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구조적 불평등 해결하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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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구조적 불평등 해결하기 위해서는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 2021 아시아미래포럼 기조세션2 참여
  • 2021.10.21 09:00
  • by 정화령 기자

'정의란 무엇인가'로 국내에 잘 알려진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2021 아시아미래포럼 두 번째 기조세션의 대담자로 참여했다. 그는 지난해 말 출간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개인의 능력으로 성공을 이뤄냈다고 평가하는 능력주의는 승리와 패배를 자연스럽게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구조적인 불평등을 고착시킨다"라고 지적했다. 이는 결국 사회 분열로 이어져 팬데믹 상황에서 약자의 위치는 더욱 위험해지고, 사회와 국가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 현상이 될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

이날 대담은 김선욱 숭실대학교 학사부총장과 김은미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의 질문에 샌델 교수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 왼쪽부터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학교 교수, 김선욱 숭실대학교 학사부총장, 김은미 이화여자대학교 총장. 온라인화면 갈무리
▲ 왼쪽부터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학교 교수, 김선욱 숭실대학교 학사부총장, 김은미 이화여자대학교 총장. 온라인화면 갈무리


■ 능력주의는 비판하지만 능력은 가치있게 평가했는데, 그 둘의 가치를 구분하기는 사실 어렵지 않은가. 

첫째로 능력주의는 권력과 보상이 있는 규칙의 체계이다. 
두 번째로 능력주의에서는 승자가 이익을 얻을 자격이 있다고 정당한 자격을 부여한다. 능력이 뛰어난 이들이 큰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개념이다. 
마지막으로 능력주의는 능력을 측정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그 기준은 시험과 시장의 평가이다. 사람들은 얼마나 돈을 버는지가 능력의 척도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잘못되었다고 본다. 
이런 능력주의의 특징에 의해 승자와 패자의 사회가 만들어지고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능력 자체에는 찬성하지만 능력주의 체계에는 반대한다. 

 

■ 능력주의를 잘 다루기 위한 해법으로 겸손과 겸허함을 제시했다. 하지만 개인의 겸손한 삶을 사회와 제도 안에 그대로 반영할 수 있다고 보는가.
 
불평등, 소득과 부, 명예와 명성의 불평등을 해결하기에 개인의 변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불평등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기 시작했고, 개인적인 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 특히 성공한 경우에 겸손함에 대한 의식을 강화해야 한다. 나의 성공이 내 능력 때문이라는 오만함이 제도개혁을 이루는 사회적 연대를 느슨하게 하기 때문이다. 
공동선에 대한 책임을 느끼지 못한다면 조세제도나 일자리 같은 구조적 변화를 이뤄내기는 어렵다. 결국 개인의 변화가 사회 변화와 맞물려있다고 생각한다.

 

■ 교육에서 능력주의를 배제하기 힘들다. 저서에서 이야기한 ‘대학 신입생 추첨식 선발’ 같은 제안은 입시를 순전히 운에 맡긴다고 생각할 텐데.

능력주의 비판의 관건은 능력주의가 불평등을 진지하게 해결하는 데 있어 장애물이라는 걸 인식하는 일이다. 대학입시에서 가구 소득이 높을수록 높은 점수가 나올 확률이 높다. 능력주의 사회에서도 개인의 배경에 따라 능력의 불평등이 재생산된다는 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장이 주도하는 능력주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고등교육이 본질적인 사명과 목적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내 주장은 대학 입학에 전면적 추첨제를 도입하자는 것이 아니라 자격을 갖춘 사람을 먼저 판단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추첨을 통해 입학 여부를 결정하자는 것이다. 이는 입학이 허가된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인생에서 운이 가지는 역할을 상기시킬 것이다. 운을 새로운 원칙으로 도입하자는 게 아니라 완전하게 공정한 입학제도라도 운의 역할에 주목하게 하자는 주장이다. 

 

■ 전 세계로 보면 북반구의 R&D 지출이 남반구에 비해 압도적으로 크다. 그리고 대부분 민간 자본이라는 특징이 있다. 결국 민간에서 세계화를 어떻게 주도하느냐에 따라갈 수밖에 없고 개발도상국의 고등교육과 R&D는 간과하게 된다.

단순히 선진국의 교육과 연구개발 방식을 도입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개도국에서 고등교육이 학생 선별 기계로 발전하는 걸 막기 위해 도덕과 시민교육을 커리큘럼에 포함해야 한다. 지금까지 교육이 개인의 사회적 위치 상승의 도구로 전락해서 시민의 공적 사명이 너무 모호해졌다. 민주시민으로서 어떤 혁신과 기술 진보가 공동선에 가장 부합하는지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모더나 백신은 대대적인 공공투자로 R&D와 백신 구매에 약 20억 달러 이상의 연방기금을 사용했다. 공공기금이 들어간 만큼 개도국의 백신 접근성을 해결하기 위해 특허권이나 지식재산권의 접근을 푸는 건 어떨까? 공동선, 세계적인 공익을 위해 지재권을 풀자는 이야기를 섣불리 하지 못하는 건 선진국과 개도국의 간극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 능력주의의 어두운 면이 세습에서 기인하는데, 가족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귀족사회나 카스트제도에서 세습은 토지나 귀족작위를 계승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능력주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세습은 존재하는데, 부유한 부모가 자녀들에게 문화적이고 교육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형태를 취한다. 그저 능력주의를 완벽하게 만들고 싶다면 자녀들이 부유한 부모의 돈을 물려받지 못하도록 강력한 상속세를 부여하고, 문화적 교육적 혜택과 입시 간 상관관계를 없애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가족과 부모자녀 관계에 강력하게 개입하는 방법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생애 소득이 대학 입학과 학위취득에 점점 많이 결합하고 있다. 부모가 자녀의 발전을 돕는 걸 금지하고 싶지 않다면 좋은 시험점수와 상위권 대학에 진학이 운명을 결정하지 않도록 하자. 노동의 존엄에 초점을 맞추자는 것이다. 공동선에 모든 사람의 기여를 존중하고 보상해야 한다. 팬데믹은 불평등을 더욱 부각시키는데, 재택근무가 가능했던 사람들과 일자리를 잃었거나 직무 수행을 위해 심각한 위험에 노출된 사람들의 간극이 심각했다. 이제 택배 노동자, 식료품 점원, 간호사, 돌봄 종사자, 운전사, 미화원 등 높은 보수와 존경을 받지 못하는 필수노동자의 가치와 기여에 대해 논의할 차례이다. 

 

■ 겸손의 태도는 세계화의 승자들이 가질 자세라고 생각한다. 팬데믹에서 개도국은 선진국에 의지하던 일자리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겸손에 대한 논리를 국제 관계에 적용한다면.

이론적으로는 도덕적 논리와 운에 대한 개념이 국가 간에도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개인의 태도를 바꾸는 것도 어려운데 국가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이다. 20년을 이어온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국은 겸손에 대한 교훈을 얻었다. 1조 달러 이상의 돈을 썼지만 결국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했고 더 혼란스러운 상황을 초래했다. 오만한 태도에 대해 성찰할 필요가 있으며 이는 역사적으로 다른 강대국도 마찬가지다. 선진국의 성공에는 오만이 동반되기 마련이라 그러한 태도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 「공정하다는 착각」을 썼다. 내가 성공하는 과정에서 따른 운과 타인에게 진 빚에 대해 이해하고 그 개념을 국가에도 적용한다면, 국가 간 관계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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