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아이쿱 해외연수기] 함께(共) 건너간(濟) 이탈리아에서 공제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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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아이쿱 해외연수기] 함께(共) 건너간(濟) 이탈리아에서 공제를 만나다
  • 2023.01.17 12:00
  • by 이선영 강서아이쿱

다양한 협동조합을 배우고 협동조합인들의 네트워크 형성을 위해 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연회(이하 아이쿱생협)의 회장단과 지역조합 10인의 대표들이 지난해(2022년) 11월 이탈리아의 밀라노와 트렌티노 지역으로 활동가 해외연수를 다녀왔다. 아이쿱생협 활동가들은 건강한 삶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전환, 플라스틱과 미세플라스틱 퇴출 운동 등 지구환경을 위한 No 플라스틱 캠페인 활동을 전개하고, 지역조합에서 리더십과 자원봉사활동에 대한 성찰을 통해 사회적·시민적 역량을 개발해 왔다. 이번 연수는 이탈리아 협동조합 연맹(이종협동조합연합회)의 활동과 그 회원조합들의 사업 중 공제, 돌봄을 중점적으로 살폈다. 비록 이탈리아 공공의료를 보완하는 형태의 공제였지만 공제를 만들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이웃과 함께 협동으로 '의료'문제를 해결해 나가는지 그곳 협동조합들의 발전된 모습을 보고 배우면서 이종협동조합 간의 새로운 발전방향을 모색하자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또 생산자협동조합에서는 어떻게 조합원들이 많은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협동의 역사를 실현해 나가는지와 협동조합에서 공정무역이 일상화된 모습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라이프인은 ▲연맹 전반 ▲공제 ▲돌봄 ▲생산자협동조합(메짜코로나, 몬도멜린다) ▲시민운동: 환경과 공정무역 관련 기사를 총 5회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 주]

 

▲ 밀라노 두오모 광장의 사람들.
▲ 밀라노 두오모 광장의 사람들.

팬데믹 이후로 마스크는 일상용품이 되었고 입에 장착하는 것 말고도 여분을 챙겼다. 사람들은 어느새 마스크에 익숙해졌고 마스크도 소비 성향에 맞게 다양해졌다. 이번 이탈리아 연수에서는 마스크를 준비하지 않아도 되었다. 왜? 이탈리아는 마스크를 쓰지 않으니까! 연수를 준비하는 내내 이탈리아 사람들은 정말 마스크를 쓰지 않는가가 궁금했고 13시간의 비행시간 끝에 도착한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드디어 확인했다.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입과 코가 자유로워지니 사람들과의 만남도 어색함이 없다. 딱딱한 글자로 익혔던 이탈리아의 이종협동조합연합회와 공제를 현장에서 확인하며 먼저 체화된 지혜를 배운다. 

공제의 처음은 돈이 없어서 장례를 못 치르던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함이었다. 유럽을 혁명의 소용돌이에 빠뜨렸던 1848년, 이탈리아에 수십 개의 공제협회가 번성하기 시작하였고 1886년 공제법(법률 3818)이 제정되었다. 산업혁명 이후 거래·계약 관계의 산업 사회로 접어들면서 공장 노동자들은 하루 종일 불안한 상태로 지냈다. 인류에게는 세기를 넘어서 어려운 고비를 함께(共) 건너는(濟) 'DNA'가 장착된 듯하다. 도시화한 사람들은 반복적으로 만나는 매일의 삶을 통해 필요를 공유하고 어려움을 함께 견뎌야 한다는 강력한 관계가 형성되었다. 공제 협회는 질병, 장애, 부상, 실업, 죽음에 대하여 회원들과 함께하였다. 회원들은 어려움 속에도 공제회비 안에 기금을 포함했고 잉여금은 미래 세대를 위한 비분할 적립금으로 쌓았다. 어떤 경우에도 예비비나 잉여금을 회원들에게 재분배하지 않는다. 이것은 세대 간 상호 관계성을 높이고 기관운영과 모임을 위한 장소를 마련하고자 하는 장치였다.

공제(共濟)는 서로 의지하면서 공존이라는 인류 역사의 시작과 맥을 함께 한다.

▲ Insieme Salute Bruno Ceccarelli 발표.
▲ Insieme Salute Bruno Ceccarelli 발표.

이탈리아 롬바르디아를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Insieme Salute(인시에메 살루떼) 공제협회는 회사 이름 자체가 '함께 건강하자'이다. 레가코업 롬바르디아에서 만난 인시에메 살루떼의 Bruno Ceccarelli(브루노 체카렐리)씨는 다양한 위험 요소를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서 해결하며 어려운 시기를 다 같이 견디는 것이 공제라고 설명한다.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이탈리아 공제조직 95%가 가입한 공제협회 연합회인 FIMIV소속이면서 레카쿱연합회와 컨소시엄을 이루고 있다. 협회의 출발은 1994년으로 회원은 현재 40만 명 정도이다. 대상은 협동조합 직원, 일반회사 직원 밀라노 공대 직원 등 다채롭다. 전체 구성원의 75%는 회사를 통해 가입하고 개인은 8%, 기업과 개인 혼합은 17%를 차지한다. 공제는 건강 상태와 나이에 상관없이 가입할 수 있으며 한 번 가입하면 평생 서비스를 받는다. 회비는 1인 평균 연간 150유로로 직장 가입자는 직장에서 지급하고 공제비의 5~6%를 기금으로 적립한다. 이탈리아 공제 역사의 깊이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된 순간이 있었는데 그것은 공제 협회 재정이 고갈되면 회원 모두 비용을 부담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한 사회적 합의는 완료되어 있다고 말하는 브루노 씨를 보며 함께(共) 건너는(濟) 사람들이 든든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Mutua Artieri 사무실.
▲ Mutua Artieri 사무실.

11월 말의 이탈리아는 오후 4시 30분이 되면 어둑어둑해진다. 연수 4일째 되는 날 어둠이 이미 내려앉은 트렌토에 도착했다. 어둠 속에서도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사방을 둘러싼 희미한 돌산이다. 돌산을 마주하며 트렌토 지역의 사람들을 버티게 했던 힘이 무엇인지 잠시 떠올렸다. 인구 약 54만 명의 트렌토에서 노동자로 일하는 사람 가운데 협동조합에 근무하는 사람은 5명당 1명이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비교해 보아도 협동조합 조합원 수가 많고 협동조합에서 일하는 사람의 수도 많은 편이다. 그렇지만 실업률은 이탈리아 평균보다 적고 GDP는 이탈리아 평균보다 높다. 
트렌토에서의 협동조합 출발은 돌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에서 경제적인 이유로 이민을 떠나는 사람들을 멈추기 위함이다. '너도나도 모두 잘살자'가 아닌 '너와 내가 연대하여 지속 가능한 우리를 만들자'가 그 출발이다. 협동조합과 마찬가지로 공제도 그러하다. 이탈리아 트렌토 지역의 Mutua Artieri(무투아 아르티에리)는 국영 의료에서 포괄적으로 수용하지 못하는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트렌티노 장인협회에서 추진하는 공제협회이다. 1886년 이탈리아에 공제법(3818 법)이 제정되기 전인 1852년 8월 22일에 출발하여 트렌토 지역에서 활동하는 장인들을 지원하는 지역적 특성이 강한 의료 공제이다. 장인협회는 2021년 41개 분야, 9,931명의 회원이 있고 이는 트렌토 지역의 장인 중 70%에 달하는 수치이다. 장인협회 회원은 자동으로 공제협회 회원으로 가입되며 직원, 그 가족과 친척도 가입할 수 있다. 나이와 건강 검진 결과와 상관없이 가입할 수 있으며 회원이 탈퇴하지 않는 이상 협회가 제한하지 않는다. 연 70유로라는 저렴한 공제회비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 질병 치료와 예방, 가족들의 의료비 부담을 줄여 준다. 또한 국영 의료에서 지원되지 않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여러 불안 요소를 상호 부조로 해결한다. 공제회비가 많이 들지 않은 이유는 너무 높은 공제회비는 가입률을 낮추기에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수준으로 책정한다. 전체 나이별, 성별 분포도를 파악하여 자료화해 필요성을 조사하고 출생 비용에 비해 노인 비율을 계산하면서 개선해 나간다. 공제회비 중 5유로는 기금으로 적립하고 5유로는 자립생활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금으로 적립한다. 공제협회도 사보험에 가입되어 있는데 이는 장애인이나 대수술의 경우 공제협회의 부담을 낮추기 위함이다.
 

▲ 이탈리아 정부 의료비 증가에 대한 보도자료.
▲ 이탈리아 정부 의료비 증가에 대한 보도자료.

이탈리아의 의료 시스템은 거주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국영 의료 시스템에 등록하고 주치의가 정해진다. 방문 의료 서비스가 가능하여 대부분 동네에서 해결할 수 있다. 일하는 사람이나 일하지 않는 사람이나 노인이나 청년 모두에게 의료 서비스가 무상이었다. 이탈리아 정부는 의료 예산이 점점 늘어나자 이에 따른 부담감으로 '티켓'이라는 제도를 도입한다. '티켓'이 도입된 이후 방문 의료 서비스의 경우 예약하기 어렵거나 거리가 먼 의사로 배정되는 등 불편함도 커졌다. 

▲ 마우로 달라페
▲ 마우로 달라페

무투아 아르티에리에서 만난 Mauro Dallape(마우로 달라페) 씨의 설명에 의하면 국영 의료는 이탈리아 예산 7.5%를 사용하기에 점점 티켓 비용이 올라갈 것이고 포괄적인 수용이 되지 않아 사각지대가 발생한다고 한다. 이탈리아 전체 의료비 중 23%인 280억 유로를 개인이 부담한다. 의료 시장에서 13%는 공제, 3.7%는 사보험이 차지한다. 사보험이 비싸기에 공제로 이동하는 추세인데 이탈리아 인구 전체 6%만이 사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이탈리아 인구 35만여 명으로 전체 인구의 1.5%는 의료비를 부담하기 어렵고 빈민층으로 전락해 버린다. 이탈리아 국민에게 있어 의료비 부담 중 가장 큰 부분은 의료 보험 대상이 아닌 치과 치료와 장애에 대한 의료비 등이다. 그 결과 치과와 장애 관련 치료를 중지하는 사람이 생기고 있다. 또한 세계 2위의 고령화 나라인 이탈리아에서 개인이 부담하는 의료비 부담은 앞으로도 증가할 전망이다.

의료비 부담 문제는 치료 중단으로 멈추지 않는다. 복지 시스템 사각지대가 다수 발생하여 가족 간 돌봄 문제나 청년 장애 문제 등 다양한 사회 문제로 이어진다. 수명이 점점 길어지면서 자립생활이 어려운 사람도 증가하고 있다. 트렌토 지역 통계에 따르면 지난 7년간 알츠하이머 발병시기가 10년이나 낮아진 평균 64세이며 이로 인한 경제적 문제, 돌봄 문제가 발생한다. 자립생활이 불가한 이탈리아 시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의료비 부담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즉 국영 의료 사각지대를 위해 공제는 필요한 것이다. 이탈리아의 공제는 국영 의료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을 때부터 연대의 원칙에 따라 상호부조 활동을 하였다. 다소 사업이 축소되어 침체했던 시기도 있었으나 공제법 제정 후 120년이 지난 2012년에 법이 개정되면서 다른 공제협회, 기금, 회사와의 컨소시엄이 가능해짐에 따라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고 공제에 가입하는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무투아 아르티에리 협회에서 요즘 화두는 트렌토에 있는 수많은 섹터와 함께하는 ‘공제연합회’의 필요성이다. 이들은 수년 아니 150년 넘게 지역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회원과 그 가족을 위해 건강을 중심으로 비영리 활동을 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트렌토 지역의 사회와 사람과 연대하고 상호 부조로 재분배하며 세상의 변화를 만들고 있다.
이탈리아 헌법 제32조에는 건강이 '개인의 기본권'이자 '공동체의 이익'이라고 선언한다. 국가는 국영 의료로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상호부조와 연대 정신의 비영리 회사 '공제'가 보완하는 것이 제대로 된 '공공 의료'가 아닐까. 어려움을 함께(共) 건너는(濟) 상호 부조 관계망이 더욱더 필요한 오늘이다.

▲ 무투아 아르티에리 가입서류.
▲ 무투아 아르티에리 가입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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