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 활동가에서 신부(神父)로, 성당에서 만드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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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 활동가에서 신부(神父)로, 성당에서 만드는 마을
애은성당 박용성 신부 인터뷰
  • 2022.02.04 10:00
  • by 노윤정 기자

"…한참 걷다 보니까 발에 커다란 물집이 잡히는 거야. 물집 생긴 발도 아프고 다리도 당기고 날은 저물고. 그런데 근처에 마땅히 쉴 곳이 없어서 마을에 있는 교회에서 하룻밤 묵고 가기로 했어. 가까운 교회 건물로 가보니 문이 열려 있더라. 그래서 숨 좀 돌리고 쉬려니, 같이 여행하던 사람이 바늘에 실을 꿰어서 물집에 통과시키면 치료가 된다고 하는 거야. 그러면서 바늘을 꺼내는데….너희 바늘로 물집 찔러 봤어?"

학창시절, 담임선생님이 방학 동안 국토횡단 여행을 다녀왔다며 즐겁게 이야기해주었던 기억이 있다. 드문드문 떠오르는 기억 속에는 마을 교회에서 하룻밤 신세를 진 날의 이야기도 있었다. 바늘로 실을 꿰어 물집을 치료했다는 이야기(물집 안의 액체를 실에 흡수시켜 빼내는 원리라고 한다)가 제법 인상적이라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었다. 선생님의 여행담을 들으면서 '바늘로 찌르면 아프지 않나, 나도 나중에 여행할 때 교회에서 자볼 수 있나' 따위의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지금보다 종교시설의 문이 더 활짝 열려 있던 시절로 기억한다. 그렇기에, 지금 듣기에는 낯설 수 있는 담임선생님의 이야기가 당시에는 듣기에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드라마에서 등장인물이 늦은 밤에도 잠겨 있지 않은 성당이나 교회 문을 열고 들어가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나오지 않았었나. 그만큼 종교시설은 마을 안에서 열려 있는 공간이었고, 사람들이 쉬어 가는 쉼터였으며, 주민들이 모이는 소통의 장소였다.

▲ 애은성당. ⓒ라이프인
▲ 애은성당. ⓒ라이프인

대구 서구 평리동의 한적한 골목에 자리하고 있는 애은성당. 이곳 역시 과거에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나눔 활동을 하고 야학(상록야학)과 유치원(상록유치원)을 운영하는 등 주민들의 삶 속에 존재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지역 산업단지가 쇠퇴하자 마을 역시 침체됐고 성당은 쇠락했다. 낡은 건물은 마치 폐허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 교인들이 성당에 오기 무섭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그렇게 점점 성당과 주민 사이의 거리가 벌어졌다. 이런 분위기가 바뀐 것은 2019년 박용성(바르나바) 신부가 부제로 부임해 온 이후다. 그는 성당을 주민들의 공간으로 만들기로 하고 직접 리모델링을 하기 시작했다.

■ 성당, 교인만이 아닌 지역민을 위한 공간이 되다

▲ 박용성 신부. ⓒ라이프인
▲ 박용성 신부. ⓒ라이프인

"성당이 사람들에게 열린 공간, 사람들이 와서 쉴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박 신부는 가장 먼저 성당의 담장을 허물었다. 그리고 마당에는 꽃과 나무를 심고 꾸며서 사람들이 산책하듯이 가볍게 걸음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카페(에버그린)를 열어 주민들이 담소를 나누고 왕래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했다. 카페에서는 수시로 전시가 열려 주민들에게 문화예술 작품 감상의 기회를 제공한다. 차를 마시러 들르면 작가들이 그린 엽서 등의 상품도 볼 수 있다. 인프라가 열악한 작은 마을에서 문화예술 경험을 제공하는 장소는 귀하기 마련이다. 자연히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애은성당의 변화에 행정도 주목하여 성당을 주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조성하도록 지원했다. 성당 안의 마을책방(상록책방)과 마을식당(상록식당)은 대구시 '공유공간 조성 및 공유 네트워크 촉진사업'을 통해 개소한 곳들이다. 성당의 정원, 책방에서는 이제 아이들이 뛰어 놀며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하는 소리가 울린다.

"이곳 평리동과 비산동은 가난한 마을이다. 하지만 이런 마을에도 공동체가 살아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어릴 적 시골마을에서 자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리고 시민사회에서 활동했던 경험은 마을에서 사람들과 무엇인가 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그래서 성당을 마을주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내어놓자고 결심했다."

박 신부는 기꺼이 성당이 가진 사회적 자본을 마을, 사회와 함께 쓰고자 했다. 이러한 노력은 위기 속에서 빛을 발했다. 2020년 코로나19 확산 초창기 대구 지역에서 대규모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지역 목회자들과 시민사회 단체 활동가들은 지역 내 취약계층을 돕고자 모였다. 그때 공간적 거점이 된 곳이 성당 안의 카페다. 성당이 문턱을 낮추고 공간을 여니까,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위기를 극복하고자 손을 잡았던 경험이 계기가 되어, 현재 성당 카페 위층에는 위드교회 정민철 목사(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대구경북 지회장)가 이사장으로 선임된 위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위드의료사협)의 주 사무실이 마련되어 있다. 정 목사는 마을에 의료사협 형태로 주민들을 위한 병원을 설립할 계획이다. 일견 성당 안에 목사가 사무실을 차리고, 신부와 목사가 협업하는 것이 어색해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건강한 마을공동체 회복'이라는 공통의 지향가치가 있기에 뜻을 모으고 힘을 합칠 수 있었다.

"정 목사님이 위드 의료사협을 준비하던 중에 우연히 차를 한 잔 마시려고 성당 카페에 온 적이 있다. 그래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사무실 장소를 정하지 못 했다고 하더라. 카페 위층에 공간이 비어 있다는 것이 떠올라 이곳에 들어오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교회 목사가 성당 안에 들어오는 게 불편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목사님과 나는 지향점이 같고 서로를 존중하며 독립적으로 연대하고 있기 때문에 불편함이 없다. 이렇게 마음을 열어놓고 생각하면 길이 생긴다."

■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보여주어야…"

▲ 애은성당 내부에 있는 에버그린 카페. ⓒ라이프인
▲ 애은성당 내부에 있는 에버그린 카페. ⓒ라이프인

박 신부는 사제로 서품되기 전 아름다운가게, 환경운동연합,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 활동 등 시민사회 영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왔다. 이러한 배경은 그로 하여금 사제가 된 이후에도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힘'을 믿게 했다.

기실 박 신부가 사제의 길로 들어선 이유도 '사람들'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가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강정마을에서 활동할 때였다. 강정마을은 늘 치열한 투쟁의 현장이었다. 그렇기에 몸도 마음도 지치기 쉬웠다. 그런 그에게 성당에 모여 따뜻한 온기를 주고받는 사람들의 모습은 크게 와 닿았다.

"경찰들과 심하게 충돌한 적이 있었다. 그날 많이 맞기도 하고 때리기도 했다. 당연히 마음이 착잡했다. 그 상태로 길을 걷다가 우연히 성당 근처를 지나가게 됐는데, 마침 그때가 딱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화기애애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왜 그렇게 부럽던지. 어머니가 기독교인이어서 나도 어릴 적 성당에 다녔었다. 그때 기억이 떠오르면서 내가 그 공동체 안에서 많이 위로 받았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 후 박 신부는 부제가 되어 애은성당에 부임했고, 그로부터 3년 여가 흘렀다. 그 시간 동안 성당은 마을주민들의 삶에 보다 가깝고 친숙한 공간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마을에도 유의미한 변화들이 생겨났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아이들이 성당을 '아지트'로 삼았다는 것이다.

"이 동네에는 소위 '일진' 아이들이 많다. 어떤 학교에는 대구 지역 폭력조직들과 연결되는 그룹도 있다. 워낙 환경이 열악하다 보니까 좋지 않은 유혹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그런 아이들의 주 무대가 마을 공원이었다. 그 아이들이 늦게까지 공원을 점령하고 있으니 동네 어르신들이 무섭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런데 성당 문을 여니까 그 친구들도 성당에 와서 놀기 시작하더라."

물론 그 과정에서 말썽도 있었고 갈등도 있었으나, 계속 부대끼고 먹을 것을 나누면서 소통과 이해를 주고받았다. 마을 어른들이 공유식당에서 아이들을 위해 밥을 해서 먹이고 간식을 챙겨주니, 그들 사이에 있던 긴장감도 녹아 사라졌다. 그리고 대화를 하면서 아이들이 가진 꿈과 고민, 어려움을 알게 됐다. 아이들은 잘못도 하고 실수도 하면서 자란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실수를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보듬어줄 보호자가 필요하다. 애은성당은 마을 아이들에게 그런 보호자이자 울타리의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 애은성당을 아지트 삼은 동네 아이들의 모습. 박용성 신부 제공.
▲ 애은성당을 아지트 삼은 동네 아이들의 모습. 박용성 신부 제공.

물론 아이들만 성당에 오는 것은 아니다. 마을 어르신, 청년 교인 등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이 성당을 거점으로 교류했다. 박 신부는 애은성당이 '소통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그는 "사람들이 함께 지내다 보면 서로 사랑할 때도 있고 미워할 때도 있다. 가까이에서 부대끼다 보면 때로는 상처가 생기기도 하지만, 그게 삶이지 않나. 마을은 그렇게 살아 움직여야 한다"며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소통하도록 하는 역할을 종교공동체가 할 수 있다. 애은성당이 해야 할 일도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느끼게 하는 것 말이다"라고 말했다.

박 신부는 성당을 '성당만의 것'으로 남겨두기를 포기함으로써 '우리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그는 "'우리 성당', '우리 신부님'이라는 말이 제일 좋다. 성당이 언제든지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이길 바라고, 내가 편하게 속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신부였으면 좋겠다. 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우리 신부님'이라고 불리는 것이 참 좋다"고 고백했다.

어찌 보면 대단하지 않은 변화처럼 보일 수도 있다. 성당은 그저 문을 열었을 뿐이다. 그러나 문을 열고 자원을 공유하니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였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결국 지역을 바꾸는 힘이 되었다. 사람들이 마을을 사랑하도록 만드는 힘도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지역에서 해볼 수 있는 일이 많아서 힘들어도 재미있다는 박 신부에게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는지 물었다.

"꿈이 하나 있다. 제주도에 아시아 평화의 순례자 집을 만드는 것이 일생의 꿈이다. 알뜨르비행장, 4.3사건, 강정마을 해군기지, …. '평화'와 관련하여 제주라는 지역이 갖는 역사적 의미가 큰데, 그런 지역에 아시아 청년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다. 일단 그렇게 모여서 같이 놀게 하면 어떤 일이든 이루어진다. 애은성당에서 하고 있는 일이 그 시작점이다. 이 열악한 마을이 공동체를 통해 회복된다면 내 삶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곳을 기반으로 삼아서 아시아 평화공동체를 만드는 꿈을 꿔보려고 한다. 사람들이 갖는 힘은 주변으로 퍼진다. 애은성당 안에서 변화를 만드는 힘이 하나 생기면 주변으로 또 다른 힘들이 생길 것이고, 그 힘들이 연결된다면 지역을 새롭게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 밤에 본 애은성당. 성당 주변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골목이 너무 어둡지 않도록 불을 밝혀둔 모습이다. ⓒ라이프인
▲ 밤에 본 애은성당. 성당 주변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골목이 너무 어둡지 않도록 불을 밝혀둔 모습이다. ⓒ라이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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