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사회적경제에 필요한 조직문화, '미시권력' 성찰하고 '다름' 이야기할 수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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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사회적경제에 필요한 조직문화, '미시권력' 성찰하고 '다름' 이야기할 수 있어야
  • 2023.01.20 14:48
  • by 이경원 사회투자지원재단 연구원
05:03

2023년 계묘년(癸卯年)이 밝아온다. 라이프인은 '범상치 않은 수다회-범 내려온다', '대전환을 위한 발상의 전환, 대환(換)장 수다회'에 이은 세 번째 수다회 '더(The) 괜찮은 수다회'로 2023년의 포문을 열었다. '잠깐, 우리 얘기 좀 할까?'라는 주제로 진행한 이번 행사에는 김찬호 라이프인 이사장(좌장), 강민수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 센터장, 서동재 리워크컨설팅(ReWork) 컨설턴트, 이경원 사회투자지원재단 연구원, 이예나 HBM사회적협동조합 연구원(이상 패널, 이름 가나다순)이 참석한 가운데, 사회적경제조직의 조직문화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문제점을 진단하고 나아갈 방향을 함께 고민했다.
우리는 과연 사회적경제조직 내에서 작동하는 '미시권력'에 관해 어느 정도나 인지하고 있을까? 이경원 사회투자지원재단 연구원이 행사에서 다하지 못 했던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사회적경제 조직문화를 위한 제언'을 전한다. [편집자 주]

 

사회적경제에 대한 개개인의 정의, 기준, 지향점은 다르다. 하지만 사회적경제는 제도적 지원에 따른 '사회적 가치 입증'에 시달리다 보니 공통분모만을 찾아 '연대'와 '협력'을 증빙하며 공동체에 대한 아름다운 환상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공동체, 연대, 협력의 결과물이 '모두가 동의하는, 이의 없는 합의'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조직 내부에서 갈등이나 충돌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이에 대해서 깊게 논의하지 않고 넘겨버리거나 회피한다. 사회적경제는 조화롭고 융화돼야 한다는 프레임에 얽매여 공동체, 협력, 연대에 대한 1차원적(입체적이지 않고 납작하고 평평한) 이미지만 계속해서 생산해 낸다. 공익성이나 공동체성, 민주주의는 개개인마다 조작적 정의가 다르고 그것을 가늠하는 기준이나 범위가 상이한데 다양한 해석이나 분석에 대한 논의가 부재하다. 이로 인해서 공공성, 공익성, 공동체성은 영혼 없는 슬로건으로만 잔류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사회적경제 종사자들은 종종 괴리감과 회의감을 느끼기도 한다.

사회적경제에서 공통분모를 찾아 합의를 이루고 대안을 찾아가는 프로세스는 익숙하다. 하지만 차이점을 찾아 치열하게 논의하고 문제제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공통의 합의가 우선시되다 보니 개개인의 차이점, 그리고 지향점은 후순위로 밀리는 경우가 있다. 일반기업과 비교해서 이러한 합의나 협의에 대한 압박이 위계나 구조보다는 '분위기' 또는 '눈치'를 통해 작동한다. 사회적경제에서는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의사결정 체계를 지양하지만 분위기 또는 눈치를 통해 보이지 않는 미시권력이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경제가 지향하고 추구하는 공동체 화합의 이미지, 프레임이 이러한 미시권력의 작동을 묵인한다. 사회적경제조직에서 '탈권력'을 지향한다고 하더라도 조직에서의 '권력'이 작동한다는 점을 항상 인정하고 이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 일반기업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일 뿐 권력은 항상 존재한다. '우리 정도면 괜찮지', '다른 회사에 비하면 수평적이고 민주적이지', '우리 같은 조직이 사회에 있는 줄 아냐'라고 말하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사회적경제조직에 일반기업의 잣대나 기준을 들이밀어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사회적경제가 신자유주의나 자본주의에서 발생하는 '노동의 소외' 또는 '적자생존'에 충분히 대항하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평가하고 성찰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깊이 있는 성찰은 잘 이루어지지 않고 '덜 권위적'이고 '덜 수직적'이라며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경제 종사자들은 조직에서 또 하나의 대체 가능한 부품이 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본인이 지향하는 사회적 가치와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이 판에 뛰어든다. 그러나 개개인이 지향하는 사회적 가치와 신념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존중하기보다는 이를 빌미로 과잉 노동이나 희생을 정당화하고 있다. 과잉 노동이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는 기존에 노동의 소외로 지적해온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각자가 지향하는 사회적 가치와 신념을 충분히 공유하고 논의해서 업무에 반영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시간적 제약, 예산의 한계, 성과에 대한 압박을 핑계로 개개인이 실현하고자 했던 가치와 신념은 쉽게 증발되고는 한다. 사회적경제 종사자들을 버티게 했던 신념이나 가치가 업무에서 배제되고 신기루가 되는 순간, 이들은 또 다른 결의 '노동의 소외'를 경험하게 된다. 누군가로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제한적 업무만 맡는 것은 결국 또 하나의 부품으로 전락하고 마는 길이다.

▲ 이경원 사회투자지원재단 연구원. ⓒ라이프인
▲ 이경원 사회투자지원재단 연구원. ⓒ라이프인

제도적으로 또는 형식적으로만 민주적 의사결정 체계를 갖출 것이 아니라 구성원 개개인이 눈치를 보거나 분위기에 압박받지 않고 편안하고 솔직하게 의사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민주적 의사결정 체계가 매뉴얼로만 기능할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에게도 와 닿게끔 작동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시로 조직 내에서 다방면·다각도로 누군가에게 권력이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이에 대해 성찰하면서 상대방의 의도나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상대방의 의도나 생각을 조직이나 리더의 입맛에 맞게 개조하거나 가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 위계가 작동하게 되고 누군가의 의견은 왜곡되거나 변형되면서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하기 어려워진다. 조직은 태생적으로 불가피하게 그 안에서 위계가 발생하고 권력이 작동한다는 점을 항상 인지해야 한다. 또한 구성원 모두의 생각이 다 같을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의 '다름'이나 '차이'에 대해 수용하고 인정해야 한다. 또한 불편하거나 어렵지 않은 분위기에서 그러한 '차이'를 말할 수 있는 계기나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한 계기와 기회를 의식적으로 인식하고 만들었을 때 조직이나 리더가 갖고 있는 권한에 대한 성찰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조직이 건강하고 오래 가기 위해서는 구성원의 차이와 다름에 대해서 묵인하거나 회피할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수용해야 한다. 그러한 차이와 다름에서 내부의 다양성이 만들어지고 개개인은 본인들의 존재가 인정받는다고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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