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죽음의 피해자들이 변화시킨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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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죽음의 피해자들이 변화시킨 사회
[라이프인ㆍ생명안전 시민넷 공동기획_안전칼럼]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 2019.02.08 10:16
  • by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2019년 2월9일, 고 김용균님이 사망한 지 62일 만에 장례가 치러진다. 지난 5일 정부와 여당은 시민대책위원회와 함께 석탄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고 김용균님 사망에 대한 근본원인을 조사해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2인1조 작업을 위한 인력배치 등 현장 안전조치를 이행하겠다고 했다. 김용균님이 일했던 발전소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에 대해서는 통합 공공기관을 설립해 정규직으로 채용할 예정이다. 다만 경상정비 분야와 관련해서는 ‘위험의 위주화 방지’라는 원칙 아래 업무영역을 분석해 정규직화 여부 등을 논의하는 노·사·전문가 통합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

발전소의 모든 업무는 연결돼 있는데도 무리하게 분할해 하청에게 떠넘겨 왔던 민영화·외주화가 결국 노동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그런데 이번 당정발표에서는 분할 민영화에 대한 성찰이 보이지 않는다. ‘위험의 외주화 방지’라는 원칙을 천명함으로써 효율성이나 경쟁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점이 확인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지만, 여전히 경상정비 분야 분할 경쟁체제는 해소되지 않았다. 정규직화의 경우에도 공공기관을 만들어 정규직 채용을 함으로써 자회사라는 고용분할 형태를 그대로 유지했다. 그래서 시민대책위가 “적폐세력의 공고한 카르텔을 뛰어넘지 못했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산재, 재난, 참사 유가족 및 피해자 공동 2차 기자회견 (2019.01.17 청와대 앞)


이런 한계가 있다 하더라도, 김용균님의 죽음과 그에 대한 노동·시민·사회의 대응은 우리 사회 변화를 위한 중요한 걸음을 내디뎠다고 할 수 있다. 노동자에게 권리가 있어야 안전하며, 노동자 생명과 안전을 지키려면 원청이 책임주체가 돼야 하고, 이윤보다 생명이 우리 사회 핵심 가치라는 점을 사회적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 한 걸음은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방지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이야기하며 10년이 넘게 싸워 온 고 황유미님의 아버지 황상기님 등 노동재해로 인한 사망자 유가족과 피해자들, 그리고 사회적 재난과 참사에 대해 진실을 규명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싸워 왔던 세월호 참사 유가족 등 무수히 많은 이들의 투쟁에 기반을 두고 있다. 김용균님 이전부터 싸워 왔던 분들의 의지와 눈물, 시민사회 연대가 있었기 때문에 이 싸움도 가능했다.

특히 김용균님의 동료와 유가족은 단지 피해자로만 존재하지 않았다. 김용균님의 유가족은 동료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 정규직이 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사람 생명을 지킬 수 있게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도록 힘을 다했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국을 다니며 연대를 호소했고, 앞장서서 싸웠다. 김용균님의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현장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시설에 대한 개선안을 내고, 스스로 장비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은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김용균님 사망 이후 동료들은 적극적으로 현장 문제를 치열하게 증언했다. 청와대 앞에서 노숙농성을 했다. 김용균님의 동료들은 증언자이자 투쟁 주체였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변화를 의미한다. 기업들은 노동자들이 사망하면 그것을 개인 책임으로 돌린다. 고통에 빠져 있는 유가족이나 동료들은 그에 대해 제대로 판단하고 생각할 여력을 갖지 못한 채 오히려 죄책감을 갖게 된다. 한 해 2천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노동재해로 숨지는 사회가 정상적일 리 없으나 분산되고 고립된 피해자와 동료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번 김용균님의 죽음을 계기로 노동재해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모였다.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을 촉구했고, 김용균님 유가족의 요구를 수용하라고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도 했다. 그리고 산재 피해자·유가족 모임으로 나아갔다. 이렇게 피해자와 유가족은 수동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새롭게 생명과 안전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길을 개척했다.

우리 사회는 자신의 고통을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으로 승화시킨 이들 덕분에 조금씩 개선돼 왔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피해자 목소리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는 법을 모른다. 정부기관 등 권력기관은 피해자를 대상화했고, 어떤 이들은 피해자들을 비웃고 혐오의 말을 덧붙였다.

피해당사자와 유가족들이 노력할 때 원인이 규명되고 정책과 제도가 바뀌면서 더 많은 이들을 살렸다. 김용균님의 죽음 이후 동료들과 유가족들이 용기를 냈던 것처럼, 그 용기를 응원하며 노동재해·사회적 참사 피해자들이 모이기 시작한 것처럼, 이제 더 많은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나설 수 있도록 피해자 알권리·진실규명에 참여할 권리가 '권리'로 보장돼야 한다. 우리 사회는 피해자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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