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가 보이는 채소'와 '맛있는 미생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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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자가 보이는 채소'와 '맛있는 미생물'의 만남
발효 식료품 카페 큔(Qyun) 김수향 공동대표 인터뷰
  • 2021.04.12 15:38
  • by 전윤서 기자

사람들이 복작거리는 번화한 서촌 거리를 지나 북한산이 한눈에 올려다보이는 궁정동에 들어섰다. 소란스러운 큰 길목을 지나자 새 소리만 울려 퍼지는 고요한 갈림길이 등장했다. 갈림길을 따라 무궁화동산으로 발길을 돌리자 그릇이 부딪치는 소리, 포크 질 소리, 알싸한 커리 향이 피어나는 공간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웅장한 돌산 밑 5층 건물 공유주택 청운광산. 이곳의 1층에 자리 잡은 '발효 식료품 카페 큔(Qyun)'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발효식품 카페라니. 붉은 벽돌 외벽을 둘러보며 카페 내부로 들어가니 약간 높은 습기와 함께 호박과 돌, 나무로 멋을 낸 아담한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내부가 훤히 보이는 주방 그 한쪽에는 마치 어느 박사의 실험실을 연상케 하듯 병들이 줄을 지어 나란히 있었다. 바로 앞쪽으로는 큔 지하 발효실에서 만든 발효조미료가 냉장고에 진열되어 있었고 틈틈이 발효 페스토, 발효 소금, 공정무역 식자재를 판매하고 있었다.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를 집어 구입하는데 종이로 된 포장지로 꼼꼼하게 포장을 해주었다. 메뉴판에는 여느 음식점과 다르게 농장의 이름, 농부의 이름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발효 버터, 발효 버섯, 발효 조미료로 맛을 냈다고 하니 궁금증은 두 배. 주문 뒤 음식이 나왔다. 맛있게 배부른 정도의 한 접시. 무와 당근, 감자는 깨끗하게 세척해 껍질을 버리지 않게 한 정성이 보였다. 이쯤 되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큔만의 정성과 독특함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김수향 공동대표를 만나 궁금증을 풀어보았다. 

▲ 공유주택 청운광산 1층 '발효 식료품 카페 큔(Qyun)' ⓒ라이프인
▲ 공유주택 청운광산 1층 '발효 식료품 카페 큔(Qyun)' ⓒ라이프인

■ 생산자가 보이면 펼쳐지는 다양성
식탁 위 펼쳐진 풍경을 잠시 감상해보자. 그릇 위에 올라간 재료들이 걸어온 길을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어느 땅에서 자랐으며, 무엇을 먹었고, 누구의 손에 자라 이 식탁까지 오게 되었는지 말이다. 김 대표는 이 과정이 생략된 '생산자가 보이지 않는 소비'를 철저하게 경계하고 있었다. 

큔(Qyun)을 말하자면 우선 홍대 앞 제철 요리 카페 수카라에 대해 알아야 한다. 큔이 정성은(현 큔 공동대표) 매니저를 포함해 수카라의 몇몇 식구들이 함께 만든 공간이기 때문이다. 수카라의 시작은 산울림소극장 부부로부터의 제안에서 시작되었다. 김 대표는 한국문화 코디네이터로 일본 잡지 '수카라'의 편집장을 맡아 산울림소극장 2층에 차린 편집부에서 한국의 음식 문화를 일본에 알리는 일을 했었다. 그런 김 대표에게 산울림소극장 측에서 1층 공간 운영을 제안한 것이다. 15년간 채소 위주의 메뉴를 선보이던 수카라는 지난 2월 7일을 끝으로 막을 내렸지만, 그 안에서 발견한 가치들은 아직 이어져 오고 있다. 

▲ 지난 2월 7일 영업을 종료한 산울림소극장 1층 수카라. ⓒ라이프인
▲ 지난 2월 7일 영업을 종료한 산울림소극장 1층 수카라. ⓒ라이프인

김 대표는 수카라를 막 시작했던 2006년, 한국의 다품종소량생산 농부들과 함께 팜투테이블(FarmToTable, 복잡한 유통단계 없이 신선한 재료로 차려진 식탁)을 실현할 생각으로 기대에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당시 한국에서의 생활이 5~6년밖에 되지 않았던 터라 다품종소량생산 농부가 사라진 상황을 알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도 생산자와 연결되고자 하는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생산자와 직접적인 연결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뒤 생협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김 대표는 다품종 소량생산 농부는 찾기 어려웠지만, 생산자와 꾸준하게 직거래를 늘려가는 즐거움으로 수카라를 운영했다며 회고했다. 

하나의 '놀이'처럼 재밌게 수카라를 운영하던 와중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참사가 발생했다. 재일교포 3세인 김 대표는 당시 요코하마에서 공기, 물, 흙 모든 것이 오염된 상황을 몸소 경험했다고 전했다. "나는 요코하마 출신이다. 후쿠시마에서 250km가 떨어진 요코하마는 후쿠시마로부터 전력을 공급받았다. 이 사실을 몰랐다. 어쩌면 사고를 만든 사람이 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산을 모르고 소비를 하는 것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왔다. 이전까지 막연하게 주목했던 생산과 소비의 연결이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생협에만 의지하기에는 생산자가 보이는 소비를 실천하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는 김 대표. 2011년 원전 사고로 인해 적극적으로 생산자가 보이는 소비를 위한 기반을 다지기 시작했다. 제일 처음 떠오른 것은 다름 아닌 '오일장의 할머니'였다고 한다. 할머니들이 들에서 밭에서 조금씩 채집한 나물과 채소가 즐비한 시장 풍경. 이러한 감수성에 동감한 몇몇이 모여 2012년 농부시장 마르쉐@ 만들었고 생산자가 보이는 소비를 독려했다. 초반에는 텃밭 생산자들이 주를 이루었지만, 현재 몇몇은 소량생산 농부로 변모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생산자를 직접 만나서 소비를 하는 것은 소비로만 끝나지 않는다. 다양성을 만나는 것이다. 마트에는 똑같은 모양의 잘 포장된 당근이 있다. 하지만 마르쉐에는 다른 시기의, 다른 씨앗의, 다른 품종의, 다른 농부의 당근이 다른 모양으로 있다. 마르쉐를 통해 발견한 다양성이 놀랍다."라고 밝혔다. 

ⓒ큔
ⓒ큔

 

■ 생산이 보이는 채소의 욕망, 발효로 이어지다

“갓 뽑은 채소는 상상도 못 했던 향이 나요. 
좋은 채소만 있으면 얼마든지 맛있게 먹을 수 있죠.”

농부시장 마르쉐를 통해 농부의 손에 길러진 식자재의 다양성을 접하게 되자 수카라의 메뉴에는 자연스럽게 고기는 사라지고 채소가 주를 이루게 되었다. 김 대표는 "어린 당근, 조금 더 큰 당근, 당근이 피우는 꽃 이 모든 것이 식자재가 될 수 있다. 이 채소를 맛있게 먹는 방법을 연구하는 게 더 즐거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식물성 메뉴로의 전환은 쉽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동물성 식단에 입맛이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채소로 사람들의 입을 즐겁게 하기 위해 주목한 것은 다름 아닌 '발효'였다. 맛있는 채소에 감칠맛을 더하고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해서는 소금과 설탕에 절이는 과정이 필요했다. 점차 수카라의 메뉴에 발효 조미료가 첨가되었고 저장 공간은 부족해졌다. 새로운 공간이 필요했던 찰나, 지금의 공유주택 청운광산 1층을 10년 약속으로 공간을 제안 받게 된다. 그 결과 2019년 12월 '발효 카페 큔'이 문을 열게 된다. 큔은 미생물 균(菌)을 영어로 표기한 것에서 따온 이름이다. 다소 직설적인 '균' 보다는 귀여운 어감이라 마음에 들었다고 큔의 김 대표는 설명했다. 김 대표는 인류가 쌓아놓은 저장술인 발효를 배우며 감탄했다. "미생물의 활동과 발효의 기술은 새로운 것이 없다. 한국 음식 문화의 기본은 발효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발효라는 인류의 지혜를 잃어버렸다. 그 지혜를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큔을 운영하고 있다."

ⓒ큔
ⓒ큔

 

발효하는 사람들을 발효가라고 지칭한다. 김 대표의 말에 따르면 근래까지도 한반도의 모든 여성은 발효가였다. 집에서 간장을 만들고, 메주를 빚고, 김치와 젓갈을 만드는. 지본주의가 발생시킨 효율성과 분업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급속도로 '일상의 발효가'들이 자취를 감추게 되기 전까지 말이다. 현대인들이 잃어버리고 있는 제3의 맛 발효. 큔은 이 맛을 빼앗기지 않고 모든 사람이 재밌게 즐길 수 있도록 제안하고 있다. 

큔은 현재 ▲큔상점 ▲낮큔 ▲밤큔 세 가지 파트로 운영되고 있다. 지하 발효실에서 발효시킨 조미료를 판매하는 큔상점, 그리고 그 조미료를 활용한 요리를 선보이는 낮큔. 밤큔은 예약제로 운영된다. 조선시대 요리서 정조지를 연구한 석은진 요리사, 이탈리아 발효 음식을 연구한 이현승 셰프, '재료의 산책'을 출간한 요나 등 게스트 요리사 저마다 발효 술에 어울리는 메뉴를 내놓는다. 김 대표는 "큔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요리사는 미생물이다. 미생물의 분해활동 즉 발효가 일차적으로 맛을 내 주는 역할을 하기에 일차적으로 요리사는 미생물이다. 우리는 그들이 잘 활동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들고 먹이를 줄 뿐이다"라고 부연했다.

■ 개인적인 것이 창의적인 것이 될 때
인터뷰에 앞서 진행한 전화 통화에서 김 대표는 다짜고짜 채식과 기후위기 관계에 대해 질문했던 기자에게 "나는 '기후위기를 채식으로 대응해야 한다'라는 뜻이 있어서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의사를 정중히 밝혔다. 수카라의 편집장으로 근무했던 당시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기 바빴던 김 대표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늦은 밤까지 업무에 시달리고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때우기 일쑤였다. "이때 몸이 많이 피곤해졌다. 처음 한울림소극장 1층 공간에 대한 제안을 받았을 때도 나와 우리 식구들(당시 잡지 '수카라')이 건강한 한 끼 채소를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출발했다"라고 말했다. 

▲ (右)김수향, (左)정성은 큔 공동대표. ⓒ라이프인
▲ (右)김수향, (左)정성은 큔 공동대표. ⓒ라이프인

나의 몸, 식사를 함께하는 식구들의 건강을 챙기기 위한 마음이 농부들, 나아가 한국의 식문화를 지키기 위한 여정으로 이어졌다. 김 대표의 행보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김 대표는 "삶을 어떻게 살까 고민했을 때 나왔던 생각이 지금의 큔까지 이어지게 됐다. 앞으로도 나의 삶을 살기 위해 떠날 것이다"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일상에서 사라진 발효가들을 현대에 불러오는 큔. 좋은 발효가들을 찾아 소개할 방법을 꾸준히 고민할 것이라고 한다. 채소만으로도 충분하게, 맛있게 먹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큔을 찾아보는 것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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