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대한민국,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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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대한민국, 갈 길이 멀다
[라이프인ㆍ생명안전시민넷 공동기획_안전칼럼] 안종주(생명안전 시민넷 집행위원, 한국사회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2018.06.26 16:43
  • by 라이프인

안전한 대한민국은 모두의 바람이다. 이는 그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촛불혁명의 산물인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도 어느덧 1년이 훌쩍 지났다. 그 사이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남북과 북미 간 평화 분위기는 대통령을 비롯한 문재인 정부의 노력 탓도 있지만 그 또한 평화를 바라는 대다수 시민들의 염원이 타오른 촛불혁명에 힘 입은 바 크다.

모두의 바람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생명을 존중하고 안전을 좇는 문재인 정부의 의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강하다. 하지만 국민의 안전과 생명이 의지만으로 보장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난 1년 사이 일어난 굵직한 안전사고와 재난만 살펴봐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터져 나온 가습기살균제와 세월호 참사에 견주기는 적절하지 않지만 아직 시민의 뇌리에 남아 있는 주요 사건과 재난이 여러 분야에서 그 규모와 유형 또한 매우 다양하게 일어났다. 포항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에서부터 많은 인명 피해를 낸 제천·밀양 화재, 살충제 계란 파동과 라돈 방사성 침대 사태와 같은 생활안전, 이대 목동병원 신생아 집단 사망사고와 서울산부인과 결핵집단 감염 사고 등 의료안전, 그리고 구조적이고도 고질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위험의 외주화로 인한 산재사망과 고교 현장실습생 사망 등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우리 사회가 곱씹어보고 유사 사고와 재난을 막는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들이다.

이러한 사고 가운데 포항지진을 제외한 대부분은 막을 수 있는 성격의 사건들이었다. 이미 여러 차례 경고음이 울렸음에도 정부와 기업이 귀를 닫아 벌어진 정말로 안타까운 일들이었다. 또 사건·사고 초기에 적절히 대응했더라면 인명 피해를 줄이고 국민의 불안을 덜 수 있었음에도 그 대응이 너무나 허술한 것도 많았다. 이들 사고와 재난 가운데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것도 제법 있고 오히려 앞으로가 더 걱정되는 것들도 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발생, 진행 과정 등에서 매우 닮은 라돈 방사성 침대 사태가 그 좋은 사례이다. 우리 사회에서 안전한 대한민국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2017년 4월13일 광화문 광장에서 생명안전시민넷 주최로 열린 대선후보 초청 생명안전서약식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는 생명안전 우선을 약속했다.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중시하는 시민들과 전문가, 단체들이 모여 만든 생명안전 시민넷이 문재인 정부 1년을 맞아 국민안전 평가와 과제 제안서를 발표하고 청와대와 정부 관련 부처에 전달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보기 드문 일로 눈여겨 볼만하다. 이 보고서에는 지난 1년간 일어난 주요 안전사고와 재난에 대한 분석뿐만 아니라 대통령 선거공약과 문재인 정부 국정 5개년 계획, 즉 100대 과제에 대한 중간 평가 결과가 담겨 있다. 컨트롤타워 개선과 탈핵·안전 중시 의지 등에 대해서는 비교적 좋은 점수를 매긴 반면 노동자·시민의 알권리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등을 통한 노동자 안전 부문 등에서는 별로 좋지 않은 점수를 주었다.

그 단적인 예로 백혈병 등 암과 각종 직업병 환자를 양산하고 많은 생명마저 앗아간 삼성전자 작업장 작업환경보고서 공개를 놓고 정부가 보인 모습은 노동자와 많은 시민, 전문가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해당 기업이야 당연히 자신들 나름의 논리를 동원하고 때론 과장되게 포장해 공개에 반대하겠지만 관련 정부 부처가 여기에 맞장구를 치는 행태를 보인 것은 문재인 정부의 노동자 안전에 대한 의지를 의심케 할만하다. 여기에 사법부의 판단마저 찬성과 반대로 서로 엇갈리게 나와 대한민국의 안전은 정부뿐만 아니라 입법부, 사법부가 모두 한마음이 될 때만 비로소 제 걸음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안전한 대한민국의 갈 길이 멀다는 화두는 이로써도 방증되고 있다.

안전한 대한민국은 오롯이 우리들에게 달려 있다. 사람의 안전과 생명을 보장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사람이다. 법과 제도, 조직과 시스템, 그리고 이를 작동시키는 장비·인력 배치와 예산은 모두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합리적 사고를 하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매우 이기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이 만든 법과 제도, 인간이 경영하는 정부와 기업 또한 때론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마음에 두기도 하지만 때론 조직 보호와 이윤에 눈이 멀어 사람을 도구화하기도 한다.

올해는 15살의 문송면 군이 서울의 한 온도계 공장에서 일하다 두 달 만에 수은중독에 걸렸고 그 뒤 넉 달 여 동안 투병 끝에 사망한 지 30년, 대한민국 최대의 직업병 사건으로 자리매김한 원진레이온 노동자 이황화탄소 중독 참사가 세상에 알려진 지 30년이 되는 해다. 당시 이들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산재·직업병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고 관련 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데 전환점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 뒤 끊이지 않은 수많은 산재·직업병 사건, 예를 들어 한국타이어 직업병 사건, 메탄올 실명 사건, 구미 불산 누출 사고, 특히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를 보면 30년이 지났어도 우리 사회는 근본적으로 변화한 게 없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수많은 생명이 반복해 희생되어도 이런 일들이 되풀이하는 까닭은 생명과 안전이 우선이 아니라 기업의 이익이 우선이라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생각 때문이다. 삼성전자 작업환경 측정보고서를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사법부에서 비공개 결정을 내린 것은 아직도 정부, 국회, 사법부에는 기업의 이익과 성장 우선이 뇌리에 박힌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안전에 투자하는 게 낭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다. 안전이 우선이라는 패러다임이 자리 잡지 못했다. 안전에 대한 투자는 생명을 구하는 것이고 결국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성장은 사람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앞으로 안전에 소홀한 기업은 망하고 안전에 투자하는 기업만이 흥하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런 사회가 진정한 선진사회이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안전은 낭비적 투자라고 생각하는 기업은 잠재적 살인기업이다. 노동자뿐 아니라 언젠가는 시민들을 죽일 수 있는 기업이다.

‘문재인 정부 1년, 국민안전 평가와 과제 제안-안전한 대한민국 갈 길이 멀다.’ 보고서에는 조직 보호와 이윤이 먼저가 아닌 사람의 생명과 안전이 먼저인, 즉 사람이 먼저인 정신과 마음을 오롯이 담고자 한 흔적이 곳곳에 역력히 배어 있다. 많은 전문가의 땀과 고뇌가 담긴 이 보고서야말로 정치인과 정부 관료뿐만 아니라 전문가와 시민들이 곁에 두고서 틈나는 대로 보고 참고해야 할 필독서가 될 만하다고 생각한다. 안전한 대한민국이라는 종착지를 향해 갈 길은 비록 멀지만 지금부터라도 한걸음씩 뚜벅뚜벅 걷는다면 결코 도착하지 못할 곳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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