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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제주 이야기] 삼촌, 안녕하세요?

고등학교 때, 얄팍한 심산으로 한국 근/현대소설을 축약본으로 읽었던 적이 있다. 그 중에 제주 4.3사건을 다룬 현기영 작가의 <순이 삼촌>이 있었는데, 이 소설은 읽고 나서도 어째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중편소설을 너무 줄인 나머지 문맥이 정확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게다가 주인공인 순이 삼촌을 여자 이름을 가진 남자로 짐작하고 읽었다가 전개되는 이야기에 “설마, 여자였어?” 하며 헷갈려 하다 소설 전체가 모호한 인상으로 남았던 것이다.

 

육지에서는 아버지, 어머니의 남자 형제를 삼촌이라 부른다. 결혼한 삼촌들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로 대체하여 부르는 경향도 있으니, 삼촌은 부모의 남자 형제 중 비혼이거나 비교적 젊은 남자에게 부여되는 호칭이기도 하다. 그러나, 제주에서는 부모 세대의 어른을 모두 “삼촌”이라 통칭한다. 삼촌이란 단어에 버젓이 촌수가 들어가 있는 걸 보면 최초에는 삼촌, 오촌 등 친족원에만 해당하는 호칭이었지 싶다. 그러다, 어떤 연유로 삼촌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과 관계가 점점 더 늘어났고 특정 호칭을 떠나 어른을 부르는 대명사가 되었다. 즉, 제주의 삼촌은, 남녀에 상관없이, 실제 친척 여부에 상관 없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을 칭한다. “어르신”이란 단어와 비슷하지만  호명의 대상층이 넓고 보다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된다.

 

몇 년 안되는 나이 차이를 두고 삼촌이라 부르는 것은 과하다. 적어도 15년 이상의 터울에서 할망(할머니), 하르방(할아버지), 아지망(아줌마), 아주방(아저씨)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삼촌”이라 부르면 어느 정도 자연스럽다. 또한, 동네, 식당, 시장에서 만나는 어른들에 대해서도 삼촌이라 부르는 빈도가 높다. 육지 식당에서도 연배가 높은 종업원을 부를 때 “이모/이모님”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제주의 식당에서는 “삼촌”이라 부른다. 누군가 “이모”라고 부르면 바로 육지사람 인증이다.

 

오일장에서 만난 시장 삼촌들. “삼촌, 고등어 호나 줍써.”

 

이주민인 나는 사실 “삼촌”이라 부르는 것이 아직 쑥스럽다. 입에 익어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생각하고 의도해야 나올 수 있는 말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또한, 도민 이력도 짧으면서 괜스레 원주민인 척 하는 모양새가 될까 봐 조심스럽기도 하다. 10번 부를 일이 있으면 3번 정도만 삼촌이라고 한다. 하지만 점점 더 “삼촌”이란 호칭에 대해 무난한 쓸모를 발견하고 있는 중이다.

 

호칭으로 쓰일만한 정보가 전혀 없는 누군가를 부를 때 우리는 조금 세심할 필요가 있다. 동네, 식당, 시장에서 가장 보편적인 호칭어는 아줌마와 아저씨일 것이다. 여러 맥락에서 사용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위로 나이 차이가 좀 있거나 결혼한 사람들을 예사로이 부르는 말이다. 상황과 어투에 따라서는 무시를 담은 호칭이 되기도 한다. 그다지 나이 차이가 없는데 사용되면 상대의 기분이 상할 수 있다. 아줌마, 아저씨라는 호칭에 익숙하지 않거나 부정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으니 굳이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그러하다. 실제 나이 차가 2대 정도는 아닌데 굳이 자신을 손주뻘로 가정하고 부르는 것이 때로는 실례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의 “삼촌”이라는 호칭이 무난하고 쓸모가 있다고 느껴진다. 우선 전제하는 상대 나이가 비교적 모호하다. 나이 차이가 꽤 나더라도, 애매한 차이라도 무난하게 쓸 수 있다. 중장년 여성과 남성에 대해, (비혼이거나 아이가 없을 수도 있는데) 어머니/아버지로 부르거나, (호불호가 있을 수 있는) 아줌마/아저씨로 부르거나, (2대 정도의 나이차이가 확연하지 않는데) 할머니/할아버지로 퉁쳐서 부르는 것보다 나아 보인다. 삼촌은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감이면서도 느낌은 친근하다. 시장 삼촌들, 해녀 삼촌들, 이웃 삼촌들, 식당 삼촌들. 누군가를 제대로 부르는 일은 어렵다. 그러나 결례를 덜 할 수는 있다. 제주에서는 삼촌이 그러한 듯 하다.

 

 

성산에서 만난 해녀 삼촌들. “삼촌, 무싱거 하영 잡아수꽈?”

 

 

최윤정
제주에서 1년간 집중적으로 올레길과 오름으로 소일을 했다. 많이 걷고 많이 오르면 몸과 마음의 군살과 기름기가 쏙 빠져 가뿐하고 담백한 삶을 영위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럴 줄 알았다. 지금은 아예 제주로 입도하여 일하며 놀며 제멋대로 산지 3년 차에 접어 들고 있다.

 

 

최윤정  webmaster@lifei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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