놀래킬까봐 내가 먼저 개화의 순간을 눈치채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유념해서 꽃나무를 대하여도 개화를 깜빡 놓칠 때가 있다. 출퇴근길에 짧게 살피는 것만으로 부족한 경우도 있고, 여러 일로 정신이 분주하면 건성으로 눈길을 주거나 아예 눈에 안 들어오기도 한다. 눈치채려고 애를 썼건, 부지불식 간에 피었건, 봄꽃의 속성은 기본적으로 '놀래킴'이다.

 

사실 제주는 연중 꽃이 없는 적이 거의 없다. 이모작, 삼모작을 할 만큼 극심한 추위가 없어 무언가가 끊임없이 자라고 있다. 관광지로서의 매력도 유지해야 하기에 도청, 시청, 마을 단위에서 매 계절 도로 조경이나 꽃밭을 조성한다. 그 외에도 나 같은 자연무식자는 가늠할 수도 없는 많은 꽃들이 사계절 배턴을 주고 받으며 부지런히 피고 진다. 하여 봄이라고 꽃을 찾는 것은 명분이 좀 떨어지는 수선스러움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봄은 봄인 걸.

 

유채꽃. 꽃 피기 전 연한 줄기와 잎은 나물로도 많이 먹는다.

 

제주 봄꽃의 대표주자는 명실공히 유채꽃이다. 3월부터 유채꽃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오고 '유채꽃 국제걷기대회'와 '유채꽃 축제'가 열린다. 유채꽃은 겨울에도 종종 보이지만 봄이 되어야 비로소 밭두렁, 돌담, 공터, 도로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제주는 돌, 흙, 담 등에 검정색이 많으니 유채꽃의 노란색이 더욱 도드라지게 느껴진다. 많은 봄꽃 중 유채꽃이 유독 사랑을 받게 된 것은 제주의 거무스름한 자연에도 이유가 있지 싶다.

 

꽃 다음으로 잎이 돋기 시작한 벚꽃 나무들

 

유채꽃을 필두로 4월에는 벚꽃, 5월에는 귤꽃이 아주 만발한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수많은 꽃들이 소리소문 없이 피었다 진다. 매화, 목련, 튤립, 장미처럼 이름과 모양을 알아볼 수 있는 꽃들도 있지만 아주 작은 존재감을 가진 야생화들도 엄청 많다. 길을 걸으며 만나는 여러 꽃들은 이름을 몰라도 그 자체로 예쁘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제 이름을 불러주고 싶다. 꽃검색 앱을 이용하면 아주 쉽다. 다시 마주치게 되면 기억한 이름을 불러주고 싶지만 번번히 이름을 잊어먹는다. 그래서, 봄길 걷기의 필수 아이템은 꽃검색 앱이다.

 

귤은 잘 알아도 귤꽃까지는 잘 모른다. 5월의 귤밭은 달디단 향기가 가득하다.

 

계절별로 오가는 꽃들을 놓치지 않고 사는 삶을 염두에 둔다. 피어있는 줄도 몰랐다가 어느 날 길바닥에 떨어진 꽃들을 보고 도시인의 듬성듬성한 시간 감각에 낭패스러운 마음이 들지 않았던가. 제철 꽃을 즐기는 것은 제철 채소를 먹는 것처럼 정신에 신선한 기운과 활력을 준다. 또, 제철 채소를 맛보면 다시 그 계절이 되었을 때 입맛이 먼저 찾듯이, 제철 꽃들에 빠지면 그 계절에 대한 감각이 돋고 마음이 먼저 꽃을 기다린다. 이렇게 꽃을 기대하면 개화의 설레임과 낙화의 여운까지 꽃을 즐기고 살피는 마음도 오래 간다.

 

가파도 청보리밭. 싱싱한 초록이 바람에 나부낀다.

 

꽃은 아니지만 꽃과 같은 존재감을 가진 것들도 잊지 말자. 고사리 장마를 겪으며 꺾는 족족 자라는 주먹 쥔 고사리, 가파도를 비롯하여 제주 곳곳을 부드러운 초록으로 물들이는 청보리, 담장이나 덤불 사이 빨갛게 맺혀 있는 산딸기들. 하물며 잎들마저 동그라미로, 세모로, 하트로 예쁘게 움트고 반들반들한 초록을 뽐낸다.

 

우리가 봄을 통해 배워야 할 것들은 너무 많다. 수렴의 계절인 겨울에서 발산의 전기를 마련하는 에너지, 소리소문 없이 제 할일 끝에 꽃을 맺는 식물들의 의연함, 꽃과 동일하게 귀하고 아름다운 작은 식물들, 봄꽃축제의 수선과 시끌벅적이 아니라 개화 전의 설레임부터 낙화 후의 여운까지 긴 호흡으로 꽃을 만나는 자세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마음과 자세를 연습하고 나면 비로소 꽃을 심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내 방의 작은 화분에, 마당의 한 구석에, 그리고 제일 중요한 내 마음 한 켠에도 말이다.

 

 

최윤정 
제주에서 1년간 집중적으로 올레길과 오름으로 소일을 했다. 많이 걷고 많이 오르면 몸과 마음의 군살과 기름기가 쏙 빠져 가뿐하고 담백한 삶을 영위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럴 줄 알았다. 지금은 아예 제주로 입도하여 일하며 놀며 제멋대로 산지 3년 차에 접어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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