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노동운동과 사회적경제가 만난 노동공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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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노동운동과 사회적경제가 만난 노동공제회
한석호 전태일 50주기 사업위원장(민주노총 전 사회연대위원장) 인터뷰
  • 2018.08.16 18:38
  • by 공정경 기자

노동운동과 사회적경제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노동운동과 사회적경제 접목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00만 노동자 중 100인 이하 사업장 노동자가 1500만명이고, 이 중 30인 이하 사업장 노동자가 1100만명이다. 노동조합과 함께하지 못하는 노동자가 1500만명(75%)이다. 1500만명이 노동조합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의미다. 1500만이라는 숫자는 한국노동운동에 큰 충격을 주었고 반성하게 했다.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석호 전태일 50주기 사업위원장은 민주노총 전 사회연대위원장이다. 치열하게 노동운동을 한 만큼 고민도 깊었다. 가족까지 내팽개친 채 인생을 걸고 노동운동가로 살았는데 도대체 이게 뭔가?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인가? 방치돼 있는 이 1500만명의 노동자를 어떻게 조직해야 하나...한 위원장은 한국노동운동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다가 사회적경제를 만났다. 2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사회적경제를 공부했고 그러면서 많은 힌트를 얻었다. 

한석호 사업위원장은 지난해부터 봉제노조를 준비하는 사람들과 함께 봉제노동자공제회를 추진하고 있다. 노동운동과 사회적경제를 어떻게 접목하려고 하는지, 봉제노동자공제회는 어떤 의미인지 듣기 위해 지난 9일 전태일재단에서 한 위원장을 만났다.

 
- 봉제노동자공제회는 어느 정도까지 진행됐나?

지난해 봉제사업단을 구성해서 올해는 봉제노조를 만들 예정이다. 봉제공제회는 노동조합과 형식적으로는 따로 가지만 내용적으로 결합되는 형태다. 11월 27일 봉제노조 창립을 목표로 작업하고 있다. 11월 27일은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가 분신하고 나서 이소선 어머니와 친구들, 평화시장 노동자들이 청계피복노조를 만든 날이다. 청계피복노조 창립일. 

'전태일' 하면 평화시장, 봉제노동자, 재단사라는 상징이 있고, 전태일 열사의 뜻에 따르자 해서 이날에 맞춰 봉제노조를 창립한다. 봉제사업단은 공제TF를 만들어서 논의를 시작했다. 공제TF는 전태일재단,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화섬식품노조), 서울노동권익센터, 사회적경제가 주축이 돼서 하고 있고 내년 안에 만들 예정이다.

- 봉제노동자공제회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서울에 봉제노동자가 9만명 정도 있다. 대부분 영세사업장이고 혼자 일하는 사람부터 2~3명, 5명, 많아 봐야 열 명이다.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고용관계가 아닌 가족사업 형태를 띠는 등 열악한 경우가 많다. 이런 사업장은 전통적 방식으로는 노동조합 결성이 어렵다. 전통적 방식이란 2인 이상이 해당 사업장에서 노조를 만들고 투쟁하고 노사 간에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이를 통해 임금인상도 하고 노동조건도 개선하고 고용도 지키는 방식이다. 두 명, 세 명, 다섯 명 있는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에게는 이런 방식이 맞지 않는다.

첫 번째 이유는, 이런 사업장은 사장이나 노동자나 비슷비슷하다. "사장할래, 직원할래?" 라고 물으면 "미쳤냐, 사장하게?"라고 답하는 경우가 많다. 납품해도 돈이 제때제때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까 사장은 돈을 빌려서 겨우겨우 월급 줘야지, 일거리 따와야지, 납품해야지...일은 더 많은데 평직원보다 돈을 더 버는 경우도 거의 없지...이러다보니 자본과 노동의 대립 구도로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두 번째는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어서 사장이랑 싸워봐야 얻을 게 없다는 것을 안다. 사장 집에 숟가락이 몇 개고, 빚이 얼마고, 월급날마다 허덕이는 거 뻔히 알고 있는데 이런 사장한테 노조 만들어서 투쟁하고 싸운다? 싸워봐야 나올 게 없다는 것을 아니까 노조를 만들자고 하면 왜 만들어야 하는지 되려 묻는다. 

세 번째는 영세사업장은 인간적 유대감이 매우 크다. 거실만 한 공간에서 기계 몇 대 갔다 놓고 형, 동생, 이모, 삼촌, 누구야, 이러면서 일한다. 사장 따로 직원 따로가 아니다. 이런 곳에 대고 지금부터 노조 만들어서 안면몰수하고 투쟁하자? 이게 가능하겠나. 차라리 내가 월급 적게 받고 말지, 내가 어떻게 쟤하고 싸우냐, 이러지.

현재 전체 노동자가 2000만명이고 그중 10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가 450~500만명 정도다. 500만명이라고 치고, 100인 이하 사업장 노동자가 1500만명이고 30인 이하 사업장 노동자가 1100만명이다. 1100만명의 노동조합 가입률이 0.1%다. 만여 명 정도만 노동조합 조합원이다. 한국의 노동운동이 그동안 잘못해왔다. 이들을 조직하고 노동조합에 가입시켰어야 했는데 하지 못했다. 기존의 전략은 앞서 말한 이유로 이들을 담아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

노동조합을 만들면 조합원들에게 조합비를 걷는다.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조합비를 걷는다는 것은 노조가 나서서 조합원들의 처우를 개선해준다는 의미다. 큰 사업장은 노동조합이 임금인상, 단체협약, 고용보장, 노동조건 개선, 사내복지 개선 등의 투쟁을 다 해준다. 하지만 영세사업장 노동자에게는 어떤 혜택을 줄 수 있을까? 임금인상 투쟁해봤자 나올 것도 없고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해봤자 되는 것도 아니고, 이동노동 형태다 보니 평생 고용 개념도 맞지 않는다. 노동조합에 가입하면 뭔가 혜택을 줘야 하는데 기존의 방식으로는 줄 수 있는 혜택이 없다. 그래서 공제회, 사회적경제방식의 혜택을 생각했다.


- 어떤 혜택들이 가능한가?

어린이집을 만들어서 조합원의 자녀들이 일반어린이집보다 저렴하게 다니거나, 학원 보낼 형편이 안 되니까 대안학원을 만들어서 조합원의 자녀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하거나, 상조 서비스를 하거나, 국내 공정여행 등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제주도도 못 가본 사람들이 아주 많다. 가족들과 제주도 한 번 가는 게 꿈이다. 제주도를 가고 싶어도 여행사를 통하면 너무 비싸고 저가항공이 뭔지도 모르고 방 하나 얻는 것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부지기 수다. 공정여행사를 통해서 조합원들이 저렴하고 의미 있게 가족여행을 하면 얼마나 좋겠나. 

또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4대 보험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4대 보험이 안 돼도 화를 내지 않는다. 당장 매달 보험료가 안 나가니까 오히려 좋아하고, 그거 내면 뭐하냐고 생각한다. 노동공제회에 가입하면 이렇게 4대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정부나 지자체 지원을 통해서 4대보험 지원도 가능하다. 공제회와 지자체가 같이 해서 영세사업장에 대해 작업장 개선도 할 수 있다. 미래의 영역이 무한하다고 생각한다.

공제회가 굴러가려면 규모화가 중요하다. 봉제노동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인쇄, 제화, 청년알바노동자, 귀금속, 콜센터, 식당노동자 등 서울에 있는 노동자들이 대부분 영세사업장에서 일한다. 공제회가 그럭저럭 굴러가려면 5만명 정도는 있어야 한다. 10만명 정도가 되면 더욱 빨리 확대될 수 있다.

현재 법적으로 노동공제회는 불가능하다. 노조법에 따라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의 후생복지를 위해 일정한 재정사업을 할 수 있게 돼 있다. 후원주점이나 물품을 파는 정도다. 그 장벽을 넘어야 한다. 생협법에 보면 연합회 차원에서는 공제를 할 수 있다. 노동조합도 연합조직 차원에서는 인정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이야기하고 있다. 지역생협이 모여 연합회를 만들 듯, 공제연합을 만들어서 봉제공제, 식당공제, 제화공제, 인쇄공제, 주얼리공제, 콜센터공제, 동대문공제, 남대문공제 등 업종별, 지역별 공제로 나눠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플랫폼 노동자들이 계속 많아지고 있다. 공제회가 노동운동의 새로운 길이라고 생각하나?

플랫폼 노동자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100인 이상 사업장은 점점 더 줄어들 거다. 400만 300만 200만...나머지는 계속 플랫폼화 되고 영세화 된다. 삼성전자 평택공장이 단일로는 세계 최고의 반도체 공장이다. 그 공장안에 노동자들이 없다. SK도 마찬가지고 지금부터는 공장 안에 노동자가 없다. 기계 관리하는 사람만 있을 뿐. 그러면 이 노동자들을 어떤 방식으로 묶을까 고민했을 때 공제회방식이 노동운동의 새로운 21세기 모델이 될 수 있다. 공제회는 형식은 노동공제회이고 내용은 공제노조다. 서비스만 제공하는 기존의 교원공제, 군인공제와 달리, 동네별로 사업장별로 골목별로 모임을 만들어 생활연대를 하고 상부상조하면서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공제노조다.

18세기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노동운동도 생겼는데 처음에는 공제회로 출발했다. 그러다가 노동조합, 정당으로 발전하면서 공제회가 악세서리처럼 부차적으로 변했다. 산업화 방향과 노동시장의 변화추이를 보면서 다시 공제회를 모색해야 할 때가 오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노동공제가 성공하려면 3대 중심축이 있어야 한다. 노동조합, 사회적경제, 지역풀뿌리조직. 거기에 정부와 지자체의 공조가 필요하고, 각종 업종의 협회도 같이 해야 한다.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노동운동하는 사람들은 공제회, 사회적경제를 개량주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컸다. 민주노총이 30인 이하 사업장 1100만명의 노동자를 조직해야 하는 과제가 있기에 공제회 방식을 비롯해 다양한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사회적경제도 노동운동과 결합해야 훨씬 크게 성장할 수 있다. 퀘벡이든 프랑스든 사회적경제 선진국들을 보면 다 노동운동과 결합해서 커진 경우다. 노동조합과 사회적경제는 기존의 망들을 다 가지고 있다. 같이 결합하면 다양한 사업과 서비스를 통해 정말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경제 차원에서도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주체로서 함께하면 좋겠다.

이 공제회가 3년 5년 잘 가면 유럽이나 퀘벡 부럽지 않은 사회적금융도 만들어낼 수 있다. 공제회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면 은행에 저축하듯이 조합원들이 공제회에 저축도 할 거다. 이래야지 한국사회가 바뀔 수 있다. 재벌과 싸우자고 하면서 콩나물까지 재벌 것을 먹는다. 잠자리, 먹을거리, 교육, 의료, 금융, 노후까지 다 재벌과 자본주의 중심시스템 안에 살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한국의 노동운동이 그 대안을 모색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노동공제에 대한 고민은 단순히 실용적 차원에서의 고민이 아니다. 한국 노동운동의 노선이 전환돼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 결국 노동공제회가 불안정노동자, 비정규직, 영세사업장노동자 등 다양한 유형의 노동자를 다 아우를 수 있겠다.

노동이 양극화돼있다. 같은 노동자라도 해마다 가족여행을 해외로 나가는 노동자 집안과 제주도 가족여행이 평생 소망인 노동자 집안이 같을 수는 없다. 단순히 해외여행, 소망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의 학원비, 신발, 외식, 문화생활 등 숱한 실질적 삶의 격차가 있다. 단순히 임금의 격차가 아니라 그 가족, 특히 자식들의 격차다.

노동공제회는 노동조합 사각지대에 있는 전체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다. 이게 전태일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전태일의 정신은 밑바닥에 있었다. 전태일은 당시 1급 재단사였다. 미싱사가 피를 토하든 말든, 시다가 죽든 말든 신경 안 쓰고 '나도 사장 돼야지, 돈 많이 벌어야지' 했으면 지금쯤 의류회사 하나 쯤은 가지고 있었을 거다. 머리가 비상하고 불굴의 의지도 있었으니 빌딩도 사고 돈도 많이 벌었을 거다. 실제 그때 재단사 했던 친구들을 보면 의류사업으로 빌딩을 구입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전태일은 자기 밑을 보면서 살았다. 노동법, 근로기준법을 제대로 지키면서 서로 간에 인간답게 살아가는 기업, 모범기업을 꿈꿨다. 내 눈을 팔아서라도 모범기업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가칭 태일피복이라는 그 모범기업을 보면 사회적경제기업과 유사하다. 전태일 열사가 살아계셨다면 아마 사회적경제의 큰형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공제회의 정신은 바로 전태일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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