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밀이 보석같이 반짝이는 '햇밀장'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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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밀이 보석같이 반짝이는 '햇밀장'을 소개합니다
'농부시장 마르쉐' 이보은 상임이사 인터뷰
  • 2022.03.16 15:54
  • by 정화령 기자
08:10

뜨거운 여름, 도시에는 햇밀장이 열린다. 

그곳에는 추운 겨울을 지내고 갓 태어난 우리밀이 있고, 맛있는 밀을 함께 먹기 위해 노력하는 작업자가 있고, 농부와 밀 작업자를 연결하는 작은 제분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다양한 우리밀 품종을 재배하여 수확의 기쁨을 나누는 농부들이 있다. 

우리밀을 매개로 사람들을 연결하는 플랫폼이자, 생산자와 베이커가 모여 소비자에게 결과물을 선보이는 유일한 장소이기도 하다. 

2016년부터 시작해 올해 일곱 번째를 맞이하는 햇밀장을 운영하는 '농부시장 마르쉐' 이보은 상임이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 농부시장 마르쉐 이보은 상임이사.
 ▲ 농부시장 마르쉐 이보은 상임이사.

■ 마르쉐는 어떤 곳인가?

2012년 '대화하는 시장'을 모토로 시작했다.

이후 농부들과의 관계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면서 시장에 참여하는 농부들은 물론이고 요리사, 수공예가들이 함께 마르쉐를 '농부시장'으로 정의하게 됐다. 

 

■ 팬데믹 상황에서도 시장은 꾸준히 이어지는 것 같다

코로나19로 많은 시장이 멈췄을 때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여전히 닭은 달걀을 낳고 농부는 채소를 기르고 있기 때문에, 시장도 멈추지 말고 계속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작은 꾸러미 판매부터 픽업 시장, 올해는 '채소아침'이라는 아침에 잠깐 여는 소규모 시장을 시도하면서 코로나 상황을 건너고 있다. 

물론 그 중심에는 농부들이 있다. 좋은 작물을 길러서 소비자에게 전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아직은 마스크를 쓴 상태지만 그 너머로 사람들의 마음이 전해지는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준비 중이다. 

 

ⓒ농부시장 마르쉐

■ 그렇다면 햇밀장이 태어난 배경이 궁금하다

원래 마르쉐 시장은 매달 주제를 가지고 진행하고 있다. 6, 7월에 무슨 작물을 소개할까 이야기하다가 '밀과 보리'를 주제로 삼았다. 지금은 추수 감사에 큰 의미가 없어졌지만, 옛날 배고픈 시절에는 춘곤기를 마치는 큰 절기였다. 한여름 태양 아래서 수확하는 밀과 보리를 기억하자는 아이디어로 농부님께 밀 농사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이제 하루 세끼 중 한 번은 밀가루를 먹는다. 쌀에 이은 주곡인 셈인데 우리밀 자급률은 2019년에는 0.7% 남짓까지 떨어졌다. 그렇게 우리밀이 사라져간다는 게 놀라웠다. '도대체 밀은 왜 사라지는 걸까? 어디에서 어떻게 자라고 있는 걸까?'라는 호기심으로 생산자를 계속 찾아다니다 보니, 아주 작은 생태계들이 애틋하게 남아있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밀도 품종도 다양하고 지역이나 농법에 따른 다양성이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밀 생산지에 농부님들은 어린 시절의 소중한 추억을 가지고 밀농사를 짓기도 하고, 그 맛을 잊지 못해 씨앗을 이어가는 농부들도 계셨다. 수입밀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이런 이야기와 다양성이 지켜지면 좋겠다 생각했다. 처음에는 마르쉐의 여러 시장 중 하나였는데, 이제는 토종장과 더불어 대표적인 시장 축제 중 하나가 되었다. 

 

■ '먹거리로 삶을 연결한다'는 마르쉐의 지향점이 인상 깊다. 햇밀장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결된 사례를 소개한다면

평창의 '브레드메밀'은 햇밀장을 계기로 충남 논산의 더불어농원 권태옥 농부님의 앉은뱅이 밀 작업을 꾸준히 하는 곳이다. 처음에는 햇밀장이 계기가 되어 우리밀 100%빵 작업을 하게 됐는데 지금은 그 지역 로컬 식문화의 앵커이자 거대한 실험실 역할을 하고 있다. 

공덕의 '수더분 베이커리'는 1년 동안 사천지역의 백강밀만을 가지고 1년 동안 쭉 빵을 만드는 곳이다. 백강밀 한 가지로 연간 작업을 하는 베이커가 있다는 건 그 밀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그런 경험들이 우리에게는 매우 소중하다. 작년부터는 DMZ의 백강밀로 작업을 하는데 밀을 한 번 바꿀 때마다 그 특성을 잡기 위해 베이커는 한두 달은 고생을 한다. 때로는 그날 빵을 다 버리고 영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밀의 데이터를 쌓는 과정이다. 

앞으로 그 지역의 토종밀을 가지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천연 발효하고, 빵을 구워 전 세계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작은 빵집들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꼭 빵이 아니라 우동이든 국수든 그런 시도들이 소중하다. 우리와 함께하는 생산자와 작업자들이 아직은 소규모지만 좋은 작업을 앞으로도 점점 더 많이 할 거라 믿는다. 
 

ⓒ(좌)수더분 베이커리 (우)브레드메밀 인스타그램
ⓒ(좌)수더분 베이커리 (우)브레드메밀 인스타그램

■ 햇밀장으로 연결된 사람들은 환경과 기후위기에도 깊은 관심이 있을 것 같다. 우리밀 재배와 제품 생산이 기후위기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정확한 데이터값은 없어서 아이디어 수준의 이야기지만, 토양이 헐벗지 않고 꾸준히 작물이 자라 광합성을 해서 토양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나라에서 밀처럼 겨울에 활발하게 자라는 작물이 많지 않은데, 겨울에 밀 재배로 탄소 격리 효과가 있다는 연구 내용에 동의한다. 

하지만 가장 주목할 점은 지금 버려지는 많은 밭에 밀을 재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쌀은 기계로 농사를 짓지만 밭은 노동력이 많이 들어서 포기하는 농가들이 많다. 그런 땅에 밀 농사를 지어 좋은 농지로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농사 기술이 굉장히 출중하지 않아도 약간의 인프라만 갖춰지면 귀촌자들도 농사를 지을 수 있고, 겨울작물이라 해충 방제가 크게 필요 없어 생태계에도 이롭다. 

그리고 최근 근거리 재료를 활용하려는 작업자들이 많이 늘고 있다. 여름이면 햇밀 여행으로 밀 농가들을 찾아다녔는데 농가나 제분소와 연결된 우리밀 베이커들이 꽤 많다. 많은 지역에서 직접 농사지은 밀로 빵을 만드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문화가 가지는 의미가 매우 크고, 햇밀로 만들어지는 건강한 빵은 밀의 미네랄과 섬유질을 함유하고 있다. 근거리 재료로 만들어지는 좋은 먹거리가 가져오는 기후변화와 탄소 감축 효과도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 

▲ 햇밀장의 햇밀 전시장. ⓒ농부시장 마르쉐
▲ 햇밀장의 햇밀 전시장. ⓒ농부시장 마르쉐

■ 의미 있는 사례에도 불구하고 우리밀 자급률은 매우 저조하다. 우리 땅에서 밀이 더 키워지고, 소비가 더 늘어나면 어떤 변화가 있을 것 같나

더 이상 우리밀이라는 의미를 강조하지 않아도, 맛있어서 우리밀을 쓰는 빵집이 늘어나지 않을까. 작년에 대구에서 지역의 젊은 지역상점 주인들이 모여 작은 햇밀장을 열었다. 우리밀이 귀하고 농부를 도와야 하는 것도 있지만 (진행한 친구들에게는) 재밌고 맛있는 소재였다. 밀 젤라또와 음료를 만들어 다채로운 테마의 축제를 진행한 걸 보면서 새로운 변화가 시작됐음을 느꼈다. 

우리밀을 쓴다는 것만이 강점이 아니라 '우리밀이라서 맛있고, 우리밀이 멋있다'는 시대가 곧 올 것이다. 이전에는 우리밀을 살리고 팔아줘야 한다고 강조했다면, 햇밀장은 우리밀을 사용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고 다양한 작업자가 모여 개발하고 브랜드를 만드는 입체적인 움직임으로 볼 수 있겠다. 

농가들도 각기 다른 품종과 성격으로 다양한 재배를 하고 있다. 논과 밭, 지역, 풍토, 이모작인지 일모작인지에 따라 성격이 다들 다르다. 그리고 수확 후 보관상태나 건조방식에도 많은 변수가 있다. 그래서 밀가루 특성의 차이가 생긴다. 농가와 교류하면서 이런 특성의 차이를 이해하고 자신만의 작업을 만들어 가는 다양한 작업자들이 주목받고 그들의 밀 음식을 사람들이 좋아하면 기업들도 쫓아오지 않을까?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위해 대농과 대기업만을 바라보는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 땅의 밀을 사랑하는 소규모 농부와 작업자들, 실력 있는 작은 제분소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밀이 문화로 자리 잡아야 한다. 우리밀을 먹는 게 맛있고 즐거운 일이라는 생각이 확산해야 소비로도 이어지겠다. 


■ 올여름에도 햇밀장이 열릴 텐데, 어떤 부분을 기대해보면 좋을까

햇밀장은 막 수확한 그해의 밀을 함께 맛보며 농부와 작업자, 손님들이 서로 응원하며 밀을 문화로 만들어 가는 시장이다. 햇밀장에서 이야기하는 100% 우리밀은 '올해의 밀을 맛본다'는 개념이다. 농부의 실험에 소비자들이 참여해서 경험을 쌓아 더 맛있는 밀 음식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사실 우리 땅 곳곳에서는 마을에서 조금씩 이어 내려오는 토종밀이 자란다. 동네 어른들에게 씨앗을 물려받아 기르는 경우도 있고, 오랫동안 길러왔지만 품종을 알지 못하는 밀도 많다. 작년에 봉화, 경기, 남도 등 토종밀을 구해서 빵 작업을 해보고 다양성을 경험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올해도 밀 품종에 관심을 가지고 이 땅에서 오래 길러온 밀의 맛을 더 다채롭게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올해는 지난해 만들어진 온라인 햇밀장 플랫폼과 함께 오프라인에서의 이벤트도 함께 진행해서 밀 농가와 작업자들의 대화가 더 깊이 있게 진행될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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