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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시티'가 제안하는 '부(富)의 재정의'크리스 도브잔스키 밴시티신협 전 수석 이코노미스트 인터뷰

순식간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눈물이 날 것 같다는 말은 이미 눈물이 가득한 후였다. 선물로 받은 자우림의 김윤아 자필 사인 음반을 보면서 감탄사가 계속 터진다.(통역을 도와준 분이 선물로 줌) 연신 한국어로 정말 고맙다고 인사한다.

몇 년 전 자우림 음반을 선물 받은 후 김윤아에게 푹 빠졌다며, 김윤아가 부른 미스터션샤인 OST '눈물 아닌 날들' 가사를 꺼내 한 소절 한 소절 부른다. 한국어를 몇 년 동안 공부하고 있는데 잘 늘지 않는다고 한다. 어린이 동화책 '장난감 병정'을 꺼내 한 글자 한 글자 짚어가며 더듬더듬 읽는다. 마음 같아서는 줄줄줄 읽고 싶은데 그렇지 못해서 답답하다고 한국어로 줄줄 이야기한다.

크리스 도브잔스키(Chris Dobrzanski, 현 커뮤니티포워드 재단 대표, 캐나다 밴시티(Vancity) 신협 전 수석 이코노미스트, 캐나다 시민은행 전 CEO)와의 인터뷰 후 장면이다. 젊은 시절 히피였던 크리스 도브잔스키는 폴란드계 캐나다인으로, 자신은 DNA부터가 다르다고 말했다. DNA부터 다른 그가 사회적금융은 어떤 DNA이기에 열정적으로 일해 왔을까?     

밴시티는 캐나다 최대 신용협동조합이다. 1946년 밴쿠버 시민 14명이 5달러씩 출자해 시작한 밴시티는 2016년 말 기준 조합원 52만명, 총자산 22조원, 59개 지점을 두고 있다.

밴시티는 '부(富)의 재정의'라는 비전으로 '개인의 번영은 오직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커뮤니티를 통해서만 달성가능하다'고 금융을 스스로 재정의했다. 지속가능한 지역사회를 위해 밴시티 전체자금을 사회적 효과를 기준으로 운용하고 있다. 사회적 효과 기준에는 원주민 커뮤니티, 적정주거, 협동조합, 친환경 비즈니스, 노동조합, 비영리단체, 사회적기업, 공익목적 부동산 개발 등이 있다. 밴티시는 지역사회 비영리조직, 사회적경제조직들과의 파트너십을 전략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적금융이다.

2018년 캐나다는 네트워크의 네트워크인 '샹티에'처럼 지역기금 네트워크의 네트워크 '뉴마켓펀드(New Market Funds)'를 만들었다. 기금들이 연대해 규모를 키우고 지역사회와 사회적경제주체들이 필요로 하는 자금을 새로운 방식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다.


- 이번에 한국에 방문한 이유는?

2013년 국제사회적경제협의체(GSEF) 서울 총회 참석차 처음 한국에 왔다. 그때 인연을 맺어서 2015년 한국 신협중앙회 정기총회 포럼에서 기조연설자로 발표했다. 동작신협, 주민신협, 사회적경제인, 학계 등과 계속 교류하고 있다. 올 4월에는 2014년 밴시티에서 한 달 동안 연수를 받은 주세운 씨(동작신협 전략기획팀 과장)와 같이 논문도 발표했다. 신협중앙회가 사회적금융으로 제대로 역할을 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자문역할을 하고 있다.

밴시티가 처음 만들어질 때도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에 저항하는 차원에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연대해서 금융을 만들었다. 한국의 신협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신협이 발전하기 위해 캐나다의 경험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면 언제든 기꺼이 함께하려고 한다.

이번에는 신협중앙회 세미나와 대학에서 특별강연을 했다. 또 하나, 현재 캐나다 공연예술그룹의 이사로 있는데, 이사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좋은 쇼를 발굴하는 일이다. 괜찮은 쇼가 있으면 담당 디렉터에게 알려주고 담당디렉터가 판단해 캐나다에 소개한다. 이번에 와서 한국 예술가들의 해외진출을 위한 행사인 서울아트마켓(PAMS,팜스)에 갔는데, 거기서 본 괜찮은 쇼를 디렉터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 한국의 신협이 변하고 있는 게 느껴지나?

캐나다 밴쿠버에서도 100% 사회적경제 지향점을 가지고 운영되는 곳은 밴시티 뿐이다. 신협중앙회 차원에서나 내부적으로나 신협이 사회적금융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사회적경제와 사회적금융에 대한 지향을 명확하게 가지고 있고 시민사회의 요구도 있다. 양쪽의 영향과 신협 내부의 요구가 보태져 더 큰 변화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미시적으로나 거시적으로나 신협이 사회적금융으로서 역할을 하겠다는 구체적인 변화들이 보인다.

- 사회적금융은 전통적인 금융보다 사회적경제에 대해 문턱이 낮기는 하지만, 단순히 보면 전통적인 금융과 비슷한 업무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밴시티는 지역사회에 어떻게 기여하는가?

전통적인 시각에서 신협을 보면 재무제표상 사회적경제조직에 돈을 빌려주고 그것으로 역할을 다 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신협이 실제로 사회적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복잡하고 재무제표에 드러나지 않는 숨겨진 가치들이 있다. 사회적경제는 기본적으로 선형적이지 않다. 복잡한 체계 안에서 이해관계자와 관련된 플레이어들의 상호작용으로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사회적경제조직이 활동하면서 지역에 미치는 영향이 있고 그 영향이 그다음 단계에 영향을 미친다. 사회적경제는 긍정적인 외부효과를 통해서 파급력이 계속 확산된다. 그 과정에서 파급력이 확대될 수 있도록 신협이 역할을 하고 있다.

예를 하나 들자면, 밴쿠버에 있는 데이케어 사회적경제조직이 밴시티 신협에서 융자를 받아 건물을 하나 샀다. 그러면서 그동안 내던 임대료를 더 나은 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데이케어센터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급여가 생활임금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밴시티재단과 다른 재단이 협력해서 급여차이를 메꿔준다. 밴시티는 수익의 30%를 지역사회공헌으로 쓰고 있다. 종사자들이 더 나은 처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이유는 재단에서 일하는 사람을 포함해 지역의 모든 사람이 데이케어센터의 잠재적 고객이기 때문이다. 고객이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종사자들이 제대로 된 처우를 받아야 한다.

또 이 데이케어센터는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어서 지역기관들과 협력해 지역주민들에게 더 나은 가치들을 제공한다. 이 건물은 아이들과 노인 돌봄 센터이자 싱글맘이 사는 곳이다. 시니어그룹과 파트너십을 맺어 싱글맘이 일을 하러 나가는 동안 시니어들이 아이들을 돌봐준다. 신협은 데이케어센터가 서비스를 잘 제공할 수 있도록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어 필요한 것들을 지원한다.

재무제표상으로 봤을 때 단순히 돈을 융자해줬으니 끝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역사회에 필요한 곳에 돈이 들어가게 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변화와 연쇄적인 반응을 보면 신협이 훨씬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이런 시설을 만들 때 시중은행은 담보를 요구해 필요한 자금을 얻기 어렵게 만들거나 필요한 자금의 얼마만 융자해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사회적금융은 지역주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사회적경제조직이 긍정적 외부영향을 만들 수 있도록 여러 방면에서 협력하고 있다.

하나의 사회적 프로젝트에는 수많은 가치가 연결돼 있다. 밴시티 직원 연수프로그램 중 임팩트매핑 수업에서 도심 공동체 텃밭 프로젝트에 숨겨져 있는 가치사슬을 찾아내 연결했다. [사진출처=세모편지. 동작신협 전략기획팀 주세운 과장 제공]

 
- 전통적인 금융과 사회적금융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인가?

전통적인 금융과 사회적금융은 목표자체가 다르다. 전통적 금융의 목표는 지속가능성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에서의 금융이나 경제 질서는 기본적으로 개인에게 계속 돈을 빌려줄 테니 '지금 차를 사라, 지금 콘도를 사라'라며 소비욕망을 계속 부추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개인이 더 이상 빚을 갚지 못하면 무너지는 시스템이다. 2008년 금융위기만 봐도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몇 %의 연체율로 파산했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모델이다. 특히 저성장 국면에서는 이익을 내기가 더 어려워지니까 소비를 더 부추기게 되고, 개인은 점점 더 빚에 얽매이게 된다. 개인의 가처분소득을 빚 갚는 데 사용하다 보면 구매능력은 계속해서 떨어진다. 이런 악순환으로 인해 경제는 갈수록 어려워진다.

반면 사회적금융은 지속가능성이 첫번째 목표다. 빚 갚는데 돈을 다 쓰게 하는 게 아니라 가처분소득이 늘어나도록 노력한다. 삶에 필요한 금융을 제공하고 적정한 소비수준, 사회적·환경적으로도 적합한 소비활동이 지속되게끔 한다. 금융기관으로서 지속가능성을 계속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지속가능성 중에서도 '조합원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 구성원들이 지속가능해야 신협도 지속가능하기 때문이다. 구성원이 일자리를 잃었거나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돈을 못 갚으면 네 것을 빼앗겠다'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 다시 일을 찾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끔 최선을 다한다.

전통적인 금융과 사회적금융은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시각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밴쿠버에 8가구가 사는 협동조합주택이 있다. 정부 지원을 전혀 받지 않고 신협에서 융자를 받아서 건물을 샀다. 융자금을 상환하려면 월세를 받아야 하는데, 사회적기업에 종사하는 장애인에게는 375불을 받고, 두 가구는 시세의 반절인 1500불, 나머지는 시세의 80%인 2800불을 받는다. 시세보다 낮게 운영하면서도 융자한 자금을 잘 갚아 나가고 있다. 그런데 만약 사회적기업에서 일하는 장애인 두 가구가 일자리를 잃어서 월세를 못 내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월세를 못 내게 되면 전통적인 모델에서는 이 사람들을 쫓아내고 다른 사람에게 임대한다. 이 사람들은 갈 곳을 잃는다. 이럴 때 사회적경제 관점에서 리스크 관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리스크 관리자는 시장경제는 항상 어느 시점에 가면 실패하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약한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한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사회적금융은 이럴 때 충격완화장치 같은 역할을 한다. 신협은 일반적인 거래와 안정적인 수익 사업을 하면서도 펀드를 통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거리에 나앉지 않도록 돕고 기다린다. 협동조합주택 운영자가 이러한 어려움을 이야기하면 그 사람이 직업을 구할 때까지 재단기금으로 월세를 지원해준다.

소득수준을 고려해 월세를 조정하면 개인은 집세를 내고도 가처분소득이 남는다. 가처분소득으로 아이들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 교육하면 이 아이들은 잘 자라서 건강한 시민이 된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사회 전반적인 의료비용이나 치안비용이 훨씬 덜 들게 된다.

- 한국도 주거비용과 임대료가 워낙 올라서 큰 부담이다. 사회적경제 방식으로 풀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는데...

이 모델 자체가 쉬운 건 아니다. 실제로 어려움도 많고 완벽한 모델도 아니다. 밴쿠버도 집값이 워낙 빠르게 급등하니까 협동조합주택들도 버티기가 어렵다. 사회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에게 적정한 가격으로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본래 취지를 달성하지 못하고 끝나는 경우가 생긴다. '집세를 못내는 사람이 있으면 담보를 잡는 게 너의 의무지 그 사람이 살길을 찾아 주는 게 너의 역할이 아니다'라는 규제의 움직임과 부동산 투기세력, 시장의 잔혹한 논리와 싸워야 한다.

그래서 파트너십이 중요하다. 파트너십을 맺어서 최소한의 제도적 틀을 만들어 지역에 필요한 주체들에게 적정한 가격에 양질의 주거를 공급하게끔 해야 한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뒷받침하고 자원을 공급하게 만들면 사회적금융 자체가 정부의 지원을 직접 받지 않더라도 일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기본적으로 금융기관이나 규제당국은 개인의 재산 보호 원칙에만 충실할 뿐 지역공동체가 어떤 식으로 자본에 의해 망가지는지 관심이 없다. 오히려 지방정부가 사회적금융을 통한 투자의 결과들과 사회적경제가 만들어낸 긍정적 외부효과의 가치를 잘 이해해 함께 하려고 한다.

지역의 어려운 주민들이 밴시티신협 조합원으로 가입해서 필요한 융자를 받고 이를 통해 어려움을 해결하면서 꾸준히 융자를 갚아 나간다. 금융기관으로서 실제로 이익이 생기고 주민들에게 계속 로얄티가 생기니까 이것이 더 큰 자산이다. 금융기관의 역할뿐 아니라 동시에 비영리단체나 재단을 통해 필요한 자원을 추가 공급해 지역공동체가 건강하게 살아남도록 기여한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이 시점에 한국에서 정치적으로 사회적경제가 지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1997년 외환위기 때 한국이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신자유주의 모델과 경제 질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그것이 얼마나 취약한지 지금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경제란 원래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고 지역공동체가 잘 운영되게 하면서 그 안에서 다양성과 사회적 건강성이 유지되게 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모델들이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97년에 겪었던 일들이 또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위험에 놓여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글로벌한 문제이기에 함께 대응하고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GSEF도 만들었다. 한국의 좋은 사례는 GSEF를 통해서 국제적으로 나누고, 좋은 사례는 빠르게 배우고 교육하고 훈련하면서 서로 독려하기를 바란다.

공정경 기자  jjkong9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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