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소비자의 선택은?③] 플라스틱 아닌 종이팩에 생수를 담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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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소비자의 선택은?③] 플라스틱 아닌 종이팩에 생수를 담았다고?
  • 2021.09.14 09:00
  • by 최은주(소비자기후행동 조사연구팀)

집중호우, 가뭄, 태풍 그리고 코로나19까지 기후위기는 단순한 기후 문제를 넘어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이 추세라면 일상의 안전 위협을 넘어, 경제·사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개개인의 작은 실천만으로는 기후위기의 속도를 늦추기에는 역부족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책임 있는 행동이 요구된다. 하지만 개인의 실천이 아무 의미가 없으니 모두가 시위나 집회에 참여하는 집단행동을 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 행동은 함께해야 효과가 나타난다. 

지난 5월에 열린 '2021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에서 기후위기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와 국가 간 협력도 중요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작은 실천"이라고 말한 바 있다. 기후위기를 마주한 개인이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라이프인은 소비자기후행동 조사연구팀의 기획물 ▲빨래할 때마다 미세플라스틱이? ▲소금은 미세플라스틱으로부터 안전할까? ▲우리의 식탁이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등을 통해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소비자들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시리즈로 소개한다. [편집자 주]


어릴 적 마당 한 켠에 우물이 있었다. 두레박 하나가 걸쳐있어 물이 필요할 때면 사시사철 우물가로 달려가 길어 올리기만 하면 되었다. 샘물은 여름철 시원한 가지냉국을 만들어주었고 대숲을 뛰어다니며 놀던 아이들의 마른 목을 적셔주었으며 일터에서 돌아온 아빠에게 시원한 등목을 해주었다. 하얀 눈이 덮인 겨울철에도 우물은 따뜻한 호박죽을 만들어주고 구들장을 데워주어 아이들은 뒹굴거리며 만화 삼매경에 빠질 수 있었다. 때론 놀이터가 되어주기도 했다. 저 아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물에 비친 하늘에 얼굴을 비춰보고 소리를 질러 메아리를 만들던 추억이 새롭다.

도시로 이사한 이후로는 항상 수돗물을 쓴다. 정수장에서 정화된 물은 파이프를 타고 우리 집 수도꼭지에 붙은 직수형 정수기까지 거쳐 비로소 마실 수 있는 물이 된다. 밖에 있는 동안에도 물이 필요하면 언제 어디서나 먹는 샘물인 생수를 사서 갈증을 해소하거나 손수건에 묻혀 땀을 닦거나 아이의 더럽혀진 손을 씻을 수도 있다. 어릴 적 우물물은 이제 아무 때나 사서 쓸 수 있는 물이 되었다. 하지만 즐거움도 추억도 없다. 대신 쓸모를 다한 플라스틱 생수병이 순식간에 쓰레기가 되어 쌓인다. 

지금은 플라스틱 생수병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이런 거부감이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된 것은 코에 꽂힌 빨대를 빼주는 동안 눈물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던 거북이를 본 이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죽어가는 바다생물들의 배 속을 가득 채운 플라스틱, 바다에서 발견되는 쓰레기의 47%를 차지하며 2050년이면 물고기를 제치고 바다의 주인행세를 할 것이라는 플라스틱, 500년 이상 썩지 않고 떠돌아다니다가 미세플라스틱이 되어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플라스틱, 그리고 태어나고 사용되고 폐기된 이후까지도 탄소발자국을 찍어대는 플라스틱. 인간이 만들어내는 그 어떤 공포 영화보다도 더 공포스럽다. 이제 플라스틱과의 결별을 시작해야 할 때이다.

플라스틱이 현대인의 생활에 등장한 것은 100여 년 정도이고 사용이 보편화된 것은 50여 년에 불과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속도와 다양함을 뽐내며 확산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생수가 판매된 것은 1995년에 ‘먹는물관리법’이 제정되고 정부가 생수 판매를 허용하면서부터였다. 이후 생수시장은 급속히 커지게 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생수 생산규모가 2013년 5057억 원에서 2017년 7606억 원으로 매년 약 10.7%씩 비약적으로 성장했다고 발표했고, 시장조사기업 유로모니터는 한발 더 나아가 코로나19로 인해 생수시장은 더 성장할 것이며 2023년쯤에는 시장규모가 2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을 하였다. 생수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본 유통업체와 식품업체들이 이 시장에 너도나도 뛰어들다 보니 지금은 무려 300여 개의 생수브랜드가 유통되고 있다. 

생수병이 소비자의 손에 들어온 후 쓰레기가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으니, 생수산업이 성장하는 속도대로 생수병 쓰레기도 거의 실시간으로 급속히 쌓여간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2018년 한국인들의 생수 사용량을 측정한 후 이를 500ml 생수병으로 환산해보니 국민(5100만 명) 한 사람이 일 년 동안 생수 72병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린피스는 2019년에 발간한 보고서에서 우리 국민이 연간 소비하는 생수 PET병은 49억 개(71400톤)로 이 생수병을 세워놓으면 지구를 10바퀴 이상 감을 수 있는 양이라는 자체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재활용되는 비율이 턱없이 낮다는 사실이다. 플라스틱의 종류가 워낙 다양한 데다 여러 종류의 플라스틱에 다른 물질까지 섞어서 상품을 제조하다 보니 재활용이 용이하지 않아서 전 세계적으로 폐기물의 재활용률이 9%에 불과하다. 그나마 재활용 분리배출이 용이한 PET병조차도 한국에서 실제 재활용률은 50% 수준이라고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수업체 중 최초로 롯데칠성음료가 아이시스 생수병에서 라벨(상표띠)을 떼고 페트병 몸체에 제품명을 음각한 데 이어 2021년에는 묶음 포장용 병의 마개에 부착된 라벨도 제거했다. 환경부는 지난 2월 10개의 먹는샘물 제조업체들과 ‘상표띠 없는 투명페트병 사용’ 업무협약을 체결하여 올해 말까지 출시되는 제품 중 20% 이상을 상표띠 없는 투명페트병으로 교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한 페트병의 플라스틱 사용량을 20~30% 줄여 경량화하는 정책을 검토하는 중이라고 한다. 재활용의 용이성을 높이고 플라스틱 사용량과 온실가스를 모두 줄이겠다는 것이다. 환경부의 적극적인 정책과 환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앞으로 상표띠 없는 무라벨 생수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생수 제조업체의 움직임은 생산단계에서부터 자원순환체계를 고려하여 플라스틱의 순환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만하다. 그러나 여전히 플라스틱에 기반한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우물에서 샘솟는 물로 회귀할 수도 없고 인간의 삶 속에 광범위하고 깊게 뿌리내린 플라스틱을 단번에 모두 걷어낼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좀 더 본질적으로 플라스틱을 줄일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시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아이쿱생협의 시도는 훨씬 진전된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쿱생협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도입하고 있으며 그중 하나로 미세플라스틱을 걸러낸 해양심층수를 플라스틱이 아닌 종이팩에 담아냈다. 영국 윤리적소비연구소(Ethical Consumer Research Association Ltd.)의 제인 터너는 테트라팩(멸균종이팩)의 탄소발자국이 77~103g(CO2e/리터)인데 반해 플라스틱병은 350g(CO2e/리터)으로 플라스틱의 탄소발자국이 종이에 비해 훨씬 크고 제조에 사용되는 에너지도 많다고 한다. 종이가 기후위기 시대에 적합한 소재인 것은 분명하다. 또한 아이쿱생협은 사용 후 종이팩을 재활용할 수 있도록 관련 업체들과 함께 재활용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어서, 소비자들의 적극적 참여가 뒷받침된다면 대부분의 종이팩이 폐기되지 않고 다른 제품으로 거듭날 수 있다. 종이팩 생애주기에서 발생하는 탄소발자국을 줄일 수 있다.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에 사회가 원하는 가치가 담기고 제품을 소비하면서 진정성에 공감할 수 있을 때 소비자들의 마음이 움직인다. 그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다른 기업들이 따라 움직인다면 사회변화는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생수시장의 최강자인 삼다수, 2·3위를 다투는 아이시스와 백산수, 과연 누가 이 변화에 함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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