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사랑기부제 시행 한 달, 민관협력 위한 첫발 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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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사랑기부제 시행 한 달, 민관협력 위한 첫발 떼야
  • 2023.02.02 12:25
  • by 노윤정 기자
▲ 전라남도 고향사랑기부제 답례품 홍보물. ⓒ전라남도
▲ 전라남도 고향사랑기부제 답례품 홍보물. ⓒ전라남도

고향사랑기부제가 시행 한 달을 맞았다.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지자체마다 기부 유치를 위해 힘을 쓰고, 유명인들이 기부에 동참하며 시민들에게 새 정책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이제 첫발을 뗀 고향사랑기부제, 과연 현장에서는 사업이 어떻게 수행되고 있을까?

고향사랑기부제는 개인이 주소지 이외의 다른 지자체에 기부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소멸 위기를 당면한 지역들이 재정자립도를 높이고 관계인구를 형성하여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도록 고안한 제도다. 고향사랑 기부금에 관한 법률(약칭 고향사랑기부금법)이 정하는 기부금 상한액은 개인당 연간 500만 원이며 기부자는 세액공제, 답례품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행정안전부는 기부 유치를 위해 '고향사랑e음'이라는 플랫폼을 만들어 운영을 시작했고, 사회적기업인 ㈜공감만세에서도 지난달 3일 고향사랑기부제 종합정보 포털인 '위기브'(Wegive)를 오픈했다.

새해 시작과 함께 기대 속에 시행된 고향사랑기부제. 그러나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눈에 띈다. 특히 제도를 뒷받침해야 할 관련법이 오히려 제약이 되어 다수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고, 제도의 신뢰도 제고와 안착을 위한 주무부처의 보수적인 제도 운영이 현장에서는 애로사항으로 작용하기도 하여 새 제도가 시행 초기 난항을 겪고 있다.

■ 제도 시행 초기 혼선, 민간 참여는 배제?

▲ 위기브 누리집 화면 갈무리.
▲ 위기브 누리집 화면 갈무리.

상술했듯이 기부자는 고향사랑기부금에 대한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가 금융투자소득세 시행을 미루기 위해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마련하면서 고향사랑기부제까지 유예 대상에 포함시켰고, 개정법률이 원안대로 국회를 통과해 지난달 1일부터 시행되며 현행법상 고향사랑기부제 세액공제는 2년 뒤인 2025년부터 가능하게 됐다.

기재부는 촉박하게 법안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실수라고 해명하며 법을 다시 개정해 올해부터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다행히 고향사랑기부금에 대한 세액공제 시행을 다시 2023년 1월 1일로 조정하는 내용을 담은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웃지 못할 해프닝이 제도 시행 초기의 혼선을 보여준다.

또 다른 애로사항도 있다. 고향사랑기부제가 시행되면서 민간에서도 관련 정보를 안내하는 플랫폼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현재 행안부는 민간 플랫폼을 활용한 모금을 제한하고 있다. 실제로 한 지자체는 위기브를 통해 기부금을 유치하고자 했으나 행안부의 제재로 진행을 멈춘 상태다.

일찍이 고향사랑기부제와 유사한 '고향납세'(후루사토노제)를 도입한 일본의 경우, 4대 민간 플랫폼을 통해 모인 모금 액수가 전체 기부액의 90%가량을 차지한다.(관련 기사: [고향사랑기부제 대담] 후루사토초이스는 어떻게 日고향세 정착에 기여했나) 그만큼 민간 플랫폼 성장과 제도 성장이 궤를 같이 했으며, 민간 플랫폼이 제도 정착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하여 일본 최대 고향납세 플랫폼인 '후루사토초이스'(Furusato-Choice)의 운영사 ㈜트러스트뱅크 측은 "정부가 세금을 걷고 분배하는 단순한 형태가 아니라 민간이 그 안에 들어와서 자율성을 가지고 함께 제도를 만들어 가고 있다"(무나카타 신 트러스트뱅크 집행임원)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그렇다면 민간 플랫폼을 통한 고향사랑기부금 모금이 제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행안부(균형발전제도과) 측은 라이프인과의 통화에서 "법상으로 기부자가 기부를 하고자 할 때 기부하려는 지역과 기부액을 확인하도록 돼 있지 않나. 그런데 만약 민간 플랫폼을 허용하면 고향사랑e음을 통해 기부 한도까지 기부한 사람이 민간 플랫폼을 통해 또 기부할 수도 있다. 그리고 고향사랑e음은 주민등록시스템과 연계하여 본인 주소지에는 기부할 수 없도록 시스템 내에서 관련 기능을 비활성화한다. 그런데 민간 플랫폼에서는 기부자의 주소지를 확인해서 제약하기가 힘들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향사랑기부제와 일본 고향납세의 차이에 대해 "일본의 경우에는 거주 지역에는 기부할 수 없다는 제약이 없고 상한액도 제한이 없다. 우리 제도가 다른 부분이 있다"고 말한 뒤 "제도가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다. 지금은 제도의 안정적인 정착이 중요하다. 장기적으로 주소지 제한과 상한액 제한이 풀린다면 민간이 들어오는 것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고 전했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고향사랑e음과 민간 플랫폼과의 연계 가능성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사항을 검토를 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 "시행령이 법률 권한 축소"…무엇을 정비해야 하나

▲ 고향사랑기부제 홍보 포스터. ⓒ행정안전부
▲ 고향사랑기부제 홍보 포스터. ⓒ행정안전부

일각에서는 현재 고향사랑기부금법 시행령이 법률이 정하는 권한을 축소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례로 고향사랑기부금법 제12조 제2항을 보면 행정안전부 장관뿐 아니라 지자체 장도 고향사랑기부금 모금 및 접수·답례품 제공 등의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정보시스템을 구축하여 운영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그리고 제3항에서 해당 업무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관계 전문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고 정한다. 그러나 시행령에서는 "정보시스템의 구축·운영 업무를 '전자정부법' 제72조 제1항에 따른 한국지역정보개발원에 위탁한다"고 정해, 법률에서는 임의 규정이었던 사항을 강행 규정으로 명문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지역정보개발원이 개발한 시스템은 고향사랑e음 한 곳이다.

또한 고향사랑기부금법 제8조 제1항에서는 고향사랑 기부금 접수처를 4곳(지자체 장이 지정한 금융기관, 제12조에 따른 정보시스템을 통한 전자결제·신용카드·전자자금이체, 지자체 청사, 그 밖의 공개된 장소)으로 정하고 있으나, 시행령 제4조 제1항은 고향사랑기부금 접수 시 기부자로부터 관련 문서를 지자체 장이 지정한 금융기관, 법 제12조 제2항에 따른 정보시스템을 통해 받을 수 있다고 말해 범위를 축소하고 있다. 지자체의 모금 행위를 위축시키고 기부자의 편의성을 떨어트린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슈나 프로젝트에 따른 지정기부가 어렵다는 점도 개선점으로 꼽힌다. 현재 고향사랑e음을 통해서는 '기부 지자체'만을 선택할 수 있다. 이 자체가 문제는 아니나 기부금 사용처를 구체적으로 안내한 지자체가 아직 없어, 기부자들은 정확히 어느 곳에 쓰일지 모른 채 지역 발전을 위해 사용하겠거니 하면서 기부하는 것이다. 피스윈즈재팬이라는 비영리단체의 사례를 보자. 피스윈즈재팬은 일본에서 '유기견 살처분 제로(Zero) 프로젝트'를 시행하며 고향납세 민간 플랫폼을 통해 기부금을 모았다. 모금 행위는 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는 수단이었을 뿐 아니라 자연스럽게 유기견 살처분 문제를 시민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시민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기부액도 증가해, 프로젝트 시행 첫해에 약 10억 원 규모로 모였던 기부액이 현재는 매년 50~60억 원 가량 모금되고 있다. 이슈나 프로젝트에 따른 지정기부가 활발해지면 고향사랑기부제가 우리 사회와 지역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 외에도 현장에서는 홍보 제약 등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모든 제도가 초반에는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다. 특히 재정과 관련한 정책이라면 정부는 더욱 보수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제도의 취지에 부합하도록 건전한 기부문화를 활성화하고 지역경제를 살려 궁극적으로는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나오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려야 한다.

올해, 지방소멸의 돌파구를 찾고 지자체가 지역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역량을 기르도록 할 고향사랑기부제의 첫발을 뗐다. 제도가 정착하여 우리 사회에서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개선점들이 있겠으나, 일단 민관협력의 첫발도 떼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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