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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지진 1년, 지금도 계속되는 삶의 여진[라이프인ㆍ생명안전 시민넷 공동기획_안전칼럼] 박효민 (건국대학교 이주 사회통합연구소 연구원)
  • 박효민 (건국대학교 이주 사회통합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18.12.26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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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지진 1년과 위험사회  
글에 들어가기 앞서 우리들의 기억력 테스트를 한 번 해보자. 2017년 11월 15일 오후 2시 30분쯤 내가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하는가? 티끌처럼 많은 날 중 1년 전 특정한 하루의 시간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꾸어 보자. 2017년 수능이 치러지기로 하기 전날 포항에서 지진이 일어난 시간에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하는가? 이렇게 물어본다면 많은 사람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의 주변 정황을 정확히 기억하는 것을 섬광기억(flashbulb memory)라고 하는데, 섬광기억이 구성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건이 자신에게 중요하고 충격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떻게 그 사건을 잊을 수 있겠는가?” 

실제로 지진을 직접 겪은 포항주민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포항주민의 94.0%가 포항지진이 일어났을 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응답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지진은 옆 나라 일본에서나 발생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온 한반도에서 2016년 경주에서 계측 사상 가장 큰 지진이 발생하였으며, 뒤이어 2017년 포항지진이 발생하여 사람들의 충격은 대단하였다. 특히 포항지진은 경주지진보다 그 규모는 약했지만, 진앙의 깊이가 얕고, 주거지와 근접한 곳에서 발생하여 사람이 느끼는 실제 진도는 경주지진을 능가하였다. 실제로 포항지진의 피해액은 550억으로 추산되어 경주지진 피해액 110억을 능가하였으며, 부상자와 이재민도 각각 92명과 1,797명으로 부상자 23명, 이재민 111명이었던 경주지진보다 큰 피해를 본 것으로 드러났다.

포항지진에 대한 대응방식은 이전의 재난 대응에 비해 나아진 면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경주지진에 대한 정부의 대처가 미흡했다는 여러 지적과는 달리 긴급재난문자 발송이라든지, 특별재난지역 선포, 대피소 마련 등이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또한 지진 발생 다음 날 수능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빠른 의사결정으로 수능이 한주 연기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포항지진 대응에서 주목할 만한 또 한가지 사항은 심리지원단의 파견이다. 지진발생 이후 정신과 전문의와 정신건강 전문요원 등이 피해지역에 파견되어 대피소에 심리지원 상담 부스를 설치하고 심리지원 서비스를 실시하여 정신적 측면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점은 많은 사람들의 머리에서 잊힌 포항지진은 발생한지 1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 지역 사람들에게 신체적, 경제적 피해와 더불어 심리적 피해를 계속 일으키는 현재 진행형인 재난이라는 것이다. 

지진의 트라우마
그동안 한국은 많은 자연재해, 인재 등을 겪어오면서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재난에 대한 대응과 구조 체계를 발전시켜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재난에 대한 대응과 복구 체계는 피해자의 신체상, 재산상 피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재난을 겪은 사람들의 심리적 충격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포항지진의 경우에도 1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정부 차원에서 피해자들의 심리적 충격에 대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아 그 심리적 충격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이 안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11월 14일 포항지진 1주기를 맞이하여 포항공대 융합문명연구원에서 포항지역 주민 5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의 결과에 의하면 지진의 심리적 충격은 대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포항지역 주민들의 80.8%가 포항지진으로부터 정신적 피해가 있었다고 응답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사대상자의 4.8%만이 심리상담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리지원을 받지 않은 사람들의 76.5%는 심리지원 서비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응답한 것을 보면 이들에게는 심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의 마음속으로 한 발짝 더 들어가 보면 상황은 이와 달랐다. 지역주민들이 포항지진으로부터 받은 충격을 보다 심층적으로 조사한 결과, 흔히 우리가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고 표현하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 전체의 41.8%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진이 발생한 북구, 그리고 재난에 보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여성들이 더 높은 가능성을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응답자의 12.4%가 우울증세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85.8%는 2017년 지진과 비슷한 혹은 그 이상의 지진이 다시 일어날까 봐 걱정을 하는 일상을 살고 있었고, 33.8%는 지진의 공포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할 의향도 있다고 응답하였다. 

사회적 충격 
이러한 재난은 개인적 수준을 넘어서 사회적 공동체에도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도 지진에 대한 대응과 조사 과정에서 정부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졌다. 조사 결과 포항지역 주민의 72.2%는 지진이 지열발전소에 의한 인재라고 믿고 있었으며, 중앙정부와 포항시의 대응 수준에 대해서도 상당한 불만을 나타냈다. 지열발전소와 지진의 연관관계에 대해서는 여전히 조사기 진행되고 있지만 객관적 조사 결과뿐만 아니라 조사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이전보다는 나아졌다고 하지만 지진에 대한 응급처치, 심리적 지원, 대비 훈련, 경제적 보상 측면에 대해서는 대응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지역사회에 대한 애착과 정체성 등에도 상처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지역 주민들의 73.8%는 지진으로 인해 포항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86.4%의 응답자들은 타 지역에서도 포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늘어났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지역의 소외감을 표출하는 의견도 있었는데, 이런 지진 피해가 수도권에서 일어났다면 과연 이렇게 나 몰라라 할 수 있었겠냐는 섭섭함을 토로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이와 같은 모습들은 포항지역 주민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이 개개인의 어려움을 넘어서 지역사회의 공동체를 잠식하고 있다.

 

포항지진의 피해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진 발생 1년이 넘게 지난 현재 흥해 체육관 대피소에는 아직 새로운 터전을 찾지 못한 30여 명의 주민들이 텐트에서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제자리를 찾지 못한 것은 이들의 육체만이 아니다. 이들의 마음 역시 여전히 새로운 터전을 찾지 못하고 있다. (사진출처: 한겨레)

 

재난 심리지원의 필요성 
전쟁이나 각종 테러의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는 미국이나, 반복적으로 지진을 겪는 일본의 경우 재난에 대한 심리지원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다. 미국의 경우 ‘국립 트라우마센터’를 통해 체계적인 재난 심리지원을 펼치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에도 ‘마음의 케어센터’를 통해 지진 발생지역에 급파되어 심리지원을 할 수 있는 지원단을 항시 준비하고 있다. 여러 인재와 자연재해를 겪어 온 우리는 왜 이런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여 온 것일까? 이런저런 제약 요건들이 존재하겠지만 결국 원인을 찾아 들어가 보면 종착점에서는 비용의 문제로 귀결된다. 보이는 상처와 재산상의 피해도 충분히 보상되지 않는 상황에서 보이지 않는 심리적 상처를 위해 쓸 돈이 충분하지 않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일 것이다. 극단적으로 표현해 “당장 다치고 집이 무너진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심리지원 안 한다고 죽는 거 아니잖아?”라는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포항지역 지진 피해 복구를 다루는 인터넷 기사에는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사회적 자원을 투여하는 것에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의견을 표출하여 피해자들의 마음에 한 번 더 상처를 주는 모습들도 자주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충분한 예산으로 재난을 겪은 사람들에게 심리적 지원까지 신경 쓰는 선진국의 시스템을 부러워하곤 한다. 하지만 미국이나 일본에서 재난 후 심리적 지원에 많은 비용을 투자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이 사회적 자원이 많아서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들 사회는 재난 후 심리적 외상이 적절하게 치유되지 않으면 그것이 이후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는 것을 우리보다 일찍 깨달은 것이다. 세상에 예산을 풍족하게 쓰는 국가가 몇이나 되겠는가? 정말 중요한 문제는 사회적 자원이 풍족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이 중요한가를 결정하는 선택의 문제이다. 우리는 쉽게 “역시 선진국”이라 재난 후 심리지원 체계가 잘 마련되어 있다고 부러워하지만, 오히려 반대로 재난 후 심리지원 체계까지 투자를 하기 때문에 선진국으로 불린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다행히 한국도 몇 번의 시도 끝에 2018년 4월 국가 트라우마센터가 개소하였고 2019년 예산에 지역 거점 국립 트라우마센터 건립 비용이 반영되어 2020년까지 4개 권역센터가 마련된다. 지난 11월 종로에서 발생한 고시원 화재 피해생존자들이 국가 트라우마센터로부터 심리지원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늦은 감이 있지만, 희망적이기도 한 움직임이다. 

재난은 무엇보다도 예방이 우선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현대와 같은 위험감수사회(risk society)에서 예방에 최선을 다한다 해도 모든 재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예방과 대비의 노력이 미치지 못한 재난에서 대응과 복구체계가 보다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특히 무엇보다도 심리적 재난지원 시스템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와 철저한 제도가 마련되어야 할 시점이다. 

박효민 (건국대학교 이주 사회통합연구소 연구원)  webmaster@lifei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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