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축사를 기억하고, 정부의 분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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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축사를 기억하고, 정부의 분발을 기대한다.
[안전사회시민네트워크(주)·라이프인_안전 칼럼] 강문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총장)
  • 2017.07.25 14:13
  • by 라이프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 3. 있은 산업안전보건의 날 기념식에서 영상으로 축사를 하였다. 산업안전보건의 날은 매년 7월 첫째 주 월요일로 지정되어 있고, 이 날 전국 각지에서 기념식이 열린다. 역대 산업안전보건의 날 기념식에서 대통령이 직접으로든 영상으로든 축사를 한 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위 날 기념식에서 대통령이 영상으로나마 축사를 한 것부터 이례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날 축사가 주목을 받은 것은 비단 대통령이 위 기념식에서 처음으로 축사를 했다는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그 내용이 다소 파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문대통령은 위 축사에서 “그 어떤 것도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보다 우선 될 수 없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밝히면서 “열악한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위험을 떠맡기는 위험의 외주화”가 만연해 있는 현실을 개탄하였다. 그리고는 “지난 5. 1.과 22일 거제와 남양주에서 발생한 크레인 사고로 모두 아홉 분의 고귀한 생명이 희생”되었음을 상기시켰다. 산업재해가 “한 사람의 노동자만이 아니라 가족과 동료 지역공동체의 삶까지 파괴하는 사회적 재난”이라는 점도 분명히 하였고 뒤이어 “산업안전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고 정부가 “제도는 물론 관행까지 바꿀 수 있는 근본적인 개선방안을 찾겠다”고 다짐하였다.
 

문대통령이 밝힌 ‘근본적인 개선방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생명과 안전에 대한 책임을 외주화 하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하겠다.”

둘째, “파견이나 용역 노동자라는 이유로 안전에서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셋째,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사업장은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모든 작업을 중지하도록 하겠다.”

넷째, “대형 인명 사고의 경우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겠다.”

문대통령은 마지막으로 “정부는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안전을 피부로 느낄 때까지 모든 노력을 다 할 것”임을 재차 다짐하였다.
 

위 축사의 내용은 산업안전 부문 활동가들이 늘 입에 달고 다니며 주장하는 내용들 중의 일부이다. 그러니 산업안전 부문 활동가들에게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러나 위 축사는 산업안전 부문 활동가들에게도 놀라움을 안겼는데, 대통령이 활동가들이 주장하던 말을 그대로 옮겼기 때문이다. 쇠귀에 경 읽기 같은 정부가 갑자기 경을 읊어댔다고나 할까?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은 정부의 수장으로서 정부가 마땅히 다다라야 할 수준을 격상시켰다. 갑작스러운 진전이 활동가들을 순간 혼란스럽게 하였지만 사실 산업안전 부문에서의 진전은 시급히 그리고 절실히 요청되던 것이었다. 지금까지 있은 수많은 노동자들의 죽음과 그 죽음을 모른 체 할 수 없었던 활동가들의 분투가 쌓여 끝내 여기까지 왔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그리고 대통령의 축사 내용 중 따져봐야 할 것도 있고 후속조치를 기다려봐야 할 것도 있다. 대통령이 선언한 진전이 정부 전체의 기준이 될 런지도 주시해 봐야 한다. 물론 대통령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한 치의 의심도 없다. 비단 문대통령이어서만이 아니라 산업현장에서 재해를 없애겠다는 다짐에 다른 의도가 있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문제는 인식의 구체성과 실천의 정확성이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이 밝힌 위 네 가지의 ‘근본적인 개선방안’에 대해서도 몇 가지 보탤 말이 있다.
 

첫째, 위험의 외주화에 대한 것이다.

위 축사에서 위험의 외주화 금지가 선언되었지만 그 방식은 제시되지 않았다. 정부는 추후 어떤 방식을 제시할까? 위험의 외주화 금지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 첫째, 생명·안전과 관련된 업무는 원청이 직접 정규직 노동자를 통해 수행하게 해야 한다. 즉, 위와 같은 업무는 하청을 주어서는 안 되고,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그 업무를 수행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위험의 외주화 금지의 기본 내용이다. 현재, 생명·안전과 관련된 업무에 비정규직을 사용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법률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개정안이 제출되어 있는데 아직 통과가 되지 않고 있다. 생명·안전과 관련된 업무를 하청 주어서는 안 된다는 법률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단지 노동부의 인가를 받게 되어 있을 뿐인데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원천적으로 금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금지되는 업무의 범위도 확대되어야 한다. 둘째, 위험의 외주화는 업무의 외주화의 필연적 귀결이다. 업무의 외주화를 무분별하게 허용하면 위험의 외주화는 자연스럽게 확대된다. 따라서 업무의 외주화도 통제해 나가야 한다. 노동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업무의 외주화는 십중팔구 안전과 경영상의 위험을 하방 전가할 목적에서 행해진다. 이런 외주화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외주화는, 불법 파견의 법리(도급인이 수급인의 노동자에게 업무 지시를 하면 그건 도급이 아니라 파견이 되고, 파견 금지 업종에서 파견을 받으면 불법 파견이 된다)나 차별 금지의 법리(도급인의 노동자와 수급인의 노동자 사이에 임금 등 근로조건에서 불합리한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나 원청 책임 강화의 법리(하청 노동자의 사고 예방에 대해 원청이 책임지고 사고 발생 시에는 민형사상의 책임을 원청이 져야 한다)를 강화하거나 새로 도입해서라도 근절해 나가야 한다. 위험의 외주화를 실질적으로 근절시키려면 업무 자체의 외주화도 함께 근절해 나가야 한다. 노동 현장에서 업무의 외주화는, 계약의 자유의 법리로 허용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생존의 보호 법리로 근절되어야 하는 것이다.
 

둘째, 파견이나 용역 노동자에 대한 것이다.

축사의 내용은 노동 현장에 합법적 파견 노동자나 합법적 용역 노동자가 있는 경우에 그들에 대한 안전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 내용에 대해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그런 내용만으로는 부족하다. 파견과 용역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 첫째, 불법적인 파견과 용역을 근절시켜야 한다. 메탄올 실명 사건의 피해 노동자들은 모두 불법 파견 노동자들이었다. 불법이 만연한 곳에서 안전이 지켜지리라 기대할 수는 없다. 다음,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생명·안전과 밀접하게 관련된 업무에는 파견근로자의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 다음, 파견과 용역 노동자에 대한 안전 책임은 사용사업주와 원청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셋째, 작업중지에 대한 것이다. 축사의 내용으로는 사고 발생 시 행정청이 작업 중지를 행하게 하겠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 내용에 대해서도 반대할 이유는 없고 오히려 그런 조치가 실질적으로 행해지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이 역시 그런 내용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장에서 위험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또 가장 우선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사람은 현장 노동자이다. 따라서 현장 노동자에게 작업중지에 대한 적정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현재 산업안전보건법에 그와 관련된 규정이 마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노동자는 아주 엄격한 요건 하에서만 작업 중지를 할 수 있고, 작업 중지 이후에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노동자에게 작업중지권의 행사를 기대하기 어렵다. 노동자가 고의적으로 작업을 회피하려고 하였거나, 사용자가 충분히 입증할 수 있을 정도로 과실이 있지 않는 한, 노동자가 작업을 중지한 것에 대해 면책이 되도록 하는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안전을 최우선시 한다는 것의 양태이다.
 

넷째, 국민이 참여하는 조사위원회에 대한 것이다.

대형 인명 사고 발생 시 그 원인을 밝히는 것은 사망자에 대한 애도로서도, 생존자에 대한 재발 방지책으로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러한 조사는 정부나 지자체만으로 수행되어서는 안 된다. 그 조사 결과를 수용할지를 판단할 국민이 조사 과정에도 참여할 것이 요구된다. 2016년도에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가 발생했을 때 서울시는 이미 그러한 조치를 취하였다. 당시 서울시는 민관 합동으로 '구의역 사고 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김지형 前 대법관')를 발족시키는 한편, 그와 별도로 노사민정 합동으로 ‘구의역 사고 시민대책위원회 진상조사단’(조사단장 : 권영국 변호사)을 구성하였다. 이러한 조치가 정부 차원에서도 행해질 필요가 있는데, 축사에 그런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런데 위 축사에서도 언급된 5. 1. 거제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와 관련해서도 국민조사위원회는 아직 구성되지 않고 있고, 들리는 말에 의하면 언제 구성될지도 알 수 없다고 한다. 고용노동부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고 하는데, 답답한 노릇이다. 조사위원회 구성에 무슨 법조항이 필요하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고 설령 필요하다고 해도 포괄적 법 조항은 충분히 마련되어 있을 것이다. 서울시의 경험은 그런 점을 실증적으로 드러내 주고 있다. 대통령의 진의는 조사 과정에서도 정부와 국민이 소통하자고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정부도 그런 진의를 보여야 한다.
 

대통령이 어렵게 운을 뗐는데, 너무 세게 등을 떠미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분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위 내용은 대통령이 뗀 운의 실질적 내용에 해당하는 것이다. 현재 정부 부처가 위 축사 내용을 뒷받침하기 위한 구체적 조치를 마련해 나가고 있을 것인데, 필자로서는 대통령께서도 위와 같은 정도의 내용을 염두에 두셨을 것이라고 믿는다. 대통령의 축사를 기억한다. 정부의 분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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