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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경제와 협동하자②]북한의 사회적 경제(上)
  • 일본 테이쿄대학 이찬우교수
  • 승인 2018.09.1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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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경제와 사회적 경제

북한경제를 이해하는 첫 항목으로 '사회적 경제'를 다루는 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왜냐하면 북한의 사회적 경제를 주제로 다루는 글이 아마도 처음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 분야가 다루어지지 못한 이유는 북한의 경제실태가 잘 알려져있지 않기 때문이지만, 사회주의경제와 사회적 경제를 구분하지 못하거나 사회적 경제가 비주류적인 부분이라고 인식하는 경향도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여기서는 사회주의경제체제인 북한에서 사회적 경제의 실태와 그 의미를 찾아봄으로써 북한 경제를 이해하는 돌파구로 삼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경제체제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사회민주주의로 구분할 수 있다. 자본주의경제는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를 기초로 하여 이윤추구생산과 자유노동고용 및 시장가격교환 그리고 정부의 이윤재분배가 특징이다. 반면 사회주의경제는 생산수단의 공적소유를 기초로 사회적필요생산과 완전고용 및 국정가격교환 그리고 국가의 국민복지책임이 특징이다. 사회주의경제는 스스로 자본주의경제의 소유모순을 극복한 다음단계의 발전된 체제라고 한다. 그런데 양측 다 현실세계에서 발전하는 가운데 문제를 드러내었다. 현실자본주의는 실업문제, 빈부격차, 지역쇠락, 환경오염 문제 등의 문제를 낳았고 자본주의 미발전 단계에서 나타난 현실사회주의는 획일주의, 생산공급부족과 정부의 국민복지미실행 등의 문제를 낳았다.

로치데일 선구자들(출처-위키피아)

자본주의경제의 상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중의 하나로 현실 자본주의 세계에서 태어난 것이 사회적 경제이다. 그 시작은 19세기초 유럽과 미국에서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 등의 형태로 등장했다고 한다. 한국에선 1920년대이후의 소비조합, 농민협동조합 등을 거쳐 해방후 신용협동조합, 생활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자활기업 등 각종 조직형태로 성장하고 있다. 생산 및 소비 참여자(농민, 노동자, 상공인, 주민 등)의 자조와 상부상조가 활동의 중심에 있다.

한편 현실사회주의세계에서 나온 대안으로는 러시아와 동유럽처럼 자본주의경제로 체제전환하거나, 중국처럼 '사회주의초급단계론'이라는 이론하에 사회주의시장경제라는 절충형 체제가 있다. 그리고 이미 사라진 나라인 유고슬라비아에서 '사회소유제'라는 이론하에 '노동자자주관리체제'가 있었다. 현재까지 사회주의원칙을 지킨다고 하는 나라는 쿠바와 북한이다.

쿠바의 구 국회의사당 '까삐똘리오'

이렇게 보면 자본주의경제에서 대안 또는 보완 개념으로 나온 사회적 경제가 사회주의경제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특히 북한은 “생산수단의 주인인 인민대중의 지위는 국가적 소유지배를 철저히 함으로써만 담보된다”며 여타 나라에서의 변화이론을 사적소유로 가는 문을 여는 '수정주의'라고 비판하는 입장이다.(김응천, “사회주의소유의 본질을 왜곡하는 현대수정주의리론”, 과학백과사전출판사 『경제연구』2018년 2호)

그런데 사회적 경제의 개념을, 생산 및 소비 과정에 참여하는 참여자가 “이윤보다 사회적/환경적 목표를 우선으로 삼고, 경제활동에서 민주적 자치와 적극적 시민의식의 관점에서 경제적 실천을 성찰함으로써 경제에 대한 사회적 통제력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유엔사회개발연구소장 폴 래드의 기조연설, '2018사회적경제 국제포럼')이라고 정의하면 자본주의경제든 사회주의경제든 적용가능한 개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사회적 통제력을 “국가적 소유지배를 통한 통제”로 보면 사회주의경제이며 “시민사회의 자주적인 통제”로 보면 사회적 경제로 이해할 수 있다.

사회주의경제에서 국가의 기능이 제힘을 발휘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대안적 기능이 하나는 시장기능이며 다른 하나가 사회적 경제기능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많은 연구는 시장에 초점을 맞추어 시장화 또는 시장경제화로 국가지배가 약화되어가는 것을 필연적인 방향으로 설정하고 분석하고 있다. 그런데 주목해야할 다른 하나인 사회적 경제기능에 대해서는 그 실태가 시장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사유화로 가는 시장이 아니라 공유경제를 보완하는 사회적 경제가 북한 사회주의경제에서 존재하고 있음을 살펴본다.

북한의 협동농장(출처-위키피아)

사회주의제도 속에 편입된 사회적 경제 : 협동적 소유

<사회주의로의 초기 전환시기>

북한정권 수립후 북한경제는 사회주의경제로 전환시기(1960년전후까지), 사회주의경제 전면화시기(1980년대까지), 그리고 사회주의경제의 재조정시기(190년대이후)를 거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70년간 북한경제에서 국가의 기능이 상대적으로 약한 때는 사회주의경제가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던 초기 전환시기와 현재의 재조정시기라 할 수 있다. 먼저 초기 전환시기의 사회적 경제에 대해 알아본다.

해방후 쏘련 당국의 조사(쏘련외무성공무서관자료, “1946년의 상업과 재정금융”, “북한산업자료”, 기무라 히테히코 편역『구쏘련의 북한경제자료집(1946-1965)』에서 재인용)에 따르면 1946년 북한의 잠정추계 인구 약 1000만명 가운데 노동자/사무원 및 그 부양가족이 230만명, 농민과 그 부양가족이 570만명, 그리고 개인상공업자등이 220만명으로 나온다. 당시의 남한보다 더 노동자/상공인의 수가 많아 비교적 상공업화가 진행된 사회가 북한이었다. 초기 전환시기에는 각기 인구의 약20%와 60%를 차지하는 자본주의적 상공인과 농민을 사회주의적으로 개조해가는 것이 국가적 과제였다. 

그 방안으로 나온 것이 급격한 국유화가 아니라 소비품생산과 상품유통  및 농업생산 부문에서 협동경리라는 이름으로 생산수단과 자금을 통합하여 협동적 소유로 운영하는 방안이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이 협동조합이요 협동농장이었다. 기업가들의 생산협동조합이 업종별로 조직되었고(1948년9월기준 208조합, 조합원수31,500명),  상인들의 판매협동조합 또는 생산판매협동조합, 편의협동조합, 어민들의 수산협동조합 들이 제도로서 보장되고 농촌은 협동농장으로 개조되었다. 협동적 소유에 기초한 상업부문은 해방전부터 존재하였고 해방후에 증가한 소비조합(생활협동조합의 원류)이 상품판매과 수매를 통해 도시와 농촌의 경제적 연계를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당시 소비조합의 주요한 활동은 소금, 천, 신발, 성냥 등과 같은 소비상품 공급뿐 아니라, 현금 또는 신용에 의한 비료 배급과 판매, 곡물의 조달, 보관, 공급, 그리고 사회급양과 자체가공사업 등을 정부의 재정지원 없이 자주적으로 진행하는 것이었다. 1946년에 약 160만명의 소비조합원이 있었고 5월20일에 평양에서 소비조합 제1차총회를 개최하여 민주적 선거를 통해 지도기관인 '북조선소비조합 중앙관리위원회'를 조직하였다. 1948년에는 소비조합원이 520만명으로 북한인구의 절반이 참여하는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조합원 구성은 노동자 10.5%, 농민 69.7%, 사무원 6.2%, 수공업자 4.7%, 기타 18.9%였다. 그런데 1949년부터 도시와 노동자500명이상 공업지대는 국영상점이 식량과 상품을 배급하는 것으로 전환하고 농촌과 500명이하 공업지대에서 소비조합이 식량과 상품공급을 담당하는 것으로 됨으로써 소비조합은 농촌중심으로 변화되었다. 협동조합의 상업거래액은 북한 총상업거래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46년 4.3%에서 48년에 27.2%로 급증했다. 반면 국영상업부문은 같은 기간에 2.3%에서 10.9%로 증가했고, 민간상업부문은 91.5%에서 61.8%로 감소했다(1958년에 개인상공업 폐지).

북한의 협동조합들을 시민사회의 자주적인 협동이라는 시각으로 보면 사회적 경제의 부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정책은 시민사회의 자주성을 국영경리의 보조적인 지위로 설정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국영경리 중심의 사회주의경제로 전환하는 정책에 따라 협동적 소유 부문을 인정하면서도 약화시켜 갔다. 농촌의 소비조합은 1958년에 협동농장직매소로 개편되고 도시의 소비조합은 1964년에 국가상업체계로 통합되었다. 

이는 북한이 헌법으로 협동적 소유는 “소생산품 생산을 기초로 하는 사적소유로부터 전인민적 소유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완전한 소유형태이므로 점차 전인민적 소유로 전환시켜나간다”(제23조)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기능하고 있는 협동적 소유의 협동단체는 협동농장을 제외하고 생산협동조합과 생산판매협동조합, 편의협동조합(식료품 가공 또는 생활용품 수리의 생활편의, 이발 또는 미용 등의 위생편의) 그리고 수산협동조합이다. 이들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상점과 협동농장직매소가 북한 상업유통에서 협동경리가 담당하는 축이다.

애국열사릉의 기업인 송대관 선생 묘비(출처-사진기자 유수)

민족자본가가 만든 생산협동조합으로 크게 성공한 사례로는 기업인 송대관(1912-1994)이었다.(김지형, “나의 아버지는 사회주의 백만장자였다” 『민족21』40호,2004년 7월) 생몰년으로 봐서 송대관씨는 김일성 주석보다 몇달 늦게 태어나고 몇달 먼저 사망하였으니 김일성 주석과 완전히 동시대를 살아간 기업인이었다. 송사장은 해방후 연필공장, 유리제품공장, 신발고무공장 등을 세워 큰 돈을 벌었다. 개인기업가 송사장은 전쟁시기 나라에 재산을 바친 애국적 상공인으로 불렸다. 

그러다 1956년 노동당 제3차대회에서 채택된 “자본주의적 상공업의 사회주의적 개조방침”이 나오면서, 송사장은 전재산을 내어 평양공업품생산협동조합을 세우고 관리위원장이 되었다. 이 생산협동조합은 주체사상탑의 유리를 공급하는 등 평양 건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1959년 김일성수상으로 부터 안경을 만들라는 요청을 받고 평양공업품생산협동조합을 1961년에 평양광학유리생산협동조합으로 개칭하고 안경알과 각종 렌즈를 생산하면서 북한 안경산업 발전의 장본인이 되었다. 김일성 주석은 송대관씨의 협동조합에서 생산한 안경을 각별히 사용하였는데 1984년 유럽방문시 쓴 안경이 광학유리생산협동조합에서 생산한 제품이었다. 기업인으로는 유일하게 애국열사릉에 안장된 분이 송대관씨이다.

1984년, 평양광학유리생산협동조합에서 만든 안경을 착용한 김일성 북한 주석이 한스 모드로프 드레스덴시 공산당 서기장과 만나고 있다.(출처-독일연방 문서보관소 홈페이지)

송대관씨의 딸 송성희씨는 의사였는데 아버지의 대를 잇기 위해서 1980년대말에 모란편의협동조합에서 안경수리공 일을 배워 1992년경에 국영상점인 평양안경상점을 지배인으로 운영하게 된다. 현재 평양안경상점은 북한에서 가장 큰 안경점이다. 부친의 협동조합시대에서 딸의 국영상점시대로 전환되는 가족사는 북한 경제사의 단편이다.

북한에서 사회주의경제로의 초기 전환시기에는 협동조합을 중심으로한 사회적 경제가 북한경제의 중요한 한 축으로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의 헌법에서 생산수단을 소유할 수 있는 곳이 국가와 사회협동단체로 규정된 것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북한에 협동조합은 지금도 존재한다. 이들에게 현시대 국제사회의 협동조합운동을 소개하고 각국의 협동조합과 협력하도록 하는 것은 앞으로 한국의 협동조합 단체가 추진할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다음편 기획연재[북한경제와 협동하자]는 '북한의 사회적 경제(下) : 사회주의경제 재조정시기의 사회적경제'가 주제로 다뤄질 예정입니다.

일본 테이쿄대학 이찬우교수  webmaster@lifei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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