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영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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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영웅은?
교육 소셜벤처 '점프' 이의헌 대표 인터뷰
  • 2018.11.19 01:24
  • by 공정경 기자

"일주일에 8시간이면 애인보다 더 많이 만나는 시간이다."

차별 없이 배움의 기회를 누리고 성장하는 사회를 꿈꾸는 점프(JUMP, Join us to Maximize our Potential) 이의헌 대표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교육 소셜벤처 '점프' 이의헌 대표

"저소득층이나 이주민 가정의 아동·청소년에게 지역아동센터, 복지관,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교육봉사가 이뤄지려면 먼저 관계가 형성되고 마음이 열려야 한다. 그래야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일주일에 8시간, 일 년을 만나다 보면 친해지지 않을 수 없다. 아니면 원수가 되거나. (웃음)"

기존의 교육봉사 프로그램은 봉사기간이 짧고 봉사자 관리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지역아동센터에서는 대학생들의 교육봉사가 마냥 기껍지만은 않다. 대학생 교사의 잦은 교체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남긴다. "얼마 있다가 또 가겠지, 대충 시간 때우다 가세요, 어차피 우리를 버릴 거잖아요." 지역아동센터장 입장에서는 관리의 어려움이 있다. 대학생 봉사자가 중간고사 기간이라 빠지고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빠지다 보니 안정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가 어렵다.

이런 문제를 고민하면서 교육 소셜벤처 '점프'는 지속가능한 교육봉사 솔루션을 만들었다. 청소년, 대학생 교육봉사자(장학샘), 사회인 멘토를 연결해 나눔의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이다. 장학샘(장학생+선생님의 합성어)은 현대자동차그룹과 서울장학재단, 경북대학교, 부산대학교가 후원하는 장학생이면서 H-점프스쿨 학습센터에서 청소년을 지도하는 선생님이다.


장학샘은 최대 4명의 학생을 주2~3회, 최소 주8시간, 일 년 동안 학습센터에서 가르친다. 단지 학습만 돕는 게 아니다. 아이들과 가깝게 지내며 말 못 할 고민을 함께 나누고 진로설계, 대학탐방 및 문화체험 활동을 통해 동기를 부여하는 정서지원활동도 한다.

대학생활과 많은 시간의 교육봉사를 병행하기가 쉽지 않지만 장학샘에게는 든든한 사회인 멘토가 옆에 있다. 사회인 멘토는 장학샘이 다음 세대의 멘토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사회인 멘토는 장학샘이 청소년의 성장을 돕는데 큰 동기부여가 된다. 사회인 멘토단은 일대일 멘토링, 소그룹 멘토링, 단체 멘토링 형태로 이루어진다. 장학샘들이 원하는 주제로 토크콘서트를 열기도 하고 5~8명이 소규모로 모여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장학샘을 만난 청소년은 대학에 들어가서 장학샘이 되고, 장학샘이 사회에 나오면 사회인 멘토나 후원자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다문화 청소년을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만났다. 이어달리기라고 표현하는데, 이 친구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됐을 때 그때 가르친 장학샘이 자기가 합격한 전형을 알려주고 지도해줘서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 이 친구가 대학에 들어가서 다시 장학샘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 대학생 중에는 지역아동센터가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학생들이 지역아동센터에 처음으로 와서 일 년 동안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정말 많이 배우고 성숙해진다." 

"생각해 봐라. 지역아동센터에서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나겠나. 일 년 동안 꾸준하게 활동하면 인내심, 공감능력,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논문에 나왔지만 점프 장학샘들이 비교집단 대학생들에 비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지역사회와 나누려는 태도가 월등히 높다. 당연한 결과다. 아는 만큼 보이기 때문이다. 이 친구들이 어디에 있든 30,40대에 초기의사결정자만 되도 그 조직에서 균형 잡힌 의사결정을 할 거다."


이 대표는 장학샘들에게 '혁신가가 돼라, 훌륭한 사회적기업가가 돼라'고 하지 않는다. 좋은 시민이 되자고 한다. 좋은 시민 되는 게 제일 어렵지 않냐고 물었다.

"어렵지 않다. 좋은 시민이 될 수밖에 없다. 청소년을 통해서 많이 배우고 자기와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들과 일 년 동안 생활하고 좋은 사회선배들을 만나서 지속적으로 자극을 받기 때문이다. 자기 책임을 다하고 권리도 주장하고 이웃과 공동체를 돌아보면서 좋은 시민으로 성장하고 있다."

점프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데에는 이사진과 매니저의 역할이 크다. 점프는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서 공공정책학을 함께 공부한 친구 6명이 만들었다. 기업을 운영하다 보면 사업에만 매몰되기 십상인데 점프의 이사들은 점프의 미션과 비전에 대해서 끊임없이 싸우고 토론한다. 또한 수요자 중심 교육봉사 프로그램이라 현장을 가장 잘 아는 매니저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스갯소리로 파트너들이 이런 말을 한다. "이 대표만 있었으면 우린 이미 끝났어. 매니저들이 있으니까 계속 같이하는 거야" 처음 장학샘들에게 하는 교육은 기본적인 소양교육, 청소년과 친해지는 방법 등이다. 그 다음은 무조건 현장에 맞춘다. 특정한 커리큘럼을 짜서 주는 게 아니라 과외 비슷하게 각각의 청소년에게 필요한 교육을 한다. 센터장이 원하는 프로그램이나 콘텐츠는 좋은 사회적기업이나 NGO가 많으니까 그쪽과 연결해 제공한다. 그래서 현장을 잘 알고 노하우가 쌓인 매니저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사람과의 관계가 쌓여야 하는 비즈니스라 매니저가 나가버리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직원들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이사회는 8년 동안 돈 한 푼 가져가지 않으면서 자기 시간과 돈을 쏟고 있다. 그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이사들의 이익보다 직원들이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즐겁게 일할 수 있어야 점프가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의헌 대표와 점프 매니저들

서울·경기지역 15개소로 시작한 점프 학습센터는 현재 대구, 부산지역까지 확장해, 누적 학습센터가 100여개소가 넘는다. 점프가 지난해부터 새로운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기존의 프로그램은 청년이 있는 지역에서 그 지역 대학생과 청소년을 연결하는 모델이었다. 새로 시작한 시범사업은 청년이 없는 지역에 청년을 보내 취업활동과 교육봉사를 겸하는 모델로, 사단법인 제주올레, 재단법인 서귀포시교육발전기금이 함께하고 있다. 

'청정지역(靑 청년이 停 머무르는 지역) 프로젝트-제주'는 서귀포에 청년 4명이 한 팀으로 내려가 사단법인 제주올레에서 주30시간 일하고 주10시간은 지역에서 교육봉사를 한다. 이 대표는 이 모델이 교육 격차, 지역 격차, 청년실업 등 많은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 기대하고 있다.

"청년들이 좋은 뜻으로 지역에 내려가도 지역주민과 부딪치면서 점점 고립감을 느낀다. 지역주민 입장에서는 외부인 들어오니까 기본적 거부감이 있고 외부인이 하는 일이 딱히 지역주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모델은 외지 청년들이 선생님 포지션으로 들어간다. 자녀나 손주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니까 주민들이 장학샘을 엄청나게 좋아한다. 기본적으로 주민들과 우호관계를 형성하는 게 어렵지 않다."

서귀포 모델은 도시재생에도 좋은 모델이다. 지역에 일자리가 있어도 제대로 된 정보가 없거나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발생해 청년들이 선뜻 내려가기 어려운데, 점프는 그동안 청년들과 쌓아온 신뢰가 탄탄해 서귀포 시범사업의 경우 일주일 모집기간에 경쟁률이 40:1이었다.

"도시재생도 현장에 개별기업, 중간조직 등 여러 포지션이 있을 텐데, 좋은 일자리를 선정해 좋은 청년들을 연결해주고, 지역에 내려갔을 때 청년들이 느끼는 고립감이나 불안감은 멘토링프로그램이나 관리프로그램으로 해결할 수 있다. 서귀포 시범사업을 하면서 생각한 모델이 실제로 잘 작동함을 확인했다. 제주올레에서 하는 업무는 마케팅, 디자인, 트레일, 게스트하우스 운영 분야로, 처음부터 명확한 잡 디스크립션(직무설명서)을 알려주고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지원했다. 네 명이 한 팀으로 움직이고 사회인 멘터들이 함께하니 고립감 없이 일하고 있다."

교육은 기본적으로 공공의 영역이다. 그래서 이 대표는 교육봉사 사업모델을 처음 만들 때부터 누구나 가져가서 쓸 수 있게 했고, 지자체와도 연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점프 교육봉사 프로그램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이유는 처음부터 파너트들과 3년, 5년 장기계약을 맺기 때문이다.

"점프 교육봉사 프로그램이 다른 교육봉사 프로그램보다 성과와 만족도가 높다는 것은 이미 논문으로도 증명됐다. 기업들은 효과 중심으로 보기에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점프 프로그램을 가져가고 있다. 민간 쪽 파트너들과 계약할 때는 처음부터 장기간 해야 하고 인건비가 책정돼야 안정적으로 사업이 돌아간다고 말한다. 지금 파트너들은 그 조건에 동의한 곳들이다. 교육은 공공 영역이고 기본적으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지자체와 사업을 하는데 쉽지 않다. 기업은 효과만 보지만 지자체는 효과가 아무리 좋아도 정무적인 판단도 같이해야 하니까... 지자체와 사업을 같이 하더라도 인건비 예산이 없기에 점프 후원금이나 민간 쪽 잉여에서 메꾸고 있다."


순탄한 삶은 없다. 이 대표는 미국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아프가니스탄 분쟁지역에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 재난과 가난, 불평등으로 힘겨운 삶을 사는 사람들을 취재하면서 기자로서의 삶, 관찰자·목격자로서의 삶을 버렸다.

"사람들은 보통 현장 활동가를 좋은 사람, 영웅이라고 말한다. 그 말도 맞지만, 힘 있는 자리에 좋은 사람이 많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점프가 망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파트너 기업이나 재단 실무책임자들의 공이 컸다는 점이다. 그분들 입장에서는 굳이 장기계약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윗사람을 설득하고 징계까지 받으며 이 사업을 추진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그분들이 힘 있는 자리에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좋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노력도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많은 자원과 도움을 받은 결과이기도 하다. 사회적기업이나 NGO가 좋은 사업을 할 때, 힘 있는 자리에 있는 분들이 한 표씩 던져주고 한 걸음씩만 같이 해준다면 우리는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이런 분들이 우리 사회의 영웅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영웅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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