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인 하청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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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인 하청노동자들
[안전사회시민네트워크(준).라이프인 공동기획_안전칼럼]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 2017.07.20 18:43
  • by 라이프인

모든 죽음은 슬프고 고통스럽다. 충분히 살 수 있는 목숨이 '돈' 때문에 죽음에 이를 때, 그 죽음은 단지 슬픈 것에서 그치지 않고 억울함과 분노를 동반한다. '사람의 생명은 소중하며, 그 누구도 함부로 죽음에 처해서는 안 된다'는 그 자명한 인식이 무너질 때, 사회가 '어떤 사람의 생명은 함부로 해도 된다'는 신호를 보낼 때, 우리는 그 사회를 '지옥'이라고 부른다.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열아홉 살 하청노동자가 죽음에 이르고, 거제에서 크레인이 무너져 하청노동자 수명이 죽어가는 것을 보며, 우리는 지옥을 실감한다.
 

그렇다. 지옥이다. 한해에 2400명이 일하다 죽음에 이른다. 2015년 자료에 보면 30대 대기업 산재사망자 중 95%가 하청노동자이다. 하청노동자가 많이 사망하는 이유는 위험한 일을 하청노동자들이 하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기업이라면 위험한 업무에는 안전장치를 많이 하고 인력도 많이 배치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더 여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하청업체에게로 위험업무를 떠넘겨버리면 굳이 안전장치를 하지 않아도 되니 기업의 입장에서는 '비용절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그 비용은 절감된 것이 아니라 하청노동자들을 목숨으로 치른 값이다. 노동자의 안전이 비용으로 치환되어서는 안 된다.
 

원청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처벌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산재사망사고는 원청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비용'도 절감하고 사용주로서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니 원청기업들이 너무나 쉽게 위험을 외주화해버렸다. 그동안 노동자들은 산재사망사고에 대해 원청이 책임을 지도록 하라고 요구해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7월 3일 산업안전보건의 날 기념식사를 통해 산재사망에 대해 원청과 발주사도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노동자들의 꾸준한 요구에 이제야 귀를 기울인 것이다. 그러나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는 것에 머물지 않고 제대로 처벌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하청노동자들이 더 많이 사망하는 이유는 안전에 관한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노동자는 관제에 직접 연락을 할 수 없었기에 달려오는 기차를 멈출 수 없었다. 추석 직후 김천역에서 선로를 보수하던 하청노동자들은 지진으로 기차가 연착한다는 연락을 제대로 받을 수 없어 달려오는 열차에 치었다. 삼성전자 하청업체에서 휴대폰을 만들던 노동자 다섯 명은 자신이 사용하는 화학약품이 메탄올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고, 결국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했다. 위험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안전을 위한 조치를 요구하기도 어려운 하청노동자들의 처지가 노동자들을 죽음과 절망으로 내몬다.
 

'비용 절감'을 위해 위험한 일을 하청에게 떠넘긴 기업들이 과연 시민들의 안전은 중요하게 여길까? 메르스가 창궐할 때 삼성병원에서 하청노동자인 환자이송 노동자들은 안전관리대상에서 제외되었고 그 때문에 메르스는 확산되었다. 그 시기 승객들을 직접 대면하는 하청노동자들에게는 안전장구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 KTX승무원들을 하청으로 남기기 위해 승무원들은 안전업무는 하지 않고 안내업무만 한다고 주장한 철도공사는 그 많은 승객들의 안전을 내팽개친 것이다. 비용절감을 위해 스크린도어 수리를 외주화한 메트로는 광고를 유치하려고 스크린도어 일부를 고정문으로 만들어 결국 김포공항역에서 한 승객이 사망하도록 만들었다.
 

사람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원칙은 그 어떤 이유로도 부정될 수 없다. 죽음을 견디며 일해야 하는 일터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 위험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 있다면 충분한 휴식과 인력, 안정적인 보상, 그리고 안전장치와 제대로 된 관리감독이 갖춰져야 한다. 그러나 가장 위험한 일에 가장 권리가 없는 노동자가 떠밀려가고, 그 죽음조차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버리는 이 현실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오늘은 하청노동자의 생명이 위협을 받지만 내일은 우리 모두의 생명이 위협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위험의 외주화'를 즉각 중단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하청의 산재사망에 대해 원청의 책임을 강력하게 묻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하루 빨리 제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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