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토트네스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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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토트네스를 꿈꾸다
[한살림 해외기획연수] 축제로 시작해 이제는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인천시 청천동과 산곡동
  • 2018.05.21 15:26
  • by 한살림 활동가모임 ‘광데렐라’

유쾌한 활동가들의 모임 한살림‘광데렐라’가 ‘지역에서 지속 가능한 삶’을 꿈꾸며 전환마을(Transition Town) 영국 데번주의 토트네스로 떠났다. 피겨 스케이팅에서 트랜지션(Transition)은 점프와 스텝, 점프와 점프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것을 의미하듯 ‘전환’은 다른 방향이나 상태로 연결하여 바꾸는 것을 뜻한다. 인구 8만 5천 명의 시골 마을 토트네스는 지역과 주민을 어떻게 연결되고 있을까? 내가 사는 곳의 문제를 내가 아는 방식, 내가 좋아하는 일로 자연스럽게 전환(轉換)한 ‘토트네스’를 ‘광데렐라’의 방문기를 통해 소개한다.

하나, 토트네스에서 한살림의 ‘오랜된 미래’를 만나다.
둘, 토트네스! 전환(轉換)의 뼈대를 세우는 단체들을 만나다.
셋, 전환(轉換)생태계를 만드는 재미있는 프로젝트
넷, 지역과 함께 하는 농업, 그리고 농장들
다섯, 자연주의 마을과 슈마허, 슈타이너의 힘
여섯, 전환마을은 일상이 전환이다.
일곱, 지역에서 ‘토트네스’를 꿈꾸다.

영국의 서남부에 위치한 데본주의 작은 도시 ‘토트네스에서 살아보기’를 아주 짧게 경험하고 우리는 각자의 현장으로 돌아갔다. 춘천에서 서울에서 원주에서 천안에서 청주에서 여주에서 인천에서... 열흘간의 시간을 비운 후 폭풍같이 밀려오는 일로 정신없는 시간이 지나갔다. 연수의 결과는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그렇게 정신없는 일상과 만나야 할까! 몇몇 지역에서 연수 보고회를 진행했다. 듣는 이들은 부러워했고 직접 가보고 싶다는 바람을 마음에 담았다.

우리의 연수목표는 ‘한살림! 지역에서 지속가능한 삶을 꿈꾸다’였다. 어떻게 꿈꿔야 하지? 막상 꿈을 꾸려니 막막하다. 연수가기 전에 읽었던 ‘퍼머컬처(permaculture)’ 책을 모여서 다시 읽어본다. 그리고 우리 각자의 지역을 더 깊게 만나기로 한다.

지역에서 공부 모임을 만들었다. 조합원과 함께 공동 경작 하는 텃밭엔 화석에너지를 쓰지 않고 운영해보자 이야기하고 태양광 판넬을 설치했다. 작게나마 꿈을 꾸고 실천해 나가는 것에 그럴듯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하지만 뭔가 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데 안개처럼 잘 잡히지 않는다.

지역에서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꿈꾸는 것! 우리의 '토트네스'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동네야 놀자

광데렐라의 구성원이자 우리 모임의 촉매자인 이충현쌤이 오랫동안 마을운동을 하는 곳을 방문했다. 인천 부평구의 청천·산곡(청천동과 산곡동) 마을단오제 ‘동네야 놀자’ 이야기는 재밌었다. 재미를 넘어 찡하게 마음에 닿아오는 감동의 역사가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두웠던 걸까? 왜 진즉 이곳에 와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단오제 행사를 마치고 마을사람들과 함께 한 단체사진

지역공동체 조직을 만들어 가는 희망의 싹을 틔운 것은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고 했다. ‘우연’이 그렇게 힘이 센 것이었던가? 설명해주시는 동네야 놀자 사무국장님은 놀라운 이야기를 쉽게 한다. 마을에서 일군 사업 하나하나가 어디 쉽게 되는 것이 있겠는가!

언니 같기도 하고 맏며느리 같기도 하고 때로는 귀여운 동생처럼 환하게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문득 저분은 이곳에서 17년의 세월을 동생처럼 언니처럼 때론 며느리로 딸로 그렇게 동네와 하나가 되어 살아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야, 놀자’는 축제로 시작해 이제는 지역주민, 단체, 그리고 더 나아가 지역공동체 조직을 만들어 가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를 하는 이용우 사무국장

‘동네야 놀자’의 시작은 부평 청천동과 산곡동 지역에서 80년대부터 청년단체, 지역 탁아소 운동을 해오던 사람들이 IMF 때 주변의 공장들이 문을 닫게 되면서 주민들이 직장을 잃고 흥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며 뭔가 해야겠다고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한 청년회 회원이 자신의 꿈이 동네에서 경로잔치를 벌이는 거라며 ‘동네 경로잔치’를 제안하면서 이 일이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한다. 경로잔치는 동네 주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마을 축제로 자리 잡았다. 2001년 6월 24일 첫 번째 축제 이후 세월호가 침몰한 2014년을 빼고 해마다 마을주민의 힘으로 만들어 왔다.

“‘동네야 놀자’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지키는 원칙이 있어요. 준비부터 행사와 평가까지 동네 주민들이 한다는 거죠. 동네에 함께 하지 않는 외부단체의 참여는 받지 않아요. 공연도 진행도 우리 아이들과 청소년, 청년, 장년들과 어르신들이 하고 재정도 다 마을주민들이 마련해요. 그야말로 마을주민들의 축제로 만들어가자는 거죠. 또 하나는 마을 축제의 규모를 넘지 말자는 거예요. '동네야 놀자'가 조금 커지면서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작은 공원에서 옮겨 큰 공원이나 학교에서 하자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더 이상 동네주민이 즐기는 축제가 아니게 될 것이라는 의견이 더 많아 작은 동네축제의 규모를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축제가 조금 알려졌다고 주민들과 상관없이 축제만 띄워졌다면 지금처럼 마을주민이 내 일처럼 만들어가는 축제가 될 수 없었을 거라고 한다. 욕심을 버린 현명한 원칙은 조금씩 마을의 변화를 이끌어 낸다.

축제, 그리고 동네의 작은 변화들

“네 번째 ‘동네야 놀자’ 행사를 하기로 한날에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어요. 어떻게 하지? 대책을 의논하는데 준비위원 중 누군가 ‘하늘을 막으면 되잖아’ 하잖아요. 행사하는 공원 전체에 비닐을 씌웠어요. 비 오는 행사당일 아침 발판을 쌓고 12m짜리 파이프를 가로질러 두꺼운 하우스 비닐을 그 위에 올리는 그야말로 하늘 공사를 벌였습니다. 구경하던 주민들까지 어느 틈엔가 함께 발판을 세우고 비닐을 당겨 묶으면서 3시간 만에 공원 반쪽 하늘에 비닐이 쳐졌어요. 주민들도 우리들도 다 놀랐습니다. ‘와우! 동네야 놀자는 하늘도 막아’ 동네야 놀자의 전설이 만들어지는 순간이었죠. 이렇게 빗속에서 함께 힘을 쓰고 나서부터 축제를 준비하는 사람과 주민들의 경계가 사라졌어요. 공원에서 늘 술을 마시는 주민들과 노숙자들이 처음엔 축제 때 술 달라며 억지 부리고 방해하더니 언제부턴가 동네야 놀자 플랜카드가 걸리면 공원을 청소하기 시작해요. 축제 기간에는 함께 마을 축제를 만들어가는 축제위원들이 되는 거죠. 그분들도.”

네 번째 ‘동네야 놀자’ 행사를 하기로 한날. 비가 온다는 소식에 발판을 쌓고 12 m짜리 파이프를 가로질러 두꺼운 하우스 비닐을 올리는 '하늘공사'를 했다.

행사를 치르기 위한 재정을 마련하는 것도 주민들의 몫인데 아무리 작은 축제라고 해도 돈 없이 가능할 리가 없다. 음식과 체험 부스만으로도 8~900만원의 경비가 든다고 하는데 늘 모자라지 않아서 주민들 스스로도 주민들의 주머니는 마법의 주머니라고 신기해한다고 한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고용 사정이 악화되면 가난한 동네가 가장 먼저 어려움을 느끼잖아요. 일자리가 비정규직, 일용직인 주민들이 많거든요. 주민들의 후원이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하죠. 처음에 경로잔치를 제안한 회원이 주변에서 후원을 받아 보태고 초기 참여했던 단체와 자원 활동하는 모임(자모회, 공부방 자모친목회, 교사회 등)에서 함께 보태고 나머지는 동네슈퍼, 방앗간, 미용실 등 동네의 가게들이 후원해줘요. 처음엔 후원하는 곳이 몇 곳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50여 군데의 동네 가게가 전체재정의 50% 정도를 채워줍니다. 자원활동가들도 동네 주민들이고 동네가게 사람들도 주민들이니 이래저래 동네 주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행사를 치르는 셈이죠. 경기가 악화되면 늘 고민하게 되지만 희한하게도 줄지는 않고 매년 조금씩 늘어가는 마법의 재정이라고 다들 이야기해요.”

처음에 50명이던 자원봉사자도 이제는 200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들도 축제의 주인이어서 축제준비위원이라고 부른다고. 청년회 회원들, 공부방 자모, 자부들, 두 곳의 어린이집 자모회, 교사회 그리고 이제는 20대가 된 공부 방출신 아이들과 10여 년을 모이고 있는 자모회 기수별 친목회 분들, 청소년 동아리 모임 회원들... 그야말로 동네 사람들이 세대를 넘어 준비위원으로 함께 축제를 만들어 간다.

준비시간을 빼면 1시에 시작해서 5시 전에 행사는 끝난다. 좀 짧다 싶은데 그사이에 1,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며 축제를 흥겹게 같이 만들어 나간다고 하는데 실제로 오전 10시도 안 된 시간부터 어르신들로 북적이기 시작한다고 한다.

“‘동네야 놀자’는 마을주민들이 참여를 통해, 스스로 성장하는 걸 기뻐하고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고 싶은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마치 처음처럼 새롭게 알아가는 소중한 마을 축제입니다.”

마을축제에서 마을만들기로 전환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고 싶은 마음을 모아가는 축제는 마을 만들기로 진화한다. 6회 마을 단오제(2006년)를 마치고 초창기 멤버들이 모여 마을 주민조직을 만들었고 2007년 5월 사무국을 구성하게 되었다. 단체준비에 들어가면서 마을 단오제에 함께 참여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청소년 사업을 시작으로 마을사업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① 2001년, 1회 동네야 놀자 축제

② 2006년, 청소년문화마당 ‘꿈터’ 마련

③ 2007년, 여럿이 함께하는 동네야 놀자 출범

④ 2009년 한국 헬프에이지 인천부평노인참여나눔터 시작

⑤ 2011년 희망마을 시작

⑥ 2012년 마을기업 [리폼맘스] 시작

⑦ 2013년 마을기업 [우리동네 희망마을] 시작

“‘동네야 놀자’의 사업들은 하나하나가 정확한 대상이 있고 주민의 요구와 참여자가 있을 때 시작하고 그 요구와 참여 속에서 성장하였습니다. 앞으로 전개될 사업도 주민의 요구와 참여를 바탕으로 넓혀갈 생각입니다. 정확한 요구를 가진 이들이 있고 그 활동을 하는 이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활동하다 보면 그 활동은 주민 속에서 꽃피우게 되죠.”

 

‘동네야 놀자’ 마을사업을 움직이는 원칙

1. 주민이 하려고 하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 활동가나 조직이 필요로 하는 것을 사업화하지 않는다.

○ 주민과의 대화를 통해 주민이 필요로 하는 것과 주민이 할 수 있는 것을 사업화 한다.

2. 주민의 성장이 가능한 사업을 우선한다.

○ 사업을 통해 주민이 전문성을 익히고 관계를 증진하여 전체적으로 성장이 가능한 사업을 우선한다.

○ 사업을 통해 성장한 주민이 ‘동네야놀자’의 주인으로 자리매김 되도록 지속적인 안내를 한다.

○ 사업이외에 성장에 필요한 교육과 연대활동에도 안내해서 균형 있는 성장이 되도록 지원한다.

3. 동네야놀자는 주민공동체 조직임을 명확히 한다.

○ 동네야놀자는 주민들이 성장을 이뤄가는 주민공동체조직이다. 주민들은 성장을 통해 자신이 선택한 다른 차원의 운동으로 갈 수 있다.

○ 동네야놀자는 청천,산곡동을 기반으로 하는 작은 마을조직을 지켜간다.

   

산곡·청천동은 인천에서 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사는, 그래서 가난한 동네 중의 하나이고 부평 4공단이 바로 곁에 있어서 70~80년대부터 노동자들이 들어와 살면서 커진 공단 동네이다. 많은 노동자가 월세방에 살면서 아침이면 골목마다 공장에 가는 젊은 노동자들이 쏟아져 나오던 동네 풍경이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 ‘뻘방(집단 숙소로 벌집처럼 방이 붙어 있어서 '벌방'으로도 불리며, 몸만 들어갈 정도로 좁다)’이 남아있다고 한다. 높은 고층 아파트가 없는 동네구나 싶었는데 이제 곧 아파트 단지가 들어온다고 한다. 아마도 지금의 마을풍경과는 달라지겠지.

멀리 영국에서도 여기 부평에서도 전환의 이야기를 써간다.

토트네스는 그들의 역사와 문화의 토대 위에 그 뼈대를 세워간다. 부평 산곡·청천동에서는 노동자들이 만들어 온 마을 위에 지역공동체의 역사를 엮어 나간다. 주민주도의 주민중심으로 원칙이 다르지 않다. 유연성을 가지고 함께 하는 활동가들이 촉매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도 ‘동네야 놀자’ 단오축제가 열린다. 새벽 부침개조는 1000장의 부침개를 부친다. 팔을 걷어붙이고 축제 속으로 들어가 부침개 자원봉사를 하자는 이야기가 오갔다. 일정상 모두가 함께하진 못하겠지만 아마도 시간이 되는 이들은 2018년 ‘동네야 놀자’ 축제를 함께 즐기고 있을 것 같다.

토트네스를 가기 전에도 토트네스를 다녀와서도 꿈꾼다. 지역에서 지속가능한 삶을 만들어가는 꿈을... 그래서 우리는 마을로 간다. 우리들의 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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