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비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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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비시대'
생협, 커피처럼 변화한다면
  • 2018.10.08 19:46
  • by 김동규 서울지역협동조합협의회 사무총장

역사에서 시대구분은 어떻게 할까? 우리가 시대를 구분하는데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도구를 통한 방법이다.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 등, 각 시대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던 도구로 구분한다. 더 강력한 도구를 사용하는 자가 세상의 지배자가 되었다. 이런 전통적인 구분과 다르게 역사를 구분하는 방식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책중에 역사책 중에 톰 스탠디지(Tom Standage)가 쓴 <A History of World in 6 Glasses> 책이 있다. 번역본 제목은 <역사 한잔 하실까요?> 부제는 ‘여섯 가지 음료로 읽는 세계사이야기’이다. 이 책에서는 시대를 맥주(beer), 포도주(wine), 스피릿(spirits 증류주), 커피(coffee), 차(tea), 콜라(coke) 등 6개의 음료로 구분한다. 6개의 음료 중에, 현재 가장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이용하는 음료는 아마도 커피일 것이다. 어떻게 커피는 이렇게 많은 음료 중에 우리 삶속에 깊이 자리잡은 음료가 될 수 있었을까? 책을 읽다보면 커피를 판매하는 커피하우스가 초기 유럽에서 했던 다양한 기능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17세기 유럽의 상인들은 최신의 비즈니스 소식을 듣고 싶어했다. 다른 지역의 상품 가격에 따라 자신들의 제품 가격을 정하기도 하고, 정치적 가십 등에도 장단을 맞추며 새로 출간된 책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궁금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최신의 과학적 발전 상황은 커피하우스에 가기만 하면 알 수 있었다. 그곳에서 커피 한 잔 가격만 지불하면 최신의 팸플릿과 뉴스레터를 읽을 수 있었으며, 다른 단골고객들과 환담을 나누고 비즈니스 거래를 체결하거나 문학 또는 정치적 토론에 참가하기도 했다.”(역사 한잔 하실까요? 209쪽)

커피하우스 일러스트 (1705년)

또 한가지, 커피가 세계적인 음료가 된 이유는 커피가 다른 음료를 받아들이면서 끊임없이 맛이 지평을 확대했기 때문이다. 커피는 우유, 위스키, 아이스크림, 생크림 등 다양한 재료와 섞이면서 본연의 맛을 지키면서도 다른 음료와 만나 한층 다양한 맛의 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커피의 변화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도구로 하든 음료로 하든 시대를 구분하는 것은 거시적 담론이다. 이것을 미시적으로 개인에게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사람은 성장하면서 소비하는 품목과 공간이 달라진다.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성장 시기에 따라 주로 이용하는 곳도 달라진다. 한 사람의 일생을 개인이 소비를 위해 주로 이용하는 공간으로 구분해보면 어떤 스토리가 나올 수 있을까? 나의 소비시대는 구멍가게부터, 시장, 슈퍼마켓, 편의점, 대형마트, 생협 등 6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대형마트와 생협 2개의 시대만 소개하겠다.

결혼하기 전까지 주로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을 이용하였고, 대형마트를 방문한 적이 거의 없었다. 대형마트는 생활권에서 너무 멀었고, 어쩌다 충동구매로 산 물건들은 차가 없이는 한번에 나르기도 쉽지 않았다. 1인가구로 살았던 나로서는 그 만큼의 식료품이 필요치 않았다. 그러나 결혼 후에는 주로 거주지와 가까운 대형마트를 이용하게 되었다. 도시 주변엔 언제나 대형마트가 있었다. 대형마트는 공간이 넓은 만큼 과소비를 조장하는 곳이었다. 필요도 없는 것을 싸다는 이유로 구매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주말의 소중한 시간을 장 한번 보기 위해 많은 시간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내 삶을 행복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 와중에 발견한 새로운 장소가 생활협동조합이었다.

나의 생협시대는 한살림으로 시작한다. 한살림은 친환경 유기농, 안전한 먹거리로 유명하지만,내가 한살림을 선택한 것은 먹거리가 아니라, 생명살림, 생산자와 소비자의 교류와 연대 등 한살림의 가치 때문이었다. 대치동에서 살 때 지인의 소개로 한살림에 가입했다. 가입은 했지만, 나는 아주 게으른 소비자였다. 생협 소비는 먼 친척들의 왕래처럼 드문드문 이루어졌다. 한살림 이용이 드물었던 이유는 당시에는 취급하는 물품이 많지 않아, 일부 물품을 사려면 어쩔수 없이 주변의 대형마트를 한번 더 이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온라인 주문 배달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저녁시간 늦게 퇴근할 때는, 신선식품 주문시 망설여졌다.

생협을 좀 더 자주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아이쿱에 가입하면서 부터이다. 분당 이매 쪽에 좀 큰 평수의 아이쿱 매장이 있었다. 매장 뒤편에 주차장도 넓어 이용하기 편리했고, 바로 옆에는 한살림 매장도 같은 규모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때는 한 쪽 매장에서 구매하지 못한 물품은 다른 매장에서 구입한 적도 있었다. 아이쿱은 가입시에 월회비를 내는 제도가 있다. 처음 가입한 회원들은 회비에 대한 부담이 있지만, 소비가 많아질수록 회원가 할인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주차에 대한 부담도 없고, 한번가면 웬만한 것은 다 구매할 정도로 매장이 커서 이전보다는 편하게 생협을 이용하고 있다.

2018년 내가 사는 시대는 이 여러 가지 공간이 혼재되어 있다. 이제 동네 구멍가게는 사라지고 시장은 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대형마트와 슈퍼마켓과 편의점은 이웃사촌처럼 가까이 자리 잡고 있다. 생협이 이런 다양한 소비채널 중에서 차별화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생협 매장이 생협 자체의 물품뿐만 아니라, 초기에 유럽의 커피하우스처럼 지역에 설립된 협동조합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누군가 그 지역의 협동조합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다면, 1차적으로 생협을 찾아가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곳에 가면 언제든 지역 협동조합의 소식지를 읽을 수 있고, 협동조합의 팸플릿을 얻을 수 있고, 협동조합에 대한 정보가 있다면, 더 많은 협동조합인들이 생협을 찾게 될 것이다. 그렇게 생협 매장을 이용하다보면, 자연스레 신규 조합원이 될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

둘째, 생협 매장은 친환경 먹거리와 물품 외에 추가적인 경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상품의 거래, 정보의 교류와 함께 추가적으로 생협과 협동조합간 상호학습이 가능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고, 사업을 연대하는 기능이 탑재되어야 한다. 전국의 생협 매장이 커피음료처럼 다양한 변화를 통해 외연을 확장한다면, 생협의 성장은 물론, 협동경제가 성장하는 시대가 더 빨리 올수 있을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협동조합을 이용하는 협동경제시대는 이미 우리 앞에 와있다. 다만 멀리 퍼지지 않았을 뿐이다. 이제 소비의 중심이 대형마트에서 생협으로 옮겨진 나는 생협이 많이 밀집해 있는 곳이 또 하나의 역세권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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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 서울지역협동조합협의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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