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과 산업, 그리고 '자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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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과 산업, 그리고 '자산화'
[사회적 부동산 ③] 도시 공공성 위해 도심산업을 재조명하다
  • 2019.03.01 03:49
  • by 자료제공 나눔과미래 | 정리 송소연

요즘 청소년들의 장래희망 1순위는 ‘주님 위에 건물주님’이라고 한다.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부동산(Real Estate). 부동산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공간에서 시민들이 만들어 가는 삶의 가치가 축적된다. 함께 만들어 낸 가치는 공유되어야 하지만, 보통 사적으로 독점되거나 국가적으로 통제되곤 한다.

부동산이 다시(RE) 공유자산이 되어 모두가 소유하고 관리한다면? 주민이 주인인 마을, 시민이 주인이 되는 도시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리커머닝(RE: COMMONING)은 부동산(Real Estate)을 다시(RE) 공유재로 만들자는 프로젝트다. 또한, 함께 가치를 공유하는 경험인 동시에 일상 속에서 민주성을 구현해 보려는 사회적 실험이기도 하다. 새로운 시도로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는 ‘사회적 부동산’을 라이프인에서 소개해 본다. 

 

한때 청파서계 지역은 도심제조 산업의 중심에서 봉제 산업을 이끌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남에 따라 산업이 쇠퇴하고 시설은 노후화되면서 점점 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서울역도시재생지원센터는 서울역 일대 도심 제조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고자 했고, 남대문 시장을 중심으로 발달해온 청파서계 제봉 산업을 재조명했다. 먼저 지역 산업의 현황과 주민의 필요에 집중했다. 그리고 기존의 수주방식은 봉제인의 생활안정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과 창업을 시도하는 디자이너는 생산 현장에서 전문기술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진출처 - 국토교통부 블로그

 

이러한 수요를 바탕으로 관계형성과 지역 산업의 활성화를 위한 협의회 구성을 위한 노력이 있었다. 정기적인 회의를 진행하며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배려하고 참여하는 과정이 있었다. 그리고 지역 산업 활성화의 기반이 될 공동의 자산을 형성하는 것에 뜻을 모았다. 그리고 그 전략으로서 함께 운영하고 수익을 나누는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이제 이 지역에는 생산기지 역할을 하는 ‘서계동 코워킹 팩토리’와 공동의 부를 창출하는 봉제브랜드 ‘이음’이 운영되고 있다.

이렇게 주체가 직접 사업을 조직하고 공간을 만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다. 이 과정을 도우며 총괄한 서울역 도시재생지원센터의 이종필 선임 코디네이터를 만나 지역재생으로서의 자산화와 지역 산업 활성화의 필요성, 중간지원자의 역할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서계동 코워킹팩토리’라는 공간은 중간지원조직인 서울역도시재생지원센터가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탄생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A 서울의 주류 도심 산업은 수제화, 봉제, 액세서리, 인쇄 등이 있다. 서계동은 남대문 시장이 여성복 메카이던 시절 생산 기지 역할을 했다. 하지만, 패션시장의 메카가 동대문시장으로 넘어가고, 서울로가 보행길이 되면서 오토바이 통행이 되지 않아 운송에 문제가 생겼다. 지역산업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마침 서계동 봉제 산업 당사자들 중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 높은 분들이 있어서 함께 도시재생을 추진하게 되었다.ᅠ

 

사진출처 - 국토교통부 블로그

 

Q 서계동팩토리의 자료를 보니 ‘사업의 자산화’라고 되어 있는데 이 개념이 뜻하는 바가 지역산업인 봉제 산업의 육성을 의미하는 것 같다. 혹자는 자산화 사례라고 보기 어렵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A 맞다. 그러나 원래 시민자산화는 부동산뿐만 아니라 다양한 자산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산업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공간의 자산화에 앞서 공간 안에 자리해야할 지역산업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이를 공유하는 구조로 만들고자 했다. 

시민자산화를 확장하는 관점에서 산업을 이해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산업 중심의 자산화가 도시에 활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요즘 주요 지방 도심이 텅 비어 있는 것을 많이 보게 되는데, 그건 지역을 떠받쳐온 전통적인 산업이, 산업의 핵심요소들이 없어지고 시장에서 탈락되어 껍데기, 즉 공간만 남았기 때문이다. 

그 빈자리에는 무엇을 채울 것이냐는 고민이 남는다. 그래서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청년들의 아이디어를 제안 받아 그 공간에서 창업을 장려한다. 대부분 서비스 업종의 창업이다. 그러나 서비스업만으로 도시는 살아날 수 없다. 서비스업보다 제조업이 고용창출의 연쇄효과가 크다. 그래서 지역의 핵심 산업을 자산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도시의 공공성을 회복한다는 것은 도시 내에서 주거와 산업이 공존을 위한 새로운 방식을 필요로 한다.

 

Q. 자산화의 과정에서는 어떠한 시도가 이루어졌나?
A 실제로 현장에는 이미 답이 있었다. 봉제인들과 꾸준히 소통하는 과정에서 제안된 대안과 전략워크숍을 통해 도출된 문제의식을 토대로 본격적인 사업을 추진했다. 서계동 코워킹팩토리를 만들기까지 구분해보자면, 크게 두 가지의 시도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지역 브랜드를 만들고 옷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일련의 과정을 자생적으로 해보는 것이었다. 봉제 산업이 활성화 될 수 있는 매개로 디자인, 생산, 판매, 이렇게 세 단계의 과정이 있다. 봉제하시는 분들은 생산의 영역을 담당한다. 그런데 생산 영역은 보통 하위 파트너로만 인식된다. 옷을 직접 만드는 사람이 중요한데, 그만큼의 대우를 못 받는다. 동대문에서 하청을 받는 일색화된 구조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문제 인식이 있었다. 디자이너랑 직접 만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서계동 봉제 종사자들과 숙명여대 의류학과 디자이너들이 참여하는 첫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이음’라는 브랜드를 만들었고, 서울로7017에서 판매했다. 2016년에 처음 해서 작년까지 4번 팝업스토어를 운영했다.

 

사진출처 -서울도시재생포털

 

두 번째로, 숙련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 과정을 신설했다. 기존 교육 프로그램은 현장감이 다소 떨어진다. 봉제는 다루는 직물에 따라 접근하는 방법이 다르고, 교육 수료 후,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봉제현장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하는데, 기존의 방식에는 한계가 있었다. 봉제작업이 다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지역마다 다루는 직물이 다르다. 한 동네에서 모든 직물을 다루고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다. 동네마다 봉제의 특색이 있다. 그래서 기술만 배운다고 취업이 잘 되는 게 아니다. 교육을 일원화 시키지 말고 지역의 특색과 바로 현장에서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지역에서 신설해보자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래서 서계동 봉제교육장을 만들어서 한국봉제패션협회에서 위탁 운영 했다. 지금은 10명 교육시키면 9명 취업이 된다. 협회에 소속된 회원사들이 있으니 고용률이 높다. 그러나 여전히 부족한 점이 있었다. 교육을 받은 후에 숙련이 되려면 충분히 훈련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교육 기간이 길어지면 아무리 교육이 무료라고 하더라도 실제로 돈을 벌지 못하기에 수강생들의 생활이 안정적이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교육을 마친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숙련 과정을 거칠 수 있도록 공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교육생들도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숙명여대와 컨소시엄을 맺어서 협동공장을 조성하기 위한 첫 단추 격으로 코워킹팩토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사진출처 - 국토교통부 블로그

 

Q 주민의 삶에 밀착한 고민에서 출발한 변화라고 본다. 그런데 왜 결과물이 코워킹팩토리였나? 
A 서울은 패션의 60%를 담당하고 주요 자치구마다 셀 수 없이 많은 봉제공장이 있다. 이런 공장들은 대부분 영세하고, 시설에 투자 한다고 생산력이 오르는 것도 아니어서 방치되다보니 시설들이 낙후해있다. 동네사람들은 이런 생산기지가 동네 격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해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다 도심에 밀집한 공장들이 빠져나가면 그 동네는 공동화가 이루어진다. 동네의 산업으로 경제구조가 만들어지는 가치사슬이 있다. 소비를 일으키니까. 이미 구조화되어 있는 공장, 즉 산업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다. 

봉제 산업은 기술의 영역이고 열심히 하면 일정 정도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봉제를 배우는 청년들도 분명 있다. 신규 인력의 수요와 공급이 있기는 한데. 문제는 이 신규인력이 접근하기에 일하는 컨디션, 즉 물리적인 노동환경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에서 발암물질 유발, 미세먼지 발생 등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산업에 대해 시설 개선을 위한 장기 지원을 해주기는 하지만, 효과는 미비하다.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컨디션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기능적으로는 협동 공장, 외관적으로는 모델 공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시장에 있는 2층 건물, 124평 중 절반은 협동공장으로, 또 다른 하나는 메이커스페이스로 사용하기 위해 기획했다.

 

Q 자산화의 관점에서 지역 산업을 바라보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A 제조업이 사양 산업이라고들 이야기 하지만 사실 예산의 투입 자체는 많은 편이다. 문제는 예산을 제대로 못 쓴다는 데에 있다. 어떻게 산업을 살릴 것인가라는 전략이 먼저이고 그에 따라 돈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올해 성과를 바탕으로 내년엔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회의를 오늘도 하고 왔다. 올해까지는 디자이너와의 연계가 주력이었는데 내년에는 봉제 종사자들이 장인이 될 수 있도록 해보려 한다. 

지금은 봉제 산업이 동대문시장을 중심으로 일원화된 하청 구조이다 보니까 아침에 주문이 들어오면 밤에 작업물이 나가야 한다. 짧은 시간동안 불량을 맞춰야 하니 품질은 후순위가 될 수 밖에 없다. 옷은 물론 저렴하고. 공임은 말할 것도 없고. 봉제 종사자들은 굉장히 오랫동안 이 구조와 환경에 익숙해져 왔다. 산업의 주도권이 사실상 동대문시장에 있는 것이다. 이걸 개선해야 된다고 본다. 

동대문을 통해서만 일감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을 통해서 일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개인 디자이너 브랜드가 많이 생기고 있는데 그들은 한 번에 많은 생산량을 발주하지는 못한다. 봉제하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개인 디자이너들의 주문은 이따금 2~30장의 물량이 들어오는 것인데, 평소 동대문의 발주량에 비하면, 이런 소량 주문은 받을 수 없다. 디자이너인 발주처와 생산자인 봉제 종사자들 사이에서 미스매치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문제인식을 바탕으로 패션·봉제 산업을 어떻게 혁신할 것이냐는 질문을 하고 그에 답해야 한다. 나는 산업 자체가 지역의 공공성이 회복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전통적인 도시 재개발, 재건축을 원하는 사람들은 이런 주장이 달갑지 않을 것이다.ᅠ 

 

Q 미래지향적이라는 것은 결국 다음 세대의 육성이 활발해져야 한다는 것이라 본다. 이에 대해 어떠한 계획을 갖고 있고 이 과정에서 서계동 코워킹팩토리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옷이라고 하는 건 상상하고, 그림 그린다고 되는 건 아니다. 봉제가 중요하다. 봉제선 하나에 따라 전혀 다른 옷이 나온다. 봉제에 대해 이해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내가 옷을 만들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이다. 봉제를 배우러 오는 청년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굉장히 진지하게 접근한다. 재생사업에 공모해서 2년째 협회에서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데, 청년들이랑 의류, 의상을 전공한 사람들이 우리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학교에서 배우는 거랑 완전히 다르다고 이야기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다른 친구들은 서로 나도 하고 싶다고 하더라. 너무 소중한 기회라고 한다. 

패션봉제산업에 대한 청년들의 참여, 이게 불가능한 게 아니다. 일본에 가서 보니 꽤 규모가 큰 봉제공장, 유럽 명품을 만드는 곳이긴 한데, 미싱 작업을 다 20대 여성들이 한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매년 20대 여성을 10여명씩 뽑아서 숙식, 교육, 임금을 제공하고 있어서이다. 일본에 봉제 공인자격증이 1, 2, 3급이 있는데 이걸 따도록 해준다. 일 하는데 있어 최저임금을 주지만, 저녁엔 교육을 시키고, 잔여수당도 나오고 기숙사가 있다. 오사카 주거 임대료가 4~5만 엔이 드는데 여기선 1만 2천 엔 정도가 든다. 이 과정에서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이 사람들이 남게 되면 그 라인에 4인 1조로 숙련공 1, 2, 3급을 배치해서 서로 배울 수 있게 해준다. 

그 기업 회장이 말하기를 ‘난 사회적인 일을 하는 게 아니고, 명품을 잘 만들려면 온전히 자기가 작업할 수 있는 숙련공이 필요한데, 그런 인재가 계속 있어야 하므로 나는 거기에 투자하는 거다.’라고 하더라. 청년들이 접근 할 수 있도록 아예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새로운 세대의 육성을 위해서는 사회적인 이미지를 개선하는 방법 또한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봉제인들의 인식변화 또한 필요하다. 질 낮고 싼 것을 생산하는 데에 익숙해져서 잃어버린 고유한, 특색있는 자신들만의 봉제 기능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우리도 명품을 만들 수 있다. 스스로 자신감이 있어야 이게 얼마나 의미 있는지 일인지 이야기 할 수 있다.

 

Q 서계동 코워킹팩토리의 사례에서 독특한 점은 중간매개자・조정자로 서울역도시재생지원센터가 있다는 것인데 공공과 현장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A 이 동네에 온지 4년 차이다. 그 중 3년이 코디네이터. 이전에는 이런 업 자체가 없었다. 일을 하면서 느끼는 건 사회가 복잡하고, 다변화되며 사람들의 욕구 또한 다양해진다는 것이다. 이전처럼 집단적으로 하나의 단선적인 이익이 쉽게 생기지 않는다. 탈근대화가 진행되는 구조의 변동 속에서 현장에서 느끼는 건 갈등의 양상이 다양해진 것이다. 행정이 대응할 수 있는 한계가 분명하다. 행정은 구조적 한계 때문에 융통성을 발휘하기 어렵다. 다변화된 욕구를 수용하기 어려운 객관적 한계이다. 

이걸 조정하고 매개하고 커뮤니케이션 해주는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정엔 현장의 필요를 이야기해야 하고, 현장에는 제도의 한계를 이야기해야 한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건 현장과 나의 신뢰 관계다. 신뢰가 없으면 내가 힘을 받을 수가 없다. 서로 소통하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행정의 입장에서는 성과를 잘 내주면 좋고. 이번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초기에 행정은 ‘왜 다양하게 만나지않는가?’라는 불만을 얘기했다. 중요한 것은 많은 만남이 아니라, 깊은 만남이다. 공공성 높은 주체와 믿고 의지하는 관계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장에서는 늘 ‘반신반의’였다. 행정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의 연장선 이었다. 시간이 해결해주었다. 나는 그 시간동안 열심히 만났고, 듣고, 받아 적고, 일을 만들었다. 이런 복잡성은 현장에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봉제인들은 50, 60대 남성들이 대다수고, 디자이너들은 20, 30대 여성들이 많다. 평소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운 존재들이다. 갈등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중간에 무언가,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완충 장치가 필요하다.

 

사진출처 - 국토교통부 블로그

 

Q 행정과 주민들 양쪽에서 서운 하다는 소리를 들을 것 같다. 좋은 코디네이터가 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가?
A 내가 가타부타 이야기 하는 게 적절하지 않을 수 있고, 내 경험을 보편화시키기도 어렵지만 견해를 말해보자면, 코디네이터에게 필요한 역량은 인내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을 하며 개인적으로 내가 그간 다양한 분야에서 일해 본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또 한가지, 세상을 종합적으로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활동가들이 가지는 편향 중 하나가 나의 가치관으로 세상을 보는 것인데 그건 현장에서 통하지 않는다. 

현장은 현장이다. 오히려 나의 고정된 가치관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걸 수용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힘들고 상처도 많이 받는다. 물론. 시간이 해결해주기도 한다. 싸우다가 또 만나고 하는 것이 다 똑같은 인간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ᅠ오늘의 상처는 내일의 기쁨으로 치환되기도 한다. 내가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기만 한다면. 

그리고 팀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우리 조직은 코디네이터가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물론, 갈등도 있고 티격태격도 하지만, 훌륭한 리더와 함께 팀이 성장하고 있고, 리더의 현장 경험이 많아 고민 있을 때 상담도 하고 도움이 많이 된다. 우리 센터가 그래서 성과를 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현장과 싸우고 오면, 다른 팀원이 대신 가서 이야기도 해준다. 또 활동하다보면 여성들이 일을 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고 특화되어 할 수 있는 부분도 있는데 이 역시 팀워크로 보완하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

 

Q 자산화와 지역재생에 있어 현장에 필요한 지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행정이 지원하는 사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단년도 회계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사업의 속도와 무관하게 1년 안에 다 쓰고 평가 받는 단년 예산제의 한계를 극복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현장의 속도와 행정의 속도는 분명 다르다. 워낙 짧은 기간 동안 사업을 수행해야 하니까 그 속도에 맞춰 사업의 과정과 결과가 다 똑같아지는데, 다년 예산제를 하면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다. 다양한 선택지가 필요하다. 

또 행정 자산을 민간으로 권한 이양 하는데 있어 우리나라는 법과 제도 정비가 안 되어있다. ‘행정 자산의 민간으로의 권한이양’이 위탁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적극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재생 사업에서 중요한 건 의미 있는 과정을 설계하는 것인데, 장기적으로 지금의 이런 방식이 도시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하는 근본적인 고민이 든다. 정권이 바뀐다고 한 때 유행처럼 지나가버리면 안되니까 말이다. 시간이 흐르면 주체는 성장해 간다. 긴 시간을 거치며 일부 솎아지기도 하고 보석 같은 곳도 나올 것이다. 공통의 이슈를 자연스럽게 발견하고 힘을 합쳐서 해결하고. 그렇게 단단하고 튼튼한 조직이 될 수 있도록 서로에게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Q 지역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진지하고 성실한 고민의 결과를 듣게 되어 기쁘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자산화를 시작할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A 재생사업에 있어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는데 사실 대부분은 불가능한 이야기다. 공동체토지신탁(CLT) 같은 개념들, 중요하지만 지금 당장은 너무 먼 이야기다. 하지만 분명히 시도는 해야 한다. 시도하면서 부딪히는 구체적 한계들이 쌓일 때, 이상과 현실이 가까워진다. 많은 사람들이 현장으로 가서 더 시도하고 현실화시키고 이런 작업들이 필요하다. 이런 애씀 한 땀, 한 땀이 중요하다. 때로 입장, 담론, 평론들이 넘쳐나는데 이런 건 잠시 거둬두고 현장에 집중하면 좋겠다. 한순간에 해결되는 일이 아니기에 함께 힘을 내면 좋겠다. 동네에서 나는 매일 세상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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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나눔과미래 | 정리 송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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