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플 바텀 라인'에서 '그린 스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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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플 바텀 라인'에서 '그린 스완'으로
그린 스완, 기후위기 시대 자본주의 패러다임의 변화…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 2022.04.06 17:43
  • by 박종현 교수(경상국립대학교 경제학과)
10:19

녹색 백조를 뜻하는 '그린 스완'(Green Swan)이라는 말은 2020년 1월 국제결제은행(BIS) 보고서에서 처음 등장한 용어로,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 또는 금융의 위기를 뜻하는 말이다. 발생 가능성은 낮지만 일단 발생하면 큰 충격을 주는 금융위기를 가리키는 '블랙스완'(Black Swan)에서 파생한 말로, 급격한 기후변화가 몰고 올 충격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린 스완>의 저자 존 엘킹턴은 여기에 '해결책'의 개념을 더하여, 그린 스완을 '시장의 변화를 촉진하는 개념이자 해결책'으로서 '세계적으로 위기에 처한 경제·사회·정치·환경 등을 모두 아울러 회복과 재생을 추구'하는 개념으로 정의했다. 라이프인은 4월 한 달간 기후변화가 초래할 경제 위기로서의 그린 스완과 지속가능한 미래 경제 모델로서의 그린 스완을 모두 다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 박종현 경상국립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본인 제공.
▲ 박종현 경상국립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본인 제공.

사람(People), 지구(Planet), 이윤(Profit)을 의미하는 '3P' 또는 '트리플 바텀 라인'(Triple Bottom Line: TBL)이라는 신조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4년이다. 기업의 경영상황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재무제표가 손익계산서다. 이 손익계산서의 맨 아랫줄(Bottom line)이 매출액에서 각종 비용을 차감하고 기업에 남은 당기순이익, 곧 이윤이다. 이 점에서 맨 아랫줄은 한 해 동안 기업의 전체 활동이 집약적으로 표출된 결산이자 얼마나 사업을 잘했는지를 기업의 주인인 주주들에게 보고하는 최종 성적표인 셈이다. 그러나 기업의 주인은 주주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업의 사업과 활동 중에는 매출과 금전적 비용의 차액으로 담지 못하는 부분도 많다. 3P 또는 TBL은 기업의 활동에 관한 총체적인 평가는 손익계산서뿐 아니라 '사람'과 '지구'에 미친 영향을 담아내는 추가적인 데이터들에도 기반해야 하며, 하나가 아닌 세 개의 성적으로 집약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문제의식 위에 등장했다. TBL을 기점으로, 기업이 이윤 중심의 경영에서 지속가능경영으로 바뀌어야 하며, 주주에 대한 책임 못지않게 사회적·환경적 책임도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었다.

TBL 개념의 창시자인 존 엘킹턴은 이 용어를 세상에 내보내고 나서 25년째 되는 해에 TBL의 리콜을 선언했다. 기업의 활동이 경제적·사회적·환경적 가치를 얼마나 늘리고 얼마나 줄이는지를 구체적으로 추적하고 관리하기를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고, 경제적 성과만을 중시하는 싱글 바텀 라인의 패러다임을 대체하기에도 역부족이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재 세상이 환경, 불평등, 빈곤, 양극화 등의 측면에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TBL이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재계의 리더들에 의해 장신구처럼 채택되면서 그 심각한 현실의 정당화를 거들고 있다는 반성도 그러한 결정을 내리는 계기가 됐다. 여기에 지금 시점에서 요구되는 것은 개별 기업 차원에서의 행동양식의 변화가 아니라 전체 시스템 차원의 근본적인 변화와 대전환이라는 문제의식까지 겹쳐지면서, 엘킹턴은 2020년 <그린 스완: 회복과 재생을 촉진하는 새로운 경제>(이하 그린 스완)를 세상에 새롭게 선보이게 된다.

<그린 스완>은 사람, 지구, 번영을 위한 지속가능한 미래와 새로운 자본주의의 청사진이자 이를 가능케 할 구체적인 방법론을 담고 있는 지침서이기도 하다. 이 책의 출발점은 '블랙 스완'의 문제의식이다. 블랙 스완, 곧 '검정 백조'란, 수학적으로만 보자면 출현 확률이 극도로 낮지만 모든 것들이 서로 얽혀 있는 복잡계의 현실로 인해 실제 출현할 가능성이 수학적 기댓값보다는 훨씬 높고, 일단 발생하면 그 파괴적 영향력이 대단히 큰 사건을 의미한다. 엘킹턴이 보기에는 기후, 생물권, 경제, 사회 등의 영역에서 이러한 블랙 스완이 출현할 위험이 예견된다. 파국적 사태가 반드시 출현할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그런 사태가 출현할 가능성은 사람들이 막연히 괜찮다고 느끼는 것에 비해서는 훨씬 높고, 일단 발생하면 사태를 저지하거나 관리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지금 당장 대응이 요구된다. 이처럼 블랙 스완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여러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해결 방법 또한 마땅치 않은 현안들을 엘킹턴은 '사악한 문제들'이라고 지칭한다. 환경 파괴, 테러리즘, 빈곤과 같은 문제들이 대표적인데, 이들은 표준화된 기술을 사용해서 정해진 기간 내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와는 전혀 다르다. 

기존의 프로세스는 사악한 문제를 감당할 수 없으며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우려가 크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들은 이제까지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대응, 즉 근본적 대응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되는 것이 바로 '그린 스완', 곧 '녹색 백조'이다. 그린 스완은 작고 점진적인 변화가 아니라 파괴적인 혁신으로서, '사악한 문제들'에 대한 체계적인 해결책이자,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며 살아가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가능케 할 해결책이다. 이러한 그린 스완을 출현시키고 그린 스완이 긍정적 잠재력을 펼치도록 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더난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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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시스템 차원의 대응과 관련해서는 혁신적 해법을 지원하고 장려하는 시장과 정책, 제도와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 점은 엘킹턴과 더불어 사회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영국의 활동가이자 학자인 제프 멀건에 의해서도 강조되는 논점이다. 그는 <메뚜기와 꿀벌: 약탈과 창조, 자본주의의 두 얼굴>을 통해 오늘날 우리 사회는 중요한 변곡점에 서 있다며, 지속가능한 번영을 이루고자 한다면 약탈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나쁜 혁신과 나쁜 기업가정신을 억제하고, 창조를 통해 이익을 얻고자 하는 좋은 혁신과 좋은 기업가정신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변화시키는 것이 선결과제라고 주장한다. 창조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자원과 보상이 제공되고, 약탈하는 사람들에게는 상응하는 책임과 징벌이 가해지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엘킹턴은 새로운 해법을 만들어낼 주체로 기업을 주목하면서도, 이는 기업만으로는 불가능한 과제이므로 정부, 기업, 시민사회의 협업체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때 그린 스완을 향한 협력을 가능케 할 일차적인 출발점은 목적의 공유이다. 전 지구적 위기 앞에서 개인과 기업과 정부가 자신, 그리고 자신이 속한 조직과 사회와 경제를 새롭게 태어나도록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지구를 지속가능한 공생의 방향으로 재탄생시키겠다는 '목적'을 진정으로 공유할 수 있다면, 그 목적은 지속가능한 경제와 새로운 사회를 향해 움직이도록 하는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목적의 공유는 불가능해 보이는 프로젝트를 달성했던 사례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다. 아폴로 프로젝트를 심층적으로 분석하며 <미션 이코노미: 아폴로 프로젝트가 자본주의의 혁신에 주는 함의>를 출간한 마리아나 마추카토 교수도 이 점을 특히 강조한다. 아폴로 프로젝트는 오늘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낡은 1960년대의 낙후된 기술로 "인간을 달에 보냈다가 다시 안전하고 돌아오게 하겠다"는 비현실적인 목표를 달성한 프로젝트로, 이 엄청난 프로젝트는 공공과 민간이 공동의 목적을 위해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계속해서 투자하고 혁신하며 협력을 지속했기에 가능했다. 마추카토에 따르면, 오늘날의 미션은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자본주의를 만드는 것인데, 여기에는 녹색경제, 양극화 완화, 개인의 행복 증진, 건강한 노후, 모두를 위한 디지털 접근권 등이 포함된다. 아폴로 프로젝트가 그러했듯이 지금도 작고 점진적인 변화로는 이러한 야심적이고 중대한 목적들을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달에 사람을 보내는 것보다 더 야심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담대한 상상력을 펼치고, 당장의 삶이 아니라 먼 미래 후손들의 삶까지도 염두에 두며 투자의 시계(Time horizon)를 최대한 멀리까지 확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엘킹턴은 블랙 스완의 출현을 예방하고 그린 스완의 출현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목표를 설정하고 운영하는 과정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한다. 우선, 목적이 담대한 만큼 목표도 최대한 높게 설정해야 한다. 가령 100만 명의 삶에 10%의 영향을 준다는 식의 전통적인 점진적 목표 설정 대신에 10억 명의 삶에 10배의 영향을 주겠다는 식의 현실적으로 달성이 불가능해 보일 정도의 매우 높은 목표를 설정해야만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15년 이내에 제품 포장 폐기물을 완전히 없애겠다"는 목표가 그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 아폴로 프로젝트의 사례 또한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한편, 공동의 목표를 세우고 운영하는 등 협업체계를 주도할 주체와 관련해서는 엘킹턴과 마추카토의 의견이 엇갈린다. 엘킹턴이 민간의 활력과 기업의 주도성을 강조한다면, 마추카토는 그들에게 활력을 주며 전 과정을 주도할 수 있는 주체는 시민들의 대표이며 막대한 자원의 동원 권한이 있는 정부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마추카토의 입장에서 보자면, 시스템 차원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정부의 업무 수행 방식과 민관협력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제 정책은 '시장 실패의 교정'이 아니라 '시장의 공동 창출 및 공동 형성'에 관한 것이 돼야 한다. 시장을 형성한다는 것은 국가의 주된 목표가 경기장을 수선하고 평평하게 만드는 것에 맞춰지던 모델에서 국가가 시장의 방향을 민간과 함께 결정하고 공권력을 이용해 그렇게 결정된 방향 쪽으로 경기장이 기울어지게 하는 모델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시장의 방향을 결정하고 경기장을 그 방향으로 기울어지게 한다는 것은 "승자를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원하는 종류의 가치를 생산하는 방향으로 정부가 경제를 움직여 갈 수 있도록 수단들을 정렬함으로써 "의지가 있는 자를 선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또한 가치 추출자(제프 멀건 식으로 표현하자면 '나쁜 기업가정신을 발휘하는 약탈자')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그렇게 획득한 자금을 가치 창출자(제프 멀건의 '좋은 기업가정신을 발휘하는 창조자')에 대한 보상에 사용하며,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경제를 건설하는 방향으로 가치 창출을 유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정부는 '최종 대부자'가 아니라 '최초 투자자'로서 시장을 고치기보다는 사회의 뜻에 부합하는 시장을 창조하고, 특정한 자격을 갖춘 기업이나 조직들에 자금을 지원하기보다는 특정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기업이나 조직들에 자금을 제공하며, 정부에게 돌아오는 리스크를 줄이기보다는 해결책을 만드는 민간 주체들의 리스크를 줄이는 데 주력하는 존재이다. 정부의 이러한 역할 변화가 앞으로 그린 스완을 만들어낼 협력체계의 기본 원칙이 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마추카토 교수가 '그린 스완'의 실현을 위해 제시하는 권고인 셈이다. 이 경우, 국가가 투자자와 기획자 역할을 담당하며 기업의 혁신을 이끌고, 시민들이 기업과 국가의 혁신 속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며 그 열매를 시민들이 향유하는 협력체계의 그림이 그려진다. 이러한 협력체계 속에서 환경을 복원하고 사회적으로 정의로우며 경제적으로 포용성이 있는 기업, 시장, 경제가 '그린 스완'의 이름으로 새롭게 출현하리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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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 교수(경상국립대학교 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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