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드라마 제작현장, 더 이상 방치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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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드라마 제작현장, 더 이상 방치하지 말라
[라이프인ㆍ생명안전시민넷 공동기획_안전 칼럼] 신선아 (변호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법률원 )
  • 2018.03.23 16:11
  • by 라이프인


드라마 제작현장에서의 장시간 노동과 안전문제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어 왔던 사안이다.(다른 방송 제작현장의 실태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나, 본 글에서는 드라마 제작현장 문제에 한정하여 다루고자 한다.) 게다가 1990년대 후반 고용유연화 정책의 결과 방송제작 스탭들 상당수는 개인사업자(프리랜서)라는 미명하에 노동법 보호 대상에서 배제된 채 무제한 시장경쟁에 무방비로 방치되었다. 또한 1990년대 형성된 드라마 외주제작정책의 결과 드라마 제작의 다단계 하도급구조는 점점 더 고착화되고, 세분화되고 있다. 위와 같은 과정을 거치며 방치되어 온 장시간 노동과 안전문제는 더더욱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급기야 2016년 10월에는 드라마 제작현장의 장시간 노동 등 방송계의 비인간적 노동관행을 개선하려 노력하다가 고 이한빛 PD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또한 2017년 12월에는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화유기’ 제작현장에서 별다른 안전조치 없이 부실한 세트장 천장 위에서 작업하던 스탭이 추락사고를 당하여 하반신 마비라는 중상해를 입는 사고도 발생하였다. 너무도 안타까운 사건들이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당시 드라마 ‘혼술남녀’제작에 참여하고 있던 고 이한빛 피디는 촬영이 진행된 55일 동안 단 이틀만 쉴 수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화유기’ 제작현장의 제작사나 관련 하청업체들은 추락사고에 대한 책임을 서로 떠넘기기에 급급했고, 제작사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부여된 가장 기본적인 안전관련 책임조차 전혀 인식하고 있지 못한 상태였다. 위와 같은 문제를 개선해보고자 최근 꾸려진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 TF(전국언론노동조합,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다산인권센터, 청년유니온,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드라마 제작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하여 지난 2월 말 언론에 공개한 조사결과(유효 응답자 113명)를 보더라도, 드라마 제작 현장의 근로시간과 안전문제는 매우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1일 기준 노동시간은 20시간 이상 24시간 미만이라는 응답자가 60.9%로 가장 많았고, 응답자 중 95.5%가 하루 15시간 이상 근무를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한편 촬영 중 안전문제가 있다고 한 응답자는 72.6%에 달했으며, 촬영 중 부상경험이 있다고 한 응답자도 61.9%에 달했다. 특히 응답자들의 개별 의견 중에는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위험(졸음운전, 졸음촬영, 각종 과로로 인한 질병이나 신체이상 징후 등)에 대한 문제점 지적이 많았다. 그 중 하나를 그대로 옮겨보자면 다음과 같다. “00드라마 53시간 촬영 후 졸음운전”

위와 같은 정도라면 정말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노동시간이고, 언제 사고가 발생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위험한 제작환경 아닌가? 왜 저 지경에 이르기까지 십 수 년간 방치되어 왔는지, 왜 근로기준법상의 가장 기본적인 근로시간 제한 규정도, 산업안전보건법상의 가장 기본적인 안전보건조치도 드라마 제작현장에서는 전혀 작동하지 않는지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물론 위와 같은 드라마 제작환경 문제가 한두 가지 요인으로 발생한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현 상황에 대한 책임 상당부분은 고용노동부에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드라마 제작현장 스텝들 상당수(위 TF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약 67%)가 프리랜서 형태로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 상당수의 근무실질은 사용자와 종속적인 관계에서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으며 근로를 제공하고 있다. 즉 노동관계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대상인 ‘노동자’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드라마 제작사 등은 스탭들 상당수가 프리랜서로 계약을 했기 때문에 노동관계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주장하며,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시간 제한도,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여러 안전조치 등도 모두 외면해왔다. 즉 이들을 ‘개인사업자(프리랜서)’로 둔갑시켜 노동관계법상의 사용자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부상위험이나 관련 사고책임 역시 하청회사 또는 개인사업자인 프리랜서 개인에게 떠넘기기 일쑤였다. 그런데 방송 스탭들이 임금체불 등 노동관계법 관련 사항을 이유로 고용노동부를 찾아가면, 대다수의 근로감독관들은 방송쪽 프리랜서들은 노동자가 아니어서 노동부 관할사항이 아니라며 사건을 종결하거나, 취하를 종용해왔다. 판례법리에 따른 근로관계 실질에 관한 조사도 거의 하지 않은 채 말이다. 물론 장시간 근로나 안전문제가 십수년 이상 제기되어 왔지만 드라마 제작현장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적극적인 조치도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상 그간의 이러한 고용노동부 태도는 제작사 등의 위와 같은 주장을 점점 강화시키고, 사용자책임 회피를 방임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니 방임을 넘어 사실상 종용해왔다. 이러한 측면에서 고용노동부에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할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그간 여러 가지 대책(방송산업과 드라마 제작구조의 근본적 변화, 법·제도 개선과 관련 정책 마련 등)이 제시되어 왔다. 그러나 현장이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을 보면 위와 같은 대책마련은 다소 시간이 걸릴 듯도 하다. 하지만 현장의 위험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이에 위 TF팀은 지난 2월 말, 설문 결과와 관련제보를 바탕으로 고용노동부에 드라마 제작현장(JTBC 미스티, KBS2 라디오 로맨스, tvN 크로스, OCN 그남자 오수)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신청했다. 따라서 위와 같은 근본적인 대책 마련 이전이라도, 노동자들의 기본권(생명과 신체의 안전, 인간 존엄성, 노동3권 등) 보호의무를 이행할 궁극적 책임이 있는 국가기관인 고용노동부는 드라마 제작현장에 대한 적극적인 근로감독 등 즉각적이고, 책임 있는 조치를 이행할 필요가 있다. 고용노동부의 철저한 관리·감독을 받는다면 지금처럼 노동관계법을 철저히 무시한 채 생명을 위협하는 정도의 제작환경을 만드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위와 같은 조치가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는 못할지 몰라도,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상시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드라마 제작환경의 급박한 위험을 줄이기 위해 국가기관이 반드시 취해야 하는 최소한의 조치라 생각한다. 또한 이런 조치는 그간 고용노동부가 스스로의 역할을 외면하며 소위 프리랜서 노동자들을 노동법 사각지대에 방치하여 왔던 지난 과오에 대한 적극적 반성조치로서의 의미도 가질 것이다.

더욱이 최근 근로기준법 제59조상의 근로시간 특례제도 규정이 일부 개정되면서 방송제작업 등이 포함되어 있던 흥행업이 특례업종에서 제외되었다. 다행이다. 그러나 드라마 제작현장이 지금처럼 고용노동부가 공인한 노동법 비보호 구역인양 계속 운영된다면 근로시간 특례규정 개정 여부를 불문하고 드라마 제작현장의 무제한 장시간 근로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위 근로기준법 개정 취지를 감안해서라도 더더욱 고용노동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다. 부디 더 이상 방치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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