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암센터 서홍관 원장 "민간병원이 외면하는 일, 공공기관이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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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암센터 서홍관 원장 "민간병원이 외면하는 일, 공공기관이 해야"
국립암센터 서홍관 원장 인터뷰②
  • 2022.06.23 16:02
  • by 노윤정 기자
07:03

(인터뷰①에서 이어짐)

국립암센터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먼저 드는가. 아마 '암에 걸린 사람들이 치료 받으러 가는 곳 아니야?'라는 생각이 먼저 들지 않을까. 하지만 서홍관 국립암센터 원장은 "여러분이 국립암센터에 자주 오길 바란다. 하지만 아파서 오길 바라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국립암센터가 암 치료만을 수행하는 기관이 아니라는 뜻이다.

국립암센터는 보건복지부 산하 기타공공기관으로, 암 연구를 통해 국민의 암 발생율과 사망률을 낮추고 암 환자의 삶의 질 제고에 기여하기 위한 공공기관이다. 국립암센터 사업 중 인상적인 사업이 몇 가지 눈에 띈다. 가정 내 낙상방지용품 설치 등 암 환자들에게 특화된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고양해피케어' 운영, 암 유병자의 창업과 사회 복귀를 지원하는 공간인 '리본센터' 조성, '사회적협동조합 다시시작' 등 암 환자들의 사회적경제기업 설립 지원 같은 사업들이다. 이런 사업들의 면면을 보면 국립암센터가 암 유병자의 '치료 이후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국립암센터는 2020년 평화의료센터를 개소하여 남북 보건의료 협력과 평화의료사업을 위한 기반을 마련해 가고 있다. 수익성과 비용효율성이 중요한 민간에서는 이루어지기 힘든 사업들일 것이다. 공공기관으로서 국립암센터가 어떤 사명을 가지고 사업을 수행하고 있는지 서 원장에게 물었다.

 

▲ 서홍관 국립암센터 원장. ⓒ라이프인
▲ 서홍관 국립암센터 원장. ⓒ라이프인

Q. 국립암센터에서 하는 사업 중 암 환자의 사회 복귀와 암 환자에게 특화된 사회서비스 제공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인상적이다. 그런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암이라는 병은 예전에는 걸리면 거의 죽는 병이었다. 그런데 점차 생존율이 높아지고 있다. 암의 5년 상대생존율(동일한 성별·연령군의 일반인구와 비교하여 암 환자가 5년간 생존할 확률)은 70%에 달한다. 암 유병자(암 치료를 받고 있거나 완치 판정을 받은 사람)가 200만 명을 넘어섰다(2018년 기준). 문제는 암 완치 판정을 받더라도 그 사람의 몸은 완벽히 회복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암을 치료하기 위해서 수술을 하고, 항암 치료를 받으며 몸이 많이 상한다. 또한, 암을 겪으면서 우울과 불안, 두려움 같은 정신적인 고통도 겪는다. 심지어 사회적으로도 완벽히 회복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암에 걸린 사람들은 직업을 잃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직장 복귀율도 낮다.
암 유병자들은 신체, 정신, 사회적 기능의 회복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을 돕는 활동들이 필요하다. 국립암센터는 암 환자들의 사회 복귀를 돕기 위해 암 환자들이 만든 사회적경제기업을 지원하기도 한다. 고양시, 사회적경제기업과 협력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고, 성공 모델을 만들어 확산하고자 한다.
다행히 암관리법이 개정되면서 암 생존자 관리 사업이 법 조항에 포함될 예정이다. 국가가 해야 할 일에 '암 생존자 관리'가 포함되는 것이다. 이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암 생존자 관리 사업을 할 법적 근거가 만들어진다.

Q. 암 데이터 구축 사업도 중요하게 언급해 왔다. 정확하게 어떤 사업인지, 해당 사업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설명해 달라.

지난해 국립암센터가 '국가암데이터센터'로 지정됐다. 암 데이터 사업을 전담해서 수행하며 국립암센터가 암과 관련된 빅데이터를 구축할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단일한 국가 보험에 가입돼 있고,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시행하는 건강검진을 받는다. 검진받을 때 우리는 담배를 피우는지, 술을 얼마나 마시는지, 운동은 얼마나 하는지 같은 생활 습관을 기록한다. 그리고 공단의 검진 사업을 통해서 사람들이 어떤 검진을 받았는지가 기록된다. 이를 통해 어떤 습관을 가진 사람이 암에 걸렸을 때 평소 검진을 잘 받았는지, 몇 기에 발견했는지, 어떤 치료를 받고 몇 년 생존했는지 같은 정보를 알 수 있다. 유전 정보부터 생활 습관, 검진 자료, 암 발병 기록, 생존 과정까지 포함된 하나의 어마어마한 데이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정보를 국내 학자들이 연구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어떻게 보면 암에 관한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자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Q. 공공의료기관으로서 국립암센터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

우리나라에 암을 치료하는 병상은 부족하지 않다. 암 치료는 민간병원에서도 잘한다. 그러니까 중요하지만 민간병원에서는 하지 않는 일을 우리가 해야 한다. 암 예방에 관한 노력, 암 조기 검진에 관한 노력, 암 생존자 사회 복귀 지원, 호스피스 같은 일들은 민간병원에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 일들이다.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돈이 안 된다고 공공기관도 외면하면 누가 하겠나. 그리고 근거 없는 검진과 과잉 진단을 막는 일도 공공기관이 해야 한다. 근거 없는 검진을 지적하고 국민들이 불필요한 검진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국립암센터가 할 일이다.

Q. 불필요한 검진에는 무엇이 있는가?

대표적인 것이 갑상선암 검진이다. 갑상선암의 5년 상대생존율이 몇 퍼센트일 것 같나. 100.0%다. 갑상선암에 걸린 사람과 걸리지 않은 사람이 5년간 생존할 확률이 소수점 하나까지 동일하다. 그렇다면 무증상인 사람이 갑상선암 검사를 하러 다닐 필요가 있을까. 무증상인 사람에게 갑상선암 선별검사(스크리닝 테스트)를 권하는 국가는 없다. 미국에서는 갑상선암 선별검사에 대해 '하지 말 것'을 권고한다. 국내에서도 2013년 나를 포함해 8명의 의사가 모여 '갑상선암 과다 진단 저지를 위한 의사 연대'를 만들어 갑상선암 과다 진단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Q. 국립암센터가 지난해 개원 20주년을 맞았다. 개원 20주년을 맞아서 새롭게 정비한 국립암센터의 비전이 있다면 무엇인가?

미국의 '뉴스위크'라는 시사주간지에서 '2022년 전문 분야별 세계 최고 병원'을 평가해 순위를 매겼다. 거기에서 국립암센터가 44위를 했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이 '43개 계단만 올라가자'는 것이다. 물론 한 계단 한 계단 올라는 것이 너무 힘들다. 우리나라 암 치료 실력은 세계 최고 수준을 달성하고 있다. 그런데 사용하는 약과 기술, 의료기구들은 대부분 외국에서 개발한 것을 사용한다. 이제는 우리가 개발한 항암신약과 신기술로 암을 치료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물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우리가 신약을 개발하려면 최소한 10년은 걸린다. 그만큼 연구비도 필요하다. 우리가 지난해에 두 가지 연구에 대한 연구비를 신청했다가 둘 다 떨어져서 올해 다시 신청하려고 하는데, 국가암데이터센터 충원이나 신약, 신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오늘 시작하지 않는다면 10년 뒤에도 똑같이 '앞으로 10년이 필요하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10년 뒤에 열매를 딸 수 있도록 토양을 일구는 것이 나의 비전이고 내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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