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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경제와 협동하자①]경제로 돌아선 북한, 앞만보고 걸어라
  • 일본 테이쿄대학 이찬우교수
  • 승인 2018.09.11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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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BM없는 북한의 9.9절 행사

70년전인 1948년 9월9일은 북한이 평양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을 선포한 날이다. 이로써 그 한달 전인 8월15일에 서울에서 수립된 대한민국정부와 더불어 한반도는 두개의 나라로 분단된 채 지금에 이르고 있다. 남북은 상대방의 국가성을 부정하고 6.25라는 동족상잔도 치루었기 때문에 서로의 체제에 대한 반대가 자국의 국시가 되어있을 정도다. 그러면서도 1991년에는 유엔에 남북이 동시가입하고, 남북한 상호 체제인정과 상호불가침, 남북한 교류 및 협력 확대를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가 노태우정부시절 남북간에 채택된 바, 남북은 통일을 향한 과도기적 관계로 서로를 사실상 인정하고 있다.

사진 - abc news

북한은 정권수립 70년을 맞는 이번 9.9절 행사를 성대한 잔치행사로 치룬 듯하다. 원래 계획은 미국의 [체제위협]문제가 결정적으로 해소되어 관계국 정상들도 방북하는 성공의 축전을 마련하는 것이었겠지만, 북미간 관계가 북한의 생각대로 되지않은 탓에 조금은 위축되었으리라 짐작한다. 그러나 북한이 보여준 9.9절 행사 모습을 보면, 어두운 그림자가 없다. 소위 [제국주의의 압살책동]을 짓부수자는 결의에 찬 대외강경 정치구호가 사라지고, 번영과 발전 그리고 사회주의경제강국을 내세우고 있다. 그리고 열병식에선 작년에 위용을 자랑했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없었고 대신 한반도기와 꽃ㆍ풍선의 위용이 컸다.

북한이 2018년에 선택한 길은 [우리의 후대에는 전쟁이 없으리]라는 길이고 이를 위해 작년에 확보한 [핵무력완성]을 포기하는 댓가로 평화와 번영을 얻어내겠다는 전략게임이다.

경제집중노선으로 

사회주의경제체제를 표방하는 정권이 한반도에서 70년을 살아내는 동안 북한사회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일제강점으로부터 독립한 나라로서 민족국가의 발전에 대한 꿈을 사회주의에 의탁했던 북한 사람들은 그 사회주의가 친일매판세력을 몰아내고 노동자와 농민 지식인을 평등한 민족구성원으로 대우하고 삶을 발전시켜줄 것으로 믿었다. 국가가 인민의 의식주와 교육 그리고 건강까지 보장하는 체제에 대한 믿음은 북한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당대 국제사회의 한 블럭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신념은 대체로 1970년대까지는 북한에서 의심받을 이유가 없었다. 6.25전쟁으로 산업시설이 미군의 폭격으로 인해 대거 파괴되고 약1000만명 인구중 약70만명 사망, 180만명 부상, 80만명 실종으로 인구의 30%이상이 직접적 피해를 입었고, 인구통계로도 1955년 850만명(남자 400만명, 여자 450만명)으로 감소하여 남성노동력이 급감한 북한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주의적 집단주의는 인민의 삶을 책임지는 보루였을 터이기에 1958년까지 전국의 농촌이 협동농장으로 집단화되는데 그 무슨 저항이 있을 수 없었다. 농촌의 여성들은 서로 도와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의 공장 기업소*도 국가가 생산을 책임지는 국영기업이 대부분으로 노동자의 삶도 국가가 보살펴 주어야 했다. 1960년대에 남북간의 체제경쟁으로 군사노선을 중시하게 된 것(국방경제병진노선)도 사회운영을 군대처럼 집단주의로 하는 것을 촉진했다. 그래도 북한 사람들은 폐허에서 일어서서 그런대로 살만한 사회주의를 만들어 나갔고 생활 수준은 당시의 남한보다 나은 수준으로 되었다고 한다.

기업소 : [북한어] <경제> 생산, 교통, 운수, 유통 따위의 경제 분야에서 독립적으로 경영 활동을 진행하는 사업체.

그런데 1970년대 국제사회가 동서화해라는 데탕트시대가 되면서 북한도 서유럽, 일본 등과의 무역을 발전시켰다. 무역의 내용은 산업근대화를 위한 설비 플랜트를 유럽이나 일본에서 수입하고 광물 수출로 번 외화로 갚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오일쇼크로 광물의 가격이 폭락하면서 북한이 외화를 벌지못하여 무역대금을 갚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 시기 이후로 북한은 지금까지 중채무국으로 되어있다.

산업근대화를 위한 설비개체와 기술혁신이 재대로 이루어지지 못한채로 1980년대를 지나면서 설비노후화, 생산감소, 집단주의의 부정적 측면인 평균주의 병폐가 나타났다. 그러나 더 중요하게는 80년대의 신냉전시대 도래로 북한이 안전보장과 체제경쟁에 투입해야할 군사비와 선전비용의 압박이 가중되었다는 점이다. 88년 올림픽에 대응하여 개최한 89년세계청년학생축전은 북한경제에 상당한 부담이 되었다고 한다.

1990년대는 북한에게 악몽이었다. 사회주의권 붕괴, 중국과 러시아가 한국과 국교수립, 북일관계정상화 실패, 그리고 김일성주석 사망. 그후 몰아닥친 경제위기, 특히 식량위기는 약 20만명정도(200만명이 아님)의 아사자를 내는 참사로 이어졌다. 김정일총비서가 꺼내든 카드는 불에는 불, 즉 맞불작전이었다. 이름하여 [선군정치]로 군대가 국가운영에 앞장서서 나라를 보위하는 것이 우선이고 이를 위해 [핵개발]을 선택하고 경제는 후순위로 미는 것이었다. 재래식 무기체계로는 승산이 없는 것을 안 북한지도부의 합리적 선택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그 후과는 컸다. 미국의 압력은 더욱 거세졌고 북일관계개선으로 얻을 식민지배청산금(배상금) 확보가 어려워졌으며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강화되었다.

2000년대 이후 북한정부는 인민생활에 대한 국가책임 부분을 줄이고 기업과 농장이 시장/무역을 통해 인민의 생활소비품을 생산/공급/판매/소비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시장체제(Market System)가 아닌 장마당기능(Market Function)을 양성화하는 것으로 국가의 물자공급부족의 위기를 넘겨왔다. 중국이 물자/상품의 공급원으로서 뒷마당에 존재한다는 것이 그나마 북한경제에 뒷심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개인들의 사실상 상업 및 제조행위가 확대되는데, 그 생존방식은 국영기업시스템의 틀 안에서 자율을 확보하고 이윤의 일부를 납세하는 방식이 통용되었다. 북한 정부는 소위 [계획과 시장의 불안정안 공존]으로 말할 수 있는 상황을 견디면서 2017년 [핵무력완성]까지 내달려왔다.

이제 북한은 지금까지 대내외적 고통을 각오하고 손에 쥔 핵무력을 테이블에 놓고 미국과 협상하고 있다. 남북간에 평화를 선언하고 전쟁을 하지말자고 약속하고 있다. 금년 4월 노동당제3차전원회의에서는 [핵경제병진노선]을 결속하고 경제집중노선으로 방향을 전환한 바 있다. 이제 북한은 70년만에 다시 1948년에 사회주의경제강국을 꿈꾸던 원점에 서있다고 할 수 있다.

사진 - 청와대 홈페이지

앞만 보고 걸어라

원점에 선 자는 돌아볼 뒤가 없다. 앞만 볼 뿐이다. 인민들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까. 원칙을 지키고 혁신을 이룬다고 했다. 원칙과 혁신 사이에 갈등이 없을 수 없다. 지금은 혁신을 이룰 때이다. 과거의 방법과 다른 방법을 찾아내고 경제를 일으켜 세워야한다. 그 방법을 찾는 일에 남북이 함께 협동하는 것이 한반도 민족경제가 같이 균형발전하고 번영하는 길이다. 그러기 위해선 남측도 북측을 잘 이해해야 한다. 알아야 협동도 된다. 앞으로 이 연재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북한경제와 협동하자] 다음 연재에서는 '북한의 사회적 경제'가 주제로 다뤄질 예정입니다. 

일본 테이쿄대학 이찬우교수  webmaster@lifei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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