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션샤인과 난민 - 차별과 혐오로는 안전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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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션샤인과 난민 - 차별과 혐오로는 안전해지지 않는다
[라이프인ㆍ생명안전시민넷 공동기획_안전칼럼] 랑희 (활동가, 인권운동공간 ‘활’)
  • 2018.10.18 17:45
  • by 랑희 (활동가, 인권운동공간 ‘활’)
사진출처-tvN

유진 초이와 고애신 그리고 이집트 난민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첫 회와 마지막 회에 나라를 떠난 사람들이 등장했다. 첫 회에서 ‘검은 머리 미국인’ 유진 초이는 구한말 양반집 노비의 자식인데 입신양명을 노리던 주인 때문에 부모를 잃고 미국인 선교사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군인이 되었다. 마지막 회에서는 열강들의 각축장이 된 조선을 지키려 의병이 된 고애신과 그의 동료들이 일본군의 추격을 피해 만주로 넘어가 독립운동을 이어간다. 계급사회에서 주인을 거부한 노비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어 밀항해 미국으로 가고, 제국의 침략에 맞선 의병도 삶과 투쟁을 이어가기 위해 신분을 숨기고 만주행 기차를 타는 이 드라마가 진행되던 때, 청와대 앞에서는 이집트 난민들이 단식투쟁을 진행했다. 이들은 왜 멀고 낯선 타국의 땅에서 단식을 했을까?

랑희 (활동가, 인권운동공간 ‘활’)

‘아랍의 봄’이 이어지고 있던 당시 이집트 시민들도 민주주의를 열망하며 혁명에 참여해 대통령을 퇴진시켰지만, 이어진 정권의 독재로 정부에 대한 비판은 금지되었고 수백 명의 사람이 실종되고 구금자들은 고문을 당하고 있다. 정부를 비판한 자이드와 아나스도 체포와 구속을 겪고 한국으로 망명했다. 그러나 이들은 2년이 넘도록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면서 제대로 된 통역도 없고 제도와 절차에 대한 충분한 설명도 없이 난민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 심사과정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인간적인 처우와 난민인정에 적극적이지 않은 대한민국은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한 이들에게 절망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이들은 다시 목숨을 걸고 단식투쟁을 통해 공정하고 전문적인 심사와 인간적인 대우를 요구했다.

유진과 고애신 그리고 자이드와 아나스, 이들은 모두 난민이다. 자신의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유진과 고애신의 삶과 이주를 공감할 수 있다면 자이드와 아나스와 같은 한국으로 올 수밖에 없는 이들 또한 공감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한국에서 난민의 삶은 안전할 수 있을까?
난민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없다. 생존과 안전,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해 태어난 곳을 떠나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살기 위해 불가피하게 ‘이주’를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드라마에서 보여지 듯 사실 대한민국도 난민의 나라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망명객들이 세운 망명정부였다. ‘자이드와 아나스들’도 한국으로 떠나 올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인권이 보장되고 민주주의가 튼튼하게 뿌리내리는 자신들의 땅, 이집트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사는 미래를 꿈꾸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광장에서 섰던 것처럼 타흐리르 광장에 섰을 것이다.

한국이 인권이 보장되고 민주주의 국가라는 믿음에 희망을 품고 온 난민들은 이곳에 도착해서야 난민에 대한 편견과 의심으로 난민인정이 쉽지 않은 현실에 부딪힌다. 한국의 난민인정률은 3.5%로 OECD 국가 중 35위, 보호율도 10.7%로 역시 35위이다. 세계 평균 인정률 29.9%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난민 신청을 받기 시작한 1994년부터 2017년까지 누적 신청자 수는 3만 2,733명인데, 17년간(2001~2017년)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은 건 유엔 자료 기준으로 708명이다.

난민인정을 최소화하기 위해 애쓰는 정부는 심사를 기다리며 체류하는 난민들에게 인간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도 제공하지 않고 있다. 평균 3개월을 체류할 수 있는 비자는 보통 4년이 결리는 심사 기간 동안 반복해 연장신청을 해야 하고, 정부가 허가하는 사업장에서 최대 3개월까지 일할 수 있지만, 인력 교체가 잦기 때문에 신청하는 사업주가 별로 없다. 그 때문에 난민들의 노동조건은 열악하기가 쉽다. 운이 좋으면 처음 6개월간 체류하며 생계 지원금을 1인 가구당 월 43만2천900원 받을 수도 있다. 지난해 4.4%의 난민만이 지원금을 받았다. 의료보험도 적용되지 않아 병원에 갈 엄두는 내지도 못하고 있다.

아나스의 부인은 단식 중 아이를 출산했다. 아나스 부부는 출생신고도 할 수 없는 현실에 마음 아파했다. 아나스와 아나스의 아이처럼 이 세계 어디에도 공식적으로 속하지 못한 난민들이 이곳에 살고 있다. ‘안전한 삶’을 찾아 고국을 떠난 순간부터 사실상 난민이 되지만 심사를 통해 '인정'받아야만 공식 '난민'이 되는 이들은 여전히 생존이 불안하고 강제추방의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

차별과 혐오가 불안을 증폭한다
지난 6월 500여 명의 예멘 난민이 제주도에 도착하자 난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드러났다. 1992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에 가입했고, 2012년엔 아시아 최초로 독립적인 난민법도 만들었지만 '난민법 폐지' 등을 주장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64만 명 넘게 참여하면서 최대 청원 이슈가 되었다. “국민이 먼저”라는 사람들은 “우리가 불안하니, 너희 나라로 가”라며 추방을 요구하고 혐오와 차별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리고 그것을 안전을 위해서라고 한다.

예멘 난민과 관련해 벌어진 상황을 보면 마치 안전이 다른 사회적 원칙과 가치보다 더 상위에 있는, 그 자체가 우리 사회가 추구할 최우선의 목표가 되어버린 것 같다. 물론 공포와 혼란 및 불안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안전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욕구다. 그러나 객관적인 사실에 기초하지 않는 불안과 공포에 대한 감각은 사회 전반적 요소에 대한 불안으로 확산한다. 이로 인하여 안전에의 욕구는 안전에 관한 논의를 확대하고 스스로 불안전을 확대 재생산한다. 그뿐만 아니라 불안요소들은 확인될 수 있는지 없는지와 관계없이 사회의 소통에 의하여 재생산된다.

‘가짜뉴스’는 우리의 불안한 심리를 양분으로 자라나고 확장된다. 여성에게 안전하지 않고 가부장제 질서가 뿌리 깊은 남성중심 사회에 대한 공포를, 고용불안과 해고, 저임금으로 삶의 안정성이 흔들리는 불안을 이용해 혐오와 차별을 부추기는 것이다. 모든 난민의 이주를 막는다고 하더라도 한국이 여성이 더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나라, 고용이 확장되는 나라가 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문제는 난민이 아니라 난민 혐오다. 공포와 불안의 감각은 그 원인을 타자에게 전가하기 쉽고, 이렇게 형성된 차별과 혐오의 감정은 배제를 생산하고 배제된 이들의 삶을 위험에 빠트린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은 해소되지 않고 공포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또 다른 이유(타자)를 찾게 되는 사회는 절대로 안전해질 수 없다.

나라를 떠나오면서 품었던 난민의 마음, 인권과 민주주의가 안전한 삶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그 기대는 난민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안전 가능한 사회로 만든다. 누군가를 배제하고 인간 존엄성을 외면하면서는 추구하는 안전은 누구도 안전하게 만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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