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의 아픔,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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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의 아픔, 트라우마
[라이프인ㆍ생명안전시민넷 공동기획_안전 칼럼] 이은주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
  • 2018.07.12 12:25
  • by 이은주


우리를 사람으로 인간으로 취급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어야 했어요


크레인에서 끊어진 육중한 와이어가 활선이 되어 내 몸과 맘 여기저기를 휘갈기며 생채기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해, 삼성중공업 크레인사고 피해노동자들의 상담을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두어 달이 되던 때였다. 피해노동자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일은 산산 조각난 유리건물체가 되어버린 마틴링게 모듈(크레인사고 장소) 데크에 한발을 내딛는 것 같았다. 언제 어떻게 유리파편이 상처를 파고들지 가늠할 수 없었다. 발을 내딛지 않을 수도 없고 내딛으면 생채기가 나기 일쑤였다. 주변에서는 나에게 트라우마의 2차 피해를 경험한 것이라고 했다.

2017년 5월 1일 2시 52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마틴링게 P모듈 위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극심한 외상사건을 경험하고 난후에 발생하는 장애를 말한다. 강렬한 외상사건은 모든 것들이 날것 그대로 저장된다. 외상경험과 관련된 강렬한 기억으로 그 상황으로 돌아가 끔찍한 상황을 겪게 되는 재경험을 지속하고, 외상과 연관되는 상황을 회피하며, 외부자극에 대해 정상보다 과민하게 반응하게 되는 과각성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가지게 되는 상태이다.

“나만 안 다친 것에 대한 미안함과 내가 조금 더 빨리 움직였더라면 하는 후회, 막내를 챙기지 못한 죄책감, 살려 달라고 말하던 작업자를 도와주지 못했던 나 자신을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보이는 곳은 외벽이나 주위에서 뭐가 떨어지거나 무너질까……. 건물 안에 있으면 여기서는 무슨 사고가 생기지 않을까 어디로 대피해야 되나 그런 것만 생각하고 있는 제 모습에 놀라며……. 죽은 막내가 꿈에 자꾸 나타납니다. 아무런 말없이 원망스런 눈빛으로."

" 운전을 하다가 갑자기 사고현장에 떠올라 저도 모르게 운전대를 놓아버리게 됩니다. 돌아가신 동료형님과 눈앞에서 마지막 통화를 하고 있었어요…….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옆에서 죽어 가는데 저는 아무것도……."

지속되는 트라우마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요. 머리는 움직이라 하는데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는 거예요. 우리를 사람으로 인간으로 취급했다면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어야 했어요. 그 사고 이후 눈물이 많아졌어요. 그 뒤에 여기저기 크레인 사고가 났다는 기사만 봐도 가슴이 철렁하는 거예요. 작은 사고 하나도 이게 모두 내일처럼 생각이 되는 거예요. 세상은 우리에게 일어난 일을 몰라요.”

노동자 살인의 책임을 져야할 최고 책임자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다. 사고현장에 동료의 피가 마르기도 전에 사고로 인한 기업을 손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권력을 가진 가해자의 행위는 사회적 정당성을 획득하고 죽음의 일터에서 살아온 노동자들은 치료도 받지 못하였다. 끔찍한 기억으로 다시 조선소에서는 일할 수도 없다. 고통은 오롯이 노동자가 견뎌야 할 몫이 된다. 트라우마는 지속된다. 먹고 살려면 침묵하고 잊으라 한다. 노동자들은 먹고 살기위해 고통을 꾸우욱 꾸우욱 누른다.

‘다른 분들은 이 정도는 아니지 않나요’ 라며 끔찍하고 강렬한 기억을 진술한 노동자와 그렇지 않은 노동자를 구분하는 편견행정이 있다. ‘만 명 중에 한명 꼴로 있다는 트라우마로 당신이 산재가 되겠느냐’, ‘그 뒤에 한 달 정도는 일하러 다녔는데 트라우마가 있다면 그게 가능하냐’, ‘산재가 되면 만사형통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피해노동자를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는 비도덕적 행위자처럼 치부하는 폭력적인 시선과 폭력적 행정이 곳곳에 존재한다. 트라우마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시선으로 노동자들의 상처는 깊어진다.

2010년 5명, 2014년 9명, 2016년 25명

삼성중공업 크레인사고의 피해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재해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노동자들이 처해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지난해 5월 1일 재해를 당했던 노동자중 6명과 사고현장에 있었던 피해 노동자 7명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산재신청을 지원하였다. 12명이 승인되었고 치료를 받고 있다. 1명은 중단되어 있다. 4월 27일 근로복지공단은 재해목격자 7명의 산재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2017년 5월 1일 삼성중공업에 출근했던 노동자 1600여명, 사고를 목격했다고 응답 응답한 노동자 최소 300여명이었다. 그중에 단 12명이다. 산재신청을 꿈꾸지도 못했던 노동자들의 상담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의 발표에 따르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산재치료를 받은 노동자는 2010년에 5명, 2014년에 9명, 2016년에 25명이다. 사고를 경험한 노동자의 25%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나타낸다는 보고가 있다. 우리나라 한해 공식 재해발생건수는 9만 여명이고 사망자는 1700여명이다. 수많은 노동자들의 심리적 충격 속에 있다. 그중 단 25명이 산재로 인정된 것이다. 노동자들은 먹고 살기위해 고통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사회적 인정도 받지 못한다.

공감 1도 없는, 구색 맞추기 행정 중단되어야

지난해 5월 3일 크레인사고로 입원해있던 노동자의 이야기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제 병실에서 병원 신축 공사 중인 크레인이 바로 보여요. 창문 쪽을 바라볼 수가 없어요.” 대통령선거가 치러지던 그때, 많은 이들이 그곳에 다녀갔다. 그들이 다하겠다던 최선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들이 해야 할 최선의 시작은 입원해있는 재해노동자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것이어야 했다. 그 뒤 고용노동부 면담과정에서 병원의 공사현장에 있는 크레인이 병실에서 내려다보이는 건 아는지 물었다. 묵묵부답이었다. 일 년 하고 두 달이 지난 현재까지도 구색 맞추기 행정은 계속된다.

지난 5월 1일 고용노동부는 삼성 크레인 사고 목격자 산재 인정 ‘반쪽의 늑장대처’ 기사 관련 해명자료를 배포하였다. 삼성중공업이 자체적으로 트라우마 관리프로그램을 실시토록 지도했으나, 원활히 진행되지 못한 사실을 확인하고, 지역사회 신뢰를 받고 있는 기관을 중심으로 지원활동을 본격적으로 진행했다는 것이다.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왜곡하고 궁색한 변명을 하는 정부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고용노동부가 지도했다는 삼성중공업은 노동자의 심리치료마저 가로막았다. “삼성중공업에서 트라우마 사안에 대해 피드백을 하려한다며 치료가 필요 없다는 각서를 한 장 쓰라고 요구하였고 동료와 저는 생계유지와 불이익 우려 때문에 각서를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동부의 지도 감독은 늘 이런 식이다.

급성 외상을 경험한 사람에게 초기에 지원되어야 하는 것은 생존자의 안전 확립이다. 외상 후 증상을 보살피고, 생활환경, 경제적인 안정 등 안전한 환경을 형성하는 사회적 지지가 필요하다. 정부는 이 모든 것에 실패했다. 왜, 무엇을 실패했는지 철저한 평가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이제 출발을 시작한 노동자의 재해 트라우마 지원활동이 제대로 자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 3월 2일 부산 엘시티 추락사고에서 살아남은 노동자가 수차례 사고 현장에 불려 다니고 사고 당일부터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을 호소했지만 후속조치가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가 산업재해 트라우마로 고통 받는 노동자 보호조치를 적극 시행하겠다고 발표한 뒤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벤트 식 보여주기 행정, 보고서만 남는 용역프로젝트가 아니어야 한다.

자신이 경험한 그 사고, 고통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는 것, 그것이 가장 좋은 치유라고 한다. 트라우마의 사회적 치유이다. 재해 피해자들의 트라우마 인정, 세심하고 따뜻한 시선, 사회적 지지기반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뭐가 달라졌냐구요? 뭐가 달라지기를 기대하시는 거예요?...그대로여요. 모든 것이 그 현장 그대로……. 애초에 우리를 사람으로 인간으로 취급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 이어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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