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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안전에서 예외가 되는 사람들[라이프인ㆍ생명안전시민넷 공동기획_안전칼럼] 백선영 (민주노총 미조직전략조직부장)

너도 나도 안전할 권리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모두가 누려야 할 절대적 가치인 ‘안전’에서 제외 되는 사람들이 있다. 오히려 안전을 위협하는 사람들로 규정된다. 이주노동자들이 그렇다.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경찰들이 있어서 발언을 못 하겠어요”
올 해 이주노동자대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일 집회에서 발언하기로 한 이주노동자가 반대 집회가 열리고 경찰들이 있다는 이유로 발언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일터, 삶터 곳곳에서 안전을 담보하기 어려운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외치기 위해 광장에 나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집회에 나와서도 여전히 내재된 불안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이제는 권리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어도, 불법체류자 추방을 촉구하며 맞불집회가 따라 열린다. 너희 나라로 가라면서 온갖 혐오 발언과 욕설들을 쏟아내는 집단들을 온오프라인에서 매번 마주해야 하는 것이다.

회사를 옮길 수도 없고 사장이 부르면 달려가야 하는 일상, 노동조건•삶의 조건을 최하로 밀어 넣으면서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극도로 제한하는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은 불법체류자라는 오명이 붙고 쉽게 범죄자로 낙인찍힌다. 개개 사업장에서 협상력을 갖지 못한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주 허가 없이 회사를 옮기면 불법, 고된 노동을 견디지 못해 사업장을 이탈하면 불법이 된다. 한국 정부의 이주노동정책, 고용허가제도 때문이다.

누구보다 자신의 일상이 뒤흔들리며 안전을 위협받고 있는 이들이 외려 이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규정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대체 ‘안전’이란 무엇인가. 또한 누구에 의해 침해되는가. 나의 안전, 내가 속한 집단의 안전은 중요한데 그 안전을 요구하는 약자들의 권리는 왜 무시되는가. 

언제든지 범죄자로 규정되고 사회의 불안을 조성하는 이들이라는 수식어는 정주(내국인)노동자들에게도 향했다. 한 때는 수배 전단지에 범죄자는 노동자풍이라고 설명되기도 했고, 무려 30명의 죽음을 낳은 쌍용차 정리해고 당시 노동자들은 테러리스트로 규정되었다. 여전히 조직된 노동자들이 사회 안전을 위협한다는 인식은 달라지지 않았고, 뿌리 깊은 노조 혐오는 문재인 정부가 노동조합을 권고하는 시대에도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조직된 약자들의 저항에는 늘 ‘안전’이라는 키워드가 활용되면서 사회 불안 세력의 불법행위로 낙인찍혔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세력화되기도 어렵다. 언어 차이, 불안정한 체류 문제, 정치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정부의 입장 등 여러 요인들이 작용한다. 이주노조는 활동가들 모두가 표적 단속되었고, 미등록노동자들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10년간 법외노조 상태이기도 했다.

건의 이야기까지 회자될 정도였다. 80년대 공안 정치의 산물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여전히 현실로 존재한다. 호기심에 날린 풍등이 저유소 인근의 잔디밭에 떨어졌고, 이것이 저유소 발화의 원인이 되어 체포되는 상황, 당최 믿으려고 해도 믿기 힘든 이러한 혐의들을 CCTV 하나로 규정해내고는 발화의 원인 제공자로 스리랑카인을 지목했다.

아이들이, 이주노동자들이 소원 삼아 날렸을 풍등 하나로 어마어마한 화재가 날 수 있는 저유소 시설, 언제든지 불이날 수 있는 구조로 지어진 것 자체가 문제 아니겠는가. 전반적인 안전 관리의 허술함, 그 시스템의 문제를 풍등을 날린 이주노동자에게 묻는다는 것은 전형적인 책임 회피이며 이주노동자를 범죄자·테러리스트라는 잘못된 낙인을 찍는 결과만 가져왔다. 이번 저유소 화재의 배경에는 공사의 민영화가 있었다. 이윤 추구를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는 민영화는 안전 관리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발판이었다.

전쟁을 피해,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위해 국경을 넘어 이주해 온 난민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제주에서 일어난 모든 범죄들은 난민들이 일으킨 것으로 프레이밍 되었고,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국민 청원은 70만을 넘어섰다.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을 두고는 가족이 조선족이라는 가짜 뉴스가 퍼지기도 했다. 인육을 팔고 장기매매나 일삼는 조선족, 성범죄자에 테러리스트인 무슬림, 이들의 정체성은 어느새 살인과 방화사건의 배경이 된다. 보수 우익 세력의 가짜 뉴스 유포가 드러나도 이러한 인식은 바뀌질 않는다. 이제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어떤 기사가 나도 무차별적 혐오가 쏟아진다. 이러한 정서적 혐오는 무작정 조장되지는 않는다. 혐오는 혐오를 조성하는 물적 기반이 있다. 이주노동자 등 소수자에 대한 배제와 차별로 경제적 착취를 극대화하는 사회 구조 말이다. 이윤을 위해 생명과 안전을 등한시할 수밖에 없다.

외려 안전사고의 피해자들은 이주노동자
배제와 차별은 이주노동자 단속 과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쫓기고, 두들겨 맞고, 수갑이 채워지고, 다치고, 심지어 죽기까지 한다. 2007년 여수보호소 화재 참사로 천만 원 넘는 체불임금을 기다리던 노동자 포함, 10명의 이주노동자가 사망했다. 그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사람들이 다치고 죽어갔는데도 사과 한번 없었고, 징계 받은 책임자 하나가 없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여전히 정주(내국인)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단속을 벌이고 있다. 미얀마 노동자 故 딴저테이는 단속과정에서 추락하여 뇌사 상태에 있다가 장기 기증을 하고 세상을 떠났다. 심지어 진료기록에는 사고원인이 추락이 아닌 ‘자살’로 적혀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단속의 부당함은 뒤로 하고 장기기증이라는 미담으로 알려졌다.

한 편 최근에는 화재 사고로 4살 아이가 사망한 뉴스가 일면을 장식했다. 죽은 아이들은 우즈베키스탄 노동자의 자녀들이었다. 도망가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을 거라며 안타까움을 쏟아내는 뉴스 클립에는 동정의 여론조차 일지 않는다.

작년에는 유독 산재 사망사고가 많았는데 돼지 똥을 치우러 정화조에 들어갔다가 급사한 노동자만 두 명이었다. 이주노동자의 산재 사망률 정주(내국인)노동자의 6배에 달한다.
이러한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은 어쩌다 일어난 불운한 죽음이 아니다. 정주(내국인)노동자라면 하지 않았을 위험하고 더럽고 힘든 일을 여전히 이주노동자들이 감내하고 있다는 증거다. 착취와 단속 일변도의 정책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않는 사회를 그저 묵묵히 견디고 있다는 증빙이다.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지위를 활용하여 장시간 고강도 위험한 노동을 감수하게 만드는 구조인 것이다.

생존을 위해 안전을 추구하는 것은 누구나 가진 본능이다. 우리 국민도 이주노동자도 인간으로서 안전하게 살 권리가 있다. 누가, 무엇이 사람과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지 이제는 찬찬히 되돌아 봐야 할 때다.

백선영  webmaster@lifei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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