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청년의 눈을 멀게 했나' 토크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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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청년의 눈을 멀게 했나' 토크콘서트
메탄올 급성중독 피해자와 가족, 처음으로 무대에 서다
  • 2017.07.20 17:55
  • by 공정경 기자
메탄올 급성중독 피해자와 가족들. 왼쪽부터 이진희 씨 아버지, 양호남 씨, 양호남 씨 아버지, 김영신 씨 어머니, 방동근 씨, 방동근 씨 어머니, 전정훈 씨, 이현순 씨

무대 위에 올라 한동안 울음을 멈추지 못하던 이현순 씨가 겨우 입을 연다.

"저 같은 피해자가 제발 안 나오게 도와주세요."

이현순 씨는 삼성전자 휴대폰 부품 납품 3차 하청업체인 YN테크에 2015년 9월 중순 입사해 약 4개월 정도 근무하다 2016년 1월 16일 눈이 보이지 않게 됐다. 매일 12시간 동안 메탄올에 노출됐으며 한 달에 한 번 쉬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누가 청년의 눈을 멀게 했나 토크콘서트' (7월 16일 가톨릭청년회관 CY시어터)

노동건강연대와 선대식 오마이뉴스 기자, 메탄올 실명 피해자와 가족은 '누가 청년의 눈을 멀게 했나'라는 제목으로 메탄올 실명 피해를 알리기 위해 다음 스토리펀딩을 시작했다.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겠다는 피해자와 가족의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63일 동안 1,500만 원 목표로 시작했으나 ‘과연 목표액을 모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6월 18일 마감 결과, 목표액보다 많은 17,453,900원(116%)이 모였다. 예상치 못한 큰 성과였다.

이번 토크콘서트는 6명의 메탄올 실명 피해자와 가족이 병원과 집에서 재활치료를 하다가 처음으로 사람들을 만나러 나온 자리다. 무대에 오르기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생각하고 생각해도 방법이 없어요."
"처음엔 막막했는데 좋은 인연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여러분의 도움으로 치료 잘 받고 있어요.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피해자 가족의 짤막한 인사에 이어 416합창단이 무대에 올랐다.

"새 정부가 세워졌으니 마음 놓으라 하지 마시고 우리 발걸음에 힘이 되어주세요.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더 안전하고 더 대접받아야 합니다. 낙담만 할 순 없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젊은이들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우리는 연대합니다. 그리고 응원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416합창단이 '아름다운 사람', '동백꽃',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합창하고 있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선대식 오마이뉴스 기자, 박인숙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가 무대에 올라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박인숙 변호사 : 이현순 씨 처음 만났을 때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었더니 안마를 배우고 싶대요. 엄마가 다리가 아픈데 주물러 주고 싶다고.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목숨이 위태로운 경우도 있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최근에 다시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으니 성당에 다니고 싶다고 합니다. 조울증이 심해서 몸을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가 자주 발생해서 꾸준히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뭔가 꾸준히 하고 싶은데 어렵다고 해요. 과정을 지켜보면서 법률적인 자문도 중요하지만, 옆에서 같이 이야기 들어주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걸 알았어요. 트라우마가 있기에 정신적 상담을 해주는 사람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한정애 의원 :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원청업체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안을 준비 중입니다. 유해물질을 외주 못 주게 하는 법안도 준비 중이고요. 이번 판결을 보면서 정말 분노했습니다.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징역형을 주면서 노동자가 다치거나 죽게 해도 형이 너무 가볍게 떨어져요. 법적인 잣대가 고무줄처럼 움직이는 것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어요. 공정하고 정의롭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사법개혁이 꼭 필요합니다. 제가 선대식 기자님 기사는 꼭 읽어보는데, 숨기고 노출되지 않는 것을 노출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계시기 때문이에요. 지난번에도 위장 취업하셨잖아요.

선대식 기자는 2016년 2~3월에 걸쳐 한 달 동안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의 여러 공장에 취업해 보고 듣고 겪은 것을 기록했다.

선대식 기자 : <불법파견 위장취업 보고서>라는 시리즈로 11회 연재했습니다. 메탄올 사건은 개인적으로 다르게 다가온 경우였어요. 위장 취업하려고 파견 업체를 다니고 있었고 일주일 뒤에 스마트폰 부품업체에 취업했습니다. 당시 전 안산에 취업했고 이진희 씨는 인천 남동공단에 취업했었죠. 보통 윤활유나 에탄올을 사용하는데 제 일터에서는 윤활유를 사용했어요. 그런데 이진희 씨가 일하는 곳에서는 메탄올을 사용하고 있었던 거죠. 제가 만약 그곳에서 일했다면 제가 시력을 잃을 뻔했어요. 저보다 일주일 전에 비슷한 기간 동안 일했으니까요. 그래서 마음이 더 무거웠습니다.

스물아홉 이진희 씨는 삼성전자·LG전자 스마트폰 부품을 만드는 BK테크에서 일한 지 4일 만에 시력을 잃었다.

선대식 오마이뉴스 기자

선대식 기자 : 두 번째 업체는 가전제품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하루는 관리자가 제게 가전제품의 겉면을 깨끗하게 닦는 일을 맡겼어요. 투명한 액체가 담긴 분무기와 헝겊을 줬습니다. 가전제품 겉면에 스티커 자국이 남아있는데 어지간해서는 깨끗하게 닦기 힘들었습니다. 잘 안 떼 져서 들이붓다시피 뿌리고 나서 분무기에 쓰인 문구를 봤더니 메틸알코올(메탄올)이라 쓰여 있더라고요. 깜짝 놀랐죠. 메탄올이 현장에서 너무 흔하게 사용되고 있고 그 위험성에 대해서는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았어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저야 잠깐이지만 사업장에 있는 노동자들은 매일매일 노출되잖아요.

형사재판 가해자 8명 중 3명이 사용사업주고 5명이 파견사업주인데 누구도 감옥에 가지 않았습니다. 양형사유를 보니 온전히 위험한지 알고 있지 않았고 최선을 다해 보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판사가 이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천지검 공안부장은 울산에 있었던 분이라 사태가 심각한 건 알고 있었습니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하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이 한 명 죽으면 구속 안 된다. 여럿이 죽어야 구속된다." 그렇다고 검찰이 잘했다고 하는 건 아니에요. 1심 판결이 나면 일주일 내에 항소해야 하는데 검찰이 한 번도 항소를 안 했습니다. 검찰도 그 판결을 받아들여 확정된 거죠. 사법부는 이 문제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인숙 변호사 : 구조적 문제가 있습니다. LG나 삼성에서 발주하면 1차 하청업체에서 2차, 3차로 이어집니다. 도급계약이라고 하는데, 도급계약의 특징이 도급인이 수급인에게 돈을 주면 수급인이 모든 일을 알아서 처리하기 때문에 법률상 도급인의 책임은 없습니다. 그래서 법적으로 발주인 LG와 삼성 책임을 묻기가 어렵습니다.

2차, 3차 하청업체로 내려갈수록 단가가 낮아지다 보니 에탄올보다 3배 정도 싼 메탄올을 쓰게 되죠. 전체적으로 볼 때 원청, 발주자가 책임지게 하는 법이 중요합니다.

소송 상대를 왜 삼성과 LG로 하지 않느냐 하는데, 삼성과 LG가 하청업체에 '지시감독을 했느냐, 관여했느냐'는 증거를 찾아내는 게 어려워요. 법률적 책임을 묻기 어려우니 이번에 피해자 김영신 씨가 UN 인권이사회에서 직접 피해사례를 발표한 것 같은 활동을 통해서 사회적 책임을 묻는 거예요. 법률적 한계가 있기에 잘못 판결 나면 '우리는 책임 없다.'고 빠져나갈 수 있거든요. 국가손해배상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국가손해배상 소송 중 가습기 살균제와 위안부 관련이 있었어요. 가습기 살균제는 패소했고 위안부는 국가책임을 일부 인정했습니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아무것도 안 했다.'가 소송이유입니다. 국가 책임을 물으려면 법령위반이 있어야 하고 예견 가능해야 하는데 법령위반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의 경우는 국가가 예견 가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패소했습니다. 메탄올 사고가 난 후 근로감독관이 업체에 갔는데 사업주가 메탄올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니까 그 말을 믿고 돌아왔습니다. 이 경우는 국가가 예견 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걸로 준비 중입니다. 국가에 이겨야 어느 정도 보상이 가능한데...

왼쪽부터 사회자 전수경, 한정애 국회의원, 박인숙 변호사, 선대식 기자

 한정애 의원 : 삼성이 정말 몰랐을까요? 현대는 자동차 부품의 품질 관리를 위해서 하청업체 다 돌아다녀요. 세계에 수출하는 휴대폰인데 삼성이 품질관리를 안 했을까요? 품질관리를 하지 않으면 자기들 제품관리가 안 되는데, AS해줘야 하는데 정말 몰랐을까요? 서류상 아무것도 안 남아 있으니까 삼성은 책임이 없는 건가요? 검찰은 그런 거 찾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모두 박수)

'우리 회사와 일하려면 품질기준과 더불어 산업안전, 근로조건도 이 정도 수준으로 따라와야 해!’라고 해야죠. 기업이 사회적 책임진다고 봉사하고 그러는데, 그런 거 필요 없어요. 기업이 제대로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고 있으니까 봉사 같은 거 하면서 이미지 좋게 하는 겁니다. 하청업체까지 제대로 안전관리, 근로관리 하는 게 사회적 기여입니다. 억울한 사람이 덜 있으면 좋겠어요. 억울한 사람, 억울한 국민이 덜 있고 화나지 않는 사회!

선대식 기자 : 법원은 사업주가 반성하고 있다고 하는데, 진짜 반성하고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민사재판 서류를 보면 “방동근 씨가 장난을 쳐서 눈에 메탄올을 뿌린 거다.”라고 하고 “양호남 씨가 일부러 메탄올을 마셨다.”고 합니다. 제대로 반성하고 있지 않아요. 형사재판에서 감옥 가지 않으려고 노력하다가 형사재판 끝나니까 이런 식으로 나옵니다.


한정애 의원 : 올해가 25주년 산업안전보건의 날입니다. 문재인대통령이 10주년 산업안전보건의 날에 산재관련 판례를 발표했습니다. 그래서 산재 문제에 관해서는 다른 대통령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원청하청 공동책임, 위험의 외주화 금지. 어쩔 수 없이 외주화해야 할 때는 철저하게 관리평가를 받아서 해야 하고요. 100대 국정과제 중 많은 부분이 노동 관련입니다. 노동부 아마 정신없을 거예요.

입법부 입장에서 좀 억울한 게... 시민의 요구로 법을 만들었는데 이 법이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건 행정부의 역할입니다. 법은 계속 강화되는데 법을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건 행정부 공무원입니다. 공무원 수가 확보되지 않으면 죽은 법이에요. 근로감독관만 봐도 근로감독관 6명이 5만 4천 개의 사업장을 관리합니다. 지금 늘리려고 하는 공무원을 보면 안전 분야 공무원입니다. 소방관, 경찰, 근로감독관. 시민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사회가 아니라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사회가 돼야죠.

정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노동부가 불법파견업체 하나만 제대로 잡아서 일벌백계했으면 이런 일 발생하지 않았을 거예요. 박근혜 정부가 파견을 확대하는 개정안을 국회에서 밀어붙였잖아요. 그러니 노동부가 파견업체에 관심이나 있었겠어요?

박인숙 변호사 : 저도 다른 일이 있다 보니 조금 느슨해질 때가 있는데, 오늘 이 자리에 이렇게 많은 분이 오신 걸 보니 더 노력하고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선대식 기자 : 지난해 말에는 파견법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변했으니 희망이 조금 보이지 않나 싶습니다.
 

메탄올 급성중독 피해자 김영신 씨

 피해자 김영신 씨는 토크콘서트에 함께하지 못했다. 대신 영상으로 만날 수 있었다. UN 인권이사회에서 피해자가 직접 피해사례를 발표한 경우는 처음이라 많은 관심과 격려를 받았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이슈가 됐지만 아쉽게도 정부는 지금까지 아무 반응이 없다.

손해배상 소송 '피고 대한민국'은 세금을 국내 4대 로펌 법무법인 세종에 비싼 변호사 비용으로 쓸 일이 아니다. 꽃다운 나이에 시력과 건강한 몸을 잃은 대한민국 국민, 29세 김영신   25세 양호남   29세 이현순   34세 전정훈   29세 방동근   29세 이진희, 이 6명의 청년을 책임져야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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