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를 잇는 항구도시 남포를 바라보다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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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를 잇는 항구도시 남포를 바라보다 (上)
대동강은 한강으로 흐른다
  • 2021.01.13 14:58
  • by 이찬우 (테이쿄대학 교수)

대동강은 고조선-고구려 문명을 한반도로 정착시킨 터전

▲ 남포시(5개구역 2개군)의 위치 (구글어스)
▲ 남포시(5개구역 2개군)의 위치 (구글어스)

대동강이 흐르는 평양을 지나 하류로 50km 내려가면(강 길이는 70km) 남포항이 있다. 인천항이 서울의 관문인 것처럼 남포항은 평양의 관문이다. 서해안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 남포는 행정상으로는 항구구역과 와우도구역, 대안구역, 천리마구역, 강서구역, 그리고 룡강군과 온천군을 포함하는 5개구역 2개군에 인구 약 100만 명이 사는 남포특별시다. 서해안의 무역항으로 중국의 대련, 천진, 청도, 상해 등과 항로가 개설되어 있다. 

남포는 강과 바다에서 나는 수산물과 평야지대의 쌀이 맛있어 군침 도는 요리가 많다고 한다. 늦가을에서 초봄 사이에 만들어 먹는 굴밥이 소문났고, 봄철에 서해바다에서 올라오는 민물참게를 절인 참게 절임, "전어 굽는 냄새에 나가던 며느리 다시 들어온다"는 전어구이와 전어찌개가 유명하다. 남한에도 있고 맛난 요리들이지만 남포에 가서 먹으면 왠지 더 맛이 있을 것 같은 기분으로 연재를 시작한다. 

▲ 남포의 요리 : 왼쪽부터 굴밥, 참게 절임, 전어찌개  (출처 : 조선료리)
▲ 남포의 요리 : 왼쪽부터 굴밥, 참게 절임, 전어찌개  (출처 : 조선료리)

대동강 중하류 지역은 고대시대부터 고조선과 고구려의 문명이 자리잡았다. 특히 하류의 남포지역은 바다를 끼고 조수간만의 차가 많은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예로부터 소금 생산이 활발했다. 남포시 온천군 원읍 노동자구에서 발견된 1-2세기 시기의 소금 생산 유적을 보면, 바닷물을 웅덩이에 받아 염도를 높인 후 이를 돌로 만든 가마터에 가마를 걸고 끓여 소금을 얻었다. 조선왕조시대까지 이어진 한반도의 전통적인 소금 생산 방법이다. 지금도 온천군에는 염전이 많은데 현재는 주로 천일염 방식으로 소금을 얻고 있다. 

또한 남포지역에는 옛 무덤들이 많다. 고조선 시기의 무덤들로는 룡강군의 석천산에 120여 기의 고인돌 무덤들이 있다. 고구려 시대의 무덤들로는 강서 구역의 강서삼묘, 덕흥리 고분, 약수리 고분, 수산리 고분, 룡강군의 룡강대총과 쌍영총이 2004년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왼쪽) 강서삼묘 벽화, (오른쪽) 덕흥리고분 벽화 (이미지 : 위키백과)
▲ (왼쪽) 강서삼묘 벽화, (오른쪽) 덕흥리고분 벽화 (이미지 : 위키백과)

408년에 건설된 덕흥리 고분 묘지명에는, "무덤을 만드는데 만 명의 노동력이 들었는데 날마다 소와 양을 잡고, 술, 고기, 쌀밥을 이루 다 먹을 수가 없었으며 또 소금과 시(豉:콩 된장)를 한 창고분이나 먹었다"라는 내용이 있다(북한 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81년). 이로 볼 때 남포지역은 예부터 가축과 쌀, 소금, 콩, 술이 풍부한 지역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가 427년에 수도를 평양으로 옮긴 후부터 남포지역은 수도를 지키는 서쪽 관문 역할을 하였다. 고려 시대 서경인 평양의 속현으로 용강현, 강서현, 삼화현(현재 와우도구역)이 남포지역에 있었고 여기서 소금, 한지, 생약 제조, 물고기 가공, 직조업, 갑옷 생산, 화살 제작 등의 수공업을 포함한 산업이 활발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목화 생산과 철광 개발도 이루어졌다. 

대동강 하류 삼화현의 한 20호 정도가 살던 작은 포구에 "남포"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고려 시대 말에 증산(甑山;시루뫼)의 남쪽에 있는 포구라 하여 "증남포(甑南浦)"라 불리다 후에 "남포"가 되었다. 

대동강 하류의 남포, 왜 거기에 있나

한반도 서해는 대륙과 반도 사이에 막혀 있으며 갯벌이 넓고 수심이 깊지 않은 탓으로 조수간만의 차가 크다. 인천이 8.32m인데 대동강의 남포는 5.61m 수준이다. 대동강은 조수간만의 차로 바닷물이 대동강을 따라 평양까지도 흘러 올라갔다. 그래서 1866년 8월에 미국의 제너럴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가 평양에서 통상을 요구하고 행패를 부리다가 관민들의 저항으로 배가 소각되고 선원들이 처형되는 사건도 있었다. 

서해에 접한 대동강 하구는 항구로서는 적합하지 않은 탓에 1894년 청일전쟁 때에 일본군은 대동강 하구에서 17km 올라간 지점에 있는 작은 포구인 남포에 상륙하고 병참기지로 사용하면서 남포가 근대 역사에 등장하게 된다. 일본은 남포 지명에 군사적인 의미가 강한 "누를 진(鎭)"자를 덧붙여 진남포(鎭南浦)라 불렀다.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나라 이름이 바뀐 뒤인 1897년 10월에 남포항(당시 삼화부, 1906년에 진남포부로 개칭)은 개항장으로 지정되었다. 관세 수입을 얻기 위한 목적이었는데 개항장에는 일본, 러시아, 영국, 독일 등의 공동조계(각국조계)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1910년 한일병합 후에 평안남도 진남포부가 설치되고(현재의 와우도구역, 항구구역), 조계지는1914년에 해체되었다. 그리고 조선총독부가 1915년에 시가지와 비발도(飛潑島) 사이에 있는 간석지에 항만을 축성하여 1만 톤급 선박의 출입이 가능한 진남포항을 만들면서 남포는 본격적으로 무역항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북한의 다른 주요 항만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남포 또한 일본이 제국주의 정책으로 개발한 도시였다.

▲ 진남포각국거류지도, 白荘司芳之助 (1899), 『한국각항시찰보고서』 (https://www.dl.ndl.go.jp/api/iiif/805112/manifest.json)
▲ 진남포각국거류지도, 白荘司芳之助 (1899), 『한국각항시찰보고서』 (https://www.dl.ndl.go.jp/api/iiif/805112/manifest.json)
▲ 남포항 (구글어스)
▲ 남포항 (구글어스)
▲ (왼쪽) 남포항의 비발도 등대 우표사진, (오른쪽) 설치당시의 비발도등대(진남포등대) (이미지 : 리브레위키)
▲ (왼쪽) 남포항의 비발도 등대 우표사진, (오른쪽) 설치당시의 비발도등대(진남포등대) (이미지 : 리브레위키)

해방 후 진남포는 다시 남포로 이름이 바뀌었고 6.25 전쟁의 폐허를 경험하였다. 그 후 남포항은, 복구작업과 항만 확충, 서해갑문 건설로 5만톤급 선박이 통행할 수 있는 북한  최대 항만(수심 9-11m)으로 발전했다. 

▲ (왼쪽) 남포 서해갑문 (위키페디아), (오른쪽) 남포시가지 전경 (평화문제연구소)
▲ (왼쪽) 남포 서해갑문 (위키페디아), (오른쪽) 남포시가지 전경 (평화문제연구소)

남포에는 제련, 기계, 유리, 조선, 화학공업과 수산업 그리고 소비재 경공업이 발달했다. 1990년대 이후 남북 경제협력이 진행되던 시기에 대우그룹이 남포에 민족합영총회사를 세워 의류봉제공장을 운영하였으며 통일교 계통의 평화자동차 공장이 남포에서 승용차를 생산한 바 있다. 2010년까지는 인천-남포 사이에 정기 화물선이 다니기도 했다. 북한으로 가는 식량, 비료 등 인도 지원 물자가 주로 하역되는 항이 남포항이었다. 

지금은 모든 경제교류가 끊어진 남북 관계이지만 대동강이 서해로 흘러 한강물과 만나는 것을 생각하면서 근대 이후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꿈꾸는 평화경제 도시 남포의 모습을 그려보고자 한다. 

※ 다음 호 '남포를 바라보다(中)'은 근대 이후 해방전까지의 남포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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