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잇다⑥] 식탁 앞에 마주 앉은 아시아인 -우리 '안'의 공정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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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잇다⑥] 식탁 앞에 마주 앉은 아시아인 -우리 '안'의 공정무역
  • 2021.04.07 09:00
  • by 신명직 (구마모토 가쿠엔 대학교 교수)

"어린이는 도구를 들고 일하는 대신 연필을 들고 공부를 해야 합니다.(이크발 마시흐)" 이크발 마시흐는 수제 카펫 공장의 열악한 아동노동을 현실을 고발했고, 파키스탄의 1만 명의 어린이들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켰다. 하지만 처참한 생활환경은 시대와 장소를 바꾸어 여전히 동아시아에서 존재하거나 확대되고 있다. '거멀라마 자이 꽃을 보며 기다려 다오'를 통해 저자 신명직 구마모토가쿠엔 대학 동아시아학과 교수는 네팔의 아동노동의 현실을 알리고, 아동노동과 이주노동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한 대안으로 '동아시아공생문화센터'를 설립했다. 작년 라이프인의 [마을잇기] 연재에서는 일본의 '무차차 농원'을 통해 공생무역의 개념을 확장해 국경을 넘어 동아시아의 마을들을 잇는 로컬-상생과 탈국가적인(transnational) 마을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올해 [마을잇기]에서는 일본의 페어트레이드를 통한 아시아의 마을 잇기의 가능성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 네팔 산골에서 만난 아이  뒤로 코카콜라 간판이 보인다. ©ShinMJ
▲ 네팔 산골에서 만난 아이  뒤로 코카콜라 간판이 보인다. ©ShinMJ

코카콜라가 불러낸 네팔 산골마을 아이들  

페어트레이드는 물론 국경을 넘는 교역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한번은 네팔 커피마을로 가는 어느 산 속 마을에서 아이들을 만난 적이 있다. "나마스테"라고 하며 두 손 모아 인사하는 아이들 뒤로 벽면 가득 빨간 글씨로 적힌 코카콜라 간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때 문득 만약 이 아이들이 이 마을을 떠나 카트만두에서 아동노동을 하게 된다면, 아마도 저 코카콜라 간판이 이 아이들을 카트만두로 불러들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트만두로 간 그 아이들은 어찌 되었을까. 청년이 되고 하나 둘 한국으로, 일본으로, 중동으로 이주노동을 떠났을지 모를 일이다. 히말라야 산골짜기까지 찾아 들어선 그 코카콜라 간판이 아이들을 카트만두로 아동노동을 하도록 유인해냈다면, 카트만두의 삼성과 도요타 간판은 그 아이들을 다시 한국과 일본으로 유인해냈음이 틀림없다.  

▲ (왼쪽) 일본 나가노 현의 고랭지 양상추 산지의 외국인 기능실습생 ©朝日新聞 (오른쪽)일본 미야자키 현의 가쓰오 잡이와 외국인 기능실습생 ©朝日新聞
▲ (왼쪽) 일본 나가노 현의 고랭지 양상추 산지의 외국인 기능실습생 ©朝日新聞 (오른쪽)일본 미야자키 현의 가쓰오 잡이와 외국인 기능실습생 ©朝日新聞

도시의 값싼 (아동)노동을 위해 산골마을 아이들을 카트만두로 불러들인 것도, 값싼 노동력이 부족해 방글라데시, 네팔, 파키스탄 청년들을 한국과 일본으로 불러들인 것도, 따지고 보면 9천 대 260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유지하고 신자유주의를 확대하기 위해 글로벌 자본들이 기획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한국 이주노동자와 일본 기능실습생이 된 그들에게 글로벌 자본은 자신들이 매겨놓은 먹이사슬의 맨 아래쪽, 가장 힘들고, 가장 위험하며, 가장 더러운 임무를 부여했다. 

아동노동에서 이주노동으로  

우리들의 일용할 양식이 만들어지는 과정 또한 마찬가지다. 농사일 가운데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들은 말할 것 없이 여전히 이들의 몫이다. 일본에서 고랭지 양상추(레터스) 재배로 유명한 나가노 현에는 한때 중국 동북지방에서 온 사람들 없이는 재배가 불가능했다. 지금은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사람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들의 고통 없이 속이 꽉 차고 부드러운 고랭지 양상추 맛을 보기란 쉽지 않다. 어촌도 마찬가지다. 시즈오카나 미야자키 현이 자랑하는 참다랑어(가쓰오)도 인도네시아 수산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이주노동자들 없이는 언감생심 엄두도 내기 힘들다.  

미야자키 현 난고마을의 경우, 20년 전에 비해 어부 숫자가 4분의 1로 줄어들었다. 그렇게 된 데는 아무리 좋은 조건을 제시해도 일본 청년들이 거들떠보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수도권에 위치한 이바라키 현의 경우 전체 농업인구 절반이 농업이주노동자들이 되어버렸고, 새로 농촌으로 진입하는 40세 이하 농업인구의 절반 정도가 이주노동자들이다. 이쯤 되면 이주노동자들 없는 일본 식탁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 이주노동자(기능실습생)들은 한국보다 더 열악한 제도적 조건 하에, 정주권이 주어지지 않는 한도기일까지 노동력을 사용하고 나면 마지막엔 일회용 소모품처럼 버려지고 말 뿐이다. 기능과 기술을 배워 고향으로 돌아가 고향을 일으켜 세우려는 노력은 애초부터 가로막혀 있었던 셈이다.  

이와 같은 시스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농장 경영자들과 함께 만들어 낸 친환경 농산품에 적정한 가격을 지불하는 '국경 내(우리 안의) 페어트레이드'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그럴 경우 농장 경영자들은 농업 기능실습생(이주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농업기술을 지도하고, 이들이 고향에 돌아가 농업인으로 자립·자활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스스로도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해낼 수 있을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간 농업이주노동자들은 한국과 일본에서 배운 농업기술로 친환경 농산물을 만들어내고, 이들 농산품은 '국경을 넘나드는' 새로운 페어트레이드, 새로운 로컬 간 네트워크를 탄생시키게 될 것이다.  

식탁에 마주 앉은 아시아인이 보이는가?

양배추 한 통과 참다랑어 한 마리를 구입할 때, 이들에게 돌아갈 적정비용(몫)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이들의 자립과 자활이 어떤 방식으로 보장될지를 되묻는 과정은 말 그대로 공정한 교역-페어 트레이드의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다. 페어트레이드 현장은 바다 멀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있고, 들과 바다는 물론, 편의점, 공장 할 것 없이 힘든 현장이라면 그 어디에나 있다.

방글라데시 공장 붕괴 책임이 우리 피부가 맞닿는 곳(소비자)에도 있었듯이, 오늘 마주한 식탁이 풍요로웠다면 차가운 논물과 바닷물 속에서 길고 긴 사투를 벌여온 아시아인(생산자) 덕분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우리들이 또 다른 아시아인과 식탁을 마주하고 앉았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페어트레이드는 이미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피부가 맞닿은 곳에서 방글라데시 공장 소녀를 떠올리는 순간 페어트레이드가 시작되는 것처럼. 

타국 농촌에서 고된 노동과 적은 보상을 감내하는 대신, 제대로 된 농업기술을 익혀 고향을 자립·자활이 가능한 마을로 만들어 가고, 그렇게 해서 농업기술을 일러준 마을과 돌아온 고향마을이 또 다른 페어트레이드로 연결되는 꿈. 그 꿈은 산골 마을을 떠나 낯선 도회지에서 이루어지던 아동노동과, 그 아이가 커서 해외로 떠나 이루어지던 이주노동을 넘어서는 바로 그 길에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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