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 넘어 대륙과 해양을 향한 라선을 바라보다 (종결) : 두만강지역개발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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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 넘어 대륙과 해양을 향한 라선을 바라보다 (종결) : 두만강지역개발의 꿈
  • 2020.11.04 10:30
  • by 이찬우 (테이쿄대학 교수)

두만강을 다시 생각하는 현대의 라선 
② 1990년대 이후 경제특구 라선의 현재

▲ 라선의 위상 (자료: '라진항은 세계와 호흡한다' 조중 라선공동개발관리위원회, 2017)
▲ 라선의 위상 (자료: '라진항은 세계와 호흡한다' 조중 라선공동개발관리위원회, 2017)

필자가 라선에 대해 연구를 시작한 것은 26년 전인 1994년부터다. 당시 일본 니가타(新潟)시에 있는 동북아시아경제연구소(ERINA, 1993년 설립)에서 필자는 한반도 경제와 두만강지역개발 연구를 담당했다. 운이 좋았다고 할까, 한국에서는 어려웠던 일들이 일본의 연구소에서는 쉽게 해결되는 일들이 많았다. 평양으로 전화도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당시 동북아시아지역은 냉전 해체라는 세계사적인 전환기를 맞아 냉전 후 시대의 새로운 국제질서와 경제관계를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분주했다. 한국은 이미 <북방정책>이라는 이름 하에 몽골, 러시아, 중앙아시아, 동유럽의 구 사회주의 국가들, 그리고 중국과 수교하였고, 북한과도 <남북기본합의서>를 비롯한 많은 대화를 추진하였다. 중국은 1989년 천안문 사건의 후유증을 딛고 1992년에 등소평이 <남순강화南巡講話>를 통해 개혁개방정책을 재개하면서 동북지역(구 만주)에 대해서도 개발정책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소련 해체 이후 경제 붕괴 상태에서 헤어나오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이런 격변기 속에서 북한도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을 모색하였다. 사실 1990년 전후 사회주의권이 붕괴한 것은 북한에 커다란 시련이었다. 북한은 대외경제교류에서 사회주의권과의 무역이 70% 이상을 차지하였고 자립경제라 하더라도 북한에 없는 자원인 석유, 코크스 등 연료와 산업원자재 및 부품 수입이 필요했는데, 사회주의권과 무역이 격감하면서 경제운용도 어려워지게 되었다. 이제 뭔가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정책변화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었다. 하나는 다른 사회주의권들이 채택한 방향으로 개방형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자립적 사회주의 경제노선을 유지하면서 국제시장경제와 교류를 확대하는 것이었다. 북한은 후자를 선택했다. 

그 첫 단추로 북한은 <자유경제무역지대> 라는 이름의 경제특구를 두만강변 라선에 창설하여 시장경제권과 국제협력을 추진하였다. 이는 당시 국제적으로 논의되고 있었던 "두만강지역개발을 위한 다국간 국제협력 구상"에 북한이 참여하는 것이었다. 국경이었던 두만강을 다시 넘어 대륙과 해양을 향한 경제협력에 이윽고 조심스레 시동을 건 것이다.

당시 두만강지역개발 구상이 전개되는 과정과 북한이 경제특구를 창설하기까지의 흐름을 북한을 중심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두만강지역개발 구상 전개 과정과 경제특구 창설 흐름

이와 같은 과정을 보면 두만강지역개발 구상에 북한이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이 두만강지역 개발을 국제적으로 처음 제기하였고 북한은 그 전후로 내부 준비를 거쳐 평양에서 국제회의도 개최(한국도 참가)하고 중국보다 먼저 두만강지역에 경제특구를 창설하는 열의를 보였다. 일본의 기업들이 초기 단계에서부터 라진선봉지대를 시찰하는 등 큰 관심을 가졌던 것도 당시 진행되고 있었던 북일국교정상화 교섭과 관련하여 일본의 경제협력자금(배상금) 운용에 대한 일본기업들의 관심을 반영한 것이었다. 

1990년대 동북아시아 각국간의 경제적 보완관계
▲ 1990년대 동북아시아 각국간의 경제적 보완관계 (필자 작성) 

북한은 동북아시아 지역의 경제적 보완관계를 활용하여 라선 경제특구를 중계수송기지, 수출가공 경공업기지, 그리고 금융 관광 서비스기지로 발전시키는 전략을 세웠다. 이를 위해 외자기업에게 각종 세금을 감면하는 등의 투자유치관련법을 정비하고 투자유치활동을 벌였다. 

그런데 두만강지역개발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UNDP가 시도한 국제적인 공동개발, 공동관리 방식이 아니라 각국의 독자개발에 기초한 점진적 협력방식이었다. 결국 UNDP도 각국의 <독자개발> 방식을 지원하는 형태에 머무르게 되었다. 북한은 영토와 주권의 <자주성>을 내세워 토지를 내놓고 외국과 공동개발하는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두만강지역개발이 정체하는 한 원인이 되었다.

북한은 1996년 9월에 26개국 500여 명의 기업인과 관광객들을 라선에 초청하여 <라진-선봉지대 투자 및 기업토론회>를 개최하고 수억 달러의 투자계약을 하였다고 발표하기도 하였으나 그 이후 실제적인 성과는 별로 없었다.

왜냐하면 북한이 독자적으로 추진한 <라진선봉자유경제유역지대개발> 정책이 <핵개발> 정책과 양립하지 못하였고 경제적 투자환경도 열악하였기 때문이었다. 북한이 안전보장을 위해 추진한 핵개발로 미국과 대립하면서 한반도 위기가 조성되어, 결국, 일본과도 관계 정상화를 이루지 못하고 경제협력 자금을 확보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1995년부터는 홍수, 가뭄 같은 자연재해가 겹쳐 경제위기가 발생하였기 때문에 이른바 <북한 붕괴론>이 국제사회에 횡행하여서 경제특구를 개발할 환경이 아니었다. 그리고 1997-98년에 발생한 아시아통화위기로 인해 북한이 외자 유치에 대해 우려를 갖는 입장으로 회귀하였던 것도 경제특구 개발이 정체한 배경으로 되었다. 1998년 4월에 북한은 <라진선봉자유경제무역지대> 명칭을 "자유"가 삭제된 <라진선봉경제무역지대>로 개명하였다.

그래도 라선 경제특구는 북한이 경제개방과 개혁을 실험할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이었다. 배급제를 폐지한 시장가격 시스템 도입, 자영업을 인정하고 상설시장 개설, 환율 단일화, 시장경제교육(인재육성) 등은 북한내 다른 지역에 앞서서 1997년부터 실시하고 그 이후로도 계속 유지하였다. 즉, 라선은 북한에서 시장경제운용이 도입된 유일한 지역이었다. 그리고 그 후 20여 년간 다음과 같은 변화가 있었다.

1) 북-중 협력을 통한 개발

(1)라진항 1-2호 부두 정비와 해운 항로 개설
1980년대까지 소련이 활용했던 라진-두만강-연해주의 횡축이 무너지면서 중국이 이를 대신하여 중국 동북-두만강-라진-해양으로 이어지는 종축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해방 전 일본 제국이 구축하였던 종축을 중국이 역으로 재활용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중국 상품 수송을 위한 라진항 루트가 북중 협력으로 개설되어, 후에 중단되긴 하였지만 라진-부산, 라진-니가타, 라진-중국 남방지역 항로 (외국항만을 이용한 중국 국내수송)가 열렸으며 라진항의 부두정비가 진전되었다. 1-2호 부두의 연간 하역능력은 합계 200만 톤이다.

1995년에 라진-부산간의 정기 컨테이너 항로가 한국 기업과 중국연변자치주 기업과의 합영기업인 동룡해운(주)에 의해 개설되었고 1999년에는 니가타가 기항지로 추가되었다. 북한 선적에 의한 라진-부산간 항로도 2004-07년간 운항되었다. 그러나 라진-부산을 잇는 항로는 2010년 한국정부의 <5.24 조치>로 중단되었다.

라진항 1호 부두 제1 안벽은 2008년 7월부터 중국 대련의 창리(創力)경제무역유한공사가 중국산 석탄을 중국 남방(상해)으로 운송하는 중계부두로 10년간(2018년까지) 임대하여 사용하였다. 또한 훈춘창리해운물류유한회사가 1호 부두와 2호 부두를 사용하여 동북지방의 곡물과 목재를 남방으로 수송하였다. 그러나 2019년 이후 라진항을 이용한 중국화물 수송은 중단되었다. 중국은 라진항 대신에 러시아의 자루비노항을 이용한 국내화물 수송을 추진하여 훈춘-자루비노-닝보(寧波)와 청도(青島)로 이어지는 물류 루트를 개설했다. 

▲ 라진항 1호부두(왼쪽)와 2호부두(오른쪽) (2011년 중국기업인 촬영)
▲ 라진항 1호부두(왼쪽)와 2호부두(오른쪽) (2011년 중국기업인 촬영)

(2) 원정-라진항간 도로정비, 원정리 세관 및 신두만강대교(권하다리) 신설, 원정국경시장 개설
중국의 훈춘과 북한의 라진항을 잇는 도로 물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중국정부는 북한측 국경세관인 원정리 세관에서 라진항에 이르는 비포장도로를 2012년에 콘크리트 포장하였고, 2016년에는 기존의 원정다리(1938년 개통) 옆에 신두만강대교(권하다리)를 개통하였다. 북한은 2017년에 원정세관을 새로 신축하였고 2018년 7월에는 원정세관구역에 중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국경시장(2017년 7월 완공)을 개장하였으나 유엔안보리의 경제제재로서 북한산 수산물, 의류품에 대한 수입금지 때문에 본격적인 무역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중국의 변경무역 세관규정에서 1인당 8,000인민폐까지는 세관신고 없는 면세이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무비자로 원정세관에 도착하여 원정국경시장에서 물품을 구입하여 되돌아가는 것이 가능하다.

▲ 북한의 원정세관에서 본 두만강 다리 (왼쪽이 권하다리, 오른쪽이 원정다리) (2017년 필자 촬영)
▲ 북한의 원정세관에서 본 두만강 다리 (왼쪽이 권하다리, 오른쪽이 원정다리) (2017년 필자 촬영)
▲ (사진) 북한의 원정세관(오른쪽)과 원정국경시장(왼쪽) (2017년 필자 촬영)
▲ (사진) 북한의 원정세관(오른쪽)과 원정국경시장(왼쪽) (2017년 필자 촬영)

(3) 관광개발
중국인 관광객이 증가하고, 중국계 홍콩 엠페러 그룹이 투자한 카지노 호텔 개장(2000년 10월) 등 오락 관광이 증가하였다.

▲ 선봉지구 비파도 앞에 있는 카지노 호텔 Imperial Hotel & Casino (2017년 필자 촬영)
▲ 선봉지구 비파도 앞에 있는 카지노 호텔 Imperial Hotel & Casino (2017년 필자 촬영)

(4) 조중공동개발관리위원회 구성과 좌초
김정일시대 마지막인 2010년 북한은 중국과 경제특구(라선과 황금평,위화도)를 공동개발 공동관리하기로 협정을 체결하였다. 북한은 <자주성>을 내세워 두만강지역 다국간 공동개발을 반대하였고 2009년에는 두만강개발계획에서 탈퇴까지 하였는데, 그 직후인 2010년에 중국과 북한의 경제특구를 공동개발 공동관리하기로 한 것이다. 당시 김정일 위원장으로서는 마지막 주사위를 던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2010년에 라선시를 라선특별시로 지정하고 2011년에 이를 구체화하는 총계획요강을 중국과 함께 작성하고 라선에서 북-중 공동 프로젝트 착공식도 개최하였다. 

그리고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2013년에 <조중공동개발, 공동관리 라선경제무역지대 관리위원회>를 설치하였고 중국 길림성정부는 담당 관리위원을 라선에 파견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자주성>이라는 기본 원칙을 벗어난 조중공동개발관리는 오래갈 수 없었다. 김정은 위원장의 "유일적 영도체계"하에서 중국과 공동개발관리를 주도하고 권력의 2인자로 군림했던 장성택 당행정부장은 2014년에 "세도와 관료주의" "종파주의"로 비판받고 숙청되었다. 그에게는 "석탄을 비롯한 귀중한 지하자원을 망탕 팔아먹도록 하여 심복들이 거간꾼들에게 속아 많은 빚을 지게 만들고 지난(2013년) 5월 그 빚을 갚는다고 하면서 라선경제무역지대의 토지를 50년 기한으로 외국에 팔아먹는 매국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라는 죄목도 덧씌워졌다. 결과적으로 중국과 협력을 통한 공동개발관리는 좌초되었다. 

▲ 조중 공동개발 공동관리 라선 프로젝트 착공식 (2011년 중국기업인 촬영)
▲ 조중 공동개발 공동관리 라선 프로젝트 착공식 (2011년 중국기업인 촬영)

그래도 라선의 조중공동개발관리위원회는 계속 존속하였으며 라선특구의 개발계획이 2017년에 관리위원회 이름으로 발표되기도 하였다. 중국의 입장은 라선특구에 대해 <도로, 항, 공업개발구>를 공동으로 개발 관리하는 것인데 "지역 내의 어느 일방도 단독으로 발전을 추구하여서는 뚜렷한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중계수송업과 수출가공업(경공업품, 화학제품, 전자제품, 식료품, 북방자원수출가공개발구)을 라선의 중요목표산업으로 제시하였다. 라진항 개발은 1단계에서 1-2호 부두를 300만 톤 능력으로 늘리고 4호 부두를 300만 톤 처리능력으로 신설하고 2단계에서 5-7호 부두(합계 1,400만 톤 처리능력)를 새로 건설하여 3호 부두를 제외한 라진항의 화물 통과량이 총 2,000만 톤이 되도록 하는 거대한 계획이 포함되어있다. 그러나 이 계획은 북한 정부의 공식적인 인정을 받은 것은 아니며 중국 측의 희망 사항이 개입된 전망이었다. 

2) 북-러 협력을 통한 개발 : 라진항 3호 부두 정비와 라진-핫산 혼합궤도 정비
1990년대 소련 붕괴 후 러시아와 북한 사이의 무역이 격감하면서 러시아 광궤를 이용할 일이 없어져 청진-두만강역에 부설되었던 광궤 레일을 걷어내어 중국에 팔아 식량과 바꿀 정도였다. 즉 라진-두만강-연해주 횡축이 무너진 상황이었는데 이를 복원하기 위한 북-러 간의 협력이라고 할 수 있다. 2001년 8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김정일-푸틴 정상회담에서 <모스크바선언>을 통해 한반도 남북과 러시아, 유럽을 연결하는 철도수송로를 창설할 것을 합의하고 라진-핫산간 철도 현대화 사업과 라진항 개발사업(3호 부두 49년 임대)을 추진하였다.

이후 2008년 10월에 핫산-라진항 간 혼합선이 착공되어 2011년에 철도 부설을 완공하고 2013년 9월에 라진-핫산간 혼합선 철도를 개통하였다. 2014년 7월에는 러시아 화물(석탄)의 환적항으로 3호 부두가 러시아(한국 포함)에 의해 정비되어 준공식이 열렸다. 3호 부두에는 한 번에 최대 60만 톤 석탄을 야적할 수 있고 연간 화물처리능력은 100만 톤에서 400만 톤으로 증가했다. 2017년에는 3 호부두의 석탄 수송량이 250만 톤을 넘었다. 러시아의 라진항 3호 부두를 통한 중계화물 수송은 유엔안보리의 대북경제제재 항목에서 제외되었지만, 미국과 한국, 일본의 독자 제재의 대상으로 되어있다.

한국은 2007년 노무현 정부 시기에 러시아 정부와 남-북-러 합작으로 라진-핫산 간 철도 부설을 합의하고 북한의 양해하에 라진-핫산 프로젝트(라선콘트란스)의 러시아쪽 지분(70%)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현대상선과 포스코, 코레일이 참여를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2015년에는 러시아 석탄을 라진항에서 남한으로 시험운송하기도 하였으나 2016년 박근혜 정부(당시)의 불참선언으로 라선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스스로 막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 프로젝트의 재가동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미국의 제재에 물려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 라진항 3호 부두에 러시아산 석탄은 2018년 이후 운송되지 못하고 있다.

▲ 라진항 3호부두 준공(2014)과 북러 철도 연결(2013) (자료: '라진항은 세계와 호흡한다' 조중 라선공동개발관리위원회, 2017)
▲ 라진항 3호부두 준공(2014)과 북러 철도 연결(2013) (자료: '라진항은 세계와 호흡한다' 조중 라선공동개발관리위원회, 2017)

3) 북-중-러 협력을 통한 개발
북-중-러 간에는 3국관광협력과 함께 훈춘-핫산-두만강역에 이르는 다국철도 일관수송 협력이 진행되고 있다. 이는 중국과 러시아가 함께 라진항을 활용하는 방식인데 2020년 6월 26일 17시 34분에 중국의 훈춘 국제철도역을 출발하여 18시 34분에 러시아 국경의 캄쇼바야 철도역에 도착한 열차는 핫산역을 거쳐 6월 29일 16시 10분에 북한의 두만강역에 도착했다. 북-중-러 간의 첫 3국간 철도 일관수송이었다. 중국 길림성 동북아시아해상실크로드해운공사가 운영하는 이 열차 수송은 훈춘에서 철도를 통해 러시아를 거쳐 라진항에서 중국 남방항만으로 물자를 수송하기 위한 해륙복합운송을 실험하는 것이었다. 이는 훈춘-러시아 시베리아 철도를 통한 철도일관수송과 연결되어 시베리아-중국 훈춘-라진항-중국 남방지역으로 이어지는 물류망을 형성하는 것이다.

4) 기업 투자와 인재육성
태국의 록슬리 퍼시픽사가 통신회사를 설립하여 휴대전화 사업을 운영하였고(2001년 8월 라선국제통신센터 완공), 중국 연변자치주의 천우기업이 라진시장, 시멘트공장, 통신센터 건물 등을 건설하였다. 중국의 자금이 유입되면서 택시업, 창고도매업, 금융업, 식당, 가방공장, 구두공장, 식료품 가공공장 등 중소규모 투자가 이루어졌다. 라선은 중국의 인민폐가 시장에서 그대로 통용되어 중국 인민폐 경제권에 들어간 것 같은 상황이 되었다. 북한의 백호무역회사는 중국의 친황다오금지부동산개발유한공사와 합영으로 2012년에 <조선라선국제상업무역합영회사>를 설립하였는데 그 산하에 도매물류센터인 <라선국제상업무역센터>를 세워 2013년부터 중국으로부터 들여오는 각종 물자를 라선 뿐 아니라 국내 각지에 배송하는 서플라이 체인을 구축하였다. 

인재육성 분야에서는 1998년 9월에 유엔개발계획(UNDP)과 유엔공업개발기구(UNIDO)의 자금 및 기술원조로 라진해운대학내에 <라진기업학교>(Rajin Business Institute)를 설립한 것이 유명하다. 이 라진기업학교는 북한에서 최초로 기존의 정규교육기관의 학과 과정으로 비즈니스 교육을 실시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여기에서 기업재무, 회계, 금융, 경영관리, 마케팅, 상법, 컴퓨터, 외국어 등 시장활동에 필요한 6개월-2년 과정 교육을 위해 중국, 싱가폴 등의 교수진과 해외에서 경영학 공부를 한 북한의 교수진이 교육을 담당했다. 이 교육과정은 라진해운대학 경제학부와 경영학부로 계승되었다.

▲ 라진기업학교의 교육모습(조선신보 1998년 8월 27일)
▲ 라진기업학교의 교육모습(조선신보 1998년 8월 27일)

5) 라선의 주민 생활
라선의 생활 수준은 북한에서 평양에 맞먹는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거리가 화사해지고 주민들의 차림새도 번듯해졌다. 인구는 20만 명 수준으로 증가했다. 버스터미널도 있어 라진-선봉은 물론, 청진이나 평양까지 가는 노선버스도 있다. 2017년에 라진지구에 있는 라진시장을 가보았는데 건축자재로부터 의류, 구두, 농수산물, 식료가공품까지 다양한 소비품을 취급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시장건물은 소매와 도매가 구분되어 있고 소매 건물은 3층 건물 2개 동이었다.

식료품의 대부분은 북한산이고 판매원들이 물건을 팔기 위해 경쟁하는 치열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주택 건설도 활발해지고 주택의 사유와 개인간 매매도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이 되어 라선은 북한의 다른 지역과는 구분되는 상품경제 실험특구로서 발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2017년 이후 유엔안보리의 경제제재가 강화되고 제재 항목에 대해 중국이 수출입을 통제하면서 라선의 주민 생활에는 돈이 돌지 않고 공급이 줄어들어 석유에너지 등 물가가 오르고 생활이 긴장해졌다.

그런 속에서도 주민들 가운데는 아이들 교육을 돕는 이들도 있어 민심이 팍팍하지는 않음을 알 수 있는데 노동신문 2018년 12월 12일 자 '독자의 편지' 에는 라선시의 한 부부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실려있다.

"우리 학교를 물심량면으로 도와주고 있는 사람들 속에는 라선시 라진지구 남산동 75인민반의 김명진, 최미녀 부부도 있습니다.  지난 9월 어느날이였습니다. 교육조건과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에 필요한 많은 물자들을 가지고 이들 부부가 우리 학교를 찾아왔습니다. 지난 기간 학교를 위한 일이라면 두팔을 걷고 나선 그들 부부였습니다. 그들은 리발소를 비롯한 문화후생시설을 개건할 때에도 필요한 물자들을 제때에 보장해주었습니다. 해마다 스스로 난방용 땔감을 맡아 보장해주고 있는 사실을 통해서도 그들이 학교를 위해 얼마나 진정을 기울이는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라선시 라진지구 안주소학교 교장 서광선" 

③ 경제특구 라선의 미래
지난 30년간 라선의 변화를 보면 국제협력을 통한 성과보다는 좌초가 많았다. 경제협력을 통해 인프라를 정비하고 기업투자를 유치하는 데는 투자환경이 중요한데 <핵개발>은 북한의 대외경제협력에 커다란 지장을 초래했다. 북한으로서는 이를 감수한 핵개발이었을 것이다. 

30년간 제시된 라선의 많은 개발계획에서 그나마 실현된 것은 도로, 철도와 항만 정비, 통신 같은 인프라 부분이었고, 그 외에는 기업들의 자체적인 투자와 무역활동이었는데 경제제재가 이들의 활약을 막아버렸다. 

경제제재하에서 정면돌파하겠다는 북한의 자력갱생 노선으로 라선의 발전이 있겠는가 하는 의문에 대해 북한은 아마도 북한에 우호적인 중국과 러시아와 협력하는 것으로 돌파구를 찾으려할 것이다. 그런데 중국은 라진항을 빌려 국내수송(동북지역-남방지역의 해상수송)과 국제해륙복합수송(러시아-중국 동북지역-북한-중국 남방지역)에 활용하려는 입장 정도이고, 러시아는 중국 남방지역으로 석탄을 수출하는 정도로 라진항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관광분야에서는 훈춘-라선-연해주의 3국 관광(육로 및 해로)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보면 앞으로도 물류와 관광, 어느 경우든 북-중-러 간에만 협력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즉, 한-미-일의 대북 경제제재가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는 북-중-러 대륙세력 내부의 블록경제권에 라선이 위치하기 때문에, 원래 냉전후 두만강개발계획이 구상했던 동북아지역 전체의 다국간 경제협력의 꿈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 

그리고 UNDP의 두만강지역개발계획과 조중공동개발 공동관리 방식의 좌절에서 나타났듯이 북한의 특구 개발의 원칙은 <자주성>을 견지하는 독자개발이고 이 바탕 위에서 협력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이 원칙은 바뀔 것 같지 않다. 

이러한 사정들을 생각하면 라선에서 국제협력을 통해 동북아시아 전체의 미래구상을 발전시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두만강 너머 대륙은 가까워지나 해양은 멀어지고 있다.

라선의 미래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해양이다. 그것도 중국 남방지역으로 가는 해양 정도가 아니라 남북한을 연결하고 일본을 연결하고 싱가포르로 미국으로 그리고 북극으로도 갈 수 있는 해양이다. 이렇게 다방면으로 연결될 때 라선은 지정학적 가치가 살아나고 북한 경제발전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 남북 간에 라선 개발협력을 추진한다면, 라선이 북한을 해양지향형 국가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도록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①라진-부산 항로를 비롯한 남북 항로 복구, ②라진항 1-2호 부두 개량과 부두 신설에 대한 국제 협력, ③라진해운대학을 중심으로 해운인재 육성 지원과 원양해운에 활용, ④한국의 조선 및 자동차 산업의 조립가공기지 및 부품조달기지로 육성, ⑤코로나19 종식 이후이겠지만 크루즈를 비롯한 해양관광산업 육성 등이 과제로 될 것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두만강의 대륙을 통한 개발협력인데, 이는 북한의 <자주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방식, 즉 북한 주민들의 자조, 자립 능력을 지원하는 협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창출한다면 새로운 라선의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고등교육기관(라진해운대학, 선봉농업대학, 라진상업전문학교 등)의 경제교육을 지원하고, 주민들의 경제활동을 지원하는 기술과 자금을 마이크로 파이낸싱 기법 등을 활용하여 공급하는 방안을 찾는 것도 좋다.

마지막으로 두만강을 넘나드는 코리언들의 상호 협력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도 과제이다. 중국 연변자치주, 러시아 연해주는 물론 한국과 일본 나아가 북미 유럽의 코리언들이 동북아지역의 평화발전을 위해 라선에서 자유롭게 경제활동과 문화, 지식교류를 하고 국제 평화를 위한 조직적 네트워크가 형성될 때 두만강지역은 평화보장의 주춧돌이 될 수 있다.

북한이 스스로 두만강을 넘어 대륙과 해양을 향하는 교두보로서 라선이 자리 잡는데 남한과 해외의 코리아 동포네트워크는 대단히 현실적인 파트너이다. 두만강지역 개발의 꿈은 이렇게 해야만 실체로 다가올 수 있다.  

남한은 스스로의 위상을 포기하지 말고 라선을 고려한 해양-대륙권 발전 전략을 수립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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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우 (테이쿄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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