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갔어도, 규제프리존은 건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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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갔어도, 규제프리존은 건재하다
[라이프인ㆍ생명안전시민넷 공동기획_안전칼럼] 장하나(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 환경운동연합 활동가, 전 국회의원, 생명안전 시민넷 운영위원)
  • 2018.09.07 11:32
  • by 장하나


근데 규제프리존이 뭐죠?

2016년 5월 30일 당시 새누리당 국회의원 122명 전원과 국민의당 소속 김관영, 김동철, 장병완 의원까지 총 125명이 공동발의한 <지역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프리존의 지정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에 등장하는 법령용어입니다. 규제프리존이란 지역전략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규제특혜를 적용하는 구역으로, 규제특례는 규제완화⦁배제⦁규제권한 이양 등을 뜻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규제는 암덩어리’, ‘규제는 쳐부숴야할 원수’, ‘모든 규제를 물에 빠뜨려서 떠오르는 것만 살려라(세월호 참사 후)’ 등 규제에 관한 원색적이고 폭력적인 어록을 남겼는데요. (최순실 씨가 써줬을까요?) 규제프리존법은 규제를 박살내고 말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확고한 신념과 의지가 고스란히 담긴 제정법 법안이었습니다.

박근혜 게이트의 몸통은 전경련입니다. 박근혜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통해 1천억 원대의 비자금(?)을 축적할 동안 전경련이 얻은 대가는 무엇일까요? 사업 귀재인 그들이 기대한 수익률은 대체 몇 퍼센트일까요? 저는 그들이 ‘기브’하고 나서 ‘테이크’하려던 것이 바로 규제프리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대체 어떤 법이기에 수 천 억의 가치가 있는지 궁금하신 분은 법안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법안의 제20조에서 제90조까지 70개 조항은 규제프리존 안에서 수 백 개의 현행법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내용이니까요. ☞ 규제프리존 특별법안 바로가기 bit.ly/2eGEAoY

제가 지난 19대 국회에서 의정활동을 하는 동안 확실히 깨달은 건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사람 잡는다는 사실입니다. 기업 활동에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 대한민국 정부는 온갖 규제를 풀어주고 또 풀어줬습니다. 겨우 남아있는 규제들도 유명무실했습니다. 명분은 늘 경제활성화, 경제살리기였죠.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은 나라를 밑바닥부터 뒤집어엎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취지로 해양경찰을 해체한다고도 했었죠. (이것도 최순실 씨 아이디어였을까요?)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다시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이 규제프리존법을 당론 발의한 것입니다.

규제 없는 사회란 안전벨트 없는 차, 속도 제한 없는 도로 같은 겁니다. 그 놈의 ‘성장’에 눈이 멀어, 우리는 이미 너무나 많은 소중한 생명들을 떠나보냈죠. 하지만 그 날 이후 우리는 잊지 않겠다고 다짐다고 또 다짐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사람이 먼저다’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지난 대선 때까지 지난 정권의 적폐라 부르던 규제프리존법을 제 손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2017년 10월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출범식에서 규제 샌드박스(Regulatory Sandbox, 신산업·신기술 분야에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을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시켜주는 제도) 도입을 언급한 게 발단이었죠.

대통령 발언 직후 국회에서 여야가 규제프리존법을 두고 협상을 한다는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고, 지난 정권 때 힘을 모아 규제프리존법을 막아냈던 시민사회단체들이 다시 모여 싸우게 되었죠. 국회 전반기에는 소관 상임위였던 기재위의 민주당 박광온 간사, 국민의당 김성식 간사 두 의원이 규제프리존법에 대한 반대의견이 확실해서 겨우 저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3월 민주당은 규제프리존법의 대안이라며 규제혁신 5법을 발의했습니다. 민주당의 규제 5법은 규제프리존법과 얼마나 다를까요? 정말 사람이 먼저라는 약속을 지키는 법일까요? 안심해도 될까요?

규제 5법 중 민주당 김경수 의원이 대표발의하고 총 33명의 의원이 공동발의한 <지역특화발전특구에 대한 규제특례법 전부개정법률안>을 보면 기존에 없던 ‘지역혁신성장특구’를  만들어서 규제특례를 주겠다는 것이 법안의 주된 내용인데요. 즉 규제프리존에서 지역혁신성장특구로 이름만 바꾼 민주당표 규제프리존법입니다. 그리고 네거티브 규제방식(명시적인 제한 및 금지사항 외에 모두 허용하는 방식)을 명문화한 규제프리존법 제4조(원칙허용 예외금지 규정 등)를 지역특구법 제4조(우선허용⦁사후규제 원칙 등)에서 말만 바꾸어 철저히 계승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했던가요? 왜 민주당이 하면 적폐가 아닌지 제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됩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그리고 민주당 국회의원님들, 잊지 않겠다던 그 약속을 상기해 보십시오. 양복 옷깃에 달고 다니던 노란 리본이 단지 액세서리는 아니었겠지요? ☞ 지역특구법 전부개정법안 바로가기 bit.ly/2LicnTA

저도 규제혁신이 필요하다는 걸 잘 압니다. 신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 불합리한 규제를 합리화하고, 특히 상용화하기 전 개발단계에 한해 규제를 완화해줌으로써 경쟁력이 확보된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규제혁신은 모험 또는 도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신기술을 개발하는 사업자가 풀어달라는 대로 규제를 다 풀어주는 건 더더욱 안 됩니다. 모두를 위한 규제혁신이 되려면 시민의 안전을 확보하고, 환경 피해가 없도록 철저하게 대비한 후에 그 외 나머지 규제와 제도들을 한시적으로 과감하게 면제해주는 것입니다. 민주당의 지역특구법 개정안에는 규제프리존법에서 볼 수 없던 내용이 있습니다. 바로 제4조제1항인데요. ‘누구든지 국가발전 및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하여 신기술을 활용한 사업을 할 수 있다. 다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신기술을 활용하는 사업이 국민의 생명⦁안전⦁환경을 저해하는 경우에는 이를 제한하여야 한다.’ 민주당은 바로 이 한 문장 때문에 규제프리존법과 다르니까 안심하고 믿어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특구법을 포함한 민주당의 규제혁신 5법을 반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법이 개정되면 국가와 지자체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환경을 저해하는 상황을 판단하고 제한해야 하는데, 저는 정부와 지방정부의 행정력을 그만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은 규제 5법을 강행하기 전에 입법을 반대하는 시민사회는 물론 안전분야 및 환경분야 전문가 집단과 함께 규제특례 시 벌어질 수 있는 부작용을 예측하고 예방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리고 규제특례 시 안전영향, 환경영향 등을 누가 어떻게 평가하고 규제완화의 범위를 결정할 것인지, 사전예방 제도의 법적 근거를 법안에 명시해야만 합니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2017년 산재사망률도 여전히 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했고, 지난해 10월에는 한 중증장애인이 지하철 신길역 휠체어리프트에서 추락해 사망했고, 올해 7월에는 어린이집 통학차량에 방치 감금된 4살 어린이가 하늘로 갔습니다. 저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와 진심을 의심하는 게 아닙니다. 누구보다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위해 설계된 제도와 관행을 바로잡는 게 하루아침에 될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직 나라가 나라다워진 게 아닌데 규제특례, 규제 샌드박스, 네거티브 규제를 지금 도입하면 사고 날 게 뻔하지 않습니까? 대통령이 바뀌었지 공무원이 바뀐 게 아닌데 광역시⦁도마다 우후죽순으로 규제프리존에 생기면 관리감독 할 인력과 기술은 있습니까?

규제 5법이 못미더운 이유는 더 있습니다. 민주당은 5개 법안 모두 제안이유에 4차 산업혁명을 언급하면서 마치 이 법이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데 꼭 필요한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결코 사실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법령용어로서 신기술은 ‘국내에서 최초로 개발된 기술 또는 기존 기술을 혁신적으로 개선·개량한 우수한 기술로서 경제적·기술적 파급효과가 크고 상용화시 제품의 품질과 성능을 현저히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을 말합니다. 즉 민주당의 규제 5법은 박근혜의 규제프리존법과 마찬가지로 1차⦁2차⦁3차 산업 가릴 것 없이 규제특례를 주는 법안들입니다. 그리고 민주당의 지역특구법 개정안은 규제프리존법이 규제프리존의 지정을 기획재정부 장관 직속 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한 것과 달리 지역혁신성장특구의 신청 및 지정고시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역할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게 또 눈속임입니다. 마치 지역특구법 개정이 중소벤처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개정안 4조1항에 스스로 밝혔듯이 ‘누구든지 국가발전 및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하여 신기술을 활용한 사업을 할 수 있다’는 게 법안의 본질입니다. 재벌 대기업도 신기술을 이용한 사업을 한다면 지역특구법과 규제특례의 모든 혜택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기획재정부 장관에 관련 권한을 일임한 규제프리존법과 달리 민주당의 지역특구법 개정안은 지역혁신성장특구 지정의 심의의결권을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지역혁신성장특구위원회가 갖도록 되어 있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단지 얼굴마담에 불과하다는 결정적인 증거죠. 중소벤처기업부는 신청서를 받고, 심의의결된 결과를 발표(지정고시)하고 회의자료를 만드는 역할만 합니다. 이 법안은 중소벤처기업만을 위한 법이 결코 아닌데 그런 척만 하고 있는 거죠. 이런 식으로 박근혜 적폐법을 4차 산업혁명과 중소벤처기업을 위한 법으로 둔갑 시키려는 잔머리가 참 괘씸할 뿐입니다.

규제프리존법과 무관하게 지난 정권은 규제 기요틴(규제 단두대)을 시행했고 현 정부도 규제혁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규제 5법 없이도 규제를 없애는 방법은 많으니까요. 행정편의나 부처 칸막이 때문에 시민만 피해를 보는 규제들도 물론 많습니다. 그런 규제가 혁신의 대상이죠. 그런데 제가 지난주 생명안전 시민넷 회의에 가서 기가 막힌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파트 방범카메라 관련 규제가 풀려서 오는 10월부터 CCTV(폐쇄회로티브이) 외에 네트워크 카메라(클라우드 캠)도 사용할 수 있게 됐다는 겁니다. 국무조정실은 국민건의로 규제빗장이 풀린 사례라고 홍보까지 하는데, 그 국민이 SK브로드밴드라는 대기업이라는 사실은 굳이 알리지 않고 있네요.

네트워크 카메라의 장점은 아파트 방범카메라에 담긴 내용을 입주자의 스마트폰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건데요. 주차장, 엘리베이터 등 아파트 공용공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수 천 명의 입주자들이 볼 수 있다면 범죄에 활용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몇 층에 누가 살고 몇 시쯤 집이 비는지, 어르신이나 어린아이만 집에 있는 시간대를 유추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네트워크 카메라가 설치되면 방법카메라에 찍힌 내용이 경비실이나 관리사무소의 저장매체에 남는 게 아니라 인터넷 망을 통해서 인터넷 회사의 서버에 저장되는 방식인데, 정보 유출의 위험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현 정부도 재벌 대기업이 부탁하면 이렇게 안일하게 규제를 풀어주고 그걸 잘했다고 홍보까지 하는 마당에 민주당의 규제 5법을 속편하게 믿을 수가 없습니다. (관련 안전칼럼 :  주민안전을 위해 설치하는 '네트워크 카메라'가 안전을 위협한다)

정권도 바뀌었는데 왜 그리 까칠하게 구냐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민주당 당원이 그러면 쓰냐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박근혜 때보다 더 막기 힘든 것 같다, 이제 포기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오늘도 전철 안에서 나 말고도 여러 사람들 가방에 매달린 노란 리본을 보았습니다. 그러니 저라도 이렇게 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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