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논란이 되고 있는 제주도 영리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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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논란이 되고 있는 제주도 영리병원
[라이프인ㆍ생명안전 시민넷 공동기획_안전칼럼] 임석영 (행동하는의사회 전 대표)
  • 2019.02.15 14:40
  • by 임석영 (행동하는의사회 전 대표)

 

제주도 영리병원은 이제 끝난 문제라고 여겨졌다. 작년 10월, 제주도의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는 설문조사 결과 등을 토대로 제주도 영리병원(녹지국제병원)의 개원 불허를 권고하였고, 원희룡 제주도지사 역시 이를 최대한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년 12월 5일, 원희룡 도지사는 공론조사 결과를 뒤집고 ‘외국인 의료관광객만 진료한다’는 조건을 달고 조건부 허가를 한다고 밝히면서 제주도 영리병원 문제는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러한 제주도의 조건부 개원허가 결정은 절차 및 내용 모두에서 여러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공론조사 결과를 뒤집은 결정이라는 점이 가장 먼저 지적된다. 그 외에도 국내 의료법상 외국인만 가려서 진료하는 병원이라는 조건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으며, 녹지국제병원의 실투자자인 중국의 녹지그룹이 의료사업 경험이 전무한 곳으로서 허가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는 내용적 문제점도 있다. 또한 허가 필요서류 중 병원사업계획서가 개요만 공개된 상태에서 부실하게 허가절차가 진행되었으며, 현재 녹지국제병원 건물과 일부 대지가 건설회사로부터 가압류된 상태로서 병원이 제대로 운영되기 어려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개원이 허가되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부실 허가 논란마저 일고 있다.

영리병원 도입 초기만 하더라도 환자에게 보다 나은 의료서비스가 제공될 것이라는 주장과 명분을 내세웠었다. 하지만 지난 10년이 넘는 사회적 논란 속에서 비영리병원이 영리병원보다 치료성적도 우수하며, 제공되는 의료서비스의 질도 낫다는 점이 인정되면서 영리병원 찬성론자들조차도 이제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다. 제주도가 조건부 개원 허가를 한 유일한 명분은 제주도민의 건강향상이 아닌 ‘지역경제 및 국가경제 활성화’였다.

 

촛불혁명 이후 영리병원 관련 법제도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제주도 영리병원이 다시 수면에 떠오르는 걸 보면서 필자는 다시 정신을 차려야 했다. 그렇다! 촛불혁명과 이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제 박근혜 적폐는 자연스럽게 해소되어갈 것이라 착각했었다. 경제자유구역 내의 외국인 의료기관 영리법인 도입(제23조)이 포함된 경제자유구역특별법안이 제출되었던 노무현 정부의 2004년, 의료영리화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던, 이명박 정부가 시작된 2008년 그리고 내내 참 힘들게 싸워야 했던 박근혜 정부가 시작된 2013년과 지금 2019년 한국은 다르다고 착각했었다.

아니었다. 의료법에는 영리병원이 허가되지 않았지만, 경제자유구역 내에 외국인 또는 외국인 영리법인이 영리병원을 개설할 수 있는 예외독소조항(제23조)이 경제자유구역특별법에 그대로 남아있다. 이번 제주도 영리병원 논란을 다시 일어난 것도 제주특별자치도특별법에 외국인이 설립한 법인이 영리의료기관을 도지사 허가 하에 개설할 수 있다는 예외독소조항(제307조)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제주특별자치도와 총 6개의 경제자유구역(인천, 부산·진해, 광양만권, 대구·경북, 황해(평택·당진항 인근), 새만금·군산) 등 총 7개 지역에서 언제든 영리병원이 들어설 수 있는 법률적 환경이 갖추어져 있었다. 이처럼 강원권을 제외하고 사실상 우리나라 전국이 영리병원의 진료권에 포함되는 셈이다. 이러한 법률적 환경은 박근혜 정부 때나 지금 문재인 정부 때나 바뀐 것은 없었다. 이걸 바꾸지 않는다면 제주도 영리병원과 같은 논란은 또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

‘성장 대 안전’이라는 낡은 이분법이 아닌 어떤 성장을 만들어갈지를 논의해야 
이번 제주도 영리병원을 조건부 개설허가를 하면서 내세운 명분도 결국 “지역경제 활성화”, “국가경제 활성화”였다. 1인당 GDP가 3만 불이 넘어선 OECD 국가에서 언제까지 오직 성장담론에 안전과 생명이 후순위로 뒤처져야 하는지 답답할 따름이다.

나라 경제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것이 어디 하루 이틀의 일이었던가. 더불어 나라 경제가 어려움에 처한 것은 전 세계 경제 불황과 미국, 중국 등 대외 경제적 영향,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나타난 상황임을 이제는 누구나 알지 않는가. 영리병원이 몇 개 들어선다고 해서 고용이 획기적으로 늘고, 나라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건 초등학생도 못 믿을 이야기이다.

의료분야만 좁혀서 생각해보더라도, 의료산업의 활성화와 고용증대를 위해 꼭 영리병원이어야 할 이유가 없다. 우리나라는 누구나 비영리법인인 의료법인을 설립함으로써 병원 개설을 할 수 있다. 이미 삼성, 현대 등의 재벌 등이 이러한 절차로 의료계에 참여하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더군다나 전국적으로 무의촌이 문제 되는 시기라면 모를까, 병상 공급이, 그것도 중소규모병원 중심의 과잉 병상 공급이 문제 되고 있는 2019년 한국 현실에서 말이다.

안전한 우리의 삶과 경제성장은 서로가 서로를 배제하는 담론이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분법이야말로 자본이 만들어낸 이분법이다. 오히려 어떤 경제성장/순환구조인지, 일부 자산가와 자본이 유리한 경제성장/순환구조인가 아니면 다수 시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경제성장/순환구조인가를 따져보아야 한다. 

 

이번 제주도 영리병원 논란을 통해 역설적으로 배우다.
지난 10여 년을 뒤돌아보면 영리병원 도입이 시민들의 건강을 보장할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이라는 주장은 시민들을 설득할 수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이러한 결과는 너무나 당연했다. 전세계 어디서도, 심지어 가장 시장친화적 의료체계를 가진 미국에서조차도 영리병원이 비영리병원, 공공병원보다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례를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에서 병원은 상인이나 자산가가 돈을 벌기 위해 만든 곳이 아니었다. 나라에서 또는 종교기관에서 또는 뜻있는 자산가들이 시민들의 복리증진을 위해서 만들기 시작한 것이 병원이었다. 영리병원이 보여줄 수 있었던 미래는 지불 능력이 있는 자산가들만 비싸지만 고급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그에 따른 부작용은 모두 서민이 감내해야 하는 것이었다.  

경제활성화라는 낡은 담론으로 전국민건강보험의 틀을 깨는 영리병원을 도입해선 안된다. 그리고 영리병원이 언제든지 허가될 수 있는 법률제도는 바뀌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촛불혁명은 완성되는 것 아니겠는가. 노무현 정부의 의료산업화정책에 대해 반성하였던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가 제주도 영리병원 문제에 침묵하고, 법률제도 개선에 나서지 않는다면 그것은 촛불혁명에 참여한 시민들을 배신하는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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