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는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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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는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되었나?
[기획연재] 서현수의 북유럽민주주의포럼 (핀란드 Tampere 대학교 정치학 박사)
  • 2018.04.02 18:22
  • by 라이프인
핀란드는 유엔이 발간한 2018 세계행복보고서에서 1위를 차지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됐다. 사진은 2012년부터 헬싱키 시민들이 주도해 매년 열고 있는 '하늘아래의 저녁식사'(Illallinen taivaan alla) 축제의 한 장면. © Jaakko Blomberg

2018년 3월 14일, 유엔 지속가능해법네트워크(UN Sustainable Development Solutions Network)가 발표한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에서 핀란드가 1위에 올라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가 됐다. 유엔은 사회 발전과 진보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국내총생산(GDP)보다 포괄적인 새 지표가 필요하다는 데 합의해 2012년부터 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 개념에 기반한 연례 보고서를 발간해왔다. 주관적 성격이 강한 행복의 정도를 측정하는 것은 논쟁적인 일이다. 유엔 보고서는 소득, 건강 수명(healthy life expectancy), 사회적 지원, 자유, 신뢰, 관용성 등 6개 분야 지표를 집대성해 작성됐다. 조사 대상 156개국 중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가 각각 1, 2, 3, 4위를 차지했고, 스웨덴도 9위에 올라 북유럽 국가가 모두 수위에 올랐다. 미국 18위, 영국 19위, 한국은 57위에 머물렀다.

특히, 지난 조사에서 5위에 머물렀던 핀란드가 올해 1위로 평가된 것이 흥미롭다. 핀란드는 2008년 유럽 재정위기, 2010년 노키아의 휴대전화 사업 부문 몰락, EU의 대러시아 교역 제재와 국제 목재 가격 하락 등이 겹치면서 장기 경제침체를 겪었고, 1인당 GDP도 다른 북유럽 국가나 영미에 비해 낮은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럼에도 이번 조사에서 가장 높은 7.632점 (10점 만점)을 받아 가장 행복한 나라로 인정받으면서 행복은 물질적 부와 경제성장의 정도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었다. 오히려 세금이 높더라도 포괄적 사회안전망과 우수한 공공서비스가 제공될 때, 나아가 투명하고 책임성있는 정부 운영과 민주적 가버넌스를 통해 공적 신뢰가 높게 유지될 때 더 좋은 사회와 시민들의 행복한 삶이 가능함을 역설한다. 핀란드는 지난 해 발표된 각종 국제조사 지표에서 세계에서 가장 안정되고, 가장 자유로우며, 가장 안전하고, 최고의 가버넌스를 갖고 있는 나라로 선정됐다. 필란드 통계청의 홈페이지는 사회 제도, 만족과 신뢰, 평등, 환경, 교육과 인적 자원, 정보사회와 경쟁력, 아동복지와 학교 생활, 건강, 수도 등 다양한 영역의 지표 100가지에서 핀란드가 탁월한 국제적 성취를 보이는 최신 자료 현황을 업데이트해 놓고 있다.

올해는 마침 1918년 핀란드 내전이 있은 지 백주년이 되는 해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발발하는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 1917년 12월 6일 핀란드는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다. 그러나 강대국들의 틈바구니 속에 놓인 신생 공화국의 운명은 여전히 위태로웠다. 독립 직후인 1918년 1월 23일 헬싱키에서 좌파의 급진주의 세력이 주도한 쿠데타가 발생했고, 나라는 백군(The White)과 적군(The Red)으로 나뉘어 내전 상태에 들어갔다. 적색군은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 인접국 소비에트 러시아의 지원을 받고 있었고, 백색군은 발트해 건너 독일제국의 지원을 받았다. 개전 초기 전세는 수도 헬싱키와 남부주요 산업 도시 지역을 장악한 적군에게 유리하게 전개됐다. 그러나 당시 레닌이 이끌던 러시아는 혁명 직후 국제전과 내전에 휩싸여 독일 등과 강화조약을 체결하면서 핀란드에 대한 군사 지원을 중단했다. 반면 동부와 북부의 넓은 농촌과 삼림 지대를 장악한 백색군은 독일 제국의 지원을 받은 데 이어 1차 세계대전 시기에 독일 군대에 들어가 체계적 군사 훈련을 받고 돌아온 엘리트 장교 2천여 명이 합류하면서 전세를 뒤집었다.

필자가 2011년부터 유학한 핀란드 내륙의 산업도시 땀뻬레(Tampere)는 백 년 전 좌우 내전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있었다. 크고 아름다운 두 개의 호수를 끼고 발달한 이 '북유럽의 멘체스터'는 핀란드 근대 산업의 발상지로서 핀란드를 대표하는 기업 노키아가 150년 전 이곳 호숫가 급류 지역에 세운 한 목재 공장으로부터 출발한 곳이다. 도시는 자연스레 노동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며 ‘사민주의자들의 영혼의 고향’으로 불리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인 1918년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땀뻬레에서는 핀란드 내전의 승부를 결정지은 전투가 집중 전개됐다. 해는 많이 길어졌지만 아직 호수들이 꽁꽁 얼어있는 추운 시기였다. 헬싱키로 이어지는 기차와 전기, 전화 시설을 모두 끊은 뒤 도시를 양쪽에서 포위해 들어오는 백군에 맞서 적군의 노동자 병사들은 치열하게 저항했다. 전쟁의 대세가 이미 결정된 상황에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상보다 치열한 저항에 부딪치자 백군은 거리를 하나씩 소개해 들어오는 작전을 폈고, 이로 인해 양측 모두 사망자가 많이 나왔다. 시가전이 끝난 뒤 폭격과 화재로 인해 폐허로 변한 거리에는 소년 병사들과 말들을 비롯해 시체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참혹상이 연출됐다. 당시 내전을 통틀어 3백만 인구에 약 4만 명이 사망했다. 4개월간의 전투에서 죽은 사람이 만여 명, 그리고 내전 후 세워진 수용소에서 처형되거나 스페인 독감 등 전염병과 굶주림 등에 사망한 이가 3만 여명에 달했다.

어렵게 상처가 아물 무렵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핀란드는 1939년부터 1944년까지 소련과 두 차례 전쟁(1939-1940년의 겨울전쟁과 1941-1944년의 계속전쟁)을 치러야 했다. 이 과정에서 약 8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동쪽 접경지역인 까렐리아(Karelia) 지방 주민 수십만 명은 강제로 집과 땅을 빼앗기고 난민이 되어 서쪽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2대에 걸쳐 전쟁터에 나가 유명을 달리한 사례도 많았고, 한 가족에서 여러 전사자가 나오는 비극도 흔했다. 20세기 핀란드 문학의 거장 바이뇌 린나Väinö Linna의 3부작 대하소설 'Täällä Pohjantahden alla'(따알라 뽀흐얀따흐덴 알라, '여기 북극의 별 아래'라는 뜻)는 19세기 후반 농촌의 심각한 토지 문제로부터 출발해 핀란드 독립과 내전을 거쳐 20세기 중반의 대소 전쟁 시기까지 고투의 삶을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작가 자신도 땀뻬레(Tampere)의 공장 노동자의 삶을 살다 소련과의 전쟁에 참전해 최전선에서 싸운 경험을 안고 있었다. 참전 경험은 그의 또다른 걸작 'Tuntematon sotilas'(뚠떼마똔 소띨라스, '무명용사'라는 뜻)의 생생한 문장들로 되살아나 전쟁과 인간 실존의 의미를 캐물으며 전후 핀란드 사회의 치유와 통합에 기여했다. 지난 해 향년 93세를 일기로 서거한 핀란드의 전 대통령 마우노 꼬이비스또(Mauno Koivisto, 1982-1994년 재임, 사민당)도 항만 노동자로 일하던 16세의 어린 나이에 1939년 발발한 대소 전쟁에 참전, 최전선에서 싸운 인물이다. 100년 전 핀란드에서 태어난 사람의 운명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1918년 핀란드 내전의 결정적 전투가 벌어졌던 땀뻬레(Tampere) 시청 앞 광장을 노동절(Mayday)이자 Vappu라는 큰 봄맞이 축제날인 5월 1일에 시민들이 평화롭게 행진하고 있다. 사진은 핀란드 유학 이듬해인 2012년에 필자가 촬영한 것이다. © 서현수

오늘날 핀란드 사회는 수많은 사람들의 집합적 행위를 통해 도달한 결과물

20세기 내내 '동과 서 사이에서' 위기와 위기 속에 발전해온 핀란드 모델은 비슷한 사정의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깊은 영감을 제공한다. 오늘날 핀란드 사회가 도달한 합의적 민주주의, 보편적 복지국가, 높은 수준의 성 평등, 참여적 시민 문화와 높은 사회적 신뢰, 그리고 평화적 국제관계는 어느 먼 낭만적 부국의 동화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당대를 치열하게 살다간 수많은 사람들의 집합적 행위를 통해 도달한 결과물이다. 기후변화, 4차 산업혁명의 도래, 사회경제적 불평등 심화, 유럽난민위기, 대러시아 국제관계 등 2018년의 핀란드도 많은 도전과 문제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다수 시민들이 스스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은 '극단의 시대'를 지혜롭게 헤쳐온 자신들의 역사와 민주적 공동체의 힘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대도시에 살면서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가까이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핀란드 시민들의 인터뷰는 짙은 미세먼지로 인해 준(準) 재난 상황이 돼버린 일상을 살아가는 서울 시민들에게는 부러움과 동경마저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에서의 정치적 실천이다. '헬조선'이 강요하는 각자도생의 삶을 끝내고 새로운 사회,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공동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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