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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금융 중개기관 육성, 그 밑그림을 그리다한국사회혁신금융 이상진 대표 인터뷰

깊이 고민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깊은 고민에 분투하는 발걸음이 더해지면 괜찮은 방안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의 말은 허투루 들을 수 없다. 큰 그림과 현장을 촘촘하게 엮어나가기 때문이다.

오는 1월 23일 사회적금융 생태계 조성에 중추적 역할을 할 사회가치연대기금이 출범한다. 지난해 2월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금융 활성화 방안'에서 지속가능한 사회적금융 생태계 조성을 통해 사회적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도매기금(사회가치연대기금)을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발표 직후 '사회가치연대기금추진단'이 꾸려졌고 지난 12월 말 재단법인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이 설립인가를 마쳤다.

재단법인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의 3대 핵심사업은 ▲사회적경제조직 인내자본(patient capital) 공급 ▲高 임팩트 사회적 목적 프로젝트 지원 ▲사회적금융 중개기관 육성·시장기반 구축이다. 도매기금이 현장 곳곳의 사회적경제조직으로 흘러가기 위해서는 중개기관이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도매기금도 처음이고 사회적금융 중개기관 육성도 처음이다.

중개기관 육성에 대한 계획이 아직 뚜렷하게 나오지 않은 지금, 중개기관의 모습과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중개기관 육성을 먼저 고민하면서 전국을 분주히 다니고 있는 한국사회혁신금융 이상진 대표를 만났다.


"도매기금은 동맥이고 중개기관은 모세혈관이다. 몸속 구석구석까지 산소가 공급되기 위해서는 온몸에 퍼져있는 모세혈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회적금융 생태계가 조성되고 자생력을 갖기 위해서는 도매기금이 중개기관들에게 혈액을 제대로 공급해야 한다. 지역에 기반을 둔 새로운 중개기관들이 설립되어 사회적경제 구석구석에 자금을 공급해야 한다. 기존의 중개기관은 동맥과 모세혈관을 연결하는 세동맥 역할을 하면서 연대와 경쟁 속에서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 대표는 우선 중개기관을 1차 중개기관과 2차 중개기관으로 나눴다. 1차 중개기관은 당사자 중심이고 2차 중개기관은 신협이나 신보 등 금융기관이 아닌 민간 사회적금융 중개기관을 말한다. 1차 중개기관과 2차 중개기관을 왜 나눴을까? 사회적금융 인프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역할을 배분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금융기관이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여러 기관의 도움을 받게 된다. 대상기업이 보유한 시설이나 자산에 대해 감정평가기관이 평가하고, 이를 반영한 재무제표 회계법인이 감사한다. 이렇게 생성된 신뢰할 만한 재무제표를 분석해서 리서치 기관이 어느 기업이 우수한지 자문을 한다. 필요에 따라 신용보증기관이 보증하여 신용을 보강한다. 이런 조력자들을 통해 금융기관은 신용위험을 줄이고 투·융자를 결정할 수 있게 된다. 

사회적금융도 마찬가지다.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에 신뢰를 보강해주는 다양한 장치들이 있어야 금융거래비용이 적게 든다.

"사회적금융은 인프라가 취약하다. 한 기관이 위험을 파악하기 위해 A부터 Z까지 다 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전문인력, 정보 취합 및 분석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높은 거래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민간 중개기관은 물론이거니와 신협, 신보 같은 금융기관도 이런 역할을 다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중개기관도 역량에 맞게 역할을 세분화해야 한다. 특히 지역 내에서 믿을 만한 사회적기업이 어디인지 찾아야 할 때는 지역을 잘 아는 신뢰할 만한 파트너가 필요하다. 1차 중개기관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역에 뿌리내리고 있는 당사자 조직이나 중간지원조직이 1차 중개기관을 설립한다. 1차 중개기관은 많은 자본, 전문인력을 요하는 금융 라이센스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들은 현장과 오랜 관계 속에서 기업가의 진정성, 역량, 평판 등 현장 정보력을 바탕으로 정성적인 평가를 하고 사업적 리스크를 분석한다. 어차피 영세한 기업들은 재무평가보다는 정성적인 평가, 대표자의 평가가 중요하다. 즉, 투·융자를 위해서 실질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이 핵심이다. "

"그리고 이들은 실제 펀드를 조상할 수 있는 2차 중개기관과 연대하여 이들의 자원을 활용하여 지역의 사회적금융을 활성화하는데 기여한다. 필요하면 그들이 조성한 펀드를 운용하는 과정에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 2차 중개기관 입장에서는 이들의 정보와 판단을 신뢰해야 펀드를 조성할 수 있고 운용과정에 연대가 가능하다. 참고로 2차 중개기관은 지역에 소재할 필요는 없다. 결론적으로 자금이 효과적으로 선순환될 수 있도록 각자 역할을 나누어 사회적 인프라를 만들어 가야 한다. 정보력, 분석력을 토대로 실질적으로 자금이 돌아갈 수 있게 만드는 1차 중개기관은 지역에 대한 이해, 네트워크가 없이는 불가능한 영역이다. "

1차 중개기관은 지역 내 우수 사회적기업 발굴, 추천, 평가정보 제공뿐 아니라 프로젝트 기획자 역할도 한다. 2차 중개기관이나 금융기관은 사회적경제조직에 직접 투·융자를 하기도 하지만 지역 사회적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한다.

"지역 펀드를 계속 조성할 필요가 있다. 지역 펀드를 조성할 때 그 지역에서 누군가 프로젝트를 구체적으로 기획해야 한다. 지역에 맞는 의제를 뽑아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지역 프로젝트를 다른 지역에서 기획하기는 어렵다. 계획이 구체적이지 않으면 펀드를 만들기 위한 투자자를 구할 수 없다. 현장에서 치열하게 생존해가는 사회적기업이나 큰 위험을 부담해야 하는 금융기관이 그 역할을 하기는 어렵다. 자기 필요가 강하고 지역을 이해하는 당사자 중심으로 이루어진 1차 중개기관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2차 중개기관과 협업하여 투·융자가 가능한 금융구조를 만들어가도 좋을 것 같다.  1차 중개기관이 현장까지 돈이 의미 있게 쓰일 수 있게 구체적으로 기획하고, 믿을만한 2차 중개기관과 금융기관이 붙고, 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컨설팅이나 육성을 지원한다면 돈은 충분히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협업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 대표는 1차 중개기관의 정보력, 분석력, 기획력이 돈을 움직이는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무조건 돈부터 모으기보다 지역에서 1차 중개기관이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경험을 쌓다 보면 지역에 맞는 자금을 직접 운용할 수 있는 시점이 올 것이라고 역설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금융 관련 직군이 새로 생기지 않을까? 이 대표도 그럴 필요가 있다고 동의했다. 그렇다면 1차 중개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역량이 필요할까?

"기본적인 건 소통역량이다. 재무적인 것은 2차 중개기관이 하면 되고, 기업을 분석하고 심사하는 기술은 배우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지역에서 관계를 쭉 맺어가면서 자산으로 볼 땐 별 가치가 없지만 기업가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 진정성, 지역 사회적경제조직에서 해온 역할, 어려움에 처했을 때 망하지 않게끔 도와줄 누군가가 있는지 등의 관계를 보면 장기적으로 이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다. 사회적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도 인적자원, 국유지나 시유지 등 지역의 다양한 자원과 네트워크를 세세히 파악하고 있으면 비용도 줄이면서 기획도 제대로 할 수 있다."

캐나다 퀘벡에는 지역 프로젝트를 전문적으로 기획하는 지역개발센터가 있다고 한다. 지역개발센터에서 프로젝트를 기획하면 사회적금융이 디자인해 펀드를 조성하고 운용한다. 하나의 프로젝트라도 분야별로 전문역할을 맡아 완성도를 높인다. 한국도 각 지역에서 프로젝트를 기획해서 도매기금인 사회가치연대기금에 제안하는 사례가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기관도 사회적가치 실현을 위해 지역에서 여러 아이템을 찾고 있다. 지역에서 먼저 프로젝트를 기획해 제안하면 얼마나 좋겠나.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역량이 필요하다. PMP(Project Management Professional) 같은 국제자격증이나 프로젝트 기획 방법론도 있지만, 진짜 기획력은 또 다르다. 프로젝트 기획은 현장에서 요구사항을 뽑아내고 자원을 파악해 어떻게 사업화할 것인지, 이해관계자들의 요구사항은 어떻게 충족시키며 사업화하고 수익모델을 만들어 낼 것인지 디자인하는 것이다. 한 분야에서 기획부터 실행까지 해봤다면 그게 전문가다."

지난해 사회적금융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사회적경제기업에 실질적으로 풀린 자금이 1000억원 정도이고 올해도 비슷한 규모로 풀릴 예정이다. 이번에 사회가치연대기금까지 출범하면 사회적금융의 객관적 상황은 더 좋아진다. 객관적 상황이 좋아진 만큼 자금이 현장 곳곳까지 스며들도록 사회적금융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해가 갈수록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괜찮은 기업을 선정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재무적으로 괜찮은 기업들은 지난해 혜택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올해는 더 밑으로 스며들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중개기관이 많이 육성될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하고, 그들에게 얼마만큼의 기회를 줄 것인가가 관건이다. 중개기관 육성도 공모같이 쉬운 방법으로 가기보다, 많이 뛰어다니면서 소통하고 1, 2차 중개기관이 협업해서 새로운 사례를 만들고, 거점신협과 더 가깝게 연결하고, 지역에서 계속 펀드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공정경 기자  jjkong9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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