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 이후 전 세계에서 아시아인을 향한 인종차별 뉴스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게 되었다. 미래가 불확실할수록 협력과 화합보다는 담을 쌓고 내 것을 지키려 한다. 이러한 고난과 역경의 세상을 마주하고 있는 청년은 증오와 혐오의 시대에서 무기력에 점점 잠식되고 있다.
MTA LEINN에서 필자는 무기력을 극복하고 주체로써 살아갈 수 있는 단초를 찾았다. MTA는 Mondragon Team Academy의 약자로 스페인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협동조합 정신과 핀란드의 팀 교육 방법론이 합쳐진 커뮤니티이다. MTA LEINN은 유럽 공식 4년제 학위로 Leadership(리더십), Entrepreneurship(기업가정신), INNovation(혁신)을 전공한다. 수업, 시험, 교수가 없다. 수업 대신 실제 팀으로 협동조합 창업하여 실천하며 배운다.(Learning by doing) 시험 대신 서로 대화하며 함께 평가한다. 교수대신 팀코치가 있다. 4년 동안 실제 창업하여 세계여행을 하며 돈(매출, 순수익)을 만들어야 졸업할 수 있는 학위이다.
2017년, 다국적 친구들 15명이 함께 협동조합을 창업하고 지난 4년간 중국 상하이, 스페인 빌바오, 미국 시에틀, 한국 서울, 독일 베를린 등 다양한 국가를 여행하며 수십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팀원이 스페인 빌바오 지역에 있을 때 필자도 인종차별을 피해갈 수 없었다. 하루는 햄버거 가게에서 한국인 동기 3명과 함께 햄버거를 먹고 있었는데 초등학생 무리 8~10명이 주변을 감쌌다. 두 눈을 손가락으로 찢으며 니하오와 "¿Hablas Chino?"(스페인어로 '중국어 할 수 있어?')를 외치며 10여 분을 조롱하더니 도망갔다. 당시에는 스페인어도 매우 서툴렀고, 너무 당황스러워서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무리가 떠난 뒤 너무 분해서 도망가는 그들을 쫓아갔다. 한국어로 고함치며 부모님과 담임 선생님의 연락처를 받고, 구글 번역기로 번역하여 어떤 일을 했는지, 그들의 행동이 왜 잘못되었는지 설명했다. 그렇게 해프닝으로 지나갈 줄 알았던 사건은 이후로 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만약 초등학생이 아니라 고등학생, 성인이었다면 똑같이 대처 할 수 있었을까? 비슷한 일을 당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동양인으로서 유럽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두려워졌고, 무지에 나오는 동양인을 무시하는 발언을 들을 때마다 분노가 치밀었다.
이후 함께 창업한 팀으로 돌아갔다. 햄버거 가게에서 일어난 일화를 들려주자 팀원들은 함께 분노하고,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이 문제를 MTA 방식으로 해결해 보기로 했다. 처음 시작했던 것은 빌바오 곳곳에 숨어있는 한국의 조각을 모으는 것이었다.
길을 거닐다 보면 어렵지 않게 BTS를 비롯한 다양한 아이돌 그룹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10대 무리를 볼 수 있다. 춤을 추고 있는 친구들에게 다가가 어떻게 케이팝(K-pop)을 알게 되었는지, 빌바오에 K-pop을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를 다짜고짜 물어봤다. 몇몇 친구는 이상한 눈초리를 하며 도망갔지만, 영어를 할 줄 아는 우호적인 친구들이 많은 정보를 줬다.
빌바오와 인근 지역에 K-pop과 관련하여 활발하게 활동하는 커뮤니티 회원 수만 1,000명이 넘고 뿐만 아니라 유명 온라인 게임인 ‘리그 오브 레전드’의 페이커 선수도 유명하고, 한인이 운영하는 태권도 학원도 찾을 수 있었다. 곳곳에 흩어진 한국의 조각을 모아서 한국 문화 행사를 열어 빌바오의 많은 사람이 한국을 알고, 더 나아가 함께 살아갈 기회의 장을 만들기로 했다.
행사를 열기 위해서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자원과 함께 할 수 있는 파트너 리스트를 만들었다. 한국, 스페인 정부 기관, 유럽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한국의 회사, 한인회 등 1,000개 이상의 기관에 행사 개요가 담긴 제안서와 협력 요청서를 보냈다. 그 결과 한국문화원, LG, 빌바오 지방정부를 비롯한 8개의 기관의 협찬을 받을 수 있었다.
빌바오 한가운데 MOYUA 광장에서 열리게 된 한국 문화행사 EUSKOREA는 성공적이었다. 누적 방문자수 2,500명, 2개월 간 인스타그램 노출 수 66,525, 팔로워 수 1,512명을 달성했다. 스페인 지역 9시 뉴스와 라디오에도 소개되며 빌바오에 한국 문화를 알릴 수 있었다.
인종차별을 당한 뒤 충분히 우울증, 무기력증에 걸릴 수 있었지만 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바로 팀과 기업가정신이었다. 약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기댈 수 있는 팀이 있었기에 회복과 성장을 할 수 있었다.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시장의 문법으로 풀어내어 많은 사람에게 가치를 줄 수 있고 더 나아가 지속가능하게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비록 작은 발걸음이지만 필자에게 있어 인종차별이 더 이상 다른 사람이 해결해 줘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되었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세상에는 인종차별뿐 아니라 기후위기, 젠더 갈등, 세대 갈등, 혐오와 같이 다양하고 거대한 문제가 존재한다. 이러한 주위의 문제를 팀과 함께 기업가정신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다면 그 해결의 단초는 우리 손안에 있을 것이다.
라이프인 열린인터뷰 독점기사는 후원독자만 볼 수 있습니다.
후원독자분들은 로그인을 하시면 독점기사를 바로 볼 수 있습니다.
후원독자가 아닌 분들은 이번 기회에 라이프인에 후원을 해보세요.
독립언론을 함께 만드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