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면'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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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송면'을 아십니까?
[라이프인ㆍ생명안전시민넷 공동기획_안전 칼럼] 현재순 (일과건강 기획국장)
  • 2018.06.12 17:00
  • by 라이프인


1973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난 태안중학교 졸업반 학생이 있었다. 집안사정 때문에 낮에는 일하고 야간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광고를 보고 서울로 상경한 15세 어린 학생, 문송면이었다. 1987년 12월에 들어간 사업장은 영등포에 있는 협성계공이라는 압력계, 온도계 제조업체였다. 사업장에는 액체 수은이 깔려 있고, 수은증기가 작업장을 뒤덮고 있었다. 온도계에 수은을 주입하는 작업과 신나(유기용제)로 압력계 닦는 작업을 한 달 동안 하였다. 어느 누구도 수은이나 신나에 대한 위험성을 알려주지 않았다.

불과 한 달 남짓 일했을까!

1988년 1월 불면증과 두통, 식욕감퇴, 고열, 허리와 다리통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휴직계를 제출하려 하자 회사는 회사에서 다치지 않았다는 각서를 요구했다. 1988년 2월 고향집으로 내려간 문송면은 전신발작 일으켜 네 군데 병원을 찾았지만 병명도 알 수 없었다. 3월 마지막으로 찾아간 서울대학교병원 소아과에서 수은 및 유기용제 중독 진단을 받기에 이른다.

가족은 회사를 방문하여 면담과 산재처리 요구했으나 협성계공은 답이 없었다. 대신 진단한 의사를 찾아가 회사에서 중독되었다는 증거를 내놓으라며 항의하였다. 또한, 산재신청 증거자료를 위해 하려고한 회사 동료들의 피검사를 방해하고 어머니를 찾아가 “"쓸 데 없는 짓 한다"며 폭언하였다. 회사는 문송면 직업병인정을 위한 산재요양신청서에 날인을 거부하고 노동부는 이를 이유로 신청서를 반려하였다.

더군다나, 노동부는 1988년 1월부터 협성계공의 작업환경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형광등 제조업체인 성광기업에서 수은중독사건이 발생되어 노동부에서 수은을 사용하는 유사업체에 대해 조사하였고 그 결과 협성계공의 수은주입실 노동자 6명 전원이 유소견자, 이 중 4명은 수은중독, 이 중 3명은 17, 18세의 연소자였음이 밝혀진 것이다. 노동부는 수은중독 환자가 발견된 지 3개월이 지난, 4월 임시건강진단을 실시하라는 지시만 내렸을 뿐 어떠한 조치도 없었다.

문송면


구로노동상담소의 도움으로 동아일보 등 언론보도가 나가고 사회적 여론이 만들어지며 6월 산재가 인정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얼마 지나지 않은 7월 2일, 문송면은 사망한다. 각계각층이 참여한 문송면 군 장례위원회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사회적으로 알리고 노동부 서울남부지방사무소장 구속과 노동부 장관 해임을 요구하며 노동부와 사업주가 노동자를 지켜주지 않는 한국사회를 고발하는 활동을 시작하였다.

88올림픽의 열기로 더욱더 뜨겁던 1988년 여름, 수은에 중독되어 생을 달리해야 했던 고 문송면 군이 우리에게 던져준 충격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이었다. 15세의 어린 나이로 공장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삶을 꾸려가야만 했던 삶의 조건뿐 아니라, 입사한지 단지 2개월 만에 사망에 이를 정도로 수은에 과다 노출될 수밖에 없었던 열악한 노동환경까지, 그것은 올림픽의 열기에 들떠있던 ‘대한민국’의 또 다른 단면이었다.

이러한 활동은 이후 원진레이온 직업병인정 투쟁으로 이어지면서 한국 산재추방운동의 태동이며 상징이 되었다. 10년간 진행된 원진레이온 투쟁은 직업병전문병원(녹색병원)과 연구기관(노동환경건강연구소), 복지관으로 구성된 원진직업병관리재단이 만들어지는 성과를 가져왔다.

이처럼 88년 문송면 수은중독 사망대책투쟁, 원진레이온 직업병인정 투쟁은 87년 이후 폭발한 민주노조 성장 속에 시작된 진정한 의미의 노동안전보건운동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 있는 투쟁의 결과는 현재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노동안전보건 부분의 현장 변화, 제도 개선 등 발전을 거듭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30년이 지난 2018년에도 문송면, 원진레이온과 닮은꼴의 문제들은 반복되고 있다.

현장실습 명목으로 LG U+ 고객센터에서 ‘콜수’를 채워야 했던 여고생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제주도의 한 고교 실습생은 프레스에 끼여 사망했다. 외주 업체 소속으로 철도 스크린도어를 혼자서 수리하고 밥 먹을 시간도 없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수리설치기사 ‘김 군’은 문과 열차 사이에 끼여 사망했다. 문송면 또래, 청소년·청년 노동자들의 죽음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끊이질 않고 있다.

또한, 1960년대 이후 국제적으로 보고된 적이 없다는 메탄올 중독사고가 2016년에 알려졌고, 파견되어 사용하는 물질도 모른 채 일하던 청년 노동자들은 실명했다. 심지어 노동부 감독을 받은 사업장에서도 발생했다. 사라진 줄 알았던 수은중독이 2015년 광주 남영전구 공장 철거 과정에서 발생했다. 삼성 직업병 산재사망 노동자는 11년간 118명에 달하고, 해결을 요구하는 반올림의 농성투쟁은 문송면 기일인 7월 2일이면 1,000일이 된다. 하지만, 삼성은 산자부의 비호 아래 화학물질 정보공개를 막아, 산업재해 피해자와 유족들의 유일한 산재입증을 방해하고, 지역주민의 알권리를 침해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에 노동, 환경, 시민사회단체는 이 엄혹한 산재사망이 반복되는 현실을 바꿔내기 위해 5월 16일 “문송면·원진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 추모조직위원회(이하 추모위)”를 발족한다. 추모위는 6월말까지 범사회적인 추모조직위원회를 확대, 구성하고, 노동안전보건 분야에 있어 중요한 두 사건을 시민과 노동자 및 조합원에게 널리 알리고 함께 추모하는 사업을 추진한다.

또한, 추모를 넘어 노동자, 시민이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법제도적 개선대책을 도출하고 정부를 비롯한 사회 각계의 참여를 조직하여, 노동자의 안전이 시민의 안전과 맞닿아 있음을 사회적으로 알리는 노동자, 시민 참여사업을 진행한다.

일터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
아직도 우리는 이런 꿈을 가져야 하는지 서글프다. 그러나 우리는 한걸음 한걸음 내딛어야 한다. 생명이 존중되는 사회, 안전한 일터가 더 이상 꿈이 아닌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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