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들의 주거권을 다시 생각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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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들의 주거권을 다시 생각해야 할 때
[라이프인ㆍ생명안전시민넷 공동기획_안전칼럼]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 2018.12.03 12:44
  • by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2018년 11월 9일 새벽, 종로구 관수동 국일고시원에서 화재가 났다. 18명의 사상자, 그중 7명이 세상을 떠났다. 고시원 입구와 청계천에는 추모의 국화꽃과 메시지, 하얀 리본이 달렸다. 이곳에 살던 이들은 고시생이 아니다. 일용직 노동을 전전하거나 기초생활수급을 받는 빈곤층이다. 방세가 4만 원 더 저렴한 창문이 없는 방 거주자들에게 피해가 집중되었다는 사실은 참사의 본질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집이어서는 안 되는 공간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청계천 변 판잣집은 수십 년 전 헐렸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더 깊숙하고 작은 방으로 숨어들었을 뿐이다.

가난한 이들의 거처가 된 '집 아닌 집들'
2018년 한국에서 도시 빈곤층의 주거란 얼기설기 지은 판잣집과 골목골목 이어지는 낮은 담장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서울은 가난한 이들의 삶을 보여주지 않는 도시다. 대신 가난은 각자의 방 속으로 숨어들었다. 옆방의 소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고시원, 벽 한쪽을 까만 곰팡이에게 내줘야 하는 반지하, 더위와 추위를 막을 수 없는 옥탑방으로 사람들은 각자 밀려났다. 사정이 되는 대로 만 원 남짓 일세를 내고 하루 쪽잠을 자거나, 찜질방이나 만화방 전국의 기도원을 전전하는 삶. 이조차 여의치 않아 생의 마지막엔 요양병원에 스스로를 가둬야 하는 삶이 ‘집 아닌 집’의 모습이다.

고시원을 비롯한 ‘비주택’에 거주하는 가구는 2005년 57,066가구에서 2015년 393,792가구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서울시 고시원의 개수는 6천 개가 넘는다. 2018년 한국도시연구소에 따르면 전국 15만 가구 이상이 고시원에 생활하고 있으며, 97%가 1인 가구다. 이들은 소득의 30.2%를 임대료로 지불하고 있다. 수도권 고시원의 평균 월세는 33만 4000원이다.

반복되는 화재와 인명사고에도 불구하고 실효성 있는 안전대책이나 주거보장 방안은 전무했다. 영국의 경우 1999년에 한국의 고시원과 같은 다중주택의 화재 사고 이후 5인 이상 거주 시설에 대한 설립과 운영 규정을 엄격히 강화했다. 최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한국의 고시원과 유사한 1-2평의 방을 임대하는 계획을 한 건설회사가 내놓았지만, 바르셀로나시는 ‘사람이 살아서는 안 되는 곳’ 이라며 허가를 반려했다.

‘부동산’ 정책이 아니라 ‘주거권’ 정책으로 주택정책의 화살표를 돌려야 할 때
올해 1월에도 종로 쪽방에서 화재로 한 명이 사망했다. 같은 달 숙박업소 화재로 8명이 사망했었다. 스프링클러가 문제인가? 물론 현재 있는 시설들의 안전을 보강해야하는 것은 옳되, 이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화재는 전열기의 사용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한 겨울에도 온수시간을 규제하고, 썰렁한 기온을 유지하기 일쑤인 고시원과 쪽방에서 전열기 없이 어떻게 겨울을 난단 말인가. 전열기 사용 규제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이 아니다. 두 가지 진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집이 아닌 곳에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가난한 이들의 주거지가 안전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주거, 인권의 문제로 인식하기 위해 우리가 함께 넘어야 할 것
주택법은 ①국민의 쾌적하고 살기 좋은 주거생활 ②주택시장의 원활한 기능과 주택산업의 건전한 발전 ③주택의 공평하고 효율적 공급과 쾌적하고 안전한 관리 ④국민주택규모의 주택이 저소득자 무주택자 등 지원이 필요한 계층에게 우선적으로 공급되어야 한다는 점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의무로 규정했다.

이러한 의무가 모든 이들의 주거권 보장으로 연결되지 않은 데에는 도시의 상품화, 이윤을 중심으로 한 도시개발의 역사가 있다. 도시의 공적 공간은 줄어들고 있으며, 거리와 역사 등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전유되었던 공간은 상업화되거나 빈민들을 퇴출시켜왔다.

특히 한국에서 집은 가장 많은 수익을 보장하는 상품이었다. 2016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장기 공공임대주택 재고는 총 주택의 4.7%에 불과하다. 지난 해 문재인 정부는 <주거복지 로드맵>을 발표했지만 저소득층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획기적인 대책은 없었다. 영구임대, 50년 임대 아파트 등 저소득층의 장기거주 공공주택은 최근 10년간 거의 늘어나지 않은데 비해 행복주택, 시프트와 같이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높고 민간에 의해 공급되는 주택의 물량은 증가했다. 다세대 건물을 매입해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매입임대주택’이 그나마 저소득층의 대안이지만 물량이 너무 적다.

최근 서울의 6개구(강서·강북·도봉·양천· 중랑·성북)는 매입임대주택 건설을 위한 건물 매입을 자제할 것을 서울시에 요청했다. 시민사회단체는 입장 철회를 요구했지만, 각 구는 매입임대주택이 ‘저소득층 유입’, ‘주민 간 갈등’, ‘[임대구]라는 이미지 확산’ 요인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서울시는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고 저소득층 공공주택 확보를 위해 나서기보다 매입 임대주택 대신 청년이나 신혼부부 등을 위한 공공 주택을 늘릴 계획이라고 답변했다. 고시원 참사 이후에도 서울시의 주거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여기에 사람이 있다
서울시는 고시원 화재 생존자들에게 매입임대주택을 임시거처로 제공했지만 해당 주택에 입주한 사람은 절반에 불과하다고 한다. 6개월짜리 임시거처에 살기 위해 텅 빈 집을 채울 세간살이를 구입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일용직 노동의 특성상 시내와 멀어지면 일자리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서 안 되는 곳에서 살고 있는 것이 문제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문제 해결을 위한 시작점은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여기에 사는 우리도 사람이다’ 라고 바꾸어 말 할 수도 있겠다. 한 평 고시원에 몸을 욱여넣을 지라도 우리는 모두 사람이다.

2016년에서 2017년, 1년 사이 공시가격 기준 집값이 1억 원 이상 오른 주택 소유자가 1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강남에 집을 가진 10명 중 1명은 5채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자고일어나면 집값이 수억씩 오르는데 누군가는 4만 원을 아끼기 위해 창문 없는 방을 선택하는 이 세계의 비참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면 이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단순한 격차의 문제가 아니다. 이 격차를 타고 빈곤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거주자의 안전을 위한 조치와 함께 ‘상품이 아닌 권리’로서의 집을 회복하는 숙제가 우리에게 남아 있다.

“고시원 화재로 세상을 떠난 노동자를 기억하고 추모합니다.”
“최소한의 ‘주거권’은 보장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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