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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제주 이야기] 제주에서 오름에 빠지다

제주에는 크고 작은 오름들이 있다. 무려 약 368개. (사실 오름의 개수는 분명치 않다. 어떤 기준으로 오름을 분류하느냐에 따라 개수가 늘어날 요량이 크고, 아직 공식 확인이 안된 무명의 오름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오름은 화산 활동 당시 중심부 한라산의 폭발 외 제주도 전역에서 발생한, 개개의 화구를 가지고 있는 소형 화산체이다. 한라산은 크고 높지만 오름은 한 눈에 들어오게 아담하다. 오름의 개수와 그 둥근 모양들을 떠올리자면 마치 제주도라는 동그란 땅에 올록볼록 엠보싱 처리를 한 것만 같다. 제주하면 한라산이고 한라산이 곧 제주라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내게는 한라산보다 더욱 본연의 제주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 오름이다.

 

오름은 우선 편안하다. 대단한 각오를 하거나 큰 맘 먹고 오르는 곳이 아니다. 한 두 시간이면 정상에 올라 분화구 둘레를 걷고 다시 내려올 수 있다. 가슴을 옥죄고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는 야속한 가파름이 없고, 정상까지 몇 번이나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 인내가 필요치 않다. 그래도 작은 산이니 숨이 차고 힘들 때도 있다. 그러나 중간중간 쉬어가며 천천히 오르면 금새 정상에 도착한다. 오름마다 난이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각오보다 쉬운 편이다. 그러나, 가끔 양손에 등산스틱까지 갖춘 비장한 ‘등반’객을 만날 때도 있다. 산은 산이니까 단단히 준비했지 싶지만 차림이 영 지나치다 싶어 웃음이 난다. 오름이 많은 동네인 송당리 사람들은 달빛이 밝은 밤에 용눈이오름을 즐긴다고 한다. 손전등 하나만 가지고 달빛에 의지해 걸어도 쉬이 오르내릴 수 있을 만큼 편안하고 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이 오름이다.

 

편안하고 무람없이 만나지만 오름이 보여주는 풍광은 상당하다. 비고 51m의 아부오름은 10분, 227m의 다랑쉬오름은 40분 정도면 오르지만 정상의 풍광은 그야말로 가슴이 탁 트인다. 오름 아래 조각보 같은 밭이며, 멀리 보이는 바다며, 이웃한 오름들이며, 주황이나 파란 지붕의 마을까지 시원스레 보여준다. 분화구를 따라 오름 정상을 한 바퀴 돌며 파노라마뷰를 가슴에 담는 것도 좋다. 작디 작은 들꽃들을 몸을 낮춰 만나는 것도 좋고, 가을에는 억새파도들에 휩싸이는 것도 좋다. 이 낮고 작은 오름이 주는 풍광은 황송할 만큼 크고 아름답다. 들인 노력에 비해 과한 걸 느닷없이 맞닥뜨리니 순간적으로 당황스럽기까지 한다. 황송하고 얼떨떨한 마음이 지나면 오름의 넓은 품, 크고 아름다운 걸 보여주면서 스스로는 겸손하기까지 한 그 미덕을 닮고 싶어 진다.

 

다랑쉬오름의 분화구, 헉헉거렸던 몸과 마음이 차분해진다.

 

368개의 오름에는 각각의 비기가 있다. 백 가지 약초가 있다는 백약이오름, 오름 전체가 억새군락인 아끈다랑쉬오름, 화구호를 지닌 물영아리오름, 도심 속 공원인 사라봉, 동쪽 땅끝의 전망대인 지미봉 등 각자의 특성과 장점들이 있다. 마치 제 각각의 사연을 지닌 것처럼 말이다. 오름은 한라산처럼 크고 높은 세계를 이루는 어마어마한 산이 결코 아니지만, 제주 사람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올망졸망한 삶의 터전이다. 작고 낮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개성과 사연을 가지고 자기만의 세계를 둥글게 만들어냈다. 오름은 무람없이 편안하고 상당한 감격을 주는 제주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인 것이다.

 

늦잠으로 오전이 있을 리 없는 주말, 모자 하나 쓰고 오름으로 달려간다. 오름은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가는 곳이 아니니까, 늦은 점심을 먹고 출발해도 충분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오름은 여태까지 틀린 적이 없었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 오름에 가서는 항상 배시시 웃으며 내려왔다. 오름을 오르내리며 덩달아 궂은 마음의 오름도 올랐다가 내려오는 기분이 들었으니까. 갈까 말까 할 땐 가야 한다, 오름은 그렇다.

 

성산일출봉에서 바라 본 제주 동쪽 풍경, 올록볼록한 오름들이 보인다.

 

 

최윤정
제주에서 1년간 집중적으로 올레길과 오름으로 소일을 했다. 많이 걷고 많이 오르면 몸과 마음의 군살과 기름기가 쏙 빠져 가뿐하고 담백한 삶을 영위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럴 줄 알았다. 지금은 아예 제주로 입도하여 일하며 놀며 제멋대로 산지 3년 차에 접어 들고 있다.

 

최윤정  webmaster@lifei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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