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환자를 찾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상태바
우리는 '환자를 찾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방문의료 이야기를 담은 책, '환자를 찾아가는 사람들' 저자 인터뷰
  • 2022.02.14 14:00
  • by 정화령 기자

잦아들 줄 모르는 코로나19의 위기로 재택의료의 중요성이 더욱 드러나고 있다. 정부는 모두가 지역에서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커뮤니티케어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지만, 제도는 아직 걸음마 단계이다. 팬데믹과 같은 상황이 아니더라도 생애주기에서 위기를 맞은 사람에게 병원의 문턱은 높기만 하다.

이런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 부족한 시간과 비용을 마음으로 충당해가며 환자를 찾아다니는 의료진들이 있다. 다양한 직종의 의료인이 모여 서로에게 배우고 성장하는 '왕진수다회'에서 시작한 모임은 이제 '방문의료연구회'라는 이름으로 그간의 경험과 사례를 모아 책으로 엮었다. 다양한 현장 이야기와 실무적인 내용이 담겨있어, 책을 읽은 사람들이 방문의료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라이프인에서는 책 출판에 맞춰 저자 중 김종희 원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밝음의원 의사와 오은선 녹색병원 가정간호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스토리플래너

Q 방문의료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김종희(이하 김)- 방문의료가 제도화되기 전부터 원주의료사협의 '의료사각지대를 찾아가는 농촌건강사업단' 활동에 참여하면서 조금씩 진료실 밖 환자를 만나왔다. 집이라는 공간은 아플 수밖에 없는 삶의 맥락을 들여다보게 하였고, 주어진 생활환경에서 어떻게 건강한 삶을 꾸려가도록 조력할지에 관한 질문을 들게 만든다. 방문해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한 사람의 '건강 결정요인'들을 날것 통째로 대면하게 된다. 

진료실에서 숨이 막힐듯하고 불면에 시달린다는 어느 60대 여성을 만났다. 그의 집을 방문해보니 소뇌위축증으로 보행이 불안한 남편과 와상 환자인 시어머니가 있었다. 그런 환경에서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 100만 원과 월세 5만 원을 올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는 죽을 거 같은 급성 스트레스 증상에 시달리게 된 것이었다. 증상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처방은 빙산의 깊은 곳에서 건강결정요인들을 살펴보며 통합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오은선(이하 오)- 어느 날 문득, 나의 죽음을 떠올려 봤더니,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인 호스피스를 해야겠다는 마음에 오래 다니던 종합병원을 그만두고 약 2년 반 정도 호스피스를 했다. 죽어가는 이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늘 집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알게 되었는데 우연히 가정간호를 할 기회가 되어 현재 이 일을 하고 있다. 나에게 죽음은 말기 암, 그리고 사고사가 거의 전부였는데, 만성질환으로 죽음에 이르는 수많은 환자 그리고 그들을 돌보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주도권(?)은 의료인이 아닌 환자와 가족에게 있다. 이 부분이 참 멋지다. 병원에서는 의료인이 힘이 더 센데, 집에서는 가족이나 요양보호사들이 간호사보다 훨씬 힘이 세다. (환자를 찾아가는 사람들 中)

 

Q 일반 의료현장과는 다른 점이 많을 것 같은데, 의료진 입장에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오- 사람마다 힘든 부분이 다르겠지만 나는 혼자 방문하는 게 조금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내가 못 하면 나를 대신할 사람이 없다는 점이 힘들다. 한번은 비위관(콧줄) 삽입을 하는데, 내가 늘 교환을 했던 분임에도 불구하고 한 시간이 걸린 날이 있었다. 다른 인력으로 손을 바꿔서 할 수 있었다면 환자도 덜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심한 욕창의 경우는 혼자 치료법을 정하기보다 여러 사람이 아이디어를 모으면 좋은데, 사진을 찍어 보여줘도 실제 상처를 보지 못하기에 한계가 있다. 또, 의료기기 역시 병원처럼 갖춰져 있지 않음에 아쉬움이 있지만 좀 더 인간적인 돌봄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왕진이 흔했던 60~70년대에는 진료하는 사람의 오감이 중요하지 않았을까. 물론 기계가 있다면 편리하고 안전하겠지만, 없는 데서 아이디어가 생기기도 한다. '간호는 예술'이라는 이야기를 학교에서 배웠지만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환자 가족들이 집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로 환자가 편한 방식으로 적용하는 걸 보면 이러한 돌봄이야말로 예술이다. '돌봄은 창조적인 예술'이구나 하고 생각한다. 
 

 ▲ 오은선 녹색병원 가정간호사. ⓒEBS다큐잇it '이런 병원 또 없습니다' 영상 갈무리
 ▲ 오은선 녹색병원 가정간호사. ⓒEBS다큐잇it '이런 병원 또 없습니다' 영상 갈무리

Q 수요에 비해 방문의료 공급이 부족한 상황일 텐데, 의료기관의 참여는 저조하다

김- '장애인 건강주치의 사업'이나 '일차의료 방문진료 시범사업'은 일차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개원가의 90% 이상이 단독개원 형태로 낮은 수가를 감수하고 진료실을 비우기가 어렵고, 방문간호도 간호조무사 중심의 간호인력이어서 쉽지 않다. 방문의료 참여를 독려하는 특별 정책지원과 낮은 수가 체계가 개선되어야 한다.

한편, 2차 병원의 방문진료가 제도설계에서 제외되었다는 점도 문제이다. 지역의료에 적극적인 2차 병원이 참여한다면, 방문의료가 더욱 활성화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의사가 되기까지 십 년 동안 질병 중심의 병원 의료행위에 익숙해져서, 환자의 집으로 찾아가는 방문의료가 막연히 낯설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Q 이런 상황에서 방문의 우선순위를 두는 기준이 있는지?

오- 가정간호를 처음 시작했을 무렵에는 말기 암 환자를 우선 방문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먼저 신청한 가정에 우선 방문하되, 급한 환자가 있다면 다른 환자와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방문을 나간다. 다만, 단순한 편의도모를 위한 신청(예: 영양제, 수액 요법 등)이면 우선순위를 뒤로 미룬다.

가정간호를 운영하지 않는 종합병원이 많아서 타 병원 환자들이 본원으로 신청을 하는 경우, 환자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가 부족하기에 일단 첫 방문은 나가지만, 막상 가보면 가정간호가 불필요한 경우가 더러 있다. 물론 도움이 필요한 모든 가정으로 방문을 나가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가정간호사가 부족하고 너무 먼 거리에 있는 가정은 방문에 제약이 있다. 


Q 방문한 환자에게 다른 지원을 연결한 사례가 궁금하다

김- 수술 후 재활 시기를 놓치면서 누워만 지내시는 분을 방문했다. 하지근력이 소실되어 주위에 묶어 놓은 끈을 잡아당겨 간신히 몸을 움직였다. 방문재활을 연결하였다. 7~8회 지나면서 무릎을 당겨 굽히고 엉덩이를 밀고 이동할 힘이 생겼다. 이제는 엉덩이를 밀고 다니면서 아들 방을 청소하고 물건도 옮길 수 있게 되었다.

장애인주치의로 만난 어느 지적장애인은 치아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고 구강근육이 소실되어 부드러운 면만 끊어 먹을 수 있었다. 치과위생사의 방문구강활동을 연결하여 구강 마사지와 구강근육운동을 1년간 매월 진행하니, 지금은 음식을 씹어서 먹을 수 있을 정도가 되어 알타리 무 김장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런 분들에게 의사 단독으로 '직접' 할 수 있는 일이 뭐였을까? 의사는 전체를 보는 눈을 키워 여러 전문가들과 소통하며 도움을 요청하고 연결하는 건강코디네이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문의료가 가능해지려면 방문진료, 방문간호, 방문재활, 방문구강이 모두 제도화되어야 한다.

오- 집에 있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자원을 연결하는 게 중요하다고 공감한다. 의료적 처치 외에 다른 일들이 눈에 들어오기도 하지만 시간에 쫓겨서 연결하기 쉽지 않다.

내 경우는 말기 암 환자와 가족들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있어서, 영적인 부분의 치유가 필요하다 느꼈다. 그래서 아는 수녀님을 소개해서 도움을 드린 적이 있다. 한번은 요양원을 방문했는데 환자의 욕창이 입원 치료가 필요한 상태였지만 어려움이 있었다. 마침 방문의료에 관심이 많은 본원 외과 과장님에게 의논했더니 기꺼이 동행해서 수술에 가까운 외과적 처치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경제적 상황이 어려운 경우에는 병원 사회복지팀에 연락해서 사회복지사 선생님과 함께 방문하기도 한다. 의료뿐 아니라 다양한 측면의 전문가들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Q 방문의료가 제도로 정착하기까지 앞으로 과제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김- 정부의 커뮤니티케어 정책은 자신이 살던 곳에서 충분한 의료 돌봄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지역통합돌봄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방문의료가 필수의료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지금은 공공의료 필수의료를 논의할 때 병원 중심의 응급센터, 중증외상센터, 심혈관센터 등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초고령화 사회에서 의료기관을 찾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진료받을 권리를 포함하고 있지는 못하다. 

생명과 직결된 치료중심의 '병원의료'와 더불어 응급상황으로 병이 커지기 전에 집에서 의료돌봄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방문의료'가 필수의료의 양축으로 함께 자리 잡아야 한다. 구석구석 전국의 마을에 존재하는 보건소와 보건지소에서 방문의료가 필요한 고립된 환자를 찾아 나서고, 방문의료가 가능한 민·관 방문의료 기관에 연결해주는 통합적 지역의료돌봄 허브가 작동된다면, 민·관이 협력하는 필수의료의 공공모델을 확장해갈 수 있을 것이다.

오- 방문의료의 핵심은 관계라고 생각한다. 병원이나 의료시스템은 비용과 효율을 성과로 보기에, 환자를 돌보는 것보다 질병 치료에 몰두한다. 하지만 환자의 집으로 찾아가게 되면 '나'와 '너'가 만나는 게 가능해진다. 병원에서 볼 수 없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환자가 아니라 사람이 보이는 일. 그게 돌봄의 시작이다. 책에도 나온 내용이지만 방문과 돌봄이 평가와 실적으로 전락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방문의료를 숫자로 판단하면 문제가 될 것이라는 글에 공감했다. 효율과 비용을 생각하기보다는 여럿이 함께 만나 돌볼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지면 좋지 않을까. 

내가 살던 곳에서 아는 사람들의 돌봄을 받으며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에는 다들 동의할 것이다. 나를 잘 아는 주치의가 마지막을 함께한다면, '연명의료 계획서'는 불필요한 서류가 아닐까. 무엇보다 1차 의료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으로는 '우리가 꿈꾸는 게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들기는 한다. 사의련(한국사회적의료기관연합회)같은 기관이 늘어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대부분의 의사는 의대와 전공의 수련을 마치기까지 십여 년의 시간을 대학병원에서 보낸다. 그 긴 시간 동안 대학병원이라는 고립된 섬에서 질병을 중심으로 환자를 만난다. 환자 집을 찾아가면 알게 되는 아플 수밖에 없는 삶의 맥락과 환경조건을 들여다볼 기회가 없다. 그 환자의 생활세계에서 가능한 건강계획을 세우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학생 교육과정부터 지역사회 고립된 주민을 만나며 의사로 성장해가는 수련과정이 필요하다 (환자를 찾아가는 사람들 中)

 

Q 만약 교육 과정에 ‘방문 의료’과목이 생긴다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김- 방문의료는 결국 나의 성장으로 이어진다고 전하고 싶다. 방문의료는 적절한 '의료적 행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삶이 성장하는 기회를 함께 만들어가는 만남이다. 그 만남은 의료인의 삶도 성장시키는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의학적 검사수치로 환원되지 않는 삶의 묵직한 건강결정요인들이 건네는 질문들 앞에 방문의료인은 도전받는다. 그리고 성장한다. 환자의 집을 방문해서도 질병중심의 진료실 경험이 너무 앞선다면, '가보니까 할 게 없네'라는 성급한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환자를 돌보는 모든 사람은 하나의 팀이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한 환자를 돌보는데도 의사 혼자가 아니라 다양한 보건의료복지 전문가들과 돌봄종사자들이 협력하는 확장된 팀 주치의가 필요하다. 
 

 ▲ 김종희 원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밝음의원 의사. ⓒ강원도사회적경제지원센터 ’G-care‘ 영상 갈무리
 ▲ 김종희 원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밝음의원 의사. ⓒ강원도사회적경제지원센터 ’G-care‘ 영상 갈무리

Q '환자를 찾아가는 사람들'은 사례 외에도 방문의료 실무나 제도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어떤 책으로 다가가기를 바라는가 

김- 공중보건의사, 의대생, 인턴, 전공의 선생님들에게 우선 추천하고 싶다. 특히 공중보건의사는 3년 동안 대형병원이 아닌 의료서비스가 충분하지 않은 지역에서 일하게 된다. 낯설고 새로운 환경이지만, 방문의료에 마음을 낸다면 지역에서 도움을 줄 든든한 응원 부대가 많을 것이다. 3년간의 좌충우돌 방문의료경험으로 향후 지역의료에 관한 관심이 커가기를 기대해본다. 그 과정에 이 책이 작은 호감을 끌어내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방문의료에 관심있는 보건의료전문가들이, 이 책을 통해 방문의료를 시작하고 그 경험을 나누는 작은 수다회들이 이어지길 희망한다.

라이프인 열린인터뷰 독점기사는 후원독자만 볼 수 있습니다.
후원독자분들은 로그인을 하시면 독점기사를 바로 볼 수 있습니다.

후원독자가 아닌 분들은 이번 기회에 라이프인에 후원을 해보세요.
독립언론을 함께 만드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요기사
인기기사
  • (07317)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영등포로62길 1, 1층
  • 제호 : 라이프인
  • 법인명 : 라이프인 사회적협동조합
  • 사업자등록번호 : 544-82-00132
  • 대표자 : 김찬호
  • 대표메일 : lifein7070@gmail.com
  • 대표전화 : 070-4705-7070
  • 팩스 : 070-4705-7077
  • 등록번호 : 서울 아 04445
  • 등록일 : 2017-04-03
  • 발행일 : 2017-04-24
  • 발행인 : 김찬호
  • 편집인 : 이진백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소연
  • 라이프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라이프인.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