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소녀방앗간, 대지의 힘과 할머니의 손길을 더 값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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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소녀방앗간, 대지의 힘과 할머니의 손길을 더 값지게
  • 2022.01.29 11:00
  • by 송소연 기자
04:19

동아시아의 농부들은 환경에 맞는 곡물을 찾기 위한 끊임없는 도전 끝에 땅을 기름지게 하고 가뭄과 홍수에도 비교적 생산량이 높은 벼를 선택했다. 농부들은 수로체계를 만들어 생산량을 증가시키고, 동반식물을 같이 심어 맛과 영향이 좋은 채소로 키워냈다. 추수가 끝나면 건조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밀, 보리, 콩 등을 이모작해 토양의 수분을 보존하고 지력을 높여 잡초가 무성해지는 것을 방지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대지에 입맞춤을(Kiss the Ground, 2020)'은 이러한 농부들의 지혜가 담긴 흙을 살리는 농업이 기후위기의 대안이라 제시한다. 땅속에 유기물이 1% 증가할 때마다 토양은 4천㎡당 10톤의 탄소를 더 흡수한다. 고체화된 탄소를 늘려갈수록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낮출 수 있다는 것. 하지만, 화학비료와 농약, 농기계를 사용하는 산업적 농업방식은 흙을 망가뜨려 흙이 탄소를 흡수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흙 속의 탄소를 배출하게 만든다. 대량생산으로 값싸고 편하게 먹으려는 우리의 식문화가 기후위기를 가속화 한 것이다. 

 

▲ 소녀방앗간 용산아이파크몰점. ⓒ소녀방앗간 
▲ 소녀방앗간 용산아이파크몰점. ⓒ소녀방앗간 

여기 한 소녀가 있다. 소녀는 일했던 회사를 그만두고 휴식차 지인이 있는 청송에 내려갔다. 그리고 산골 어르신들이 내어준 밥 한 끼에 위로를 받았다. 건강한 음식이 마음마저 건강하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어르신들이 정성스럽게 키운 농작물은 유통 경로를 찾지 못해 헐값에 팔려나가고 있었다. 지역의 농가에 안정적인 소득을, 도시에 건강한 식재료를 전달할 방법을 고민했던 김민영 대표는 청정재료 한식밥집 '소녀방앗간'을 시작하게 됐다. 

'소녀방앗간'에는 음식을 대접하는 사람의 설레는 마음이 있다. 월산댁 뽕잎, 일포댁 취나물, 진보정미소 도정 30일 이내 햅쌀, 방위순 할머니 재래 간장, 장순분 어르신 들깨로 짠 들기름, 우도영 할머니 오징어 무말랭이 된장 전갈. 소녀방앗간의 시그니쳐 메뉴인 산나물밥에는 이렇게 땅과 공기가 주는 에너지를 온전히 담은 재료와 수십 년간 농사를 지어온 장인들의 식문화가 담겨 있다. 

 

▲ 소녀방앗간 나물이야기. ⓒ소녀방앗간 
▲ 소녀방앗간 나물이야기. ⓒ소녀방앗간 

김민영 대표는 "지역에서 직접 담근 된장은 도시에서는 쉽게 먹을 수 없잖아요. 할머님들이 얼마나 대단하고 귀하신 분들인지 매일 놀라움의 연속이예요."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먹거리에 대한 진정성은 지속가능한 생산과 낭비 없는 소비의 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소녀방앗간은 지난 10년 동안 전국의 먹거리 생산자들과 인연을 맺어왔다. 청송, 산청, 영양, 하동 김해, 안동, 영주, 예천, 태백, 원주, 화천, 곡성, 나주, 고창, 부안, 연천까지. 청정지역에서 자란 곡식은 소녀방앗간의 정체성이 되고 있다. 소녀방앗간은 소농의 푸릇한 양심을 품고 경작을 하는 생산자로부터 배우며, 지속가능한 생산을 위해 지역 청정식재료를 개발하는 '푸릇농펠로십'을 운영한다.

 

"힘듦의 다소(多 少)를 헤아리고 저것이 어디서 왔는가를 생각하여 보아라. 이 음식을 갈고, 심고, 거두고, 찧고, 지진 후에 공이 많이 든 것이다. 하물며 산 짐승을 베어 내어 맛있게 하려니 한 사람이 먹는 것이 열 사람이 애쓴 것이다. 사백사병(수많은 질병)은 각 병이 된 까닭이 있으니 그런고로 음식으로 의약을 삼아 나날이 좀 부치는 듯 먹어야 한다. 저를 들면 늘 약을 먹는 것 같이 생각하라" -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閨閤叢書·1809년)'

 

▲ 산 속에 핀 수많은 풀 중에 먹을 것을 골라내는 눈, 옛부터 이어져 내려온 발효음식의 전통, 계절을 대비해 식량을 갈무리하던 혜안. 소녀방앗간은 오래 간직되어 온 빛나는 오지(奧地)를 찾아 지역과 도시 모두를 위로하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 ⓒ소녀방앗간 
▲ 산 속에 핀 수많은 풀 중에 먹을 것을 골라내는 눈, 옛부터 이어져 내려온 발효음식의 전통, 계절을 대비해 식량을 갈무리하던 혜안. 소녀방앗간은 오래 간직되어 온 빛나는 오지(奧地)를 찾아 지역과 도시 모두를 위로하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 ⓒ소녀방앗간 

생산부터 가공, 유통, 그리고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식품은 본질적으로 기후위기와 관련돼 있다. 소녀방앗간은 100% 국산 농산물만 취급하기 위해 5곳의 매장이 모두 직영으로만 운영한다. 이곳에는 매일 새로운 반찬을 선보이는데 그 이유는 지역에서 생산된 잉여 농산물이 폐기되지 않도록 활용하기 위함이다. 최근에는 신설동에 푸드리퍼브(Food Refub) 식재료로 만든 캐주얼다이닝 '소울 보울 앤 부즈'를, 옥수동에 마음을 위로해주는 '차'와 몸을 바로 잡아주는 발효 '장'을 판매하는 로컬 티(Tea) & 제로웨이스트 카페 '진지함'을 오픈했다. 참고로 푸드리퍼브는 맛과 영양에는 문제가 없지만 모양이 매끈하지 않거나 흠집이 있는 못난이 농산물이다. 

김민영 대표는 "된장국에 된장 말고는 아무것도 넣지 않아요. 고집스럽지만 세상에 맛있는 된장찌개는 많으니 우리만이라도 예전의 된장국의 맛을 기억해 보자는 취지예요. 산나물밥에는 20~30대에게는 생소한 어수리나물, 다래순나물 부지깽이나물을 넣고요."라며 계속해서 속 편하게 밥 먹을 수 있는 식문화가 확산될 수 있도록 힘쓸 예정이라고 한다. 가지볶음에 돼지고기를 조금씩 넣고, 무말랭이는 먹기 편하게 얇게 만드는 방식으로 식재료의 다양한 변주도 계속 시도하며, 완벽한 비건이 아니더라도 비거니즘(Veganism)의 허들을 낮춰 자연스럽게 먹고 소비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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