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양간은 어떻게 고쳐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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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양간은 어떻게 고쳐졌나
[라이프인ㆍ생명안전 시민넷 공동기획_안전칼럼] 김재광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 2019.01.25 18:05
  • by 김재광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지난 12월 정부안을 비롯한 여러 의원들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있음에도 여전히 심의조차하고 있지 않은 국회를 질타하는 글을 쓴 바가 있다. 노동현장에서 죽고, 병들고, 다치는 것을 예방해야 할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단 한 번 쳐다보지도 않고, 고치려 하지 않는 국회의 행태가 ‘소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 것’과 같이 무책임하다고 성토했던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12월 성토의 글을 쓰고 있었던 그 시간, 서부발전 태안 화력발전소의 하청 노동자 김용균이 비참한 죽음에 이르렀고, 이 죽음은 국회의 나태함과 어리석음을 폭로하고, 마침내 지난 연말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는 중요한 힘이 되었다. 해서 세간에서는 이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을 ‘김용균 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개정법의 별칭이 부끄러운 우리 사회의 정치와 일터를 상징하는 것인지라 매우 아프다.

그렇다면 아픈 마음만큼 개정 산업안전보건은 정말 잘 고쳐진 건지, 고쳤다면 어떻게 고친 건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은 매우 훌륭하지는 않고, 여전히 미진하다. 그리고 법 시행시기도 대부분 빨라야 1년 뒤에 시행된다.

 



그러나 이전 보다 나은 것은 분명하다. 혹자는 개정법이 또 다른 김용균을 보호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일리가 있는 비판이다. 그러나 적어도 김용균의 이름으로 개정 산업안전개정법의 국회 통과를 촉구했다면, 가혹한 비난으로 사회성원의 냉소(투쟁해도 소용없다거나, 절박하게 요구하더니 막상 통과되니 아무 소용없다며 말을 바꾼다는)를 키우기보다는, 개정법의 긍정성을 현실에서 확대하고, 미진한 부분을 보완하는 투쟁을 준비하고 조직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한다.

따라서 이 글은 개정법의 한계보다는 개정법의 주요사항 중 긍정성을 확대하고자 하는 시각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개정법은 법이 보호하는 대상을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하였다. 정부안은 ‘일하는 사람’이라고 제출되었으나, 국회 관련 위원회를 거치면서 변경되었다. 그 정의의 모호성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겠으나, 노동자와 사용자의 전통적인 근로계약을 중심으로 정의하는  근로기준법의 ‘근로자’ 개념보다 확장하여 보호하고자 하는 법 취지는 긍정적인 것임에 분명하다. 이를 근거로 제한적이기는 하나 특수 형태 고용노동자, 앱 기반 배달노동자의 보호 및 프랜차이즈 종사자에 대한 가맹본부의 안전 및 보건 규율 근거를 마련할 수 있었다.

둘째, 개정법은 정부의 책무에 있어 개정 근로기준법에 의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를 위한 조치기준 마련, 지도・지원’을 신설되었다. 산업안전보건 차원에서의 정부 책임을 규정한 것으로 노동조건의 최소 기준인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 예방 기준인 산업안전보건법이 2중으로 정부 책임과 지도 및 지원을 규정한 것으로, 정부의 적극적 조치를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셋째, 개정법은 하청을 줄 때 고용노동부의 인가를 받아야 하는 작업에서 베릴륨, 비소 및 화합물, 디클로로벤지딘, 염화비닐 등 12종 화학물질을 제조, 사용하는 작업을 추가하였다. 원천적인 도급금지가 아니다 라거나, 범위가 협소하다던가, 인가를 받으면 얼마든지 하청을 줄 수 있다는 비판을 있을 수 있겠으나, 인가를 받아야만 비로써 하청을 줄  수 있는 위험물질 작업이 추가된 것 자체는 진전이라 할 것이다.

넷째, 개정법은 원청의 ‘공간적 책임’(장소에 있어서의 책임 기준) 확대가 이루어졌다.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에 직접적 관련이 있는 부분이다. 기존법은 ‘도급인(원청)・수급인(하청) 근로자가 같이 작업을 하는 장소 중 화재・폭발・붕괴 등의 위험이 있는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22개 위험장소‘에서만 원청의 안전보건의 책임을 물었으나, 개정법은 도급인(원청)의 책임 범위를 ’도급인의 사업장, 도급인이 제공하거나 지정한 장소로서 도급인이 지배/관리 가능한 장소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장소‘로 확대하였다. 향후 대통령령이 어떻게 입법될지 주의 깊게 봐야 하겠으나, 원청이 책임지는 작업 공간을 확대했다는 점에서 향후 노동진영의 적극적 개입과 투쟁의 근거가 될 것이다.

다섯째, 개정법은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의 정보를 고용노동부에 제출하도록 하였다. 이는 사용 물질 정보에 대한 공적 취합 및 관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전법 보다 진일보한 것이다. 다만, 그동안 시민사회와 노동계가 요구한 정보공개에 있어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은 미진한 부분이라 할 것이다. 공적인 차원에서 어떠한 물질이 어떻게 쓰이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한 현실보다는 나아진 것인 바, 그 실효성을 위한 고용노동부의 의지와 실행을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것이다.

여섯째, 개정법은 건설업에 있어서의 발주자에 대한 책임 범위를 확대하였다. 건설공사에서 시공사(건설을 자기 이름으로 하고, 부문별로 다시 도급을 주는 사업주)의 안전보건에 관련하여 그 위치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발주자(자기 공사를 시공사에 전적으로 맡기는 사업주)의 위치는 그 이상이다. 발주자의 안전보건 의지가 곧 해당 공사의 재해를 줄이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은 건설 현장의 상식이다. 물론 일부 공사에서 오히려 발주자의 책임이 완화되었다는 반론과 논란이  있겠으나, 대다수 공사에서 아예 발주자의 책임을 부여하지 않았던 이전법보다는 한발 나아간 것은 틀림없다.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노동계의 몫이기도 하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개정법은 한계가 있으며, 더욱더 현실 요구에 화답하며 발전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개정법 모두가 소용없다고 치부하는 것도 현실에 부응하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문제는 확대된 지형을 잘 활용하는 한편, 누군가가 만들어준 법을 개정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싸우다, 부딪친 법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주체적 싸움이 관건이라는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 아무리 좋은 법도 현실에서 활용되고, 개선되지 않으면 빛바랜 유물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노동 현장에서의 자기 요구가 단발적이지 않았으면 한다. 지속적이고 끈질긴 분투가 법 제도를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노동현장과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너무도 평범한 진리가 노동안전보건 영역에서도 적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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