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죽여도 처벌받지 않는 기업, 이래도 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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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죽여도 처벌받지 않는 기업, 이래도 되는 건가요?
[라이프인ㆍ생명안전 시민넷 공동기획_안전칼럼]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
  • 2019.02.20 11:09
  • by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

 

누군가가 자신이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죽게 될 걸 알면서도 ‘에이, 죽으면 어때?’라는 생각을 가지고 어떤 이를 죽게 했다면 그는 어떻게 될까? 살인죄로 유죄를 받고 징역을 살 것이다. 그러나 이런 행위를 해도 처벌받지 않는 이들이 있다. 바로 기업이다.

기업은 이런 범죄 행위를 저질러도 그 ‘고의’를 입증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법망을 피해 간다. 처벌받더라도 기업의 말단 직원 몇 명만 가볍게 처벌받을 뿐 진짜 책임이 있는 기업의 최고경영자나 고위급 임원은 처벌받지 않는다. 이와 같은 일반 상식과 현실의 괴리를 극명하게 드러내고자 한 것이 사회운동으로서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 운동’이다.
 

 

초기에는 한국의 노동자 사망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이 컸다. 매년 2000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일하다가 죽거나 일과 관련되어 죽는데도 아무런 사회적 움직임이 없는 나라, 매년 OECD 국가 중 산재사고사망률 1,2위를 다투는 불명예를 가지고도 실효적인 대책은 내놓지 않는 나라에서 ‘이런 살인 행위에 대해 정부와 기업이 책임지라!’고 외치고 싶었다. ‘살인’이라는 표현까지 쓰는 것은 너무 자극적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우리는 우리 사회가 노동자 사망 문제에 대해 한 번이라도 더 심각하게 생각해 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반올림’의 삼성전자 백혈병 산재 인정 투쟁, 2012년 20대 청년의 용광로 추락 사망 사고,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들의 잇단 사망 사고 등 잇따른 산재 사망 사고를 겪으며, 노동자 생명과 건강에 대한 책임은 기업에게 있으며, 이 의무를 다하지 않은 기업은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인식이 꾸준히 확산되었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이 운동은 그 폭과 깊이 면에서 근본적 변화를 맞이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우리 사회의 안전 문제, 특히 공공 안전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했다. 그에 따라 자연스레 노동자 안전 문제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였고, 이와 관련된 사회적 논의도 상대적으로 활발해졌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욱 큰 변화는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운동의 문제의식과 근본 지향이 더 넓고 깊어졌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 운동의 시작은 노동자 산재 사망의 심각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랬던 것이 이제는 ‘기업이란 무엇인가? 기업의 의무와 책임은 어떻게 규정되며, 탐욕스러운 기업의 이윤 추구 행위를 어떤 방식으로 규제하는 것이 정의로운가? 기업의 범죄 행위는 어떻게 정의되고 어떻게 처벌할 수 있는가?’ 등의 근본적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게 된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우선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던졌지만, 이와 더불어 ‘기업이란 무엇인가’라는 연관된 질문도 우리에게 던졌다. 세월호 참사는 ‘국가’라는 ‘근대적’ 과제와 ‘기업’이라는 ‘신자유주의적’ 과제에 대한 인식론적 전환과 더불어 실천적 대응을 지금, 현재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더 깊고 더 현실적으로 만들 필요성이 있음을 확증시켜 준 사건이었다. 기업이 이윤 추구 행위 과정에서 노동자 뿐 아니라 기업의 생산물로 불특정 다수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할 수 있음이 드러났다. 하지만 ‘고의’에 가까운 사실 은폐가 기업 내부에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기업을 강력히 처벌할 수 있는 그 어떤 제도적 틀도 없는 한국의 현실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규모가 큰 대기업일수록 생산 과정에서 혹은 생산물로 인한 노동자, 시민 생명 위협 행위에 대해 기업의 책임을 묻기가 더 어렵다. 대기업일수록 의사 결정 구조가 복잡하고 다층화되어 있어 해당 행위에 대한 책임을 ‘한 개인’에게 묻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행법은 중소기업에게는 책임을 묻기 쉽지만 대기업에게는 책임을 묻기 어렵고, 기업 규모가 클수록 책임자가 처벌받을 가능성은 낮은 모순을 낳고 있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경영책임자 등 고위 임원이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사람의 생명·신체의 안전 또는 보건 상의 위험 방지 의무를 소홀히 하도록 지시한 경우나, 기업 내부에 사람의 생명·신체의 안전 또는 보건 상의 위험 방지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을 조장·용인·방치하는 조직문화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해당 기업을 망하게 할 수 있을 만큼 중하게 처벌할 수 있는 법이 필요하다. 더불어 그러한 기업의 경영 책임자나 고위 임원에게는 ‘살인죄’에 버금가는 징벌을 내릴 수 있는 법이 필요하다. 그러한 법이 바로 현재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이다.

 

 

고 김용균 씨 사망 사고 이후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국회는 이 법에 대한 논의를 당장 시작해야 한다. 기업도 개인처럼 죄를 저지르면 처벌받는 사회, 기업의 범죄는 기업의 경영책임자나 고위 임원이 처벌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기업 범죄로 죽어간 많은 이들과 유가족의 한이 풀린다. 기업 앞에서는 공평하지 않은 우리 사회를 바로 세워 사회 정의를 정립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렇게 되어야 이윤에 눈이 멀어 노동자, 시민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기업의 행태를 바로잡을 수 있다.

 

외국의 산업재해 대응은?
그렇다면 외국은 산재사망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외국의 산업재해법은 보호·처벌대상 확대, 처벌 강화라는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산재사고에 대해 강한 대응을 하고 있는 국가는 영국을 들 수가 있다. 영국에서는 21세기가 되어 산재사고가 기업에 의한 살인으로 기업 처벌 강화를 위한 새로운 형사정책 도입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래서 산재사망사고를 과실치사가 아니라 살인죄를 적용해 사업주와 경영자에게 책임을 물어 사업주 의식을 강화해야 한다는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의 법 제정운동이 전개되었다.

2007년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 살인법’이 제정되어 2008년부터 시행되었다. 이 법은 노동자의 포괄적 안전을 책임져야 할 자를 기업으로 보고, 기업이 행한 행위, 위법으로 인해 발생한 사고가 사람을 사상하게 하였을 때, 책임을 기업 경영자에게 부과하는 법안이다.

사람을 고용하는 모든 기관과 단체는 적용대상이며 주체는 조직과 최고경영층까지 포괄한다. 산재사망이 일어났을 경우 기업 1년 총매출의 2.5~10%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는데 원인이 악성적인 경우 10%이상을 부과할 수 있으며 기업의 범죄사실을 지역과 언론에 광고하도록 하고 있다.

캐나다 역시 2003년, 기업 대표자가 행한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을 기업에 물릴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만들어졌다. 이를 통해 캐나다에서는 기업 경영자, 관리자 부주의로 인한 사고에 대해 기업 형사처벌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미국의 경우 감독관이 특별한 이유 없이 사전예고를 할 수 없고 반복적 위반과 시정미비시 가중처벌이 가능하다는 점이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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