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ㅓ하시는 Zl요?] 강한솔 청년 활동가, "활동가라는 일이 직업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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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ㅓ하시는 Zl요?] 강한솔 청년 활동가, "활동가라는 일이 직업이 되길"
사회복지창작소 터
강한솔 대표 인터뷰
  • 2021.02.16 17:32
  • by 전윤서 기자
07:34

'청년'이라고 하면 따라오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미래의 주역'처럼 아직 도래하지 않은 인물로 설정하는 말이다. 그럼 세상은 누가 바꿀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없다. 사회문제는 어디에나 있고 문제를 느끼는 사람이 나서서 해결하는 것이니 말이다. 

1980년대 초에서 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는 밀레니얼 세대, 그 이후에 출생한 세대는 Z세대라고 부른다. 줄여서 MZ세대이다. 미래가 아닌 현재의 청년들. 청년들은 무엇을 문제라고 여기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움직이고 있을까. MZ세대에게 물어보았다. Mㅓ하시는 Zl요? [편집자 주]


■ 마을의 경험을 모아, 모아 '터' 되다
2014년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사회복지창작소 터는 사회복지를 전공한 학생들이 합심해 만든 비영리 임의단체이다.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복지실습 인증기관에서 일정 시간 이상 실습을 해야 한다. 그렇게 25명의 청년은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한 꿈을 가지고 광주의 첨단종합사회복지관에서 만나게 되었다. 약 한 달간의 실습이 끝나갈 무렵, 이들은 사회복지사가 되기에 부족함을 느꼈다고 한다. 학생과 사회복지사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해보고 싶은 사업들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사업의 기획부터 실행, 정산을 어깨너머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이를 직접 해보면서 사회복지사로서의 역량을 다졌다. 가장 관심이 가는 것, 가장 잘하는 것부터 차근차근히 해나가던 때. 사회복지창작소 터의 강한솔 대표는 "기관이나 센터에서 일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마을에 필요하고 의미 있는 활동을 이어나가는 것이 사회복지사 아닌가? 하고 싶은 일로 일을 만들어보자 하는 시점이 오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렇게 3년 차가 되던 해, 취업이 아닌 창업의 길로 나가고 싶다는 몇몇 목소리가 모여 사회복지창작소 터가 만들어졌다. 강 대표에게 사회복지창작소 터가 하는 일에 관해 물어보았다. 그러자 '항상 받는 질문이지만 대답하기 애매하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회복지창작소 터는 매년 다른 일들을 계획하고 매년 다른 일을 생각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일들을 하나로 엮어내는 큰 줄기는 지역의 공동체성을 살리는 것이다. 사회복지창작소 터가 자리 잡고 있는 광산구는 계획도시이다. 주변에 공단이 조성되어 있어 일하는 청년층, 젊은 부부의 비율이 높다. 이러한 지역적 특징을 살려 청년들의 연대를 끌어내고 마을의 경험을 만들어 세대와 세대 간의 다리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 '첨단은처음이라' 청년취미클래스 ⓒ사회복지창작소 터
▲ '첨단은처음이라' 청년취미클래스 ⓒ사회복지창작소 터

대표적인 사업으로는 ▲동네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함께 노는 플레이코치 프로그램 언니오빠 놀이터 ▲음악을 통해 청년과 마을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청춘밴드 – 청춘락Q ▲직접 경험한 공동체성, 마을에서의 경험을 나누는 청청연구소 ▲자원봉사 경진 대회로 마을의 성장을 돕는 청청 마을성장 파티 등이 있다. 마을에서의 경험을 견고히 하고 다음 세대인 청소년에게 공유하는 역할까지 해내고 있다. 

■ 자라온 곳에서 일하는 이유
강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광산구에서 자란 광산구 토박이다. 성장하는 동안 또래의 청년들과 가지는 고민이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수도권으로 가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 대학입시에서 실패했을 때, 인생이 끝난 것 같고 무엇을 해 먹고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반드시 수도권으로 가야 한다는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마을 사람들과 느리게, 연대하는 쪽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막상 지역에 남아 살아보니, 내 인생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나의 부모님, 알고 지내온 이웃, 청소년기의 추억을 함께 나눈 친구들과 재밌게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왜 다들 열심히 떠나려고만 하는 걸까?"라고 덧붙였다. 

때문에 사회복지창착소 터가 중점을 두고 있는 사업 중 하나는 바로 교육이다. 열심히 떠나려 하지 않아도 되고, 지역에서 충분히 잘 살 수 있음을, 그리고 수도권으로 진입하는 것이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나누는 기준이 아님을 동생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다. 

▲ (右)사회복지창작소 터 강한솔 대표. ⓒ사회복지창작소 터
▲ (右)사회복지창작소 터 강한솔 대표. ⓒ사회복지창작소 터

■ 청년과 활동가
스스로 활동가라고 정의하고 있다는 강 대표는 청년마을활동가 경험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다고 한다. '마을활동가는 무엇인가?', '청년활동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한 논문이다. 강 대표는 "활동가에 대한 통일된 명칭과 정의가 없어서 직업으로 인정받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서울에서는 혁신가라 부르기도 하고 공익활동가, 마을 활동가 등 명칭도 다양하다는 것이 부연이다. 하지만 "이름은 다르지만 자발적인 것, 사회적인 것, 공적인 것 이 세 가지 키워드는 같다"고 말했다. 

활동가로서의 삶은 시작할 무렵 강 대표에게 모든 일은 흥미로운 작당을 꾸미는 것이었다. 햇수로 7년 차. 이제는 점차 다른 생각이 피어오른다고 넌지시 얘기했다. 강 대표는 '그 선배도 너처럼 활동하다가 그만뒀어'라는 핀잔 섞인 말도 많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아니다, 할 수 있다'라고 당차게 말한 강 대표는 활동가로서의 삶을 이어나갈수록 사명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나와 같은 생각으로 후배가 활동하려 할 때 '강한솔도 활동하다가 그만뒀잖아'라는 말을 듣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사명감을 다시 한번 내비쳤다.

▲ 광주 광산구의 사회복지창작소 터가 운영하는 카페 '핸즈박스' ⓒ사회복지창작소 터
▲ 광주 광산구의 사회복지창작소 터가 운영하는 카페 '핸즈박스' ⓒ사회복지창작소 터

■ 2020년 이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사회복지창작소 터도 계획한 일들을 해내기 어려운 한 해를 보냈다고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되어 사람들이 모이기 힘들어지고, 교육을 할 수 있는 학교는 문을 닫았다. 사회복지창작소 터의 사무실이 있는 광산구 첨단종합사회복지관도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따라 문을 닫기 일쑤였다. 강 대표는 6년간 다져온 것들이 수포가 될 것 같은 혼돈의 시기를 맞았다고 말했다. 위기의 시기였지만 이를 헤쳐가기 위해 곰곰이 생각한 결과 터만의 수익이 있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럼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각자가 카페에 가본 경험, 일해 본 경험을 살려 터만의 카페를 만들어보게 되었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기존의 카페에서 불편했던 점, 아쉬웠던 점을 해소하는 카페라고 설명했다. 카페에 대한 인상은 커피의 맛보다 카페에 함께 했던 사람들, 대화들로 채워지기도 한다. 사회복지창작소 터는 이를 십분 활용해 함께 머물면서 손이 기억하는 공간으로 카페를 만들었다. 지난해 7월 문을 연 카페는 직접 크로플(크루와상+와플·croffle)을 만들어보고, 드로잉/꽃꽂이 등 원데이 클래스가 열리면서 동네 친구를 만들어가는 공간으로 꾸며졌다. 

강 대표는 "기존에 사무실은 공공 무상 임대였다. 정말 감사한 기회였지만, 자율성이 부족했다. 일을 끝낸 청년들은 저녁 시간에 모일 수 있지만, 복지관이 문을 닫는 6시 이후에는 사무실을 쓸 수 없는 등 항상 아쉬움으로 남는 것들이 있었다"고 소회했다. 카페 수익 사업으로 자율성을 확보해 사회복지창작소 터 만의 재미난 '작당'을 꾸려나갈 생각으로 기대가 부풀어 있는 강 대표의 얼굴에는 생기가 가득했다. 

▲ '청년라운지' 플라워클래스 ⓒ사회복지창작소 터
▲ '청년라운지' 플라워클래스 ⓒ사회복지창작소 터

강 대표는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하고 있었다. 공동체를 가꾸며 지역에서의 삶이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물려주는 사회복지창작소 터의 모든 활동이 '일'이 되기 위해 지속가능성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터가 노력하고 있는 부분은 개인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함께 하는 일이지만 각자가 잘하는 것을 사업화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또한 민간과 공공의 접점을 만들려는 노력이다. 강 대표는 "제도권 안에 속하는 것과 민의 영역에서 공적인 것을 살필 수 있는 것. 이 두 가지의 접점을 확보하면서 지속가능한 형태로 나아가고 싶다. 공모사업, 지원사업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시장경제 속에서 이익과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낼 수 있는 본보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가장 뿌듯했던 순간에 관해 묻자 매일, 매일 버텨내고 있는 오늘이 가장 뿌듯하다는 강 대표. "이렇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6년 동안 버텨온 것보다 후배들은 더 짧은 시간만 버티게 해주는 것. 활동가라는 일이 직업이 되게 하는 것"이라며 앞으로의 바람을 밝혔다. 

강한솔 대표를 만나 청년 활동가로서의 고민과 지역을 지키고 있는 청년의 마음에 대해 들어보았다. 그 대화에서 지역에 자부심을 심어주고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는 노력, 또 다른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는 모습이 엿보였다. 앞으로의 바람처럼 훌륭한 청년 활동가이자 선배 활동가가 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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