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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의 위태로운 대학원생 : '부주의'와 정체성 사이에서[라이프인ㆍ생명안전시민넷 공동기획_안전칼럼] 김태현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기획부장)

실험실 사고 중에서 대학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전체의 90%를 차지한다. 실험 기기·기구의 폭발이나 화학물질에 의한 화상·중독, 깨진 유리에 의한 물리적 상해, 누전으로 인한 감전까지 대학원생이라면 가깝게 접할 수 있는 사고들이다. 실험실에서 발생하는 사고의 원인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대학원생의 ‘부주의’로 돌아간다. 사용하는 도구나 재료에 대한 특성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하며, 예측하기 어려운 자연 환경조차도 실험조건의 세팅을 위해 계산 가능한 범위 내로 포섭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이 모여 있는 공간에서, 그것도 자신보다 오래 경험했던 숙련된 교수, 선배들이 있는 공간에서 자신의 모든 이유는 변명으로밖에 남지 않는다.

이상한 점은 매 학기마다 안전 교육을 실시하고, 안전 점검으로 위험 상황을 예방해도 사고는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학에서만 유독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점도 그렇다. 실험실 생활을 하면서 지켜야 하는 안전 수칙은 점점 많아지고, 실제로 대학 연구실에서 이를 잘 준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고 수치가 줄어들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사고의 표면적인 원인은 ‘부주의’지만 이면엔 부주의하도록 만드는 요소들이 있다. 실험실의 대학원생들이 떠안는 과중한 업무량이 대표적이다. 실험실에서 대학원생은 실험 외에도 학업, 행정, 강의 보조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실험만 놓고 봐도 한 가지만 수행하는 대학원생은 거의 없다. 개인 논문 주제에 관련한 실험, 연구실 차원의 과제 실험, 학부생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의 예비 실험까지 여러 분야의 실험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고, 여기에 필요한 자료 조사, 정리까지 모두 대학원생이 도맡아 한다.

정리는 특히 중요한데, 기구·기기에 잔류한 화학물질, 미생물 등으로 인해 다음 실험에서 오차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구가 건조, 멸균되는 시간 동안에는 다른 실험을 진행한다. 예산이 부족한 실험실은 다른 곳에서 일회용으로 사용하는 튜브를 세척, 멸균해 재사용하기 때문에 업무가 가중된다. 그렇기에 업무 강도는 예산이 적거나 업무 대비 인원이 적은 실험실일수록 커진다. 실험 외에도 연구 과제를 준비·수행할 때 작성하는 서류 작업과 집행해야 할 행정 업무는 기본이고, 교수의 성향·컴퓨터 처리 능력에 따라 강의 교안과 개인 행정까지 처리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1억 원짜리 국가 과제를 수주하면 대학에서 기본적으로 떼어가는 간접비는 20~30%정도다. 그 금액은 각 실험실에서 수행하는 연구와 그에 필요한 행정을 지원하기 위해 사용된다. 하지만 대학원생들이나 교수들은 그것이 단지 대학의 자본축적의 수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담당 행정 직원이 처리해야 할 행정 업무가 대학원생에게 내려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십 개의 연구실에서 집행해야 하는 연구 행정 혹은 전체 실험실의 시설 관리에 필요한 인원을 1~2명만 배정하면 당연히 지원이 늦어지고 분산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상당수의 대학원생은 과중한 업무를 수행함에도 불구하고 등록금을 전부 충당하지 못한다. 인건비 지급이 온전히 교수 개인의 도덕에 달려 있는 실험실의 구조에서, 일주일에 70시간을 일 해도 한 달에 100만원 받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대학원생이 많다.

“대학원에 공부하러 왔지 돈 벌러 왔냐” “네가 선택한 길이잖아”
타인의 입에서 나오든 스스로의 머릿속에서 다짐하든, 이 한 마디들은 대학원생으로 하여금 노동을 인정받지 못하게 만들고, 부조리를 당연한 것으로 감수하게 만든다. ‘학생’이라는 딱지를 붙이면서 수입을 금기하는 이 표현은 마치 “선생이 가르치는 게 목적이지 돈을 버는 게 목적이냐”라는 과거의 말처럼 허무하다. 고민의 합리성을 없애고 결정을 강요하는 “네가 선택한 길”은 어떤 부당함이라도 감수하라는 명령이 잘못된 선택에 책임을 지라는 형상으로 다가온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원생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자기 건강을 버려가면서 맡은 업무를 수행하는 것뿐이다. 실험 동선이 간소해지고, 안전장치 없이 실험에 성공하는 경험이 쌓인다. 독성물질 쯤은 장갑 없이도 쉽게 다루고, UV(자외선)*는 잠깐만 쬐면 되니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인화물질이 담긴 병은 빨리 실험해야 하니 덜렁덜렁 들고 다닌다. 결국 실험의 ‘부주의’는 위험 상황에 대한 숙련에서 발생하고, 숙련되어야 하는 상황은 상당한 업무량, 불안한 정체성, 턱없이 부족한 연구 지원들에 의해 강요한다. ‘부주의’는 모두가 떼어내고 싶어 하지만 결코 떼어낼 수 없는, 실험 외 조건을 배제한 채 연구자에게 모든 책임을 부여하는 잔혹함의 이름이다.

그렇기에 실험실 사고는 개인의 ‘부주의’나 열악한 실험 환경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 시설의 확충도 중요하지만 실험 수행자의 노동 조건이 같이 고려되어야 한다. 실험실 사고는 연구 환경이라는 이름으로 가려지는 노동 환경을 드러내고, 부주의함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조건과 상황을 살필 때 해결될 수 있다.

김태현  webmaster@lifei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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